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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8/29 13:11:21 |
Name | joel |
Subject | 아스날은 왜 몰락해가는가. |
아스날이 우승 앞에서 좌절했던 2016년 이후로 아스날의 행보는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16/17시즌의 끝자락에서 리버풀에게 밀리며 5위를 기록해 연속 챔피언스리그 진출 기록이 끊어지더니, 이제 아스날은 챔스 복귀는 커녕 유로파조차 간당간당한 순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팀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성적이 하락하는 암흑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라지만 지금 아스날의 위기는 단순한 부침의 순환으로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심각하죠. 오랜 세월 비싼 티켓값을 참아냈던 팬들은 이제 우승 없고 희망 없는 세월에 지쳤고, 팀 재정은 연일 먹구름 끼는 소식만 몰려옵니다. 팀 성적은 점점 더 가라앉기만 하고요. 이 정도로 팀 사정이 꾸준하게 나빠진 것은 근본적인 팀의 운영에서 문제를 찾아야겠죠. 현재 아스날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결국 구단주가 돈을 안 쓴다로 귀결됩니다. 수많은 아스날 팬들이 구단주 스탠 크뢴케에게 제발 돈 좀 써라, 아니면 팀을 팔아라 라고 원망하지요. 그런데 이건 크뢴케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릴 일이 아닙니다. 아스날 운영진이 자초했거든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리미어리그 내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지 못 했던 아스날은 1996년 벵거의 취임과 함께 새 역사를 시작합니다. 벵거는 선수 활용, 몸관리 등에서 EPL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팀에게 수차례의 트로피를 안겨주었죠. 자연히 아스날의 규모도 크게 커졌습니다. 팀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99년 까지만 해도 맨유(약 187m 유로)에 비해 겨우 4분의 1(약 40m 유로)밖에 되지 않던 아스날은 02년에 141m까지 몸집을 불리며 맨유(229m)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습니다. 마침내 04년에는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은 무패우승을 달성하며 영광의 절정에 섰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들을 양성하며 굴지의 빅클럽으로 발돋움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아스날에겐 큰 고민이 있었죠. 홈구장이던 하이버리가 빅클럽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약 38000명만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경기장이었던 겁니다. 197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의 패자였던 묀헨글라드바흐가 작은 경기장이 가지는 재정문제를 극복하지 못 하고 80년대부터 약소팀으로 전락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이버리의 입지조건 때문에 증축은 불가능했고, 아스날은 새로운 홈구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04년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해 06년에 문을 엽니다. 다행히 새 구장의 효과를 톡톡히 받으며 아스날은 07년에 전년대비 약 90m이나 매출이 상승해(약 263m) 유럽에서 5위에 해당하는 수치를 기록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경기장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거대 사업이고, 아스날은 향후 약 6년여를 긴축 재정으로 팀을 꾸려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스날이 이미 획득한 빅클럽의 자리를 내려놓을 순 없었고, 팬들의 기대는 기대대로 충족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벵거는 이 위기의 시대에 꾸준히 아스날을 챔스에 보내며 빅클럽의 지위를 유지했기에 아스날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던 것이고요. 이렇게 아스날이 새 구장을 짓고 재정 메우기에 애를 쓰던 2007년, 바다 건너 미국에서 선글라스를 낀 재벌이 찾아옵니다. 그의 이름은 스탠 크뢴케. 지금의 아스날 구단주인 그 분입니다. 당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와 EPL의 급격한 자본화 바람에 힘입어 외국 자본들이 EPL 팀들을 사들이기 시작하던 시기인데 크뢴케 역시 이 바람을 타고 온 재벌이었죠. 그는 아스날의 지분 9.9%를 인수하며 잉글랜드 축구계에 발을 뻗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스날 이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죠. 당시 외국 자본의 EPL 잠식에 거부감을 느끼던 아스날 운영진들은 그를 꺼렸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날아온 재벌 한 명이 이 불편한 관계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습니다. 크뢴케와 손을 잡았다가 이사회의 미움을 사 자리에서 물러났던 전 부회장 데인이 이번에는 러시아의 신흥 재벌 우스마노프를 끌어들여 아스날의 지분 인수를 추진한 것이죠. 아스날 주식을 사들이는 두 공룡들 사이에 끼어버린 운영진들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크뢴케냐? 우스마노프냐? 어차피 외국 자본에게 넘어가는 건 똑같았지만, 두 사람에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스마노프는 공개적으로 아스날의 긴축재정을 문제 삼으며 자신이 첼시의 로만이 했듯 팀의 빚도 다 갚아주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공언했죠. 크뢴케는 아니었고요. 언뜻 보기엔 당연히 돈 많이 주시는 구단주님께 팀을 넘기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팀의 운영방향이 운영진이나 팬들의 뜻이 아닌 구단주 개인에게 넘어감을 뜻했죠. 팀의 역사를 지켜가고 싶었던 벵거와 운영진들은 결국 크뢴케를 택하고 그에게 지분을 넘겼습니다. 크뢴케는 최다 주주가 되어 사실상 구단주의 위치에 섰고, 우스마노프는 그 후로도 한동안 아스날 인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결국 2018년 주식을 크뢴케에게 매각하고 손을 들어 버리죠. 자세한 내막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아마도 팀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아스날 운영진들이 크뢴케에게 '돈 달라고는 안 하겠지만 경영에는 간섭하지 말라' 라는 협약을 맺었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합니다. 애초부터 우스마노프의 현실판 FM을 막기 위해 운영진이 택한 구단주였으니까요. 실제로도 크뢴케는 만수르처럼 사재를 털지도 않았고, 글레이저처럼 팀의 돈을 빨아가지도 않았지요. 아스날 인수 이후 지금까지 고문료 라는 명목으로 6m을 받아간 것이 크뢴케의 유일한 수익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크뢴케가 대신 떠맡아준 빚의 이자도 안 될 겁니다. 그럼 크뢴케는 왜 이런 호구 같은 조건으로 팀을 샀나 싶은데, 이 사람은 아스날의 소유주라는 타이틀을 활용해 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을 거두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업이 부동산 업자이니 세계 최고로 땅값이 비싸다는 런던 한복판의 명문 축구 클럽의 소유주라는 자리가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겠죠. 이렇게 아스날 운영진들은 거대 갑부들의 돈싸움으로 변해가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역행하는 자체 생존을 택했습니다. 그러니 이제와서 크뢴케에게 돈 좀 달라고 하는 건 꽤 궁색한 모양새죠. 물론 자체 생존을 택한 아스날의 선택이 꼭 잘못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잘만 운영하는 팀들도 여럿 있고요. 로만, 만수르를 만난 첼시, 맨시티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고 외국 자본에게 팀을 넘겼다가 구단주의 변심이나 개인사정으로 팀이 망가져버린 사례가 축구계에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아스날이 원했던 목표를 과연 그런 방식으로 이룰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저는 회의적입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아스날이 리그 4위, 챔스 16강만 기록한다며 조롱받았는데 바꿔말하면 아스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그 이상의 성적이 아스날의 정위치라고 생각했다는 뜻이 되죠. 그런데 리그 우승경쟁, 챔스 8강 정도는 기본으로 찍어주는 팀들은 모두 구단주의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라리가 양강, 바이언, 맨유처럼 대마불사의 입지와 자본력을 구축한 팀들입니다. 축구가 고도로 자본화 되는 시기를 긴축 재정으로 돌파해야 했던 아스날로서는 그만한 여력이 없었죠.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장기적 계획 없이 지리멸렬한 판단만 거듭한 팀 운영진입니다. 벵거는 그가 아스날에 기여한 바와는 별개로 이미 2010년대 중반 쯤에 많은 팬들이 더 이상 벵거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죠. 그런데도 운영진은 리그 5위가 확정되던 날, 경기장에 나부끼던 'wenger out means out' 현수막을 보고도 2년 재계약을 맺었다가 다음 시즌 눈 뜨고 볼 수 없는 경기 끝에 벵거의 사임을 발표합니다. 벵거 재계약 문제야 워낙 거물이고 뜨거운 감자였으니 그렇다 치지만 그 후로도 아스날의 행보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위기만 해결하고 보자는 거였죠. 당장 챔스는 나가고 보겠다는 생각으로 진작 팔았어야 할 산체스를 아무 대책 없이 붙들어놓았던 것, 나이 30세를 향해가며 뚜렷히 한계를 보이던 외질에게 역대 최고 주급을 퍼주며 눌러 앉힌 것, 램지, 웰벡, 윌셔 등의 자원들을 이적료 한 푼 없이 보낸 것 등등이 그 사례죠. 반대로 무스타피, 자카를 합쳐서 70m이 넘는 돈을 주고 사왔지만 무스타피는 처참히 망하고 자카는 카드캡터 계륵이 되었고요. 슈제츠니, 그나브리, 에밀리아노 같은 선수들이 헐값에 나가서 대박난 건 덤입니다. 그럼 주급관리라도 잘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존재감도 희미하던 콜라시나츠가 아스날 시절 받던 주급이 14만 파운드인데 이거 올해 재계약 이전 손흥민이 받던 주급이고, 라카제트는 아스날에서 잘 해주긴 했다지만 케인, 살라와 같은 20만 파운드를 받았습니다. 외질은 무려 35만 파운드를 받았고, 산체스 주고 데려온 미키타리안은 17만 파운드를 받았죠. 이게 대체 스스로 벌어서 생존하겠다는 팀의 선수관리가 맞는가 싶습니다. 빅클럽처럼 스타 선수들을 빨아들이지도 못 하는데 셀링클럽의 장사 수완도 없고, 주급 지출만 빅클럽이다? 여기에 코로나가 겹치자 아스날 운영진은 어쩔 수 없이 크뢴케에게 손을 벌렸고, 크뢴케도 더 이상 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던지(크뢴케 아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는 합니다만)작년에는 아무도 예상 못 했던 토마스 파티 바이아웃을 사비로 지급해주었고,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아스날이 100m이 넘는 돈을 써서 최다 지출 클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성적은 처참하지만...저는 이로써 아스날이 그간 추구해왔던 자립의 가치는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스날이 위기를 넘기고 부활한다 하더라도 결국 위기의 순간에 구단주 찬스를 써서 살아난 거니까요. 앞으로 아스날의 미래가 어떨지는 예상하기 참 어렵습니다. 무능한 보드진, 그보다 더 무능한 것이 확실시 되어가는 아르테타, 그리고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구단주 크뢴케까지 변수가 너무 많아요.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면 비로소 크뢴케가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EPL이 슈퍼리그화 되어 가는 와중에 크뢴케가 아스날의 몰락을 방치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정도군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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