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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0/30 01:35:36
Name   darwin4078
Subject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에 대한 짧은 생각 - 안중근 의사 후손의 시구

얼마전 열렸던 한국시리즈 2차전에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안도용씨가 시구자로 나왔습니다.



KBO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계획은 대구에서 시작됐으며,
안중근 의사의 딸 안현생 여사는 6.25 때 대구로 피난을 와 대구 수녀원에 거주하다 전쟁 이후 대구 가톨릭 대학에 재직한바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안도용씨를 시구자로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안도용씨가 생계형 친일행적을 보인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손자라는 건데요...



안중근 의사의 후손은 이렇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의 둘째아들 안준생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친일행적으로 유명했습니다. 32살 되던 1939년 10월,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인 박문사(현 서울 신라호텔 자리)를 찾아 분향을 하였고, 이토의 아들 이토 분기치(일본광업 사장)를 만나서 사죄했습니다.



맨 왼쪽이 안준생입니다. 일본 정부의 치밀한 각본대로 연출된 화해극이었죠.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조선통치의 위대한 전환사” “부처의 은혜로 맺은 내선일체”라며 대서특필했습니다. 또한 안준생이 “죽은 아버지의 죄를 내가 속죄하고 전력으로 보국의 정성을 다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도 보도했습니다. 후에 일본은 영국인 세관장이 살던 고급 주택을 사주는 등 안준생을 특별 관리하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안중근이라는 명망높은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대놓고 아버지의 죄를 속죄한다고 하니 일제 입장에서는 체제 선전용으로 꽃놀이패도 이런 꽃놀이패가 없었겠죠.


그래서, 1945년 장제스와의 회담에서 김구 주석은 “안중근 자식이 일본에 항복하여 상하이에서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하며 아편을 매매하므로 실로 유감이다. 직접 명령을 내려 안준생을 구금해주기 바란다”라고 요청하였고, 1945년 11월 귀국길에 김구 주석은 “민족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을 체포하여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리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호부견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도용씨가 미국에 살고 있는 이유도 안중근 의사의 후손인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인 안준생이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혀서입니다.

장녀 안현생의 삶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1909년 어머니가 두 아들만 데리고 망명하자, 안현생은 프랑스 신부의 보호 아래 서울 명동의 수녀원에서 지냈습니다. 1914년 13세가 돼서야 안현생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족과 합류했습니다. 19세가 되던 1919년 안 의사 가족은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로 이사했고, 여기서 현생은 불문학을 공부하였고. 1941년 3월26일, 안현생 역시 남편 황일청과 함께 박문사를 참배하고 아버지의 죄를 사죄했습니다. 안현생 부부도 역시 일본의 특별 관리를 받았죠.

이런 역사적 사실로 보면 안준생은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한목숨을 바쳤던 아버지의 인생에 똥물을 끼얹은 악질 친일파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가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에게 가했던 핍박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듯 합니다. 안중근 의사 가족들은 의거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코르지포, 중국 길림성 무링(목릉)현, 러시아 니톨리스크, 중국 상하이 등으로 떠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는 1946년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돌아가셨죠.

그렇다면, 안준생의 선택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안준생은 2살이었습니다.
안준생의 형이자 안중근 의사의 첫째아들은 안분도는 길림성에서 어린 나이로 죽었는데 일본 밀정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큰형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자신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일제의 핍박을 피해가면서, 안준생은 중국 상하이 식당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어렵게 생활했습니다. 위의 김구 주석의 말대로 아편 장사를 한다는 말도 있었죠.
기억나지도 않는 아버지의 행동에 의해 나의 인생은 고난과 핍박의 연속인데 나는 안중근 의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꿋꿋하게 평생을 일제의 핍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 속의 슈퍼 히어로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악당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악당은 히어로의 활약에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악당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슈퍼 히어로의 약점, 가족에 대해 끊임없는 비열한 박해, 협박, 살해위협을 가합니다.
그리고, 길고긴 핍박에 가족들은 점점 무너져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준생의 친일행각이 잘한 일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일제의 핍박이 힘들다고 해서 아버지의 평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저런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이죠.

이렇게 안준생의 친일 행각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데요, 이에 대해 잘 묘사해 놓은 역사소설이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라는 소설입니다. 뜬금없는 책광고가 되어버렸는데요,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이후 안준생의 행적에 대한 소설입니다.
문고판형의 짧은 소설이지만 안준생의 친일에 대해, 그리고 정의로운 삶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설입니다.




다시,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로 돌아와서... 안준생의 친일행적을 손자인 안도용씨에게까지 연좌제로 걸머지게 하는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의미로 KBO에서 안도용씨를 초청하여 시구를 맡긴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돌을 던지고 비난할 필요는 없지만, 꽃가마를 태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싶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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