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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8/11 22:04:34수정됨
Name   카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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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부제: 중산층 문화와 공동체의 잠재적 위험성)


1. 기생충이 빈부를 가르는 '수직'의 구도가 돋보였다면, 이 영화는 고층 아파트가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외집단과 내집단을 가르는 '수평'의 구도가 돋보입니다. 황궁아파트 거주민들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나오지만, 배경인 80-90년대 복도식 아파트는 높은 사회적 계층을 상징하지 않습니다. 외부인들 추방 논의할 때, 고급 단지 아파트 주민들에게 평소에 무시당했다는 하소연도 있었으니. 그렇기에 외부인들이라고 원래 가난하지 않았으며, 내부인들이라고 원래 부유한 건 아니었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디스토피아급 대재난이 운명을 갈랐을 뿐이니. 바로 밑에 언급하는 주연들의 다면성과 함께 생각하면 더더욱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2. 주연인 영탁 민성은 선악구도상 다면적인 캐릭터로서 매력이 있습니다. 이 부분도 기생충과 비슷합니다. 이 부분은 그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결말에서 나오는 한 주연(혹 스포가 될까봐 에둘러서)의 명대사로 확인사살됩니다. 다만 선역인 명화가 다면성이 없는 이상적인 캐릭터로 나온 부문은 아쉽습니다.

3. 작품의 주제의식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나는 '단지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 중산층 문화에 대한 비판입니다. 다들 성취를 지향하고 출세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며, 단란하고 화목한 정상가족을 만들기를 지향하죠.  한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 선진국들은 서구권의 하류층들이나 히피들처럼 사회적 출세를 포기하고 대충 즐기면서 사는 부류가 없거나 적기 때문에,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합니다. 그런 중산층 마인드로 무장한 부류가 모인 단지아파트는 영어식으로 말하면 자기들끼리의 '배타적인 커뮤니티(gated community)'가 되어, 외부인을 적대하는 폐쇄성, 되도 않는 선민의식, 물질주의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그 부분을 영화는 명징하게 풍자합니다.

4.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근원적 한계에 대한 지적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집단 이기주의와 배타성에 찌든 황궁아파트 공동체를 비판하며, 저것은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라 비평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야말로 공동체(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위험성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공동체가 중요하다, 무너진 공동체를 되살리자 이런 말만 하기에 놓치기 쉽습니다만, 공동체는 출신지역이나 종교와 같은 쉽게 벗을 수 없는 특성과, 외집단과 내집단을 가르는 배타성에 기초합니다. 자기 아파트만 피해간 디스토피아급 대재난을 통해서 황궁아파트 거주자들은 외부와 스스로를 분리짓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황궁아파트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그 배타적 정체성 때문에 안에서 곪아 갔고, 그 정체성의 부조리를 넘어 모순까지 폭로되자 바로 내파됐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단순히 '공동체가 무너진 우리 이야기' 수준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며, 공동체라는 이상적으로 보이는 개념이 잠재적으로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의상 작은 섬마을, 군 부대, 대학원 사회는 확실한 공동체입니다만, 이들은 불행히도 나쁜 건수로 뉴스에 많이 나왔고 대중에게도 이미지가 좋지 못하지요. 공동체 특성상 피할 수 없는 폐쇄성에 기인한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데 실패한 게 큽니다. 지금처럼 흉흉한 뉴스들의 연속으로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진단이 많이 나올 때일수록, 영화가 그려내는 공동체의 어두운 면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단순한 공동체 형성을 넘어, 지속가능하고 건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요.

5. 엔딩은 타임라인에서도 언급됐듯 뻔하고 예측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캐릭터성을 감안했을 때 더 좋은 결말이 있었을까? 싶긴 하네요.

6.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추가) 7. 이 영화는 대재난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설정이 없습니다. 사실이라면 지구적인 스케일일 게 분명한 대재난이 어떻게 (서울) 도시를 초토화시켰는지 설명이 아예 없고, 여러 회상 장면들로 재난을 재현할 뿐입니다. 그런 답답함이 영화 끝까지 계속됩니다. 대재난 직전에 서울이 영하 26도까지 내려간 것도 심상치 않은데(서울 역대 최저기온이 영하 22도 정도) 감상자들은 초현실성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찝찝할 뿐. 100% 감독 의도일 텐데, 배경을 초현실성을 통해 현실과 격리시켜 기괴한 디스토피아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여러 메세지를 던지는 덴 성공했다 싶습니다.

종합하자면 기생충보다는 못하지만, 꽤나 괜찮게 뽑아낸 사회풍자물 재난영화.
엄태화 감독의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의 첫 작품인데, 첫 작품 치곤 놀랍게 잘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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