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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11/13 18:35:36수정됨
Name   열한시육분
Subject   미국이 말아먹지만 멋있는 영화 vs 말아먹으면서 멋도 없는 영화
여기 '마진 콜'이라는 2011년 영화가 있습니다. 2008년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를 다뤘으며, 맥락만 조금 이해한다면 잔잔한 긴장감을 영화의 거의 끝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메이저 극장에 걸렸던 영화는 아니지만, 동시에 경제학적으로 밀도가 높아서 공부하듯이 봐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아닙니다. 데미 무어, 재커리 퀸토, 당시의 케빈 스페이시 등의 유명 배우들이 참여했는데 아마 주제의 공공성을 생각해 촐연료 없이 참여했던 걸로 기억해요.

한편, 10년이 지나서 넷플릭스라는 DVD 대여업체가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더니 자체 컨텐츠 발주까지 시작하여 '돈 룩 업'이라는 2021년 넷플릭스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이번에는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 등이 주요 출연진이에요. 감독은 공교롭게도 위 영화와 같은 주제를 다룬 '빅 쇼트'의 감독입니다. 그 영화가 그러했듯 이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풍자적이고 헛웃음이라도 지으면서 볼 수 있게, 경쾌하게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숨길 생각이 없는 너무나 명백한 영화의 표면적 주제는 지구 기후변화입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크나큰 전지구적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실제로 발생한 금융위기를, 후자는 비가역적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가상의 운석 충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진 콜'은 지나치게 큰 거품이 끼었지만 간과되었던 주택대출 붕괴의 위험이 터지는 순간을, 그리고 '돈 룩 업'은 아무래도 정말로 지구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 같은 운석이 점차 지구와 가까워지는 상황(=다가오는 기후변화)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후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미국의 위기 대응에는 큰 차이가 납니다. '마진 콜'에서 거의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금융시장의 거품을 계량화하는 데에 결정적 조력을 한 것은 전혀 다른 필드인 공학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입니다. 신입사원이든, 전통적 금융 관련 전공이 아니든, 경영진은 결국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시행착오는 있었던 셈이지만 이를 적극 수용하여 발빠른 대처를 합니다. 이 대처 방법은 물론 업계 상도덕을 어긴 것이기는 하나, 전혀 불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대처 과정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들에게는 그 능력에 걸맞는 후한 금전적 보상을 합니다. 이것은 이 사태에 대해 표면적 책임을 지고 강제적으로 사임하게 되는 임원에게도 일정 부분 주어집니다. 직원에 대해서도, 갑작스러운 레이오프를 하더라도 성과만 달성한다면 그 수준에 맞는 보상은 확실하게 지급됩니다.

10년 후 '돈 룩 업'에서는 이렇게 적어도 부분적으로 바람직하거나 신사적인 모습들은 전혀 관찰되지 않습니다. 운석의 예상 경로에 지구가 정확히 놓임을 발견하게 되는 천체물리학 교수와 그의 박사과정생은 그들의 능력과 무관하게 출신 대학의 이름 때문에 진지한 비웃음을 당합니다. ("미시간 주립대요?") 이후 결국 그들의 예측이 과학적으로 확실함이 밝혀진 후 잠시 간은 모든 국민들이 융합되었으나, 곧 정말로 2024년 11월의 일론 머스크를 연상시키는 거대 기술 기업 CEO가 운석을 미리 폭파시키는 대신 지구에 근접시킨후 채취할 수 있도록 하여 희토류를 확보하면 어떻겠냐고 대통령을 꼬드깁니다. 이에 대한 기술적 해법은 자신이 제시하고요. 이에 대해 여론은 양측으로 분열됩니다. 더욱 문제는, 대통령은 이 CEO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하거나 독립적 판단을 하기보다는 어딘가 잘 알지 못하면서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그래서 운석은 점점 날아오고 있음에도 그것이 직접 맨눈으로 보이기 전까지 여론은 양극화되어버립니다. 최초 발견을 한 과학자들 역시 명확히 자신들의 주장을 펴지 못하고 정부의 갈라치기 전략에 그대로 현혹되어버리고, 결국 과학적 진실을 어떻게든 널리 알리고 의견 통합을 도모해야 하는 과학자 팀은 너무 늦은 시점에서야 재규합되어 결국 좋지 않은 끝을 맞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거대 기술기업은 peer review와 같은 바람직한 학계의 관례는 회피하고, 본인들의 계획에 대한 의문은 광고 캠페인을 벌여 덮으려 합니다. 능력주의와 그에 걸맞는 보상은 영화 말미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미국이 자존심을 지킨 부분은, 미국이 폭파작전에 실패하지만 중국-인도-러시아 연합체가 기술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정도입니다.

'돈 룩 업'은 당연히 미국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COVID-19 대응에서 영감을 받고,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서도 완전히 예측하지 못했던 트럼프 1기의 사건들을 참고해 더욱 극단적으로 수정된 줄거리로 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 당시 미국은 진보한 기술력을 통해 그동안 가능성이 너무나 없던 걸로 알려진 종류의 백신을 개발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음에도 접종률 저조로 백신재고를 폐기하였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도 결국 한때의 미국을 조명한 줄 알았는데, 2024년은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더니 심지어 돈 룩 업의 기술기업 CEO가 정말로 진하게 오버랩되는 인물까지 등장하여 이제 주요 정부 인사로 등극한 해가 되었군요.

한때 미국은 정말로 아름다운 나라, 청사진이고 우리는 열심히 따라가면 되었던 시대가 끝나는 것일지, 정말로 '마진 콜'보다 '돈 룩 업'에 등장하는 미국이 정말 현실에 가까운 것이 되었는지 영화 두 개를 비교해보면서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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