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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4/02 17:39:38수정됨 |
Name | 골든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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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이상적인/사악한 아름다운 한국 사회 |
요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한국에 대해 걱정하는 (?) 아이들을 종종 봅니다. 주로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어 유튜브에서 나오는 한국 망국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인데요. 본인도 그리 진지한 경우는 드물고, 그래도 왜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지 설명하면 그 매섭던 기세가 순식간에 꺾이고 순순히 납득하여주는 참 착한 친구들이지만 가끔 저 스스로도 이 사회가 참 헷갈립니다. 토끼로도, 오리로도 보이는 이 착시 그림처럼 사회는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크게 다른데요. 가령 절 정말 크게 도와주신 심리상담사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정치성향은 매우 보수셨고 집안이 자산가였지만, 남는 시간에 범죄피해자나 불량 소년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셨어요. 이러니 저러니해도 저와 사이 좋게 지내고 늘 절 응원해주시던 고마운 분인데, 어떤 이야기 대목에서 사이가 많이 틀어졌습니다. “불친절한 의사들 많았어요.” 제가 섬유근육통이라는 희귀병으로 고생할 때 이야기를 하며 의사들이 얼마나 소리를 질렀고, 절 탓했으며, 이상하게 굴었는지 이야기했더니 갑자기 선생님이 야단을 치는 겁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 의사들이 왜 그리 절 보는 걸 힘들어하고 먹지도 않은 잡곡밥 먹은 거 아니냐고 소리지르고 진통제도 하나도 안 줬는지.. 알 것 같다가도 참 슬픕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불행을 공감하기 힘들어서였을 거라곤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함 안 되지. 무슨 의사들이 그런다고 그래. 대한민국 의사들이 그러지를 않아요.” “아뇨. 선생님. 제가 겪은 일이고 성추행하는 의사도 있었는데…” “아니, 대한민국 무슨 의사가 그래! 의사 선생들이 그러질 않아요.”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한단 소리세요? 그럴 순 없는 거잖아요. 선생님이 상담사니 절 적어도 믿어주셔야죠.” 부유한 티가 나는 목소리와 태도, 네트워크 때문일까? 보수적인 그녀의 접근법 때문일까? 전부터 한국 여청과 경찰도 착하게 전화를 잘만 받는다고 하여 여청과 사건을 하는 피해자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모 경찰서가 계속 연락을 회피하고 가해자 편을 드는 이야기를 해도 잘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선생님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의사들 이야기에까지 이러시니. 그뒤 사과를 드리고 생일 선물로 과일도 드리고 했지만 여러모로 속이 상하신 듯했고 서운한 기색은 오래 갔습니다. 김승섭 교수의 최근 저서에 나온 실제로 의사들이 소득 수준 등에 따라 진통제 처방이 달라진단 통계 자료라도 들이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리고 실제로 제가 의사들이 하도 진지하게 내시경 결과도 안 봐줘서 결국 친밀감 -라뽀- 을 형성하기 위해 서울대 로스쿨 후드 입고 가고 남친 데리고 가서 효과 본 일례도 있어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그거야말로 사회성 없는 행동이죠. 무슨 이유에서든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사회에 대한 시각. 믿음’인 것입니다. 의사들은 믿을 만하다는 그 의견에 제가 반론을 제시한 셈이니 선생님의 사회에 대한 연결 그 근간을 흔드는 불온한 주장은 화를 부를 만하였고요. 제가 로스쿨 후드티 입고 가서 의사와 더 소통을 잘하게 된 이야기는 한겨레, 경향도 안 받아줄 뭔가 ‘기분 나쁘고 반사회적인’ 이야기는 맞을 거거든요. 근데, 또 제가 효과를 본 건 사실이에요. 아, 이 사회는 어떻습니까? 토끼입니까, 오리입니까? 그간 항상 순진한 믿음을 갖고 공부하다가도 ‘넌 집안 때문에 사실 공부하면 안돼’ 라고 가로막히며 혼나거나, ‘선행 다닐 학원비 없음 못 따라와’ ‘이쯤이면 로스쿨 그만두지‘ 라고 혼나곤 했습니다. 사회는 제게 가르쳤던 말을 번번이 뒤집어 엎었습니다. 한때는 어릴 때 좋아했던 도덕 교과서나 바른 생활 교과서 말이 다 가짜 같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정을 진심다해 건넸던 친구들은 제 고통 앞에서 돌아섰고. 아무렇지 않게 저와의 연을 끊고 무시했습니다. 부모도 제가 도리를 다해도 절 착취했고. 정부도 절 무시했고. 학교도 경찰도 절 무시했습니다. 학대 피해자란 이유로 교과서처럼 꼬박꼬박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경찰의 차디찬 비웃음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정보공개청구에 담으니 늙은 경찰이 혐오하는 얼굴로 돌아다니며 절 보았습니다. 정보공개청구는 부작위로 씹혔고, 법대 교수님들은 법이 원래 정의와 거리가 멀다, 법은 종이 위에 쓰여진 글자일 뿐이다 라며 현실을 보라고 했습니다. 세상 착하게 행동하는 모범생, 교사들, 어른들도 제게는 몰래 다가와 폭언을 퍼주었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의사들도 소리를 질렀고 상담사는 무시했고 경멸을 퍼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그렇게 보면 안 된답니다. 안 될 거 같긴 합니다. 문득 글을 가르치며 느낀 게 그간 사실 내가 트라우마로 인해 점점 공부에 대해 회의감을 느껴 순수하게 뇌에 입력하지 않고 항상 자기화 시켜서 입력하고 있었단 거였습니다. 여타의 커리큘럼, 강제된 공식 같은 것이 증오스러웠고 다 똑같은 방식으로 시키는 대로 하면 결국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들만 이길 거 같았습니다. 순수하게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와 함께 “한국에는 억울한 사람이 없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 된다.” 같은 신념을 진심으로 떠들고는 해 절 상처입히고는 했습니다. 그들은 그 신념이 소중해 제 인생을 더는 듣지 않길 원하고는 했습니다. 살아있는 저보다 그들의 상상 속 개념이 더 강했습니다. 자,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서 의사를 불친절할 거라 가정하고, 교사를 일을 안 할 거라 가정하면 - 신기하게도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로 빠르게 인지하고 불친절하게 대응하게 됩니다. 시선이 현실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겪은 건 사실이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목놓아 말하는 진실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오리무중한 이중의 금제가 붙습니다. 사회는 토끼입니까, 오리입니까? 최신 신경심리학 연구들에 의하면 사회참여모드가 활성화되고 미주신경 복측이 활성화되면 목소리 등에서 친사회적인 사람인 것이 티가 나 좋은 대접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반면 삶이 위기가 많고 사회에 불신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 또다른 차별의 악다구니에 밀어넣어지는 건데요. 그런 사람들은 보통 발언력도 약하니, 담론장에도 나오지 못해 실제 그런 사람들이 오늘도 얼마나 사회 시스템의 그림자 속을 헤매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전부 차별이 있단 건 증명은 됐지요. 하지만 그리 믿으면 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단 겁니다! 사람들은 친절해요. 당신이 강해보이는 한! 복지는 주어집니다. 당신이 이 말도 안 되는 서류작업을 다 하는 한! 담당자들의 차가운 편견과 심리적 공격을 뚫어보세요. 아냐. 그건 당신의 마음 속에만 있잖아. 이 사회는 올바릅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도 기후위기도 어느새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 아이들이 답답해하면 저는 어른이 미안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중산층 이상인 걸 티내고 서울대 로스쿨 졸업이란 걸 티내고 당을 통해 일자리를 얻음으로써 절 혹여라도 비사회성이 비언어적으로 티가 나 아 약자 출신이구나 본능적으로 느끼고 괴롭힐 수 있는 걸 막고서야 안심이 됩니다.) (누구나 자기 친구에게는 좋은 사람) 장애인이 무료법률서비스를 담담히 할말만 대답해준 변호사에게 ‘이런 사람은 처음이다. 다 말 짧게 자르고 그랬는데.’라고 할 때 무슨 말뜻인지 알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결국 대부분의 변호사가 그러긴 그러했을 거란 걸 인정할 수 있는 그 마음의 힘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그동안 사랑하던 법학의 내용이 죄다 사회적 매개변수에 의해 뒤집히는 충격 앞에 병도 나고, 공부도 못했다 다시 동네 학원 구석에서 펜을 잡으며 고민에 빠집니다. 다시 이 길을 가도 될까. 또 다음에는 무슨 내가 상상하지 못한 부패가, 내집단 편향성이, 비리가, 무의식중 계급의식이, 전쟁이, 착오가, 혐오가, 차별이 나를 바보 취급할까. 대체 법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우리는 법치주의 사회에 사는 게 맞을까. 자. 사회는 토끼입니까, 오리입니까? 흥미로운 지점 : 그동안 네가 배운 모든 것에 ‘아니오’를 외치란 뜻의 세이노의 가르침 첫 글이 바로 좋은 의사 찾는 법이고 그 글의 내용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소명의식 있는 사람을 찾으란 것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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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군데 또는 내가 (권력있는) 누구랑 친한데를 시전하는 이유도 이거였군요. 이게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이 나라에서 경험으로 체화한 생존방법이었다는 걸 이 글을 읽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네요.
택시 기사들이 유독 그러는 이유기도 합니다. 아마 무시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문제는 저처럼 만만한 사람에게 그 화를 푸는 택시 기사가 잦다는 거죠. 결국 약자에서 약자로 약자에서 더 약자로 스트레스의 도르래가 내려갑니다. 오멜라스의 아이 이야기가 틀린 것도 아니죠.
심리상담사란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적 환상과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죠. 환상 : 누군가 심리상담을 전문화해서 계속 힘든 이야기를 들어줘서 감정을 처리해주면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전문화하면 효율화될 거다. 실제 : 심리상담이 누구보다 필요한 정신적으로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배우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 상담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경제적 최소 안전망은 있는 경우. 즉 상담 전공을 할 여력이 있던 경우.) 그리고 자기 상처의 틀로 남을 재단하는 일이 다반사예요. 사실 그래야만 그 힘든 남의 상처를 들어주는 시간이 그 사람... 더 보기
심리상담사란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적 환상과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죠. 환상 : 누군가 심리상담을 전문화해서 계속 힘든 이야기를 들어줘서 감정을 처리해주면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전문화하면 효율화될 거다. 실제 : 심리상담이 누구보다 필요한 정신적으로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배우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 상담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경제적 최소 안전망은 있는 경우. 즉 상담 전공을 할 여력이 있던 경우.) 그리고 자기 상처의 틀로 남을 재단하는 일이 다반사예요. 사실 그래야만 그 힘든 남의 상처를 들어주는 시간이 그 사람에게도 곧 자기보상이 되어 버티는 겁니다. 사실 각자가 힘든 이야기가 달라서 효율화가 잘 안 됩니다.
무튼 그런 사람들이니 보통 사람들보다 마음이 약해서 상담에서 의지로 버텨야 하는 순간도 잘 못 버팁니다. 계속 자기 맘에 갇혀있던 사람들이라 오히려 사회를 모르기도 하고요. 편견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제 다행히 서양에서는 슬슬 인정되는 이야기라 하니 꺼내놓습니다. 제가 상담사가 하나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자기가 조현증인 걸 부정하는 조현증 환자가 주위를 온통 착취하고 외로움을 도덕적 과시(여성주의 채식주의 등)로 해결해가며 박사 학위를 기어코 따는 과정을 보는 기분은 착잡했습니다. 그 친구가 앞으로 만날 수백의 내담자들이 부디 무사하길. 제가 아는 제일 남의 심리에 해박하거나 따뜻한 사람들은 하루 한두시간 상담도 힘들고 위클래스와 같이 학교 전체 상담을 한명이 담당하는 구조는 정말 불가하다고 다 말하고 그게 타당하더군요.
무튼 그런 사람들이니 보통 사람들보다 마음이 약해서 상담에서 의지로 버텨야 하는 순간도 잘 못 버팁니다. 계속 자기 맘에 갇혀있던 사람들이라 오히려 사회를 모르기도 하고요. 편견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제 다행히 서양에서는 슬슬 인정되는 이야기라 하니 꺼내놓습니다. 제가 상담사가 하나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자기가 조현증인 걸 부정하는 조현증 환자가 주위를 온통 착취하고 외로움을 도덕적 과시(여성주의 채식주의 등)로 해결해가며 박사 학위를 기어코 따는 과정을 보는 기분은 착잡했습니다. 그 친구가 앞으로 만날 수백의 내담자들이 부디 무사하길. 제가 아는 제일 남의 심리에 해박하거나 따뜻한 사람들은 하루 한두시간 상담도 힘들고 위클래스와 같이 학교 전체 상담을 한명이 담당하는 구조는 정말 불가하다고 다 말하고 그게 타당하더군요.
본문을 보고 소위 '점잖고 선한 사람'들의 이중성에 대해서 느꼈던 경험이 생각나네요.
저는 수혜자 쪽이었습니다. 인턴 때 굉장히 젠틀하고 나이스하게 저를 대해주셨던 소장님이 있었습니다. 나름 업계에서 잘 나갔었고 상류층 클라이언트와 교류도 하시고, 점잖고 세련된 노신사 분위기.
같은 소장님과 일했던 (학벌이 다른)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약간 폭언에 가까운 참견이나 외모, 성별 비하발언 등, 거의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이후에도 사람에 따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교수님, 업계 사람들 등을 겪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경솔한 행동이나 발언을 조심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구요.
저는 수혜자 쪽이었습니다. 인턴 때 굉장히 젠틀하고 나이스하게 저를 대해주셨던 소장님이 있었습니다. 나름 업계에서 잘 나갔었고 상류층 클라이언트와 교류도 하시고, 점잖고 세련된 노신사 분위기.
같은 소장님과 일했던 (학벌이 다른)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약간 폭언에 가까운 참견이나 외모, 성별 비하발언 등, 거의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이후에도 사람에 따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교수님, 업계 사람들 등을 겪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경솔한 행동이나 발언을 조심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구요.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한 사람이 자판기마냥 직업상 만나는 수백 수천 나아가 수만의 사람을 똑같이 대해주길 기대하고 우리도 그런 듯 행동하게 되어있는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그걸 의식하는 거까지도 매우 힘든데 lowa님이 지적인 힘이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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