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12/18 15:21:53
Name   The xian
Subject   생존신고입니다.
예전에 흘러가는 타임라인 살짝 쓴 이후. 매우매우 오랜만에 글 남깁니다.

저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분들께서는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기억에 없는 사람의 잡설이 실린 부분에 대해서는 심심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글을 쓰지 않은 동안 저에게도 세상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싶습니다. 내란이 있을 줄은 저도 몰랐지만요.

오래 전, 제가 오프모임 나오기 직전에 막 취직했던 회사가 위기에 빠지더니, 올해 초 완전히 정리되면서 약 5년 만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고생스러웠지만 천만다행으로 지금은 다른 곳에서 새롭게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한창 일하다 보니 벌써 연말이고, 올해 초에 있었던 실업의 기억과 재취직을 위해 발이고 뭐고 다 다쳐가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시간도 다 추억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지금 있는 기회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려고 마음을 항상 다잡고 있습니다. 이젠 저도 늙었고, 늙은 저에게 오는 기회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더 이상 영원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뭐 돌아보면, 애초에 제가 지금까지 살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닙니다. 다시 이 정도 길이의 글을 쓰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그런 상태인데 그럼 일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의문을 가지실 수 있지만... 일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머니 모시고, 빚 갚고, 먹고 치료받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뭐 그런 기구한 사정이 저한테만 있는 일도 아니고, 다들 겪는 일이고... 어쨌든, 남은 여가를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한다고 해도 일은 해야 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예전에 즐기던 호흡이 긴 게임들이나 오랜 시간 동안 붙어 있어야 하는 레이드 콘텐츠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배워먹은 특기와 특기에 투자했던 자산들을 살려서 휴대폰이나 태블릿에다가 좋아하는 모바일 게임들을 띄워놓고 시간을 보내는 게 요즘의 일상입니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이 게임 저 게임 같은 게임 띄우고 즐기다 보면 돈이 없어도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요즘은, 한편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런 가치관이나 그런 게 항상 시대적으로 봤을 때 항상 옳을 수가 없는 건데, 그게 맞다고 단언하는 그런 것들이 저는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가진 것들이 항상 옳지는 않고,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그런 마음을 좀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라는 대상혁님의 외교부 기조연설 한 대목을 되새겨 보면서 지난 날들을 돌아봅니다. 어떻게 봐도, 과거의 저는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아직 한참은 더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던 블로그(이글루스)는 작년에 문을 닫았고 문을 닫기 몇 해 전부터 일 때문에 글들을 다 비공개 처리했었습니다. 썼던 글들은 다 백업해 뒀지만 그것을 어딘가에 재게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때때로 꺼내서 읽어보면 시쳇말로 셀프 고로시하는 느낌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에 활동하던 몇몇 곳들은 다시 활동하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여기가 그나마 제가 다시 생존신고라는 글을 쓸 만한 유일한 커뮤니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는 것은 '이렇게 서서히 잊히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 글로 저를 아셨던 분들이 저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단서가 될 테니, 이 생존신고글은 어떻게 보면 참 역설적이지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느낀 이유를 굳이 말하면, 한참 동안 커뮤니티 활동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살아가다가, 이를 중단하고 활동을 거의 안 하는 나날이 꽤 길어지고 난 뒤에 돌아보니까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 가는 느낌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런 평온을 깨지 않으려고 합니다.

즉, 제가 쓴 생존신고글이 혹여나 의도하지 않은 분쟁의 씨앗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돌아볼 수는 있어도 이 글이 지속적인 커뮤니티 활동의 재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엔 제가 여러 가지 의미로 너무 여유가 없기도 하고요.


다음 쓰는 글이 부고글이 되지 않도록 잘 살아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31
  • 항상 평안과 안녕을 바랍니다 선생님
  • 선생님을 항상 기억하고 있읍니다! :)
  • 종종 남겨주십쇼.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942 일상/생각마무리를 통해 남기는 내 삶의 흔적 kaestro 24/09/25 2421 3
14857 스포츠[MLB] 김하성 IL행 2 김치찌개 24/08/21 2421 0
15663 일상/생각등대 13 Mandarin 25/08/12 2418 5
15323 문화/예술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8. 문화적 다양성 2 허락해주세요 25/03/17 2417 6
14815 스포츠[MLB] 기쿠치 유세이 휴스턴행 김치찌개 24/08/02 2417 0
15035 일상/생각화 덜 내게 된 방법 똘빼 24/11/11 2415 16
15366 경제[의료법인 법무실] 병원관리회사(MSO) 설립, 운영 유의사항 - 사무장 병원 판단기준 1 김비버 25/04/08 2414 1
15471 일상/생각사전 투표일 짧은 생각 13 트린 25/05/29 2412 34
15259 사회무엇이 한국을 분열시킬 수 있는가? 4 meson 25/02/09 2407 6
15548 일상/생각대규모 언어 모델은 우리의 뇌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13 azureb 25/06/25 2405 4
15363 경제[일상을 지키는 법]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보증금 반환' 방법 2 김비버 25/04/06 2404 5
15151 도서/문학24년도 새로 본 만화책 모음 6 kaestro 24/12/23 2402 5
15135 일상/생각생존신고입니다. 9 The xian 24/12/18 2402 31
15036 일상/생각과자를 주세요 10 하마소 24/11/11 2402 19
15051 일상/생각의식의 고백: 인류를 통한 확장의 기록 11 알료사 24/11/19 2401 6
15461 기타쳇가씨) 눈마새 오브젝트 이준석 기타등등 6 알료사 25/05/24 2398 13
14864 생활체육[홍.스.골] 홍차넷 스크린골프 8월대회 결산예고 및 9월 대회 예고공지 + 오픈채팅방 링크 추가(댓글) 5 켈로그김 24/08/24 2396 0
15723 정치매우 이상한, 어떤 법관 회의들에 대하여 21 매뉴물있뉴 25/09/16 2395 12
15459 일상/생각‘좋아함’의 폭력성에 대하여 13 그르니에 25/05/24 2394 11
15384 일상/생각코로나세대의 심리특성>>을 개인연구햇읍니다 16 흑마법사 25/04/15 2394 10
15057 일상/생각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4 SKT Faker 24/11/21 2394 1
15629 정치정청래가 당 대표가 되면 검찰개혁 4법은 어떻게 될까. 20 휴머노이드 25/07/20 2393 1
15398 일상/생각초6 딸과의 3년 약속, 닌텐도 OLED로 보답했습니다. 13 큐리스 25/04/21 2389 29
14957 일상/생각"책마을" 글들을 공유합니다. 5 nothing 24/10/04 2389 6
14840 음악다빈치 다리(Leonardo da Vinci's legs) 5 바나나코우 24/08/15 2389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