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2/03 16:54:55
Name   카르스
File #1   20230202_144119_1675403267_resized.jpg (79.3 KB), Download : 5
Subject   석학의 학술발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왜곡되어 소비되는 방식


어쩌다가 혐오정서로 악명높은 펨코에 올라간 문제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https://www.fmkorea.com/best/5459790417

무려 "인구절벽 회의론자 급증, "인구절벽은 이론일 뿐..두려워만 말라""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종화 교수와 홍춘욱 박사의 주장이 언급됩니다.
"실제로 인구절벽이론은 미국에서 헨리덴트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론만 있고 단 한번도 적용된 적 없음."
이라는 말미 문구와 함께 글이 종료됩니다.

그리고 댓글란은 한국 인구구조 망한거 확실하지 않냐, 이종화 교수 말대로 절대 안된다, 윗세대가 문제라는 식의 냉소와 혐오정서로 가득합니다.
댓글란의 위 주장들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선 답하지 않겠습니다.
냉소, 혐오정서와 비속어 표현이 그릇됨은 분명하지만.

참고로 저는 위 글에 나오는 홍춘욱의 논평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구와 경제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 지나하게 낙관적인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종화 교수의 발표내용을 본문과 댓글란에서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건 명백한 왜곡, 오독, 인신공격입니다.


이걸 단언할 수 있는 게,
저는 어제 윗 링크 첫번째 짤방에 언급된 학술대회 현장에서 저 강의를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글 맨 윗부분에 인증사진이 있습니다.

이종화 교수님은 인증사진에서 보다시피 한국에서 극심한 인구감소,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게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2050-60년대에 한국 경제성장률이 0.9%, 1인당 gdp가 2.3%까지 떨어진다는 게 긍정적인 예측이라 보기는 힘들죠.
심지어 물적자본 투자율이 더 하락하여 평균성장률이 0.7%p나 더 떨어지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도 산입했습니다. 실제로 이 부분에 집중해서 제목을 작성한 기사도 있습니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20216192057785 참고)

그러면 기사에 나오는 "인구 감소 두려워만 말라"는 교수님의 장담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실마리는 "인구가 한 나라 경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란 생각은 역사적으로 자본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라는 교수님의 발언에 있습니다.

정답은 물적자본, 인적자본 향상 및 기술적 진보를 꾸준히 높게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경제성장률이 0.6%p 더 올라가서 한국 경제성장률이 1.5%, 1인당 gdp 성장률 2.9%가 되는 낙관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분명히 낙관적인 시나리오에는 물적 자본, 인적 자본, 기술적 진보를 꾸준히 하라는 조건이 들어갑니다.
기사엔 안 나왔지만, 이종화 교수 경제예측의 바탕이 된 인구예측은 통계청 2021년 인구추계의 저위(비관적 예측) 기준이라서, 저것보다 더 좋을 가능성도 제법 있습니다. 사견입니다만 이민자 추가유입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실제 인구추이는 저위-중위 사이로 가지 않을까 추측도 해보고요. 이민자 유입이 더해지면 또 다르고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댓글창에는 저출산 고령화가 심해져서 상관없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내용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댓글창은 석학 발표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가득하죠.

사실 이종화 교수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거시경제, 경제발전, 인적자본 석학(저도 작년 티타임에 올린 인구구조 관련 글에 교수님의 논문을 인용한 적 있습니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한국사회에 미칠 충격을 여러번 경고해온 건 일반인이 알 일이 없을테니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학자들의 주장을 인터넷 냉소, 혐오정서의 연장선에서 함부로 조롱하고 비하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건 굳이 저 분이 저명한 학자임을 몰라도 지켜야 하는 윤리입니다. 

이런 씁쓸한 해프닝은 현대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러 문화적 문제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딱 두 명의 존재로 인구절벽 회의론자 "급증"을 논하는 자극적인 커뮤 공유글 헤드라인,
모 아니면 도라는 흑백논리,
글을 중간에 자르는 악마의 편집으로 원글의 논지를 왜곡하는 짤방문화,
남의 의견을 함부로 조롱하고 비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특유의 정서

참고로 커뮤에서 연구결과나 통계가 왜곡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도 통계자료를 자기들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 날조한 경우를 꽤나 발견했습니다.  
언젠가는 말할 생각입니다.

커뮤니티를 넘어 사회과학 통계나 연구결과를 언론, 정치권, 일반인들이 멋대로 오독, 왜곡, 악용하는 일이야 국내외 막론하고 비일비재한데, 제 주변에도 비슷한 일이 생겨나는군요. 스트레스도 비일비재한 게 참 씁쓸합니다.



29
  • 동의합니다 자극적인 부분만 부추겨 자기 입맛대로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온라인에 많지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613 경제사교육 군비경쟁은 분명 출산율을 낮춘다. 그런데... 10 카르스 23/03/02 2886 11
13595 사회한국 인구부양비 악화의 진짜 원인 (부제: 출산율 2.1 찍어도 인구부양비 악화는 피할 수 없다) 27 카르스 23/02/24 3454 9
13588 정치이명박 정권 초기를 보는듯한 2023년 한국정치 25 카르스 23/02/22 3356 4
13583 사회서구와 동아시아에서 추구하는 자유는 다르다 13 카르스 23/02/21 2504 7
13569 사회한국인과 세계인들은 현세대와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보는가 6 카르스 23/02/15 2303 6
13561 역사수학 잘하는 동아시아인의 역사적 기원 28 카르스 23/02/12 3152 4
13546 사회통계로 본 비수도권 청년 인구유출 추이 7 카르스 23/02/06 3052 9
13538 사회석학의 학술발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왜곡되어 소비되는 방식 13 카르스 23/02/03 2841 29
13513 경제인구구조 변화가 세계 경제에 미칠 6가지 영향 13 카르스 23/01/27 3614 10
13499 정치윤석열 정부 한미동맹 어젠다의 의외의 걸림돌 14 카르스 23/01/22 2775 2
13457 경제때늦은 2022년의 경제학 (+인접분야) 논문읽기 결산 8 카르스 23/01/04 2383 12
13441 일상/생각내 인생의 전환점, 2022년을 결산하다 7 카르스 23/01/01 2425 22
13420 사회하나의 그래프로 압축해본 한국 일본사회 비교 29 카르스 22/12/22 3232 6
13347 스포츠BBC 월드컵 예측의 놀라운 적중률 6 카르스 22/11/24 3061 0
13336 정치페미니즘-반페미니즘 담론은 정점을 지났는가 100 카르스 22/11/20 5013 2
13308 사회한국 사회의 검열이 완화되지 않는 진짜 이유? 80 카르스 22/11/10 4557 7
13119 사회한국 인구구조의 아이러니 20 카르스 22/09/01 4439 51
13100 일상/생각자폐 스펙트럼과 일반인의 경계에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 14 카르스 22/08/21 6817 71
12996 정치요즘 정치에 대한 세 가지 단상 27 카르스 22/07/13 4785 10
12935 음악유자왕 피아노 연주회 리뷰 (2022.06.19, 예술의전당) 9 카르스 22/06/19 3070 9
12891 일상/생각나머지는 운이니까 16 카르스 22/06/05 4227 30
12814 음악아마추어인 내가 피아노 콘서트를 연다면 13 카르스 22/05/14 3386 5
12790 사회윤석열을 맞이하며: 진보 담론의 시대는 끝났다 76 카르스 22/05/08 5954 47
12757 사회왜 요즘 페미니즘은 성적으로 덜 개방적인가 52 카르스 22/04/28 5598 14
12756 사회OECD 지역웰빙 지수로 본 한국의 지역격차 14 카르스 22/04/27 3577 1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