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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0/25 10:15:36 |
Name | 헤칼트 |
Subject | 수능 국어 영역의 효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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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를 특별히 나쁘게 보지 않는 것이
1.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는 순차적/맥락적 독해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이 저런 편법으로만 연명할 경우, 난이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큰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체급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방법은 아니란 것이지요.
2. 그리고 저런 요약적인 독해를 편법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독해 수준에 도전을 던질 수 있는, 자신의 문해 수준의 한계치 즈음에 있거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어려운 텍스트를 읽게 될 경우 - 특히 철학과 같이 \'약호\'와 개념의 파악이 중요한 - 저런 ... 더 보기
1.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는 순차적/맥락적 독해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이 저런 편법으로만 연명할 경우, 난이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큰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체급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방법은 아니란 것이지요.
2. 그리고 저런 요약적인 독해를 편법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독해 수준에 도전을 던질 수 있는, 자신의 문해 수준의 한계치 즈음에 있거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어려운 텍스트를 읽게 될 경우 - 특히 철학과 같이 \'약호\'와 개념의 파악이 중요한 - 저런 ... 더 보기
저는 이를 특별히 나쁘게 보지 않는 것이
1.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는 순차적/맥락적 독해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이 저런 편법으로만 연명할 경우, 난이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큰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체급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방법은 아니란 것이지요.
2. 그리고 저런 요약적인 독해를 편법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독해 수준에 도전을 던질 수 있는, 자신의 문해 수준의 한계치 즈음에 있거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어려운 텍스트를 읽게 될 경우 - 특히 철학과 같이 \'약호\'와 개념의 파악이 중요한 - 저런 식의 요약적/추출적 독해를 할 수 있어야 혼동을 겪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텍스트를 읽으면서 핵심적인 어휘들만 추려서 밑줄과 같은 표시를 해두고, 그 어휘들이 전체 글에서 어떤 식으로 연동되는지 보다보면 이해가 쉽지요. 많은 분들이 하드한 텍스트를 읽을 때 일상적으로 쓰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본문에서 말하는 독해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거든요.
여하간, 수능 언어의 경우 문학은 몰라도 - 분명 문학 파트는 문제가 많지요 - 비문학 파트는 물수능이 아닌 한, 학생들의 논리적/합리적 사유능력의 기본기를 판독하기에 충분한 변별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언어영역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대개는 단순히 스킬이 부족하거나 언어감각이 부족한 것만이 아니라, 대상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야가 부족하고, 분석적 판단능력이 떨어지며, 단차원적으로만 편협히 사물을 인지하여 핵심과 전체의 구조를 간과한 채 맹목적으로 일방향과 협소한 부분에만 집착하는 등의 약점을 드러냅니다. 말하자면 전반적인 사유의 깊이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언어 영역이 스킬과 학습과 효율의 문제라면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도 용이해야하는데, 실상 수능의 모든 영역 중에서 언어 영역이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가 가장 어렵죠(상대적으로는).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수리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사교육의 효과는 거품이며 사교육비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연구도 많고, 이렇게 사교육의 효용에 대해 논함에 있어 언어 영역은 대개의 경우 말석을 차지하기 마련입니다. 언어 영역 점수의 향상은 누가 테크닉을 가르쳐서 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 스스로 일정 수준의 문리를 깨쳐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그런 편법적 독해라는 것도 외려 충분한 문해력이 갖추어진 이가 흔히 자신의 독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일반적인 경험적 방법들과 상통하며, 문맹을 석학으로 만들어주진 못하고, 결국은 자신이 가진 총체적인 역량에 의해 판가름이 난다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1.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는 순차적/맥락적 독해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이 저런 편법으로만 연명할 경우, 난이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큰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체급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방법은 아니란 것이지요.
2. 그리고 저런 요약적인 독해를 편법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독해 수준에 도전을 던질 수 있는, 자신의 문해 수준의 한계치 즈음에 있거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어려운 텍스트를 읽게 될 경우 - 특히 철학과 같이 \'약호\'와 개념의 파악이 중요한 - 저런 식의 요약적/추출적 독해를 할 수 있어야 혼동을 겪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텍스트를 읽으면서 핵심적인 어휘들만 추려서 밑줄과 같은 표시를 해두고, 그 어휘들이 전체 글에서 어떤 식으로 연동되는지 보다보면 이해가 쉽지요. 많은 분들이 하드한 텍스트를 읽을 때 일상적으로 쓰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본문에서 말하는 독해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거든요.
여하간, 수능 언어의 경우 문학은 몰라도 - 분명 문학 파트는 문제가 많지요 - 비문학 파트는 물수능이 아닌 한, 학생들의 논리적/합리적 사유능력의 기본기를 판독하기에 충분한 변별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언어영역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대개는 단순히 스킬이 부족하거나 언어감각이 부족한 것만이 아니라, 대상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야가 부족하고, 분석적 판단능력이 떨어지며, 단차원적으로만 편협히 사물을 인지하여 핵심과 전체의 구조를 간과한 채 맹목적으로 일방향과 협소한 부분에만 집착하는 등의 약점을 드러냅니다. 말하자면 전반적인 사유의 깊이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언어 영역이 스킬과 학습과 효율의 문제라면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도 용이해야하는데, 실상 수능의 모든 영역 중에서 언어 영역이 단기간에 점수 올리기가 가장 어렵죠(상대적으로는).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수리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사교육의 효과는 거품이며 사교육비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연구도 많고, 이렇게 사교육의 효용에 대해 논함에 있어 언어 영역은 대개의 경우 말석을 차지하기 마련입니다. 언어 영역 점수의 향상은 누가 테크닉을 가르쳐서 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 스스로 일정 수준의 문리를 깨쳐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그런 편법적 독해라는 것도 외려 충분한 문해력이 갖추어진 이가 흔히 자신의 독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일반적인 경험적 방법들과 상통하며, 문맹을 석학으로 만들어주진 못하고, 결국은 자신이 가진 총체적인 역량에 의해 판가름이 난다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수능은 그 특성상 정량화를 요하는데, 아무래도 문학작품의 독해와 감상은 본질적인 영역으로 들어갈수록 정량화 하기 어렵죠. 그러면 결국 정량화가 가능한 객관적이고 표층적인 영역에만 국한시켜서 문제를 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출제되는 문제들이 대개 지문 간 특징 비교, 서술상의 특징 묻기 같은 것들이지요.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따지고 보면 비문학 문제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문학을 비문학처럼 독해해서 문제를 풀게 되고,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게 됩니다.
그나마 시 같은 경우야 전문을 싣기라...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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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은 그 특성상 정량화를 요하는데, 아무래도 문학작품의 독해와 감상은 본질적인 영역으로 들어갈수록 정량화 하기 어렵죠. 그러면 결국 정량화가 가능한 객관적이고 표층적인 영역에만 국한시켜서 문제를 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출제되는 문제들이 대개 지문 간 특징 비교, 서술상의 특징 묻기 같은 것들이지요.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따지고 보면 비문학 문제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문학을 비문학처럼 독해해서 문제를 풀게 되고,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게 됩니다.
그나마 시 같은 경우야 전문을 싣기라도 하지, 소설이나 희곡 등은 전체 중의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편집해서 제시하는 것이다보니 작품 전체의 구성이나 구조와는 동떨어진 해석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특히 소설의 경우 이렇게 전체 텍스트의 구조와 유리되어 있는 편집된 지문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보니 필연적으로 대화 위주의 장면을 지문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대화는 양자/다자 간의 입장이 교차하니까 편집되어 제시된 지문 내의 전개의 맥락을 추측하기 용이하지만, 묘사나 서술이 주를 이루면 응시자들이 일단 지문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애를 먹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이쯤 되면 소설 독해가 아니라 그냥 대화 독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읽기의 본질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문학 파트의 문제들이 변별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응시자의 문학 감상력이 아니라 그냥 논리적 독해력, 화법 파악 등에 대한 것일 따름이고, 이것은 비문학 감상력과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수능이라는 시험의 포맷 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는 합니다만...수능 언어 영역에서 가지는 문학 파트의 의의라면, 그 자체의 변별력보다는 수능을 준비하면서 수험생들이 다수의 문학작품을 다이제스트/파노라마 식으로나마 접하게끔 하는 것 정도가 아닌가 싶네요.
그나마 시 같은 경우야 전문을 싣기라도 하지, 소설이나 희곡 등은 전체 중의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편집해서 제시하는 것이다보니 작품 전체의 구성이나 구조와는 동떨어진 해석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특히 소설의 경우 이렇게 전체 텍스트의 구조와 유리되어 있는 편집된 지문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보니 필연적으로 대화 위주의 장면을 지문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대화는 양자/다자 간의 입장이 교차하니까 편집되어 제시된 지문 내의 전개의 맥락을 추측하기 용이하지만, 묘사나 서술이 주를 이루면 응시자들이 일단 지문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애를 먹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이쯤 되면 소설 독해가 아니라 그냥 대화 독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읽기의 본질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문학 파트의 문제들이 변별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응시자의 문학 감상력이 아니라 그냥 논리적 독해력, 화법 파악 등에 대한 것일 따름이고, 이것은 비문학 감상력과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수능이라는 시험의 포맷 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는 합니다만...수능 언어 영역에서 가지는 문학 파트의 의의라면, 그 자체의 변별력보다는 수능을 준비하면서 수험생들이 다수의 문학작품을 다이제스트/파노라마 식으로나마 접하게끔 하는 것 정도가 아닌가 싶네요.
이해를 하면 1등급이 나오는데
저런식으로 하면 어떻게든 2~3등급까지 나오죠
그리고 9등급제에서 정규분포에 따른 수험생들의 평균 실력은 5등급이라고 가정해야되기 때문에
글을 이해시켜서 1등급을 뽑는건 대다수에겐 제한시간 내에 하기엔 비효율적인 학습 방법이란 말이 됩니다.
물론 글을 이해하고 풀라는게 언어영역 시험을 내는 최종 목표이고 장기적으론 그렇게 하는게 바람직합니다만, 똑같이 5등급인 학생 2명의 입장에서 첫번째 방법을 하려고 하다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시험을 망치는것 보다 그냥 두번째 방법을 익혀서 일단 닥쳐온 상황을 해결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저런식으로 하면 어떻게든 2~3등급까지 나오죠
그리고 9등급제에서 정규분포에 따른 수험생들의 평균 실력은 5등급이라고 가정해야되기 때문에
글을 이해시켜서 1등급을 뽑는건 대다수에겐 제한시간 내에 하기엔 비효율적인 학습 방법이란 말이 됩니다.
물론 글을 이해하고 풀라는게 언어영역 시험을 내는 최종 목표이고 장기적으론 그렇게 하는게 바람직합니다만, 똑같이 5등급인 학생 2명의 입장에서 첫번째 방법을 하려고 하다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시험을 망치는것 보다 그냥 두번째 방법을 익혀서 일단 닥쳐온 상황을 해결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전 사교육 안받고 학교 정규,보충수업이랑 자습만 해봐서 정공법이나 학원 노하우나 딱히 생각 안해봤는데요..
수능의 목적은 대학가서 수학할 능력을 평가가는 데 있는데, 그 역할을 지금 수능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거군요.
애초에 수능시험 하나로 역량을 평가한다는게 말이 안되지만 가장 효율적이라고 다들 믿고 있으니 사회적인 약속이 된거죠. 이 점에선 매우 안타깝지만 제도를 사람이 만드는 이상 수능을 대체할 이상적인 평가방법이 뚝딱 만들어지진 않을 거 같고 수시비중이 늘어난다 해도 수능보다 공정할 순 없죠..
편법을 쓰든 이해을 해서 풀든 찍지 않고서 정답을 맞췄다면 그 맞춘 점수만큼 수험생의 역량을 검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제자의 의도와 다를지라도 크게 상관 있을까요?
수능의 목적은 대학가서 수학할 능력을 평가가는 데 있는데, 그 역할을 지금 수능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거군요.
애초에 수능시험 하나로 역량을 평가한다는게 말이 안되지만 가장 효율적이라고 다들 믿고 있으니 사회적인 약속이 된거죠. 이 점에선 매우 안타깝지만 제도를 사람이 만드는 이상 수능을 대체할 이상적인 평가방법이 뚝딱 만들어지진 않을 거 같고 수시비중이 늘어난다 해도 수능보다 공정할 순 없죠..
편법을 쓰든 이해을 해서 풀든 찍지 않고서 정답을 맞췄다면 그 맞춘 점수만큼 수험생의 역량을 검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제자의 의도와 다를지라도 크게 상관 있을까요?
홍차넷에야 워낙 글 잘 쓰는 분들이 많고 학력 좋으신 분들이 많아 별 자랑도 안 되겠지만 저도 수능에서의 언어 영역은 거의 백 점이었습니다. 딱히 공부를 하지도 않았음에도 그랬고 이는 아마 독해력을 잘 평가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다른 영역들보다도 언어 영역이 정확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완벽한 시험은 아니었습니다. 워낙 예전 일이라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점자들이 너무 많은 변별력이 낮은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쳐준 방법이 상당히 획기적인 방식이라고 해도 그걸 써서 놀라운 성적 향상을 ... 더 보기
홍차넷에야 워낙 글 잘 쓰는 분들이 많고 학력 좋으신 분들이 많아 별 자랑도 안 되겠지만 저도 수능에서의 언어 영역은 거의 백 점이었습니다. 딱히 공부를 하지도 않았음에도 그랬고 이는 아마 독해력을 잘 평가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다른 영역들보다도 언어 영역이 정확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완벽한 시험은 아니었습니다. 워낙 예전 일이라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점자들이 너무 많은 변별력이 낮은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쳐준 방법이 상당히 획기적인 방식이라고 해도 그걸 써서 놀라운 성적 향상을 이룬다면 그 학생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독해력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헤칼트 님이 다니는 학원에 다니고 그걸 써먹어 점수를 올릴 시도를 하는 학생이라면 아마 상위권에 있는 학생일 것 같은데, 그 수준에서는 이미 큰 변별력을 보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통파를 앞지르지도 못할 것 같아서요.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패턴을 많이 암기하는 싸움이 된 수학이 더 큰 문제일 것 같아 중요성이 낮은 문제 같습니다.
수능도 과목마다, 단일한 문제가 아닌 전체의 흐름(?)을 본다면 과목별로 올바른 가이드 라인 제시와 평가를 한다고 봅니다. 문학작품을 보기위한 기본, 정보가 담긴 글을 해석 하기 위한 기본 등등. 각각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수능의 가장 큰 포인트인 [변별력] 입니다. [수능이 얼마나 불평불만이 적게끔 학생들의 줄을 잘 세워주는가?] 이 한문장이 수능 문제들을 평가하는 평가 지표인이상, 이 글과 같은 의문은 끝날 수가 없습니다... 더 보기
수능도 과목마다, 단일한 문제가 아닌 전체의 흐름(?)을 본다면 과목별로 올바른 가이드 라인 제시와 평가를 한다고 봅니다. 문학작품을 보기위한 기본, 정보가 담긴 글을 해석 하기 위한 기본 등등. 각각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수능의 가장 큰 포인트인 [변별력] 입니다. [수능이 얼마나 불평불만이 적게끔 학생들의 줄을 잘 세워주는가?] 이 한문장이 수능 문제들을 평가하는 평가 지표인이상, 이 글과 같은 의문은 끝날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너무나도 많고, 등수가 구분이 되야 하기 때문에, [수학능력에 정말 필요한 문제인가?] 싶은 문제들이 추가되는거죠. 교육의 기본 목표가 학생들의 내실을 채우는게 아니라, 분류기가 되어버렸어요.
수능류의 평가방식이 가지는 또 다른 문제점을 얘기하면, 그저 정해진 보기 안에서, 효과적으로 빠르게, 답이 아닌 것들을 소거해서 답을 찍어내면 되는 겁니다. 보기가 없는 문제, 더 나아가 답이 없는 문제들에서는 학생들의 대처 능력이 아주 떨어집니다. 토익이 영어능력과 무관하다는 인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죠. 소거로 답을 찾아가는건, 시험에서나 먹히는 이야기입니다. 대화할때 눈앞에 선택지가 뜨면서 답을 소거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확장된(?) 논술과 같은 형태에서는 정해진 보기 이내에서 문제를 푸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성] 문제 때문에, 답에 가이드 라인이 생깁니다. 누구나 듣고 납득 할 만한 평가 지표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문제에 제약이 생기고, 범위또한 그렇게 넓게 가질 못해요.
이건 대학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육부 대학교육 방침은 [학점을 얼마나 퍼주지 않고 비율 이내에 잘 나눠주느냐 = 얼마나 줄을 잘세우냐] 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평가의 지표로 들어가는데, 다를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취업등에서 학교 생활의 평가가 학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도 학점을 잘 받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용이해는 학점을 잘 받기위한 부가사항이에요. 거기에 [공정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명확한 채점 기준이 없으면, 평가 지표로서 사용하지도 못합니다. 평가지표가 아니여서 학점에 영향을 줄 수 없으면, 수업에서 무시될 뿐입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들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남들에게 무시받거나 자격지심에 시달리지 않고 가난하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사회가 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겁니다. 수능을 필두로한 대입 체계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가야할 대학들의 정원들은 정해져 있으며, 학생수는 그걸 아득히 초월한다면,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더 넓게 대학, 영어등 전체 교육 문제로 넘어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험을 잘보기위해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상 [시험을 잘보기위한 교육]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 고통스럽지만 진짜로 저를 절망 시키는 부분은, 최저임금 문제와 마찬가지로 높으신 분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도 문제 인식과 공감이 안되고 악화되는 방향으로만 간다는 겁니다. 대입 방법이나 바꾸고, 대학평가로 목줄흔들기나 하고,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등등...
요즘들어 자주 공감하고 있는 어린왕자의 한부분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른들이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봤는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모으지는 않니?” 따위의 말을 하는 법이란 결코 없다. 그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만일 어른들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요”라고 말해서는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야 참 좋은 집이구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수능류의 평가방식이 가지는 또 다른 문제점을 얘기하면, 그저 정해진 보기 안에서, 효과적으로 빠르게, 답이 아닌 것들을 소거해서 답을 찍어내면 되는 겁니다. 보기가 없는 문제, 더 나아가 답이 없는 문제들에서는 학생들의 대처 능력이 아주 떨어집니다. 토익이 영어능력과 무관하다는 인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죠. 소거로 답을 찾아가는건, 시험에서나 먹히는 이야기입니다. 대화할때 눈앞에 선택지가 뜨면서 답을 소거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확장된(?) 논술과 같은 형태에서는 정해진 보기 이내에서 문제를 푸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성] 문제 때문에, 답에 가이드 라인이 생깁니다. 누구나 듣고 납득 할 만한 평가 지표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문제에 제약이 생기고, 범위또한 그렇게 넓게 가질 못해요.
이건 대학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육부 대학교육 방침은 [학점을 얼마나 퍼주지 않고 비율 이내에 잘 나눠주느냐 = 얼마나 줄을 잘세우냐] 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평가의 지표로 들어가는데, 다를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취업등에서 학교 생활의 평가가 학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도 학점을 잘 받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용이해는 학점을 잘 받기위한 부가사항이에요. 거기에 [공정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명확한 채점 기준이 없으면, 평가 지표로서 사용하지도 못합니다. 평가지표가 아니여서 학점에 영향을 줄 수 없으면, 수업에서 무시될 뿐입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들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남들에게 무시받거나 자격지심에 시달리지 않고 가난하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사회가 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겁니다. 수능을 필두로한 대입 체계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가야할 대학들의 정원들은 정해져 있으며, 학생수는 그걸 아득히 초월한다면,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더 넓게 대학, 영어등 전체 교육 문제로 넘어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험을 잘보기위해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상 [시험을 잘보기위한 교육]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 고통스럽지만 진짜로 저를 절망 시키는 부분은, 최저임금 문제와 마찬가지로 높으신 분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도 문제 인식과 공감이 안되고 악화되는 방향으로만 간다는 겁니다. 대입 방법이나 바꾸고, 대학평가로 목줄흔들기나 하고,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등등...
요즘들어 자주 공감하고 있는 어린왕자의 한부분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른들이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봤는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모으지는 않니?” 따위의 말을 하는 법이란 결코 없다. 그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만일 어른들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요”라고 말해서는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야 참 좋은 집이구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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