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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10/11 15:18:35수정됨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2021년 1월, 의사당 점거가 성공했다면? 미국의 민주정이 무너졌다면?
미국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트럼프의 선거 부정과 그 결과로 나타난 의사당 점거(Jan 6) 사건이 다시 거론되고 있어요. 트럼프는 이 문제로 탄핵되었고, 기소당했고, 면책까지 받았죠. 그리고 그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선거 부정 시도는 여전히 범죄라는 내용의 기소장이 최근 새롭게 공개되었습니다. 이 기소장을 다시 보면서, 의사당 점거가 얼마나 미국 역사에서 위험한 분기점이었는 지 새삼 느껴요. 저도 의사당이 점거된 사진을 보며 충격적이라 느꼈지만 이것이 미국의 실존적 위기였음을 깨닫게 되기 까지는 또 시간이 오래 걸림.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건 미국 헌정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세계의 민주정이란 관점에서 보면 있을 수는 있는 일이죠. 사실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는 선거를 부정할 인센티브가 있잖아요? 다만, 기관에 대한 신뢰가 크면 클 수록 그런 인센티브는 크지 않고, 민주정이 성숙한 사회에서 승부를 인정하지 않는 교양없는 모습에 대한 패널티는 크니 이런 갈등은 이렇게 까지 표면화되지 않는 게 좋았겠죠. 물론, 공화국의 위기는 '이랬다면 좋았을텐데'하는 감상에서 나오는 건 아니에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걸 넘어서, 그 부정선거라는 의견을 어디까지 관철하려 했는 지가 공화국의 위기를 부름.

2020년 대선이 11월에 끝나고, 1월 6일 연방양원 합동회의 때 선거결과를 확정하는 의회인증을 하기 까지 두 달 동안, 트럼프는 경합 주 법원과 연방법원에 62건의 소송을 제기하고 패배했어요.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에게 이번 선거가 불공정했고, 표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펼쳤죠. 위 소송들은 대부분 당사자적격(Standing)이 없는 문제로 패소하였고, 그나마 진행된 소송들조차 증거가 부실한 등의 문제로 빠르게 기각되었습니다. 60건이 넘는 소송은 1월이 되기 전에 거의 정리되었어요. 이런 사법적 판단은 부정선거로 야기된 선거과정의 신뢰를 회복시켜주리라고는 기대했지만, 오히려 트럼프 지지층에서는 사법불신을 일으켰죠.

트럼프는 법무부에 선거부정을 조사하는 수사를 시작하고, 주 정부들에게 선거부정 증거를 찾았다는 '거짓' 성명을 보내라고 법무장관인 윌리엄 바를 압박했는 데, 바 장관은 이에 항명하여 사직(2020년 12월)했고, 이후 법무장관 대행으로 들어온 제프리 로젠에게도 똑같은 압박을 했으나 로젠 역시 거부했습니다. 의사당 점거 조사위원회는 이 법무장관 교체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했는 데. 법무장관 대행인 로젠마저도 트럼프에게 항명했을 때, 트럼프는 로젠을 제프리 클락(법무부의 환경관련 민사사건을 담당하는 차관)으로 또 교체한다고 협박했는 데, 로젠은 이 시점에 트럼프가 법무부를 통해서 조작된 증거를 바탕으로 주 선거관리위원회나 선거조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압박하려는 게 큰 문제라고 여겼고, 법무부 직원들을 규합하여 트럼프가 만약 로젠을 클락으로 교체한다면 연방법무부 직원의 대부분은 사직할 것이라고 맞불 작전을 놓았습니다. 다행히 이 맞불 작전은 성공했고 트럼프는 법무부를 무기화하는 데 실패합니다.

그리고 1월 6일이 다가오며, 트럼프는 존 이스트먼, 케네스 체스브로 등 개인 법률팀의 조언을 받아 '가짜 선거인단'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관련된 메모나 플롯들은 이미 자세히 밝혀졌습니다. 이 때 받은 조언들은 이스트먼 메모(Eastman memo), 혹은 쿠데타 메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관계자인 체스브로는 기소되어 형량거래로 유죄판결을 확정받았고, 이스트먼은 재판 중입니다. 플롯은 한 개가 아니었지만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면 트럼프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경합주에서, 실제 선거결과와는 달리 트럼프가 해당 주에서 승리했으므로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는 대립선거인단을 새로 구성해 의회인증 때 의사당으로 보낸다.

2. 당시 부통령이자 상원의장인 마이크 펜스가 선거인단을 인증하는 과정에서 선거 결과로 보내진 주의 선거인단이 아닌 트럼프 선거인단을 적격한 선거인단으로 선언한다.

2-1. 혹은 부통령이 대립선거인단이 존재함으로 인해 선거 결과를 인증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3. 상원에서 선거인단을 인증할 수 없으므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하원에서 주 대표단이 선정하게 되고, 주 대표단을 기준으로는 공화당이 다수당임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


이 계획은 원래라면 1번 부터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대립선거인단이 의회장에 들어가 상원의장인 펜스의 의사진행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선거인단으로 인정받아 의회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문서들은 트럼프 측에서 모두 조작해 준비했지만, 관계자들은 이미 선거인단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이 자기가 대립선거인단이라며 의사당 앞에 나타나도 들여보내 줄 리가 없었습니다. 또한, 부통령이 선거인단을 인증하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인증 행위이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연방의회가 법률로 규정한 부분이죠. 다만, 이스트먼은 부통령의 형식적인 행위가 선거결과를 바꿀 헌법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펼치긴 했습니다.

트럼프는 여기서 1번을 성립시키기 위해 의사당 점거 시위를 기획했고, 의사당이 점거되는 혼란 상황에 대립선거인단을 난입시키고 펜스를 통해 선거 결과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12월부터 양원회의 바로 전 날 까지 펜스를 모든 방향에서 압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탁하기도 했고, 옳은 선택을 하라며 트위터에 글을 남기기도 했죠.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은 부통령을 찾아 해맸고, 부통령과 그 가족은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와 아주 가까이에 마주쳐 위험한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1번은 어찌저찌 절반은 성공시켰는 데, 펜스가 트럼프와 헌법 앞에서 헌법을 선택함으로서 의사당 점거와 트럼프의 계획은 모두 해프닝으로 돌아갔죠.

그런데, 이 사건이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무서운 상상을 몇 개 할 수 있습니다. 펜스가 의사 진행 도중 다치거나 혹은 죽었을 수도 있고, 상원규칙에 따라 바톤을 이어받은 사람이 의사진행을 연기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정국은 혼란에 빠지고, 트럼프의 권력은 미 헌정사에서 유래없이 며칠 더 연장되었을 껍니다. 더 무서운 상상은 펜스가 트럼프의 부탁을 들어주는 겁니다. 만약 펜스가 트럼프가 부탁한 대로 트럼프의 대립 선거인단을 인정해줬다면? 혹은 자신은 이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없으니 하원의 주 선거인단에게 대통령 선출을 위임했다면?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선언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미국의 헌법과 연방법에는 이런 상황을 해결(remedy)할 방도가 없습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소송을 해서 연방대법원의 판단을 받고,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탄핵을 준비하겠죠. 많은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이 선거의 승자인 바이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원이 탄핵을 소추했을 때 상원이 탄핵 판결을 내릴 지는 좀 의문스럽긴 하네요. 그러나, 여전히 선거에서 패배한 전임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임기를 연장하고 있다는 헌정 초유의 위기 상황은 계속되겠죠. 이런 식의 선거결과 조작시도를 연방대법원이 고칠 능력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연방대법원이 해결사로 나선다 해보죠. 트럼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명백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럼 연방대법원이 펜스의 의사진행을 무효로하고 양원회의를 다시 잡도록 의회한테 명령하여 이번에는 2020년 11월 선거결과에 따라야 한다고 판결문에 쓰면 될까요? 그럼 그 양원회의에서 선거결과를 인증할 상원의장은 누가할껀가요? 선거결과를 뒤집은 펜스가 또 하나요? 아니면 부통령으로 선출된 예비 상원의장인 해리스가? 민주당의 상원 대표가? 상원의원에서 가장 연장자가? 상원의원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그 전에 연방대법원이 연방의회한테 양원회의를 다시 열라고 할 권한이 있기나 한가요? 이런 것은 법전에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트럼프와 함께 불법적으로 상원의장 임기가 연장된 펜스가 양원회의를 거부해버릴 수도 있죠.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이 상황이 특히나 위험한 건, 위법행위자들이 행정부와 입법부 의사진행의 핵심인 상원의장직을 점거하고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연방대법원이 어떤 사법적 회복을 시도하든, 이를 집행할 사람들에 대한 적법한 명령을 내릴 체계가 없습니다. 트럼프가 선거결과를 바꾸어 불법적으로 임기를 연장했다고 해서, 민주당 연방의원들한테 연방행정부의 관료들을 지휘할 권한이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상상에서 공화정을 회복하려는 사법적 시도는 '즉각적'이어야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구조적인 문제로 이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긴급심리를 열고 헌법과 연방법에서 허락한 모든 종류의 정지명령을 트럼프 행정부에게 내리고, 연방지방법원과 항소법원들이 모두 이 문제에 협력하더라도, 의회가 인증해버린 대통령직을 뒤집는 것 만큼은 정식으로 판결문을 써내려야 할 문제입니다. 1월 6일 소송을 받아도, 판결문을 쓰고 발표하는 절차를 모두 마치는 데 최소한 2주가 걸릴 것이라고 아킬 아마르는 예상했습니다. 이 시점에 연방대법원이 극보수화되었음을 감안하면, 다수의견 작성자가 누구여야 할 지를 결정하는 걸 2주 안에 끝내기나 하면 다행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민주당이 얌전히 합법적인 수단만을 사용할까요? 이 시점에서 트럼프는 평화적 권력이양을 거부한 반역자입니다. 민주당은 이것이 폭정에 저항해 폭력의 사용이 정당화되는 저항권을 사용할 순간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의사당 경찰은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와 하원의원들이 임명한 위원회들에 의해 통제됩니다. 또, 하원의장은 수위관에 질서회복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펠로시가 하원의장에게 허락된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최대로 발휘하고자 한다면, 또 헌정질서의 회복을 위해, 다소의 초법적 행위나 월권마저도 감수하고자 한다면 연방하원의원들을 규합하고 워싱턴 DC의 시장(2021년 1월 기준 민주당)에게 협력을 받아 경찰력을 동원해 일단 트럼프를 체포하고자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도 당연히 이에 대응하고자 할꺼고, 법을 집행할 능력을 가진 모든 연방기관들이 트럼프/펜스와 바이든/해리스/펠로시를 중심으로 양분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기관장이 누구 편을 들지는 상상하는 건 그야 말로 왕좌의 게임이죠? 그리고 이 모든 계산은 군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킬 때의 이야기고요. 미국의 50개 주의 주지사와 법무장관들, 주 방위군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도 생각하면 이 시나리오는 너무 혼란스럽고 흥미진진해집니다.

또한 미국 전역에는 시위와 폭동이 일어날껍니다. 양측의 지지자들이 정당한 대통령을 위해서 워싱턴으로 밀려드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은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무장할 권리가 있고,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전례 없이 약해진 상황도요. 이게 펜스나 혹은 트럼프의 법무장관, 법무장관 대행이 트럼프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들은 어떻게 수습되어도 미국에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줄껍니다. 전 제국으로서 미국이 무너지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의사당 점거 위원회의 보고서를 읽기 전에는.

여기까지 오면 상상이 너무 과격한 것 같네요. 어쩌면, 선거결과를 뒤집는 시도가 트럼프의 의도대로 모두 굴러가더라도, 다른 어떤 예상치 못한 가드레일이 트럼프를 막아서거나, 법원들의 무수한 정지명령과 연방관료들의 대대적인 항명에 못이겨 트럼프는 하루도 못 가 임기를 끝냈을 지도 모릅니다. 펜스가 트럼프에 굽혀주는 미래에서도 전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어요. 의사당 폭동 당시만 하더라도 트럼프는 자기 자식들로부터도 질서를 회복해달라는 탄원을 받았을 정도로 트럼프의 편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음에는 그런 상상을 하기가 힘듭니다. 트럼프는 이제 윌리엄 바 같은 헌법을 위해서 자신에게 항명할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뽑지 않습니다. 유사시에 연방경찰들을 자신을 위해 써줄 사람을 FBI 국장에 앉힐꺼고, 자신을 위해 기꺼이 거짓말을 해줄 인물을 요직에 배치하겠죠. 이미 미국에는 트럼프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문서를 조작해주다가 연방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사면하고 정부 요직에 앉히는 건 완전히 합법이죠. 그리고 트럼프가 이 계획을 실패한 이유의 절반은 트럼프의 무능력함에 있습니다. 트럼프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이런 일을 준비한다면 민주정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더 희박해지겠죠?

솔직히 이런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는 이유의 9할 정도는 이런 상상이 무섭기 보다는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섬세한 듯 보이는 미국 정부가, 저런 무뢰한의 시도에 의해 분해되고는 왕좌의 게임을 찍는 아포칼립스로 전락한다는 게, 그리고 그게 묘하게 현실적이라는 게 너무 재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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