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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10 09:05:29
Name   선비
Subject   [조각글 3주차] 봄, 봄
주제(선정자 - 마스터충달):
능력자 배틀물
배틀 종목 자유
능력 자유
최소 단편(만화로 치면 3편 이상)
능력, 배틀이 키워드
등장인물은 특수능력이 있어야 하고, 배틀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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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있다.

나는 해변을 따라 걷고 있다. 바닷바람이 우물 바닥처럼 습하고 껌껌한 밤이다. 오른손에 쥔 차가운 술병에서 냉기가 전해져 올라온다. 추위는 조금 풀렸지만, 물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찬 날씨다. 나는 떠올린다.

내가 내 능력을 알게 된 건 아마 오래전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유치원 때쯤이었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단지 눈앞에 있는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곤 금방 질려 하고 만다. 인간은 그저 조금 더 복잡한 장난감일 뿐이다. 그러나 결국엔 질리고 마는 건 매한가지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네가 네 능력을 깨닫게 된 건 그보다 조금 더 오랜 후의 일이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어릴 때 네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죽었다. 너는 엄마와 단둘이 자랐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건 아마 네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여학교의 젊은 남자 선생이 흔히 그러하듯, 너희 학교의 미술 선생은 인기가 많았다. 여학생들이 농담도 웃으면서 받아주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선생이었다. 어쩌면 유행처럼, 너도 그 선생을 좋아했다.

인정한다. 나도 한때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첫사랑이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녀도 너처럼 고등학생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여고생을 좋아하잖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이럴 때 정말 편리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도 아버지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더 쉽다. 아버지의 결핍을 살짝 채워주는 시늉만 하면 쉽게 넘어오는 것이다. 그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르나?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를 꼬시는 건 쉬웠다. 그리고 쉬운 건 금방 질린다. 여자란 몇 번의 섹스 후에는 그저 지루함으로 남아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가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자살이라니. 흔하다 못해 지루했다. 지루했으므로,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시 네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술 선생 이야기. 어느 날, 중간고사가 끝나고 며칠 뒤의 일이었다. 너와 네 친구들은 미술 선생에게 떡볶이를 사달라고 졸랐다. 선생은 흔쾌히 허락했다. 스스럼없이 지내던 선생이었지만, 너는 내심 용기를 낸 게 자랑스러웠다. 친구들은 떡볶이를 다 먹고는 집에 돌아갔다. 선생은 너에게 자기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자고 말했다. 너는 조금 고민한다. 집에 늦으면 엄마가 화낼 텐데. 하지만 엄마는 7시는 되어야 일이 끝나 집에 들어온다. 시계를 본다. 5시 반. '한 시간만.'하고 너는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녀는 자살했다.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경찰은 이야기했다. ‘걸어 들어갔겠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경찰들은 항상 부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인간은 다들 그렇다. 슬프지만 어쨌든,
내 잘못이 아니잖아?하고 나는 생각했다. 소금이 들어갔는지 눈이 자꾸 따갑다.

너는 미술 선생의 원룸에 따라 들어간다. 걸쇠가 딸각하고 열리자 장식도 별로 없는 조그마한 방이 보였다. 선생이 먼저 책상 앞에 놓여져 있던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너는 눈을 굴린다. “참, 침대에 걸터앉으면 돼” 선생이 웃으며 말한다. 너는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초록색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같이 바닐라 맛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멋쩍다. 너는 괜히 먼저 돌아간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정말 편리하다. 언제나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상대의 약점을 찔러 괴롭힐 수도 있는 거다. 굳이 취직을 할 필요도 없다. 도박장에 가서 필요할 때 조금씩 돈을 벌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서른 살이 넘도록 취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다. 읽은 마음을 이용해 사람을 조종하기는 더더욱 쉽다. 단점이라면 사람이 조금 시시해 진다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너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6시 20분. 엄마의 일이 끝났을 시간이지만 아직 돌아갈 시간은 충분하다. 그때 갑자기 선생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네 눈앞에서 점점 가까워졌다. 불현듯 너는 불안해졌다.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입술이 너의 입술에 닿았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이 너의 옷을 벗기려 한다. 바로 그때, 네 휴대폰에서 엄마의 전용으로 지정해 놓은 벨소리가 울렸다. 너는 비로소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커다란 왼손이 너의 입을 막는다. 항상 네가 짜증 내 하던 엄마의 전화가, 교복 자켓 주머니 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울렸다.

여기까지 떠올렸을 때,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술병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곤란하다. 그러나 어차피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

어쨌든,
그녀가 죽고 나는 몇 번인가 여자를 사겼다. 여자를 바꾸는 건 나에겐 바지를 갈아입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대부분은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이란 꼬시기 더 쉬운 상대이다. 그저 진지한 척,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너는 특별하다는 말만 해주면 넘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특별한 건 없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오히려 항상 똑같은, 가장 지겨운 여자였다.

너는 이제 집에 돌아왔다.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돌아왔어!” 엄마의 고함 소리가 귀에 앵앵거린다. 그 소리는 크지만 말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방에 들어와 숨죽여 울었다. 어제의 네 방이, 아니 세상이 네겐 이제 낯설다. 마음 속으로 미술 선생을 잠깐 떠올리다 지워버린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너는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선생은 며칠 뒤 목을 매 죽었다. 유서는 없었다.

어쨌든,
때때로 그녀의 기억이 내 머리속에 떠오른다. 먼저 얼굴, 그다음에는 냄새, 그리고 체온. 지겹게도 항상 같은 순서이다. 그녀는 죽어서도 지루하다. 그럴 때면 나는 술을 마신다. 술은 지겨운 생각을 잊게 한다. 아니 깊게 만드나. 모르겠다. 그저 모호하다. 모호함은 좋은 것이다.

너는 선생과 있던, 선생이 죽은 그 방을 떠올린다. 선생은 하나밖에 없는 의자에 올라서 목을 매었던 걸까? 어쨌든 잘 죽은 거야. 하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어쩐지 그렇게 죽은 선생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렇게 비겁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너는 죽은 선생이 조금 부러워졌다.

몸이 떨린다. 술에 취한 다음 날이면 몸이 떨린다. 이럴 때 술은 떨림을 진정시켜준다. 때문에 나는 또 술을 마시기로 했다. 편의점에 가서 소주를 샀다. 어제와 같은 검은 뿔테의 알바가 오늘도 그 자리이다. ‘쯧쯧.’ 그가 속으로 혀를 찼다. 만날 낮부터 술만 사 가는 내가 한심하게 보인 모양이다. 이럴 때는 굳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도 필요 없다.

네가 엄마와 심하게 다툰 날이다. 이상하게도 무슨 일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호하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다 그렇다. 너는 엄마가 밉다. 너는 선생이 밉다. 너는 세상이 미웠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너는 소리쳤다. 소식을 들은 건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엄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술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 너를 또다시 마주친다. 너는 그녀와 똑 닮았다. 얼굴과 체구부터 걸음걸이까지. 오늘은 문득, 너를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너를 따라 이 해변까지 온 것이다. 너에게 말을 걸면서 네 기억을 읽어본다. 부모가 없다. 이런 경우는 더 쉽다. 이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르나? 모르겠다. 어쨌든 이럴 땐 결핍된 보호자 역할을 대신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먼저 고등학교 미술 선생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나는 조금 더 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너는….

너는 이제 네 능력을 깨달았다. '사람을 죽이는 초능력 같은 건 갖고 싶지 않았어' 하고 말해야 어쩔 수 없다. 세상은 원래 어쩔 수 없다. 너는 네가 죽인 사람들을 떠올린다. 괴롭다. 비겁하게, 너는 이제 자살을 생각한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죽기 전에 바다를 보고 싶었으므로, 너는 바다로 간다. 도착한 해변에서, 누가 너를 부른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이라고 한다. 이제 지겹다. 너도 나도. 너는 마침내 나에게 외친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봄이 오고 있다.

나는 바다를 향해 걷고 있다. 추위는 조금 풀렸지만, 바닷물은 아직 차다. 거의 턱 끝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모호한 정신을 조금 깨운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떠올린다. 그녀가 죽었을 때도 네 나이쯤이었다. 그래, 그때에는 나도 네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네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려 하고 있다. 어쩌면, 조금 더 살아서 말해줘도 좋을까. 사실,



“세상에 사람을 죽게 하는 초능력 같은 건 없어.”
라고.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이제는 너무 늦은 것이다. 상관없다.
어차피 나에게도,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따윈 없었으니까.
그저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입에 차오르는 바닷물이 짜다 못해 달게 느껴진다.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너를 떠올려본다.
지겹도록 정확히 똑같은 순서로.


먼저

너의 작고 갸름한데 코만 오뚝해 지겹지 않았던 얼굴,

그다음에는 달콤한 베이비 파우더 같아 온종일 맡아도 좋았던 네 냄새,

그리고 차가운 내 몸을 따뜻하게 녹여줬던 네 체온.




그녀는 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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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둘러싼 청춘남녀의 초능력 배틀을 그리고 싶었으나 필력 부족으로 실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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