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02/14 14:08:48
Name   moqq
Subject   낭인시대.
낭인
예전에 국가시험만 준비하는 장수생을 낭인이라 했었다. 주로 사시낭인이 많았고 사시가 없어진 뒤로는 낭인이라는 말을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최근의 의대열풍처럼 예전에도 판검사 의사 등의 자격증이나 면허에 목을 매는 건 똑같았고, 당시에 각 자격증의 손익분기점을 이야기했던 글도 생각난다. 예를 들면 의대는 35살에 합격해도 괜찮다. 사시는 40살에라도 합격하기만 하면 일반 직장다니는 것보다 괜찮다 뭐 이런 이야기들.. 그 시점 기준으로 사법고시가 가장 리턴이 커서 합격나이를 제일 늦출 수 있는 시험이었는데 지금처럼 공급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걍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현재는 낭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많은 젊은이들이 낭인이 되어버렸다. 수능 재수는 기본이고, 대학다니면서 학점관리에 시간을 쓰고, 취업준비에 또 시간을 쓴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변변치않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좋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준비과정이 길어지니 연애, 결혼, 출산도 미뤄지는 것 같다. 흔한 클리셰이기도 하다 떠돌이에게 애인과 가족은 사치이다 뭐 이런 이야기?

양극화?
그렇다고 일자리가 없는 건 아니다.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할 뿐 중소기업이나 농촌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많다. 입시에서도 미달인 대학들도 많다. 사람들이 가지 않을 뿐. 왜 안가냐? 가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 어디든 가서 공부 많이 하고, 논문 많이 쓰고, 추천서 받아서 더 좋은 대학이나 연구실로 레벨업하면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1년 공부해서 시험 한 번 다시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할 법 하다. 좋은 대학에 가면 내 능력은 증명되고, 이후 기회와 대우가 더 나아지니까.. 이게 차이가 없어지려면 삼성전자에서 서울대 공대생이나 지방대 공대생이나 똑같이 뽑으면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게 블라인드 채용인데 그것도 결국 서울대생이 더 많이 뽑힌다는 이야기가 있고, 정말 차이가 없게 하려면 주사위 굴리면 되겠지만 그건 또 공정한가? 문제는 단순히 삼성전자 취업만은 아니다. 걍 명문대와 비명문대학은 환경, 인맥, 기회 등에서 차이가 난다. 걍 더 좋으니까 한 번 더 노력해서 그걸 하겠다.는 게 문제되는 행동은 아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낭인으로 산다. 뭔가 더 좋은 걸 바라면서.

Why not 가붕개?
가붕개로 만족하고 살자.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 라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최저시급, 주휴수당, 실업수당등을 챙기게 해주었다. 자영업 하는 친구들에게 직원들이 그만두면서 실업수당 받고 쉰다는 이야기도 꽤 들었다. 나라에서 이런 정책들을 시행했으니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나?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덜 쓰기는 하는 것 같다만 사람들이 더 행복해하는지는 모르겠다. 행복하지 않다면 왜 더 행복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현 상황에 만족하고 가정을 꾸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돈이 충분하지 않아서 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는데.. 어느 정도의 돈이면 충분한 걸까? 서울 신축 아파트에 둥지를 틀 만큼은 되야하는 것 같은데.. 아파트가 빵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찍어서 나눠줄 수는 없지 않나. (근데 가붕개를 위한 정책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런 정책을 할 이유가 있을까?)

충분함
물질적인 충분함의 기준이 뭘까 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분 아들이 대학가면 독립하겠다고 했었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것 처럼 재밌게 살 생각을 하면서.. 근데 월세를 알아보고 오더니 걍 집에서 통학하기로 했는데 아마 자기가 기대했던 자취라는 게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 현실은 8평 투룸도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까..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충분함이란 써야할 것과 쓰고 싶은 것을 왠만큼 소비해도 여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은데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부자들이 어떻게 소비하고 사는지 누구나 알고, 서울 집값이 얼마인지 원클릭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시대에.

다시 낭인
나라에서 모두를 삼성전자에 취업시켜줄 수는 없다. 고연봉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왜 안만들겠나.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건 최저시급을 올리고 의사 수를 2배 늘리는 정도이다. 모든 사람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수는 없다. 그건 자기 스스로 하는 수 밖에.. 그래서 모두가 낭인으로 산다는 이야기로 되돌아오는 거겠지.



5
  • 좋은 통찰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458 일상/생각와이프 참 고마워요~~ 2 큐리스 24/02/15 1370 3
14457 일상/생각낭인시대. 4 moqq 24/02/14 1503 5
14456 일상/생각바드가 쓴 시: 윈도우 터미널 3 큐리스 24/02/14 1279 0
14455 일상/생각인사고과와 사회적 가면에 대한 생각 6 nothing 24/02/13 1762 8
14454 일상/생각와이프에게 말못한 비밀을 아들에게는 할수 있을까요? ㅎㅎ 6 큐리스 24/02/13 1911 1
14453 일상/생각와이프가 오일 마사지에 맛을 들였네요.^^ 12 큐리스 24/02/13 1920 1
14451 오프모임무지성으로 쳐보는 연휴 막날 돼지갈비 벙 8 비오는압구정 24/02/12 1616 1
14450 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2106 29
14449 일상/생각지난 연말에 한달간 업장에서 바하밥집 기부 이벤트를 했습니다. 13 tannenbaum 24/02/11 1771 49
14448 기타이스라엘의 한니발 지침(Hannibal Directive) 4 은머리 24/02/11 1667 6
14447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프로그래밍 편) kaestro 24/02/10 1427 1
14446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만화편)(2) 2 kaestro 24/02/09 1394 1
14445 도서/문학최근에 읽은 책 정리(만화편)(1) 6 kaestro 24/02/09 1453 1
14444 기타제66회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4 김치찌개 24/02/09 1301 1
14443 일상/생각안전한 전세 월세 계약하는 방법 2 게이득 24/02/08 1594 0
14442 IT/컴퓨터천원돌파 의존성 역전 17 kaestro 24/02/08 3459 1
14441 일상/생각방학중인 아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봤어요. 2 큐리스 24/02/07 1227 3
14440 일상/생각대전을 떠나면서 5 활활태워라 24/02/06 1641 0
14439 과학/기술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769 7
14438 도서/문학《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 - 40대 부장’님’의 재취업기 (도서 증정 이벤트 5) 2 초공 24/02/06 1194 0
14437 영화영화 A.I.(2001) 15 기아트윈스 24/02/06 1738 21
14436 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700 12
14434 음악[팝송] 제가 생각하는 2023 최고의 앨범 Best 15 4 김치찌개 24/02/04 1690 7
14433 일상/생각AI가 일도 대신해주는 세상이 오나봅니다. 6 냥냥이 24/02/03 1875 2
14432 오프모임[벙개] 똘배님과 함께하는 온리모임 (24/02/03 오후7시 Bar틸트) 21 Only 24/02/02 1970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