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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3/02 14:45:32
Name   물냉과비냉사이
Subject   2년간의 비대면 강의 후기
드디어 이번 학기는 죄다 대면 강의입니다.

지난 학기에도 대면 강의를 조금 하긴 했는데 이번 학기에는 교육부의 강한 의지에 힘입어 모든 강의를 대면으로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코로나가 발생했던게 2020년 봄학기 시작 전이었으니 꼬박 2년을 비대면 수업을 해왔네요. 2년간의 비대면 강의를 통해 느낀 점들을 두서없이 기록해볼까 합니다.

* 저는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합니다. 제가 하는 얘기는 제 분야와 교육 환경의 특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밝혀둡니다

처음 비대면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저는 별로 겁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와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인터넷 강의 하는 학원 강사들도 아니고 교수가 이걸 어째 하냐" 하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 비대면 환경에서의 수업 경험이 문제가 아니라 비대면 의사소통 경험 자체가 별로 없는 나이든 선생님들은 그런 걱정 할 수 있었겠죠. 그래도 저는 수능 공부할 때  삽자루 강의를 인터넷 강의로 들은 바가 있고 유튜브나 트위치를 많이 봤으니까 어색함 없이 비대면 수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비전임교수였는데 학교에서 카메라, 마이크 같은걸 사주지 않을 것이라는게 너무 나도 뻔해서 제 돈을 주고 방송장비를 바로 구매했습니다(물론 2주 후에 '모든 교원'에게 카메라는 사준다 해서 피눈물이 났습니다. 역시 부자 학교는 달랐습니다...). 여담이지만 모두가 로지텍 웹캠을 사는 것을 보고 로지텍 주식을 샀어야... 아무튼 OBS를 깔고, 방송세팅을 미리 다 해두고 자신있게 수업을 시작 했는데 생각과는 너무 다르더라고요.

말이 안나왔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말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내 앞에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데 혼자서 말을 하려니 이 상황이 너무나 어색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느낌 상으로는 마치 강의를 혼자 연습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는 학생들이 듣고 있는 것이니 연습과 실전의 그 간극이 참 힘들더군요. 그래서 말을 하다가 멈춰지는 일이 잦았고 꽤 많은 시간을 정신을 바로잡는데 다시 썼습니다. 그나마 첫 수업은 강의계획서를 설명해주고 강의계획에 대한 협의를 하는 시간이어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는데 그 다음 수업은 도무지 자신이 없더군요. 그래서 하스스톤 인벤에 가서 '내가 비대면 수업을 연습해야 되는데 제발 와서 방송좀 봐줘라'고 글을 올렸고, 들어왔던 시청자 한 명 두고 하스스톤 전장 방송을 하면서 혼자 떠들기를 연습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사람이 앞에 없어도 말 하는게 그리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인방을 한다 생각하고 수업을 하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비대면으로 강의를 어찌 하나 생각했었고, 처음에는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비대면 강의에 대한 제 경험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강의내용을 전달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어요.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점들을 봤습니다. 첫째는 질의응답입니다. 보통 비대면 상황에서 질의응답이 어렵다고들 하던데 제 경험은 달랐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도중에 질문을 채팅창으로 하라고 했더니 질문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어요. 보통 대면강의 상황에서 교수가 강의하는 도중에 질문을 하려면 교수의 말을 잘라먹고 들어가야해서 학생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채팅창에 글로 남기면 교수는 할말 다 하고 채팅창을 확인한 뒤에 교수가 원하는 타이밍에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 되니까 수업 중 질의응답은 오히려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보강을 하기 쉽다는 것도 비대면 강의의 장점이었습니다. 공휴일이 끼거나, 학회발표하고 겹치거나, 교수가 아프거나 하면 휴강을 해야 하고 보강을 당연히 해야 하는데, 보강 날짜를 잡기가 쉽지 않죠. 휴강한 수업은 녹화강의로 돌리면 되니 별도의 보강일정을 잡을 필요가 없고, 학회 일정하고 겹치는 경우에는 학회장소에서 실시간 수업도 가능했습니다. 물론 학회장소가 대학인 경우는 빈 강의실이 있으니까 그게 쉬운데 유료로 임대하는 행사장 같은 곳이면 좀 곤란...

그리고 세번째 장점은 통계실습 수업에서 확인을 했는데, 특정한 형태의 수업은 대면보다 비대면 녹화강의로 제공하는 것이 교수자 입장에서도, 학생 입장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통계분석 수업의 경우 강의실에서 하려면 모든 학생들이 랩탑을 지참해야 하고, 학생의 랩탑에 배터리 이슈가 강의 중에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몹시 곤란했는데 녹화를 해서 올려주니까 그럴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실 통계실습 강의의 경우 교수가 작성하는 코드를 잘 이해하고 따라해보는게 중요한데, 대면 현장강의에서는 학생이 강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할 경우 성취도가 급락하는 일이 많습니다. 녹화강의로 하면 학생들은 수업을 듣다가 잠시 멈춰두고 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이해해보고, 코드도 천천히 봐가면서 따라해볼 수 있고, 자기가 나름대로 이해한대로 다른 방식으로 코드를 써보는게 가능하니까 오히려 비대면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비대면 강의의 문제도 몇 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우선, 비대면 강의의 질이 교수자별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건데요, 그나마 강의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컴퓨터나 태블릿 등 전자기기 활용을 잘 하는 분들은 오히려 이 상황에서 여러 교수법을 시도해보면서 꽤 괜찮은 강의를 제공해주지만 불성실하게 하는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이 하더군요. 심지어 PPT도 없이 그냥 음성녹음만 하는 교수가 있다는 얘기를 후배들에게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니 무슨 1인 팟캐스트도 아니고... 원래부터 열심히 하던 사람은 비대면 상황에서 더 공을 들여서 수업을 준비하고 원래부터 강의 대충하던 분은 익숙치 않은 비대면이라는 걸 핑계삼아 더 개판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네요.

두번째는 학생들 조별토론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보통 세시간 수업이면 1시간 40분에서 2시간 가량은 강의를 하고 30분 정도는 토론 주제 던져주고 토론을 시킨 다음에 그 토론 내용 공유하고 피드백을 해왔는데 비대면 상황에서는 그게 참 어렵습니다. Zoom에서 소회의실 기능을 이용하면 학생들끼리 토론이 가능하고 교수도 들어가서 토론 내용 들을 수가 있는데, 교수가 모든 소회의실에 한번에 들어가있을 수 없으니 한 소회의실에 들어가있을 때 다른 조는 잘 하고 있는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요. 더 큰 문제는... 자기들끼리는 토론을 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소회의실에 교수 아이디가 뜨자마자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보이더라는 거죠. 그래서 코로나 첫 학기에만 조별토론 해보고 그 뒤로는 100% 강의로...


2년 간 비대면 강의를 해왔고 이제 일부 대학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비대면 강의를 해보면서 배운 것도 많아서 저에게는 꽤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생활은 수업이 전부가 아니고, 수업도 교수의 강의가 전부가 아닙니다. 어서 모든 대학생들이 강의실로 돌아오기를, 학생들이, 학생과 선생이 즐겁게 만나면서 대학생활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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