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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4/29 20:38:36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땅의 상속자들 - 누구를 위해 복수를 하나

(왼쪽은 아르나우의 아들 베르나트, 오른쪽은 주인공 우고) 


아르나우의 성전, 땅의 상속자들 스포일러. 

'땅의 상속자들'은 '아르나우의 성전'의 후속작이에요. 다만 전작을 전혀 안보고 봐도 무리 없어요.  저도 오래 전에 원작 소설 '바다의 성당'만 읽은 채로 흐릿한 기억을 되살려가며 '땅의 상속자들'만 봄. 

14세기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땅의 상속자들'은 시놉시스가 복수극처럼 소개되었지만,  주인공 인생의 중심에 복수를 놓지 않아요. 그 보다는 삶에 복수와 기회가 찾아오는 식. 

주인공인 우고가 당한 억울한 일들을 돌아보면, 일단 아비잃은 자신을 아버지처럼 챙겨주던 선한 집정관 '아르나우'의 죽음. 아르나우는 오랜 원한이 있던 푸이그 가문이 왕권 교체기에 권력을 잡자 반역의 누명이 씌여 처형당했고. 우고는 재판장에서 아르나우를 변호하다가 푸이그 가문에 찍혀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아르나우에게 은혜입은 유대인들은 아르나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우고를 보고 그에게 코셔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 일을 주며 좀 형편이 나아지나 했지만, 우고의 어머니는 재혼한 남편이 짐승같은 인간이라 하루 종일 학대당하는 데 우고는 그걸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학대 당하다가 죽음. 그리고 자길 도와준 유대인 공동체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기독교인의 폭동에 휘말려 박살. 그 과정에서 첫사랑인 유대인 여인은 폭도들 앞에서도 개종을 거부하다 죽음. 하나 남은 혈육인 누나는 수도원에 들어갔는 데. 정황상 주교에게 강간당하고 애를 낳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우고가 키우게 됩니다. 우고는 그 아이가 누나의 딸인 것도 모르죠. 

이게 대충 도입부에 일어난 일들인데. 복수당해 마땅한 인간들이 한 두 명이 아니죠? 푸이그 가문, 어머니를 학대한 계부, 누나를 강간한 주교, 은인인 유대인들과 첫사랑을 죽인 폭도.

How 'Nirvana in Fire' became a hit abroad<span class='bd'>[1]</span>- Chinadaily.com.cn
(복수 중드의 바이블 랑야방) 


아마 트렌디한 복수극이었다면, 혹은 중드ㅋㅋ였다면 우고는 저들 모두에게 복수했을 껍니다. 하지만 우고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당사자에게 복수를 성공시킨 건 저 중 한 명 뿐입니다. 첫사랑을 죽인 폭도 하나. 그 폭도는 예전에 우고가 아르나우한테서 받은 신발을 훔친 놈팽이라서 레이다 걸려있었음.

나머지는? 아르나우를 죽인 푸이그도, 어머니를 학대한 짐승같은 계부도, 누나를 강간한 주교도 우고와 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복수도 없죠. 우고는 이후 와인 양조로 대성하게 되는 데. 그러다 우연히 아르나우를 죽인 헤니스 푸이그의 사촌인 로헤르 푸이그의 와인 관리인으로 발탁됩니다. 우고는 푸이그와 얽히기 싫어했지만, 그의 와인을 너무 마음에 들어하는 귀족을 거역할 수는 없었죠. 어쨌든 싫은 일 하는 김에 푸이그 가문에 대한 복수도 겸사겸사 하자는 느낌으로 기회가 될 때 마다 로제르 푸이그의 선박을 해적이 된 아르나우의 아들, 베르나트한테 꼰지르는 걸로 재산 상의 피해를 주는 정도. 이후에 그를 완전히 파멸시키기는 하지만, 이것도 의도했다기 보다는 어쩌다 상황이 맞아서.


우고는 몰락한 가문의 공자들처럼 복수를 위해 인생을 갈아넣지 않습니다. 인생의 모든 고된 선택을 복수를 위해서라며 합리화하지도 않죠. 그리고 중세 인물들은 우고의 복수를 기다려주지도 않고요. 일단 우고가 뭘 하기도 전에 그냥 자연사 함. 대표적으로 헤니스 푸이그는 새 왕한테 줄 잘타서 아르나우를 효수한 뒤 백작위까지 받으며 떵떵거리며 잘 살다가 죽는 데. 와 아직 복수도 못했는 데? 이런 감정은 우고는 안느끼고 시청자가 느낌. 헤니스가 죽으며 후사가 없어서 남은 재산과 작위가 사촌인 로제르한테 가버리는 바람에 열심히 꼰질러서 파산시킨 로제르의 가산이나 회복되고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후사가 귀한 푸이그 가문에서 로제르까지 파멸시켰으니 푸이그는 이걸로 완전히 몰락한 셈이긴 하네요. 

(그저 포도밭에서 딸과 행복하고 싶을 뿐인 우고) 

아무튼 보면, 사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고, 정교하고 비정한 복수에 모든 걸 바치는 게 그냥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현실적이라 하는 데. 그냥 나쁜 선택을 합리화하는 소재로 복수가 매력적이고, 사람들이 잔인함과 폭력에 가지는 경외감을 리얼리즘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 우고가 딱히 은원을 잊은 후안무치의 인간이라 이런 것도 아니에요. 우고는 말년까지 아르나우가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바다의 성당을 들릴 때 마다 아르나우를 생각합니다. 키워준 어머니의 사랑도 기억하고요. 그저 그들이 남긴 삶의 교훈이 복수에 매몰된 삶보다는 선한 기독교인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 생각할 뿐.




(아버지인 아르나우 보다 더 성공한 베르나트) 

복수귀 옆에서 착한 애들이 허구한 날 클리셰 대사를 칩니다. 'XX는 네가 이러길 바라지 않을꺼야!'. 이건 머릿속 꽃밭이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하는 게 아니라. 사실 복수의 핵심이죠. 누구를 위하여? 그걸 관통하는 삶이 우고인거고요. 반면교사로 아르나우의 아들인 베르나트를 보면, 베르나트는 갤러선 노예에서 해적으로 대성하고. 그러다 왕권 교체기에 푸이그가 했던 거 처럼 권력을 잡고 제독과 귀족의 지위까지 얻어 바르셀로나에 금의환향. 우고가 모은 반역의 증거를 가지고 로제르를 단죄. 아빠인 아르나우는 모함당했지만, 로제르는 ㄹㅇ루 반동분자였으니 진.짜 정의가 뭔지 보여줬죠. kia 이게 복수지. 하지만 베르나트는 복수를 위해 해적질을 하며 약탈과 폭력에 물들어 아르나우의 선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명예를 선함보다 중히 여기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 남자로 자라났죠. 대표적인게 자신이 혼례를 치른 '바다의 성당'에 아내의 유모였던 무어인이 들어온 사건입니다. 그 무어인은 딸처럼 키운 아이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며 성당에 출입했을 뿐이지만, 베르나트는 감히 바다의 성당에 이교도가 침입했다며 노발대발하고. 그 무어인에게 매우 가혹한 형을 내립니다. 베르나트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그 아버지와 동료들이 일생을 바쳐 지은 바다의 성당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거든요. 

 그런데 베르나트가 존경하는 아버지가 무어인을 엄벌하길 원했을까요? 아르나우는 종교재판을 받으며 이단 심문관 앞에 섰을 때도 유대인의 신앙을 변호했습니다. 그들 역시 그리스도인들처럼 가련하며 그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라고요. 아르나우는 죽을 각오로 이교도들에게 연민을 보였는 데 아들에게선 그 흔적도 찾을 수가 없죠. 지중해의 해적이 된 것도 그렇습니다. 우고는 자신이 알려준 정보로 해적질을 할 때 선량하고 죄없는 이들, 카탈란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지만, 베르나트는 코웃음치며 들어주지 않습니다. 해적질은 살고 죽는 문제인데 어떻게 봐주며 하냐면서요. 우고는 베르나트에게 대충 뉘앙스적으로 '아르나우는 네가 이러길 바라지 않을꺼야!' 클리셰 대사를 치지만 베르나트는 그냥 평화롭게 자란 놈이 하는 말이라고 흘려 듣죠. 근데 정말로 아르나우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았을 꺼에요. 아르나우는 귀족을 경멸하는 만큼 위대한 도시 바르셀로나와 그곳의 시민들을 사랑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항구에서 떠나는 선원들, 카탈란들을 사랑했어요. 바다의 성모를 세운 것도 그 바닷사람들의 안전을 빌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시민들은 그런 아르나우에게 보답했죠. 아르나우가 종교재판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도시가 들고 일어나 그를 구했으니까요. 그러니 우고가 흘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피는 아르나우가 사랑했고, 아르나우를 사랑한 사람들의 피였죠.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14-17



 우고는 어쩌면 아르나우의 혈연이 아니라 복수를 위해 베르나트처럼 하지 않은 걸 수도 있어요. 자기 아빠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아이러니하게도 피를 잇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르나우와 같은 선한 기독교인일 수 있었던 셈이죠. 우고는 그렇게 피가 아닌 그리스도를 상속받았습니다. 




p.s 그냥 탐라로 끄적였는 데 계속 계속 써져서 길어지다보니 감당이 안돼 티탐으로 왔네요 ㅋㅋ 제가 뭔가 감상을 쓸 때는 작품의 어떤 한 면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데. 그래서 실제로 보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나 봐요. 얼마 전에도 청평악 가지고 니가 말했던 거랑 전혀 다르잖아 이러면서 한 소리 들었음. 그래서 미리 경고를 좀 하면, 아르나우의 성전에 이어서 이번 작에서도 지독한 막장 로맨스 삼각관계가 이어지는 데. 주인공의 여자관계는 대충 티탐 500자로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요. 그리고 여자 관계에서 우고가 잘못도 진짜 많이 했음. 후반부 위기는 전부 우고가 아랫도리 간수만 잘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서 좀 얼척 없게 느껴짐. 아르나우도 젊었을 때 욕정에 시달려서 간음으로 죄 좀 짓고 많이 회개했는데. 우고가 여자 문제로는 아르나우랑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거 보고 진짜 피도 안이어졌는 데 하는 짓이 완전 ㅋㅋ.. 

 게다가 주인공의 딸인 메르세와 주인공의 베프인 베르나트가 결혼ㅋㅋ하는 건 이 막장 로맨스의 화룡정점인데. 딸과 아빠 친구라는 구도는 전작의 아르나우가 지 양딸하고 눈맞아 결혼하는 게 변주된거에요. 첨에 메르세가 우고 누나의 딸인 걸 보고 아 최소한 전작처럼 주인공하고 딸이 맺어지진 않겠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었는 데. 베르나트가 등장하면서 부터 둘이 의미심장한 눈빛교환하더니 결국 결혼해버림 허뮈 ㅋㅋㅋㅋ.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의 잘못을 대속하는 메르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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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을 통해 유류분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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