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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7/07 08:41:44
Name   옐빠
Subject   최악의 채용 경험에 대한 투덜썰
종종 근황토크에서 말씀드렸듯이 최근 핫한 자본시장 이슈를 다루고 주주총회 의결 자문 등을 하는 작은 회사의 임원으로 이직하려고 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이었고, 그동안 신념과 철학을 갖고 어려운 상황에서 창업 후 회사를 유지해 온 대표에 대해서는 비교적 좋은 이미지가 있었죠. 그런데 이직을 추진하며 면접-술자리-PT, 총 세 번의 미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저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열받고 황당하고 짜증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뭐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았는데,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그 상황을 기록삼아 남겨봅니다. 나중에 블로그에도 남기고 사방팔방 알릴 생각입니다. 진심 빡쳤거든요.

1. 이런저런 이유로 이직을 고민하던 저는 지인의 제안/추천으로 위에 설명한 회사(편의상 A사라 하죠)에 이력서를 한 통 넣게 됩니다. 어렵게 유지하던 자본시장 내 의결권 자문 회사이지만 최근 그 회사가 주로 다루는 분야가 굉장히 중요해지면서 요새 잘 나가게 됐고 공격적으로 리쿠르팅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요. 문과충 연구직 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인 제 연봉을 맞춰줄지는 의문이었지만, 이력서 넣는데 돈드는 것도 아니고 뭐 어차피 1년에 한 번씩 이력서를 고쳐놓기 때문에 별 다른 고민없이 이력서를 그 분을 통해 넣습니다.

이게 올해 4월 5일의 일입니다.

2. 이력서가 전달된 지 2~3일만에 그 회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00씨'라는 호칭이 거슬립니다. 아 제가 쓸데없이 민감한 걸 수도 있는데, 최소한 저는 000 대표님으로 호명한다면, 그쪽도 '000 박사님', '000 연구원님' 정도로 서로간에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아니면 사실 최소한 000님이라고 불렀으면 전혀 문제가 안됐을 겁니다만.
하여튼 약간 '무례한 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건 사실 그냥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닌일이라, 그냥 넘겼습니다. 그때 '쎄'한 기분은 근데 나중에 적중하죠.
"다음주 초에 한 번 회사를 방문해달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저는 '티타임' 정도를 생각하고 그 다음주 월요일 다소 이른 퇴근을 하고 저녁시간에 그 회사를 가게 됩니다.

어 근데...갑자기 분위기 면접. 그분과 다른 임원 두 분이 들어와 면접을 진행합니다. 근데 뭐 제가 워낙 그런 상황에 당황하는 편은 아니고 질문 하나 하면 30분씩 떠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 신나게 잘 떠들고 면접을 마칩니다. 면접을 끝내면서 대표와 임원이 제게 '술 한잔을 같이 하는 자리를 만들겠다. 어차피 박사님을 일반 직원으로 채용할 게 아니라 임원으로 영입할 거니 우리도 신중해야 하고, 당신을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 당신도 우리에 대해 마찬가지일거고' 라는 취지로 얘길 하고 당연히 합리적인 이야기라 저도 오케이를 합니다. 이게 4월 10일 전후의 얘기입니다.

3. 그렇게 4월 중순 쯤 저녁 약속을 잡고 다시 그 회사 근처로 가서 저녁식사를 같이 합니다. 이번에는 제 또래의 다른 임원이 나오더군요. 뭐 상당히 경력과 스펙이 화려한 분이었고 저 양반 연봉 맞춰줄 정도면 내 연봉도 얼추 맞춰주긴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그 자리는 잘 끝났습니다. '곧 연락 주겠다'는 말을 들었죠.

그렇게 무려 3주가 지나갑니다. 뭐 다른 후보군이 있을수도 있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클 수도 있고, 어쨌든 억대연봉자를 영입해오는 것이니 작은 회사, 이제 막 급성장하기 시작한 회사 입장에서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저도 직장이 있고 바쁜지라 별 신경안쓰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갑니다.

4. 3주쯤 지나 대표한테 문자가 옵니다. '면접과 술자리를 통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 계속 진행을 하고 싶은데 연봉을 얼마를 생각하냐'는 것이었죠. 저는 기본으로 깔리는 성과급을 포함한 제 실연봉을 얘기해줍니다. 그러면서, 당신네 회사 사정은 아니, 약간 못미치더라도 내 커리어와 회사의 비전을 보고 어느 정도 양보는 가능하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뒤에 전화를 하게 됩니다. 그쪽에서 제안한 연봉은 뭐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저도 더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요. 여기까지는 그나마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추가로 요청을 하더군요. 전략담당 임원으로 영입할 생각이니 미래 전략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좀 PT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음....대기업 연구소로 올때에도 그 정도까진 안했는데, 여기에서 약간 내적 갈등이 생기죠. 내가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심지어 살짝 더 적어지는 연봉으로 거길 굳이 가야하나? 라는.

그래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등으로 이직한 여러 지인들,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 분과 전화통화를 해서 조언을 구합니다. 대체적 의견은 '작은 회사는 임원 영입이 보통 일이 아니고 그런 요청을 하는 경우가 드물진 않으니 편하게 하라'는 것이었죠. 어차피 연봉 제안까지 다 왔으면 거의 끝난 거 아니냐며. 아마도 임원진 중 한 명 정도가 반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어보인다는 얘기가 주류였습니다. 이게 5월 중순이 막 넘어가던 시점의 얘깁니다.

5. 계속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그래도 제대로 된 발표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별도로 시간을 내야했고 여차저차 5월 말에 그 A사로 다시 가서 발표하기로 일정을 잡죠. 그렇게 저는 발표 구상을 하고 주말 중 하루 와이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료를 만들고 5월 말 그 회사로 다시 갑니다.

6. PT를 하는 날이 됐습니다. 제가 다니는 연구소가 플렉서블한 근무가 어느 정도 되는 곳이라, 역시나 좀 일찍 퇴근해 A사로 갑니다. 이번엔 그 회사 임원(그래봤자 네 명) 전원이 들어오더군요. 어차피 강연/발표는 이골이 난 사람이라 주욱 진행하고 간단히 그 자리에서 핑거푸드를 함께 먹으며 질의응답을 합니다. 무난해 보이지만 일단 저한테 아무런 양해나 언질 없이 그 임원 중 한 명이 회사에 키우는 강아지가 함께 들어옵니다. '아 뭐 그럴 순 있는데, 내가 알러지가 있을 수도 있고(물론 없지만), 양해를 구하는 한 마디는 해야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뭐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이제 막 30명 정도 되는 인원의 회사....뭐 이해하고 넘어갈만 합니다. 실리콘밸리스러운 기업문화를 추구한다고 하니 뭐 그러려니. 하여튼 그날은 약간 찜찜하고 살짝 묘하게 기분 나쁜 상태로 정리가 됩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라고 대표가 제게 말하고 배웅을 해줬습니다.

그렇게 그날 마무리 하고...속으로 '저 두 마리 강아지 앞에서 내가 PT를 하다니. ㅎㅎ 좀 웃기는 상황이네' 정도로.

7. 이제부터는 진짜 빡이 치기 시작합니다. 최소한 사람을 그렇게 세 번이나 불러서 뭔가 절차를 진행했고, 마지막에는 발표까지 요구했으면 저는 이후 채용 여부에 대한, 영입 여부에 대한 결정은 최대한 빨리 내려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월요일에 발표를 했으니 그 주 안에, 늦어도 그 다음주까지는 '함께 해봅시다' 혹은 '아쉽게도 이번에 영입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절차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 하나는 말을 해줘야죠.

솔직히 제가 막 절실하게 거기 안가면 안되는 사람도 아니기에 기분 나쁠 것도 없습니다. '아 뭐 연이 닿지 않았군. 다른 기회가 올때까지 지금 직장 잘 다니고 있어야지' 정도로 끝났겠죠.

그런데....놀랍게도.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매우 매우 매우 무례함을 느끼는 상황이 된 거죠. 지난 15년 간 직장을 두 번 옮겼고, 이번이 세 번째 직장인데요. 중간 중간 이직에 실패한 적도 분명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갔다가 서로 핏이 안맞으면 제가 거절하기도 하고 그쪽에서 어렵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 해봅니다. 일단 절차가 말도안되게 길어졌습니다. 이직에는 모멘텀이라는 게 있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을때 힘을 받으면서 이직을 알아본 곳과 아다리가 딱 맞아들어가면 이직이 이뤄집니다. 그 과정에서 채용 절차를 시작하기 전까지 좀 기다려야되는 경우는 있습니다만, 시작되고 이렇게 늘어지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뭐 그쪽에서 여러사람 두고 쟀거나, 신중했거나.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중간 중간 '언제까지는 다음 절차에 대해 알려드리겠다. 언제까지는 가부 여부를 알려드리겠다'는 최소한 연락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게 일체 없었죠.

그리고 대충 이런식으로 '아무런 연락도 안하는 방식'으로 매듭을 지으려는 생각인 거 같은데, 이건 진짜 최악인 거 같습니다. 수천명 지원해서 신입직원 몇 십명 뽑는 상황이라도 '모시지 못해 안타깝다'는 문자 하나는 날라갑니다. 근데 무려 임원 영입을 하려다 그만두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건, 그 회사의 시스템 뿐 아니라 그냥 그 대표와 임원진의 기본 태도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합니다.

뭐 좋게 생각해보면, 어버버 하다 이상한 회사로 말려 들어가는 걸 신의 도움으로 막았다고 결론 내리고 대충 저는 제 직장 당분간 열심히 다니면 되긴 합니다만 뭐. ㅎㅎ

하여튼 제가 마흔 다섯에 경험한 최악의 채용경험에 대한 썰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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