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9/09 17:16:37
Name   녹차김밥
File #1   어벤져스__엔드게임_포스터.jpg (369.9 KB), Download : 40
Subject   CGV에 진상짓을 했던 썰(?)


때는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2회차 관람하던 때였어요. 에지간한 영화는 두 번씩 보는 일이 잘 없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와이프랑 또 보러 갔더랬습니다. 영화관은 용산CGV 아이맥스. 그 중에서도 거의 상위 1%급의 최고급 로얄석! 주변 좌석의 아재들도 신나있었어요. "이야 내가 이 영화 다시 볼 수는 있어도 이 자리에서는 못 보겠다" 하면서 막 수군수군했으니까요. 역사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를 최고의 환경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죠.

아시다시피 이 영화가 초반 절반은 템포가 좀 루즈해요. 액션 신은 뒷부분 절반에 거의 몰려 있죠. 특히 2회차 관람이다 보니 좀더 뒷부분이 기다려졌어요. 영화 중반부, 스톤들을 모아와서 헐크가 딱 스냅을 하면서 와장창창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려는 찰나, 경보음이 울렸어요.

화재 경보였어요. 처음에는 영화 소리랑 섞여서 작은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뭐가 뭔지 구분이 잘 안 됐는데, 점차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분위기가 웅성웅성, 어수선해졌죠. 일단 냄새가 난다든가 연기가 눈에 보인다든가 하는 건 전혀 없었어요. 주변에선 막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아~ 이제 시작인데. 이거 볼려고 영화관 왔는데 하필 지금~!"

화면에선 그대로 영화가 나오고 있고, 위기감이 들지는 않았어요. 분위기상 화재경보 오작동인 느낌이었죠. 그래도 경보음이 멈추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단 일어섰어요. 사람들도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624석을 꽉 채운 관객들 중에 1/3 정도는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심정적으로 그들에 동조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설마"하는 마음도 들었고, 영화의 결정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이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나서 자리를 뜨는 와중에도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었죠. 직원들이 나와서 대피를 지시하거나 그러지도 않았어요. 그때 머릿속에 세월호가 스치지 않았더라면 저도 그냥 앉아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상영관 밖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했지만, 어쨌거나 밖을 향하던 우리가 영화관을 거의 벗어났을 무렵 방송이 들렸어요. 경보기 오작동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어쨌든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상영관으로 들어서는데, 직원들이 무슨 티켓을 나눠줍니다. 받아들고 보니 아이맥스 관람권이군요. 그렇지, 이 정도 보상은 해 줘야지!

영화는 다시 중반부터 상영을 시작했고, 헐크가 다시 스냅을 합니다. 2회차로 봐도 역시 재미있었어요. 영화가 모두 끝나고 나서 직원이 앞에 나와서 안내를 합니다. 오늘 상영분에 대해서는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하는군요? 아까 받은 아이맥스 관람권과는 또 별개로 환불을 해줄 모양입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 주면... 감사하네요? 아이맥스 3D라 이만 몇천원씩 두 명, 거의 오만원 가량을 환불받고 같은 금액의 아이맥스 티켓이 또 생긴 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는데, 일련의 해프닝으로 인해 시간이 꽤 지체되어서 그랬는지 무료주차 가능 시간인 3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새벽 시간이라 항의해볼 주차근무자도 없고 해서 일단은 수 천원을 지불하고 나섰습니다.

며칠 뒤에 CGV측에 당일의 상황에 대해 메일을 보냈습니다. 경보음이 작았던 문제, 영화가 즉각 중단되지 않았던 문제 등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관대한 보상처리에 감사하는 메일이었지요. 그리고 피치 못할 사정이었음을 이해하나 그로 인해 수 천원의 주차료를 추가로 지불할 수밖에 없었음을 덧붙였는데, 이에 대해서도 보상해 주겠다는 답변을 받아 영수증을 첨부하고 주차료 몇천원조차 남김없이 받아내는 진상짓을 좀 했어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문득 경험담 공유해 봅니다.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의 상황, 사람들의 반응, 극장측의 현장대처, 사후대처 등에서 재미있는 점들이 있으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194 일상/생각가정법원에서 바라본 풍경들 6 shadowtaki 21/10/22 4338 28
    12181 일상/생각거시기한 상사 외전 : 대충돌 8 Picard 21/10/18 3218 2
    12180 일상/생각마치츄카町中華 5 向日葵 21/10/18 3904 34
    12170 일상/생각X 같은 상사 vs X 같은 팀원 13 Picard 21/10/15 3878 12
    12165 일상/생각만만한 팀장이 옆팀 꼰대 팀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 17 Picard 21/10/13 4698 7
    12164 일상/생각미국 핀테크 스타트업 인터뷰 후기 19 개랑이 21/10/13 4103 5
    12155 일상/생각약간의 일탈과 음주 이야기 2 머랭 21/10/11 3203 15
    12151 일상/생각제가 홍차넷에서(재미로) 해보고 싶은 것들 16 化神 21/10/10 4002 7
    12145 일상/생각공채시대의 종말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 18 Picard 21/10/07 4321 2
    12129 일상/생각주4일제를 하면 급여를 깎아야 할까? 19 Picard 21/10/01 4782 2
    12124 일상/생각고백을 받은지 일주일 째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32 경제학도123 21/09/29 5477 1
    12121 일상/생각문득. 4 하우두유두 21/09/28 2962 18
    12119 일상/생각오징어게임 엄청 인기 많네요 1 이유있는생수 21/09/28 3087 1
    12116 일상/생각집 인테리어하면서 겪은 일. 29 비사금 21/09/27 4421 5
    12114 일상/생각화천대유.. 몰라요.. 37 Picard 21/09/27 4832 1
    12109 일상/생각검단 신도시 장릉 보고 떠오른 일 22 Picard 21/09/23 4480 3
    12101 일상/생각경제적 1%가 되는 길 10 lonely INTJ 21/09/20 4089 5
    12097 일상/생각합리적인 약자 7 거소 21/09/19 4569 27
    12082 일상/생각왜 (나보다)어린애들은 생각없이 사는가? 라떼는말이야 127 흑마법사 21/09/16 5974 4
    12062 일상/생각손님들#2 - 할매 고객님과 자존심을 건 대결 26 Regenbogen 21/09/09 3728 42
    12061 일상/생각CGV에 진상짓을 했던 썰(?) 5 녹차김밥 21/09/09 4023 6
    12057 일상/생각환타 5 私律 21/09/09 3872 9
    12055 일상/생각그동안 홍차넷에서 그린것들 73 흑마법사 21/09/08 3988 27
    12051 일상/생각'난 떡볶이 별로....' 이신분들 계십니까? 50 Groot 21/09/06 4585 0
    12047 일상/생각새로운 인생 10 샨르우르파 21/09/05 306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