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4/08/06 14:42:24수정됨 |
Name | 니르바나 |
Subject | 강아지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
우리 집 말티즈는 지난 강아지를 잊지 못해 데려왔다. 처음 우리가 키웠던 강아지도 말티즈였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데려온 녀석은 이미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주인이 여럿 바뀐 만큼 경계가 심했다. 집에 들어와도 반기지 않았고, 쓰다듬으려 하면 입질을 했으며, 늘 집에서 나가고 싶어 닫힌 대문을 서성였다. 일 년이 지나감에도 곁을 내주지 않던 녀석은 어느 일요일 교회에 가던 차에 치여 죽었다. 혹시 나갈까 봐 대문에 설치한 철망을 넘어서. 어머니와 동생은 울었지만 난 별로 슬프지 않았다. 정이 들지 않았기에. 아버지께선 어머니와 동생의 슬픔을 구실삼아 새끼 말티즈를 얻어왔다. 어머니는 왜 또 데려왔냐, 화를 내면서도 죽은 녀석과 같은 이름을 지어줬다. 강아지는 어찌저찌 여차저차하며 13년을 넘게 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난 최근까지도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매일 산책을 두세 번 나가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었고 병원에 가는 일은 돈이 많이 들어서 짜증 났다. 게다가 같이 사니 아픈 게 신경 쓰이는 것도 싫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산책을 세 번도 시키지 않은 아버지도 싫었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거면서 왜 데려온 거야?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렀고 우리 집 노견을 사랑해 주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매일 사진을 찍어주길 바랐으며 강아지를 보고자 집에 오기도 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산책하러 나갈 때나 집에 있을 때 사진을 찍어주고 가끔은 동영상도 찍어줬다. 그렇게 앨범에 오천 장이 넘는 사진이 생기고 10년간 찍은 사진보다 반년 동안 찍은 사진이 더 많아졌다. 점점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눈곱이 낀 눈, 하얗게 변해버린 눈, 콧잔등에 생긴 많은 점, 들리지 않게 된 귀, 온몸 곳곳에 생긴 지방종. 늙어버린 나의 강아지를 보면서 그제야 나는 내가 했던, 그리고 해야 했던 모든 일이 떠올랐다. 짧은 생의 종장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해줄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산책을 꼬박꼬박하고 맛있고 건강한 간식을 찾아서 먹이고 치석을 제거하고 슬개골 탈구를 재수술하고 자주 병원을 찾아가고 주기적으로 씻기고. 돌이켜보니 놀랍게도 10년간 수의사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을 실천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강아지와 누워 있으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한 번은 강아지 귀에 귀지가 가득했다. 원체 피부가 약한데, 귀에 곰팡이가 생겨 귀지가 들어찬 상태였다. 당시 나는 대외 활동을 하는 중이어서 병원에 가는 게 귀찮았다. 결국 어머니께서 몇 번 데려갔지만, 나을만 하면 안 가는 바람에 조금씩 안 좋아졌다. 결국 귀찮음을 이기고 직접 병원에 가니 담당 선생님이 강한 약을 써보고 안되면 귀 내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했다. 뜨끔했던 나는 아 네. 알겠습니다. 변명하듯 대답했고, 선생님은 한 번 나를 쳐다보고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결국 약이 잘 들어서 귀는 다 나았지만, 아직도 귀지가 가득한 귀를 까뒤집은 채 문 앞에서 나를 반기던 모습이 떠오른다. 미안해. 다른 하나는 잠깐 택배를 들이느라 문을 열어놓았는데 그새 집을 나갔던 때다. 30분 동안 온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찾았는데 못 찾았다. 솔직히 그때도 걱정보단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어떤 차주가 피해 가도 될 걸 빵빵거리면서 계속 경적을 울려준 덕에 길 한가운데 서 있던 강아지를 찾을 수 있었다. 다급히 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강아지를 혼냈다. 혼나야 할 건 나였다. 요즘처럼 덥거나 곧 닥칠 추위 속에선 아무리 사랑해도 산책은 귀찮은 일이다. 가끔은 동생에게 떠넘기고 쉬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는 씩씩하게 일어나서 봉투와 휴지를 챙긴다. 산책 가자! 강아지는 아직 건강하다. 체력이 떨어지고 귀가 멀었지만, 그래도 산책하러 간다고 하면 방방 뛰고 고기도 잘 뜯는다. 내 작은 바람은 강아지가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서 나중에 이 글을 보고 아직도 건강한데; 하고 살짝 머쓱해하는 것이다.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