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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08 06:57:40
Name   커피최고
Link #1   http://baduk.netmarble.net/News/Column/ReadColumn/BbsContentView.asp?seq=12649920
Subject   [바둑칼럼] 천재들의 ‘천재 감별법’
분야를 막론하고 '천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곤 하죠. 바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적 잠깐 바둑학원을 다니며 바둑을 익히고, 바둑광이셨던 외할아버지와 함께 두는 정도가 다였던 저로서는 프로가 되겠다고 연구생이 되었던 친구가 바둑천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나중에 전설들의 기보를 보면서 진짜 천재들은 따로 있구나를 실감했지만요 하하.....

아무튼 최근에 흥미로운 바둑칼럼이 올라와서 퍼왔습니다. 원문 전체를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링크타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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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九단이 최근 TV에 출연해 “이창호는 천재가 아니다”라고 한 말이 화제가 됐다. 아침 공개 방송에 나온 그는 "어린 시절 창호는 바둑천재가 아니었는데 몇 시간을 꿈쩍하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내버려 두기 아까웠다"며 제자로 받아들인 배경을 설명했다. 조훈현과 이창호 모두 세계 바둑 최고의 올타임 베스트 후보에 항상 포함되는 슈퍼스타들이고, 그들 둘이 역대 최고의 사제 커플이란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아왔다. 그 당사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내린 평가이니 흥미진진하다.

조훈현은 원래 누군가에 천재 칭호를 내리는데 인색한 편이다. 십 수년 전부터 어린 유망주들 가운데 재주에 눈길이 가는 기사를 물으면 그 때마다 속 시원하게 대답하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글세, 뭐 다 고만고만하다”는 식이었다. 사실 그의 이처럼 까다로운 기준은 바람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약간의 재주만 엿보여도 마구 천재라고 불러대는 세태는 잘 못 된 것이다.

조훈현은 1년 여 전, 2014년 여름 발간된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바둑 판도에 대한 전망을 질문 받고 이렇게 답했다. “중국은 바둑이 사회적으로 대접받기 시작하면서 전국의 머리 좋은 어린 인재들이 대거 바둑으로 모이고 있다. 우리가 이에 대응하려면 천재가 나와 줘야 한다. 그런 재목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이세돌은 천재라기보다는 독특한 기풍을 지닌 ‘천재형 기사’일 뿐이다.”

그래도 이창호에 대해서만은 좀 다른 평가가 나올 법도 한데 아니다. 사실 성취도로만 보자면 고금동서를 통틀어 이창호만 한 승부사도 없었다.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세계 바둑사의 기록이란 기록은 모조리 바꿔 놓았고, 특히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됐던 종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혁명아가 바로 이창호 아닌가. 그런 제자를 굳이 “천재 과(科)가 아니다“라고 평하는데는 나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중략)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다른 대가(大家)들의 이창호에 대한 평가가 조훈현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점이다. 연초 타계한 기성(棋聖) 오청원(吳淸源) 선생은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창호는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천재일 뿐이다. 진정한 천재를 꼽는다면 역시 조훈현이다.” 오청원은 심지어 조훈현 다음 자리에조차 이창호를 뒤로 밀어내고 오다케(大竹英雄)와 린하이펑(林海峰)을 올려놓았다.

‘괴물 기사’로 불리는 후지사와(藤澤秀行)의 생각도 오청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실전적 제자인 조훈현을 가리켜 “바둑의 재능만 놓고 본다면 훈현이는 나와 비견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물”이라고 자주 말했다. 그가 이창호에 대해 언급한 기록은 찾아내지 못했다. ‘철의 수문장’이란 별명과 함께 중국 바둑의 현대화를 앞장서 이끌었던 녜웨이핑(聶衛平)도 “조훈현은 진정한 천재, 이창호는 노력하는 천재”라는 이분법(?)을 들고 나왔었다.



.........



천재란 무엇이며 그 자격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 것일까. 천재란 ‘정신적 활동의 창조성과 생산성 두 가지 측면에서 범인(凡人)들과 뚜렷이 차별화되는 재주’라고 한다. 상당히 애매한 정의다. 창조성의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생산성의 볼륨이 강조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천재라면 으레 예리하고 기발한 모습을 떠올리는 기대감 때문이다. 창조성과 생산성이 따로 놀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재능, 많은 생산을 이뤘지만 전혀 기발하지 않은 재능 둘 모두 천재스럽지 않다.

그래도 바둑은 웬만큼 이 같은 정량(定量) 분석과 정성(定性) 분석이 가능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창조성은 쉼 없이 이어지는 대국 속에 기발하고 멋진 수(手)를 보여줌으로써 평가받는다. 생산성은 기사로서의 업적이다. 점령한 타이틀과 번기(番棋) 승률, 수입액 등이 곧 생산성의 지표 구실을 할 수 있다. 최근 만나본 중국 대표팀 위빈(兪斌) 총감독은 “한중의 균형은 어느 쪽에서 먼저 천재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천재 기준은 아마도 생산성(정량) 쪽으로 기운 느낌이다. 이창호는 스승을 포함한 선대 대가들로부터 정량은 몰라도 정성에선 급제(及第) 점수를 못 받아냈다.

평범한 우리 민초들에겐 ‘천재‘에 대한 막연한 규범 같은 게 있다. 우선 비범, 출중해야 한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자를 식별하여 말보다 먼저 천자문을 배우고, 다섯 살에는 시와 산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매월당 김시습(1435)의 일화에 열광한다. 긴 글을 한 번 보고 줄줄 외운다거나, 아이큐가 비상하게 높거나, 엄청난 속기(速棋) 능력을 가져야 천재로 인정해 준다. 때로는 정신 병력(病歷)이 천재스러움의 장식품으로 등장할 때도 많다.

우리가 때로 착각하는 게 또 하나 있으니 “많은 노력이 가미된 천재는 천재가 아니다”란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젊은 시절 아예 시체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인체의 구조 그림 1만 장을 정리했고, 이것은 그가 의학, 미술, 문학, 과학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가며 온갖 걸작을 창조해내는 자산이 됐다. 15세기 때 사람인 그가 그려놓은 기관총 헬리콥터 탱크 계산기 낙하산 잠수함의 설계도는 현대 과학자들도 경악할 만큼 정교하다고 하니 그 상상력이 놀랍다.

...............

천재들끼리의 '천재 감별법'은 우리 같은 범인들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참새가 연작(燕雀)의 흉중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그렇긴해도 노력만으론 천재의 경지에 진입할 수 없다는 천재들 스스로의 진단은 좀 혼란스럽다. 어떤 천재도 노력 없이 재능만으로 극상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음을 또한 지켜 봐왔기 때문이다. 천재여부를 판단하는 감별법부터 천재들과 범인들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은 흥미롭기도 하고 약간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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