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01/22 07:32:17
Name   Erzenico
File #1   tableforyou.png (707.6 KB), Download : 44
Subject   그 식탁은 널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사진 앱은, 가끔 아무런 의미 없이 과거에 찍었던 사진들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우연히 어제 그 기능이 나에게 추천해 준 사진은 7개월 전 어느 저녁 나의 허기를 채웠던 배달 음식이었다.
뭘, 이런 걸 다 찍어뒀대. 처량하게.

사진이 유독 잘 찍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진 속 눈꽃 치즈 돈까스와 우삼겹 덮밥, 그리고 각각 작은 용기에 담긴 여러 돈까스 소스를 보고 있다 보니, 문득 그 가게는 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동안 배달 시키지 않았던 집의 이름을 찾기 위해선 배달 앱의 기록을 뒤로 쭉 돌려봐야 한다. 급한 일이 없어 사진의 날짜에 시킨 주문내역을 확인한다. 가게 이름은 '널 위한 식탁'.

그러다가 가게 메뉴 위에 적혀있는 공지사항을 보고 두 눈에 보이는 글이 당혹감을 주었다. 사장님이 배달 오토바이를 타다가 트럭에 밀렸다고, 안경 파편이 눈 위로 깊이 박혔고, 날아가서 떨어졌는데 목과 오른쪽 팔을 못 쓰고 있다고.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슬프다고.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바보같이.

가게 정보를 보았다. 가게는 두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로 열심히 노력하는 티가 곳곳에 묻어있는 집이었고 리뷰와 평점도 호평 일색인 가게였다. 무엇보다, 선한 영향력 가게로 결식 아동들을 위해 급식카드에 들어있는 돈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왜 이런 일이 그들에게 닥쳤을까. 비극에 이유는 없다. 그저 무심하게 일어날 뿐.

사진 앱은 내일이면 무심하게 또 그 사진을 스쳐 지나갈 테지만, 나는 부부에게 일어난 일과 이전 내가 맛있게 먹었던 밥을 떠올리며 다친 자의 쾌유와 그들에게 찾아올 행복과 안식을 위해 종종 갈 곳이 분명치 않은 기도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면, 언제고 그 밥을 다시 먹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식탁이 널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25
  • 치즈 돈가스 마이쪙.
  • 널 위한 식탁, 당신을 위한 세상.
  • 건조한 척 사실은 맘씨 고운 분 : ) 사장님의 쾌유를 바랍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742 음악[번외] Jazz For Christmas Time -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를 중심으로 (2) 4 Erzenico 17/12/08 4749 4
6753 음악[번외] Jazz For Christmas Time -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를 중심으로 (3) 4 Erzenico 17/12/11 4832 3
6831 의료/건강완벽한 보건의료제도는 없다 ('완벽한 보건의료제도를 찾아서'를 읽고) 17 Erzenico 17/12/26 7580 25
6836 IT/컴퓨터MS Classic IntelliMouse 간단 사용기 18 Erzenico 17/12/27 10548 0
6927 음악[번외] Kenny Burrell And Grant Green - Genius of Jazz Guitar Erzenico 18/01/11 4369 4
6937 창작돌아본 나 28 Erzenico 18/01/13 4759 6
6998 음악Modal Jazz - 지적인 당신은 너무 멋져요 6 Erzenico 18/01/25 5331 11
7057 음악[번외] Bill Evans (1) - Very Early 6 Erzenico 18/02/06 4187 7
7097 음악[번외] Bill Evans (2) - Portrait In Jazz 4 Erzenico 18/02/12 4262 4
7268 일상/생각해무(海霧) 2 Erzenico 18/03/23 4721 6
7274 오프모임서울, 오늘(24일 토요일) 저녁 한가하신 분?! 43 Erzenico 18/03/24 5414 4
7330 음악[번외] Antonio Carlos Jobim - 브라질이 사랑한 아저씨 2 Erzenico 18/04/04 4486 4
7366 오프모임극초단타 한번 가봅니다...오늘 PM 1:00~2:00 냉면 ㄱ 하실분? 29 Erzenico 18/04/11 4587 1
8117 IT/컴퓨터Zen 2 아키텍쳐를 기다리며 21 Erzenico 18/08/26 6709 0
7404 오프모임[완료]4/19(목) 점심~오후 고정 주제없는 수다모임 가지실 분? 55 Erzenico 18/04/18 5090 7
7517 일상/생각사무환경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무엇일까? 47 Erzenico 18/05/13 5483 1
7676 요리/음식[Cafe Carioca - 1] 나는 어쩌다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가? 22 Erzenico 18/06/13 5793 7
7705 요리/음식[Cafe Carioca - 2] Begining of pour over days 11 Erzenico 18/06/17 6177 1
7908 오프모임 (펑) 잠시 후 2시에 냉면 드실 분 없으실까요? 12 Erzenico 18/07/22 6575 6
8353 일상/생각행복을 생각하다 - 동아리에서 행복 포럼 개최했던 이야기 2 Erzenico 18/10/11 6091 0
10718 요리/음식[Cafe Carioca - 3] Tea For Two 12 Erzenico 20/06/27 5708 1
12459 일상/생각그 식탁은 널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2 Erzenico 22/01/22 4927 25
11841 오프모임모객) 7/11 일 점심 평양냉면 54 even&odds 21/07/02 4866 1
3484 기타원어민도 못푸는 수능34번 문제? 34 Event Horizon 16/08/09 7405 11
3714 과학/기술양자역학 의식의 흐름: 더 퍼스트 어벤져 36 Event Horizon 16/09/16 6761 1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