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05/07 04:56:41
Name   kaestro
Link #1   https://kaestro.github.io/%EC%8B%A0%EB%B3%80%EC%9E%A1%EA%B8%B0/2024/05/07/from-odds-and-ends-to-room.html
Subject   정리를 통해 잠만 자는 공간에서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리를 통해 인생 최초로 내 공간을 얻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며칠 전에서야 제 인생 처음으로 옷장과 방을 스스로 정리했습니다. 방을 청소하거나 정리해본 적이 여태까지 없다는 것은 아니라 이것들을 어떻게하면 내 생활 패턴에 어울리는 형태로 자리를 잡게 만들어 내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여태까지 내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방을 쓰거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공동의 공간으로써 자연발생적인 방을 가졌던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내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처음 사용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걸이 전반을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재배치하고 옷걸이에 올라가지 않는 옷은 분류하는 과정을 통하다보니 프로그래머로써의 관점에서 ‘디자인이 아니라 기능만이 중요한 운동복 같은 옷이라면 큐처럼 선입선출로 관리할 방법이 없을까?’와 같은 질문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는 일은 워낙에 대단한 일이기에 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옷 정리 트레이를 구매하고 이에 포개서 옷을 정렬해두니 제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 공간에서 드러나는 개성은 유지 관리 용이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건은 접근성이 높은 공간에 사용 빈도가 낮은 물건은 접근성이 낮은 공간에 두고, 비슷한 성향의 물건들은 같은 곳에 관리합니다. 그리고 이 방이 단순히 제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노력과 자연스러움으로도 유지될 수 있도록 박스, 트레이, 선반과 같은 도구로 시스템을 갖춰두었습니다.


아시아 사람은 집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꾸미는데는 관심이 없다

얼마 전 외국인들이 가지는 의문 중에 아시아인들은 왜 집을 꾸미는 데에는 관심이 없느냐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시아인들이 집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지대한 데 반해, 정작 이를 꾸미는 노력은 서양 사람들이 바라볼 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해당 영상 에서는 이에 대해 집은 ‘가격, 부지, 평수’와 같이 남들과 정량적으로 비교를 통해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집을 꾸미는 것은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라 이야기합니다.

이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의를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와 제 가족의 사례로 놓고 봤을 때는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은 집에서 방을 단순히 잠을 자고 일어나 밖을 나가기 위해 정비하기 위한 일종의 전투기의 격납고 같은 공간으로써만 활용해 왔습니다. 제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해당 집이 역세권 몇분 거리인지,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주변에 편의시설이 얼마나 있는지와 같은 외적인 요소 뿐이었습니다. 집을 꾸미는 것은 남들이 다들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면 족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마무리

정리와 내 물건들로 방을 꾸미는 것은 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방을 격납고가 아니라 내가 나로써 있을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행위 라는 사실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하고 빈 공간이 생기니 이를 채우기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것을 실행하니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과정을 통해 제 방은 점점 더 나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 제 방에는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스피커, 가습기, 옷장 정리 트레이, 피규어 같은 물건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방을 단순히 잠을 자면 족하던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제 방이 제가 나로써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얼마 전 구매한 베개가 오면 그것들은 또 제 방을 더 나로써 가깝게 만들어줄 것이 즐겁게 기대되네요. 앞으로도 제 방을 더 나에게 가깝고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며 이를 통해 나를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정리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517 기타어린시절 드래곤볼 1 피아니시모 24/03/08 2512 5
    15484 정치[불판] 제21대 대선 60 이이일공이구 25/06/03 2517 0
    13839 게임[LOL] 5월 12일 금요일 오늘의 일정 3 발그레 아이네꼬 23/05/11 2519 0
    14869 일상/생각등 굽은 사람들 3 후니112 24/08/26 2520 0
    15194 과학/기술AI는 신이야! 13 세모셔츠수세미떡 25/01/07 2520 4
    14863 일상/생각뜬금없이 떠오른 결혼에 대한 멘트입니다. 3 큐리스 24/08/23 2523 0
    15123 정치향후 정계 예상 (부제: 왜 그들은 탄핵에 반대하는가) 12 2S2B 24/12/12 2524 0
    14907 음악추억의 가요톱텐 90년대 1위곡 모음 1 씨앗한톨 24/09/08 2525 0
    14284 음악[팝송] 롤링 스톤스 새 앨범 "Hackney Diamonds" 김치찌개 23/11/19 2527 2
    14559 음악[팝송] 피더 엘리아스 새 앨범 "Youth & Family" 김치찌개 24/03/24 2527 1
    14773 경제2024년 상반기 백화점 순위 1 Leeka 24/07/04 2527 0
    14702 일상/생각아직은 아들놈도 귀여운 나이입니다. 큐리스 24/05/24 2534 5
    14282 게임[LOL] 11월 19일 일요일 오늘의 일정 2 발그레 아이네꼬 23/11/18 2535 0
    14904 정치지금이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일지도 모른다 5 meson 24/09/07 2535 8
    14909 일상/생각아이 여권찾으러 강서구청에 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2 nm막장 24/09/08 2537 4
    14390 창작김과장 이야기 4편 큐리스 24/01/08 2539 0
    14516 일상/생각빼빼로데이의 슬픈 추억 1 큐리스 24/03/08 2540 4
    15391 정치세대에 대한 냉소 21 닭장군 25/04/18 2541 15
    15229 일상/생각밭에 묶여있던 개를 풀어줬다 다시 묶는 사람들 14 골든햄스 25/01/22 2542 21
    15308 일상/생각혐중정서와 친미반중에 대한 문답글.. 6 타치코마 25/03/10 2544 5
    14706 일상/생각이제 옛날 팝송도 재미있게 공부할수 있을것 같네요. 큐리스 24/05/27 2548 2
    15316 정치미국 우파 자유지상주의의 구멍. 13 바쿠 25/03/13 2550 3
    15149 사회그래서 통상임금 판결이 대체 뭔데? 7 당근매니아 24/12/23 2554 11
    14655 일상/생각정리를 통해 잠만 자는 공간에서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6 kaestro 24/05/07 2556 2
    15196 정치계엄과 헌재 관련 학창시절 헌법 수업때의 2가지 기억 7 파로돈탁스 25/01/08 2556 1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