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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11/20 09:06:01 |
Name | 알료사 |
File #1 | 카체리나221120.png (432.7 KB), Download : 6 |
Subject | 거미가 심장을 물어뜯을 때 |
왜 더러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곤 하잖니. 그때 카체리나가 나한테 오는 걸 길거리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에서 이 일은 그렇게 없었던 것처럼 되었거든.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물론 나는 모든 것을 즉각 알아차렸어. 짙은 눈이 단호하다 못해 대범함까지 내비쳤지만 입술 주변으로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더군. <언니가 말하길, 당신이 저에게 4500루블을 줄 거라더군요. 제가.. 돈을 받으러.. 당신을 찾아가면요.. 이렇게 제가 왔으니.. 돈을 주세요.. > 그러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숨이 탁 끊길 만큼 겁을 집어먹고 말았어. 입술 언저리의 선들이 파르르 떨리더군. 알료사, 듣고 있어? 자는거야? 나는 형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 줄 거라고 믿어. 그래, 사실대로 이야기하마. 처음 든 생각은 극히 카라마조프적인 것이었어. 한번은 동생아, 거미한테 물려서 이 주 내내 그놈 때문에 열병에 걸린 양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어. 카체리나 앞에서 이번에도 그 못된 벌레가 내 심장을 무는 소리가 들리더란 말이다. 알겠니? 그녀를 쓰윽 훑어봤지. 너도 카체리나를 본 적 있지? 정말로 미인이잖아. 하지만 그때 그녀가 아름다웠던 건 그 때문이 아니야. 그녀는 고결했고 나는 야비했기 때문이야. 그녀는 너그러운 마음에서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는데 나는 빈대에 불과하다는 그것 때문이었지. 자, ㅡ 그런데 이 빈대같이 야비한 나한테 그녀의 모든 것이, 영혼이고 몸이고 할 것 없이 [송두리째] 달려 있는 거야.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였지. 단도직입적으로, 이 생각, 이 거미의 생각이 내 심장을 얼마나 거세게 거머쥐었던지 괴로워서 심장이 녹아 버릴 것 같았어. 이미 갈등하고 자시고 없을 것 같았어. 일말의 동정도 없이 빈대처럼, 사악한 독거미처럼 일을 해치워버리고 싶었어.. 그런 다음에 내일 찾아가 청혼을 하고 누구도 이 일을 알지 못하도록 점잖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지.. 바로 그때 그 순간에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내일 네가 청혼을 하러 찾아가면 이 여자는 너를 맞으러 나오기는커녕 마부에게 너를 쫓아내라고 명령할거야. 그리고 소리칠거야. 온 도시에 떠들라고, 네놈 따윈 무섭지 않다고.) 그렇게 카체리나를 바라보니 내 안의 목소리가 일러준 말이 맞겠다 싶었어. 물론 정말로 그렇게 되고야 말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악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어. 돼지새끼 같은 장사치나 칠법한 아주 야비한 장난질을 치고 싶어졌어. 비아냥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면서 뒤통수를 때리는 거지. <이보쇼, 이건 4000루블이라고요! 농담으로 해 본 소리인데 당신은 이게 뭐하는 짓이오? 이 아가씨 계산 한번 속편하시네? 그래, 200루블 정도라면 내 기꺼이 내놓겠지만 4000루블? 그렇게 경솔한 일에 쓰라고 있는 돈이 아니오. 괜히 힘든 걸음 하셨군요.>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물론 모든 걸 잃어버렸을 테고 카체리나는 달아나 버렸겠지만 대신에 악랄하게 복수할 수 있잖아? 나머지를 희생할 가치가 있었지. 나중에 평생 후회할지언정 오로지 그때만은 그 장난질을 치고 싶었어. 그랬단 말이야! 정말로 그 어떤 여자, 단 한 명의 여자에게도 그 순간처럼 증오를 갖고 바라본 그런 적은 없었어. 그 끔찍한 증오를 가지고 삼 초, 오 초 정도 카체리나를 바라보았는데 ㅡ 그 증오심에서 사랑까지는.. 미칠 정도로 강렬한 사랑까지는 고작해야 한 끝 차이였어.. 나는 창가로 다가가 얼어붙은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 댔는데 유리창의 얼음이 불덩어리처럼 내 이마를 태우는 것 같았어.. 곧 몸을 돌려서 탁자로 다가가 서랍을 열고 5%의 이자가 딸린 5000루블짜리 무기명 수표를 꺼냈지. 말없이 카체리나에게 수표를 보여 주고 접어서 내준 뒤 현관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를 숙여 정중하고 감동 어린 인사를 했지. 정말이니까 믿어 줘! 카체리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백짓장처럼 새하얘져서는 무슨 격정에 사로잡혀서도 아니고 그저 부드럽고 조용하게 온몸을 깊이 숙여 바로 내 발 밑에 절을 하는 거야.. 여대생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 순수 러시아식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말이야..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뛰어가더군. 나는 마침 장검을 차고 있었어. 그 장검을 뽑아들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찔러 버리고 싶었어.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너무 황홀해서 그랬을 거야. 네가 이해할지 모르겠다마는 어떨 때는 너무 황홀해서 자살을 할 수 있거든. 그나저나 이런 것까진 너한테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게다가 지금 이 모든 갈등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스스로를 미화하기 위해 약간의 덧칠까지 한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들 또 어떠냐. 인간의 마음속을 살피는 간첩들은 죄다 귀신들한테 잡혀가라지! 자, 바로 이게 나와 카체리나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전부야. * * * 드미트리는 도시 최고의 인기미녀 카체리나에게 반했지만 자신에게 냉랭한 그녀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하고 싶어하던 중에 기회가 옵니다. 관리로 근무하던 카체리나의 아버지가 거액의 공금을 분실?해서 곤경에 처하고 자살 소동까지 일으킨거예요.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라는걸 노려서 카체리나의 언니에게 살짝 흘립니다. 아무도 모르게 카체리나를 나한테 보내면 그 돈을 내가 내주겠다고.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카체리나가 계획대로 나에게 찾아와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그 짧은 순간 소용돌이치는 온갖 극한의 욕망들... ㅋㅋ 한 인간의 마음속이 얼마나 복잡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인지 이보다 더 집약적으로 묘사한 단락은 드물 것이라 생각해 소개합니다. 도끼를 두고 왜 <넋의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하는지 대번에 납득하게 해주는 장면.. 얼마전에 성상품화 관련 논란이 일었을 때 어쩐지 이 장면이 떠오르더라구요ㅋㅋ 여자를 사고 싶은 남자는 과연 무얼 사고 싶은 것일까, 단순히 그 여자의 성? 아니면 사랑? 아니면 복수심 때문에? 그럼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사지 않는 남자는 왜 사지 않는 것일까? 못 사는 것일까? 내가 권력의 우위에 있으면 정말로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해치워버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해치워버리면 다 채워지는 것일까? 따위의 생각들.. ㅋㅋ 약간은 제가 인방충이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여BJ들에게 별풍을 쏘면서 무얼 얻고자 하는걸까.. (찐ㅋ) 탐라에 흘려버릴 잡발췌글인데 댓글신공 귀찮아서 그냥 티타임에 씁니다. <티타임 = 상단고정 기능 있는 탐라>로 이용해먹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물흐려서 지송합니다. 산캐한 일요일 보내십시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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