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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12 03:09:08 |
Name | 커피최고 |
Subject | 라틴아베로에스주의에 대한 단죄와 학문 풍토의 변질 |
1. 아베로에스와 이중진리설 아베로에스는 스페인 코르도바 출생의 법률가, 신학자, 의사, 수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당대의 르네상스적인 인간이었던 셈이죠. 그런 그가 저술한 여러 종류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서로 인해, 당시 세간에서는 그를 '주석가'로 통칭하였습니다. 지성적이며 이론적인 경향을 띄었던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지성의 화신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 그가 중세 아랍철학자들 중에 가장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학자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면서 동시에 이슬람 신자였던 아베로에스는 불가피하게도 정통 이슬람 신학과의 조화를 시도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바로 '이중진리설(Duplex Veritas)'입니다. 이는 하나의 진리, 혹은 같은 진리가 철학에서는 이론적으로 명백하게 이해되는 것인 반면, 신학에서는 비유적으로 표현된다는 내용이죠.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코란 해석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1. 필연적 논증을 요구하는 철학적 증명 2. 신학자의 비유 해석 3. 백성들의 단순한 이해 어느 내용이 어떤 범주에 속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지는 모두 철학이 결정해야할 사항들인 거죠. 오직 철학자만이 비유의 껍질을 벗겨내고 표상적 꾸밈이 없는 본래의 진리에 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슬람 신학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발전시킨 그의 이중진리설은 결코 이슬람 정통신학자들에게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신학을 철학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죠. 한편, 지성에 대한 그의 이론은 아랍세계 너머에 있는 유럽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인간 전체에는 단 하나의 능동지성이 있을 뿐이며, 이것이 관념을 받는 경향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개별 인간의 수동적 지성과 접촉함으로써 어떠한 결합상태, 즉 질료적 지성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동지성만이 개별적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수동지성 역시 인격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하기에 신체와 함께 소멸된다는 내용을 서방세계는 받아들였고, 아베로에스의 이론은 '라틴 아베로에스주의'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2. 라틴아베로에스주의(극단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시제루스 신학을 철학에 종속시키는 아베로에스의 이중진리설은 이슬람 신학자들의 적의를 불러일으켜, 당시 이슬람 세력에 속해있던 스페인에서는 그리스철학 연구가 금지되기에 이르렀고, 일부 철학 서적들이 소각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대신 아베로에스의 사상은 서구 세계에 수용되어 13-16세기에 걸쳐 중세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라틴 아베로에스주의'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찬반 논의를 불러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에 있던 학자들이 바로 시제루스이며, 그 사상적 흐름은 곧 극단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여겨지게 됩니다. 1260년경, 파리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새로운 철학자들 중에 단연코 가장 유명세를 떨치던 인물은 바로 시제루스였습니다. 초기 저작들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따라 신앙에 상반된 철학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베로에스 등의 아랍철학자에 의해 주석된 내용을 의미합니다. 시제루스 역시 신을 제1의 존재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신은 세계의 창조자로서 그 창조는 영원성을 담보하며, 그렇기에 만물은 영원한 것이라고요. 신은 분리된 형상, 즉 지성존재만을 창조할 수 있다고요. 이러한 분리된 형상 혹은 지성존재를 매개로 하여 지속되는 존재들의 여러 단계가 생기게 됩니다. 질료는 신에 가까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은 질료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 같은 사물들에는 섭리 역시 관여하지 않는다고도 이야기하고요. 즉, 만물은 영원으로부터 있으므로 본질과 존재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본질과 존재의 실재적 구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시제루스설의 핵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가능적 지성의 단일성입니다. 따라서 개개인들에게는 지성의 작용적 일성은 있어도, 존재론적 일성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별적 영혼은 있을 수가 없으며 그 불멸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멸성은 오직 인류의 단일한 영혼만이 지닌 것이라는 말이죠. 3. 단죄에 의한 시제루스 학설의 변화 시제루스의 학설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반대하기 위해서라기 보단,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세 세계에 던져준 충격, 즉 놀라운 인간 이성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감탄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성단일성론>에 나타난 비판과 1270년에 내려진 단죄는 젊은 교수 시제루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학설에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270년 이후 그는 계시된 진리에 충실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과 이성이 무엇을 발견할지, 또 철학자들의 의도는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려 한다고 선언합니다. 시제루스설은 이성과 계시 사이에 합리주의적 상반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지성의 단일성에 대해선 견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지성은 '내적으로 작용하는 형상'입니다. 이 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을 재제시한다고 말하죠. 또한 개인들 안에 제시되는 지성들의 다변화 문제를 단일하게 해석하여줄 수 있는 신앙을 따른다고 하여 진리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1277년 두번째 단죄 이후, 그는 자신의 설을 근본적으로 전향시킬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꼼수가 통하질 않은거죠. 그는 물리학 주석에서 운동과 천체의 불변성을 포기합니다. 또한 신이 한 결과만을 직접적으로 창조한다는 설도 포기합니다. 그 대신 신은 다수의 것을 인식하며 그런 것들에 작용한다는 설을 내놓게 됩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는 지성론, 영혼론에서도 아베로에스적 해석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과 신체의 실체적 결합을 인정하게 됩니다. 자신의 학문적인 아이덴티티가 무너져내린 순간이죠. 그의 학설 변천 과정을 텍스트 상으로만 이해한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것을 인정해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제루스의 전향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학자로서의 스탠스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님을 알 수 있죠. 결론적으로, 파리와 옥스퍼드 두 대학에 내려진 두 번의 단죄는 당시 유럽 학문계에 너무나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단히 성급했고, 객관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결국 내분을 야키시켰습니다. 이는 이후 50여 년 동안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대학의 토론은 학문외적인 요인으로 갈라진 각 학파들의 권력투쟁의 무기로 전락하게 됩니다. 실재의 진리를 파악하려는 진정한 토론과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하고 올바르면 받아들이려는 시제루스, 그리고 심지어 토마스의 태도 역시 상실되고 말죠. 단죄 이전의 위대한 신학자들은 과학과 철학적 학문을 열정적으로 탐색했고, 이러한 탐구가 신앙을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학에 대해 우호적인 수용자세를 보여주었던 알베르투스와 토마스의 자세는 라틴아베로에스주의 논쟁과 이에 대한 단죄를 통해 수동적인 방어자세로 변절하였고, 동시에 철학자에 대한 의혹을 양산시킵니다. 이후 학문의 풍토는 스승들이 도입한 철학과 신학의 구분 및 조화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보다는, 그 언어만 보려는 헛된 노력에 빠지게 됩니다. 1277년의 단죄는 수도회 및 학부 간의 갈등, 대학에 대한 교구의 권위 확보 등이 얽힌 학문외적인 복잡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콜라 학자들은 그것이 '정통성의 진정한 본래적 규범'의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 이해하였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전 서방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요. 이를 두고 질송은 1277년의 단죄가 중세철학 및 신학사의 이정표이며 동시에 스콜라주의의 황금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권위에 의한 단죄와 그로 인한 학문 풍토의 변질.....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겠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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