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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3/13 21:02:59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3월 15일,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의 가능성
0. 미국 연방정부가 매해 사용하는 예산 역시 법안이므로, 예산안은 상하원에서 입법절차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법 절차는 상원에서 필리버스터에 의해 막힐 수있죠. 필리버스터를 뚫으려면 상원에서 60표가 필요하고 공화당 표는 53표이므로 필리버스터를 뚫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산을 짜려면 공화당은 민주당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1. 조정

[하지만], 1974년에 통과된 예산법에 의해, 세입, 지출, 부채한도와 관련된 예산처리는 필리버스터를 요하는 입법 절차가 아닌 아닌 조정(reconciliation)이라는 절차를 통해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 때는 필리버스터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단순과반으로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죠.

그래서, 새로 들어선 행정부들은 임기 첫 해에 상하원을 가졌지만 필리버스터를 뚫을 수 없을 때, 이 조정 절차를 통해 예산을 짬으로서 대통령의 어젠다를 구현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연두교서 때도 트럼프는 예산안 통과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에겐 한마디도 안하고, 공화당 의원들만 협박했습니다. 하원의 우위가 특히나 적어서 두 세 명의 공화당의 이탈표만으로도 예산이 좌초될 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경고한거죠. 트럼프의 행동을 보건데 당연히 임기 첫해 예산은 조정 절차를 거칠꺼라고 봤습니다.


2. 그러나

공화당이 트럼프 서킹머신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며 솔직히 당내 갈등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 생각했고, 실제로 하원에서 통과되는 양상을 보니 공화당에 원칙따위는 없었습니다. 빚 때문에 나라가 망할꺼라는 종말론자 공화당 의원 한 명이 반란표를 내긴 했는 데, 민주당에서도 배신표가 나와서 쌤쌤이었죠. 민주당 배신표가 없었더라도 통과되었겠지만요.

그래서 임기 첫해에는 특별한 갈등없이 예산을 통과시키리라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원은 이번 예산을 조정 절차가 아닌 정식 입법 절차를 거쳐 상원에 올려보냈습니다. 이 예산안은 9월 30일까지 연방정부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최종예산'은 아니고 '지속결의안(CR)'입니다. 조정이 아니라는 것은 보통 예산안에 조정으로는 건들 수 없는 내용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뭐 때문에 이런 짓을 했는 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트럼프가 의회가 올려보낸 예산을 마구 칼질하는 초법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기 위해 법안을 바꾸다 보니 조정에서 정식 입법이 되었나 했죠.

3. 왜?

  조정이 아닌 정식 입법 절차를 거쳐서 민주당에게 필리버스터의 기회를 주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공화당의 어젠다가 뭐건 간에, 이제 '헌법'이나 '연방법' 같은 건 걸림돌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그런 걸 마구잡이로 무시하고 있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그걸 문제삼지도 않아요. 막말로 조정으로 통과시킬 수 없는 예산안이었다고 쳐도, 그냥 억지로 조정 과정에 집어넣어 통과시키고 행정부가 집행해버리면 그만 아닌가요?

민주당이 뭘 어쩔껀데요? 연방정부 예산집행을 멈추라고 소송이라도 할껀가요? 연방정부 예산안이 어떤 과정으로 통과되었든 어떤 연방법원 판사도 연방법원 예산 전체의 집행을 중지시키는 법원명령을 내려주진 않을껍니다. 그리고 어떻게 제동이 걸린다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연방대법원으로 끌고가겠죠. 지금 연방대법원은 이미 완수된 계약에 대한 미수금을 주지 않는 미친행동마저도 대법관 9명 중 4명이 그게 '주권면제(sovereign immunity)'라는 개소리를 둘러대며 쉴드치고 있습니다. 조정 절차가지고 장난치는 정도는 연방대법원이 알아서 법조문을 바꿔가며 쉴드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또, 트럼프 의제의 대부분은 조정으로 통과시키는 예산안으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싸울 각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요.

그리고 조정에 맞춰서 통과시킨 예산안이 불만이다? 지금처럼 삭감하고 싶은 건 행정부가 마음대로 삭감하고, 증액하고 싶은건 행정부가 마음대로 다른 예산에서 꺼내다 쓰면 됩니다. 국방부 예산에서 돈 빼와서 국경지대에 방벽짓던 건 1기 행정부 때도 했던 짓이에요.

어떻게 봐도 조정을 안할 이유가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공화당 지도부는 조정을 안하기로 했습니다.

4. 그리고

이제 바톤은 민주당에게 넘어왔죠.

  이미 민주당에서는 반란표가 한 명 나왔고, 통과 직후에는 상원의원 중 한 명이 '예산안 통과에 협조하는 건 의무'라는 식으로 이 미치광이 정부에게 협조하겠다는 시그널을 줬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상원 민주당 지도부에서 트럼프가 예산에 통과한 민주당 표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필리버스터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칩니다.

민주당 상원이 필리버스터를 하고 공화당과 트럼프가 물러나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셧다운입니다.

5. 의무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로 이 예산안을 거부할 도덕적,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상적인 행정부였어도 이런 식으로 민주당에게서 단 하나의 양보나 협의도 받지 않은 예산안을 그대로 받아주는 건 말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헌법이 의회에게 부여한 권한의 상당부분을 침해하며 미국 헌정사 초유의 위기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의회가 독점적으로 가지는 예산 편성권, 관세를 설정할 권한, 이민 정책에 대한 권한 등을 행정명령으로 위법하게 침해했거나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의회가 법률로 수립하고, 법률로 예산을 지원한 국제 개발처의 모든 예산집행을 일괄 중지시키고, 이게 위법하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에 불응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률을 집행해야 하는 행정부가 '내가 집행 안하면 어쩔껀데?' 따위의 알빠노를 시전하는 건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우려했던 악몽이었습니다.

자기들이 통과시킨 법률대로 예산을 집행한다는 보장이 없는 행정부에게 예산을 줄 이유가 없습니다.

공공연하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범죄자 집단으로 전락한 이들에게 하고있는 짓을 계속 하게 돈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좋은 이유죠.

이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싶으면 앞으로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으며, 저지르는 범죄를 멈추겠다는 확약을 공화당으로부터 받겠다며 협상을 거는 게 시작이겠네요.

트럼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연방에서 진짜 정치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6. 예측.

그런 제 생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어떤 양보도 받지 않고 접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미 한참 전에 경기 침체(recession) 사이클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블룸버그는 2022년에 미국이 침체에 들어설 확률을 100%로 예측했습니다. 바이든은 이 예측을 보기 좋게 회피했죠, 이걸로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상대로 티배깅도 시전했습니다. 하지만, 상승 사이클 뒤에 하강 사이클은 오기 마련이고, 이게 늦춰질 수록 하강 사이클에 대한 기대심리는 더욱 커집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재앙적인 관세 정책은 안 그래도 불안한 경제를 크게 흔들었고, 시장은 아주 나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연방정부 셧다운이 들어서면 침체에 들어서는 게 확정될 지 모릅니다. 민주당은 이 비난을 받기 싫을 수 있습니다.

또, 공화당은 언제든지 필리버스터를 없앨 수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상원규칙이고, 상원 다수당 대표가 핵옵션을 사용하면 단순과반(51표)으로 필리버스터를 폐지하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버스터가 그 동안 살아남았던 건, 이 전통을 없애는 것이 단순 과반을 차지한 양당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필리버스터 폐지 같은 완전히 '합법적' 권한을 사용하는 걸 부담스러워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는 대통령을 후원하는 정당에게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또, 트럼프는 필리버스터를 1기 행정부 때 파괴하려 했고요. 이 때는 당시 공화당 상원 대표였던 미치 맥코넬이 막았는데. 맥코넬은 여전히 상원의원으로 있지만 더 이상 상원대표가 아니고, 트럼프를 상대로 예전과 같은 저항을 못하고 있습니다. 피트 헤그세쓰같은 알콜중독자가 국방부 장관이 되는 걸 막으려 했지만 충분한 반란표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죠. 그리고 솔직히 2025년 맥코넬이 필리버스터 폐지에 반대할 지도 의문이고요.

그래서 민주당이 제대로 셧다운을 진행할 지도 의문이지만, 한다 하더라도 그 저항이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입니다. 트럼프로부터 어떤 양보도 받아내지 못한채 필리버스터의 전통이 박살나고 예산이 집행되는 미래가 아른거려요.

아니면 평소에 셧다운이 일어날꺼 같으면 하던대로 한 두달 짜리 임시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셧다운 기한을 계속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7. 막장협상.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은 예산안을 상원에 올려보내고 하원을 휴회(adjourning)했습니다.

아무런 합의가 없으면 3월 15일날 셧다운이 일어납니다.

만약 상원이 이 예산안을 거부하면 휴회 후 지역구 일을 처리하라고 돌려보낸 하원의원들을 이틀안에 다 소집해 예산안을 재협상하는 건 아주 힘듭니다.

그래서 상원에게 '예산안 거부하면 무조건 셧다운임'이라고 벼랑끝 전술을 시도한겁니다.

이미 민주당의 의견은 아무것도 듣지 않은 예산안을 올려보내고 거절하면 셧다운? 진짜 놀라운 협상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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