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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5/17 00:46:06
Name   meson
Subject   호텔경제학 감상문
최근에 이재명 후보가 악명 높은 [ 호텔경제학 ]을 직접 다시 언급해서 나름 이슈가 된 듯합니다.



발언을 대강 옮기면 아래와 같은데요.

이게 이제 경제학자들이나 또 일부에서 반론을 하긴 하던데 이 경제라고 하는 걸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제가 옛날에 이런 예를 하나 든 일이 있어요. 동네 경제가 아주 막 다 죽어 가지고 썰렁하게 그냥 침체돼 있는데 그 동네에 어떤 관광객이 한 명이 왔어요. 그나까 이 사람이 어 전화로 오기 전에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을 아 내가 거기 이틀 묵을 건데 예약금으로 10만 원 보내겠습니다. 10만 원 호텔 주인이 받았어요. 그걸 받아 가지고

(마이크 음량 올리는 중)

이 돈을 10만 원을 이 호텔 주인한데 예약금으로 오전에 들어왔어요. 들어와서 이 호텔 주인이 오랜만에 돈이 10만 원 들어와서 아, 외상값을 갚자. 이래 가지고 동네 식품가게 외상값을 10만 원을 얼른 갖다 갚었어요. 이 식품가게 주인이 오랜만에 또 돈이 들어왔어요. 아, 내가 평소에 못 먹던 통닭이나 한 번에 사 먹자. 내려가지고 통닭을 다 사서 먹었어요. 그 통닭가게 주인도 요즘말 10만 원이 오랜만에 들어왔어요. 그래가지고 옆집에 저번에 우리 그 신발가게, 신발가게 외상했던 거 갖다 갚았어요. 어 신발가게 주인도 10만 원 받아 가지고 아 드디어 돈이 들어왔구나, 그래서 오늘도 배가 고픈데 빵이나 사 먹자, 이러 빵을 잔뜩 샀어요. 빵의 주인이 전에 호텔에 가서 어 외상으로 호텔값 못 줬던 거 10만 원 줬습니다. 그런데 좀 있다가 이 여행객이 아 우리 여행 일정이 바뀌었어요. 미안합니다. 그 돈 돌려주세요. 그래 돈 받아 갔어요. 이 동네에 들어온 돈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동네에 어쨌든 거래가 쫙 일어난 거죠. 이게 경제죠.

유명한 호텔경제학 짤과는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여행객 > 호텔 > 식품가게 > 통닭가게 > 신발가게 > 빵집 > 호텔 > 여행객 순으로 10만 원이 순환하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원래의 호텔경제학에서는 호텔이 가구점에서 침대를 구매한 반면, 최근의 호텔경제학에서는 외상값을 값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게 되면 저는 조금 궁금한 점이 있는데, 사실 원래의 호텔경제학을 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만, 호텔이 필요한 지출을 했을 수도 있는데 꼭 호텔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다소 의아합니다.

이른바 호텔경제학의 논지는 경제가 침체된 마을에 돈이 풀리면 사람들이 참고 있던 소비를 하면서 각자 원하던 재화를 얻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볼 때 호텔경제학에서 호텔의 활동은 원래 침대를 구매하고 싶어하다가 마침내 자금이 생겨서 침대를 구매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0만 원을 침대와 바꾼 것이죠. 그리고 10만 원을 침대와 바꾸었기 때문에 순환이 일어나 10만 원의 외상값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 마지막에 그 돈으로 환불을 해줬으니 결국은 외상값을 받아서 침대를 구입한 것과 결과는 똑같습니다. 다만 여행객이 안 왔다면 외상값을 못 받았을 테니 침대도 못 구입했겠죠.

그런데 이것을 두고 호텔이 10만원을 손해봤다고 말하는 주장을 보면, 어쩐지 호텔이 침대를 구매한 활동이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전제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침대가 10만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호텔은 침대를 계속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10만 원을 꼭 손해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 경제가 침체된 마을이라고 했으니 호텔이 가구를 구비하는 활동이 잘못된 투자라고 평가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호텔경제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호텔의 경영능력이 아니라 이재명의 경제관념을 조롱하기 위해 호텔이 손해봤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의 발언을 보면, 앞서 언급했듯이 호텔의 경제활동은 침대 구매조차 아니라 그냥 식품가게에 외상값을 갚은 것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리고 순환의 마지막에는 빵집에게 외상값을 받아서 여행객에게 환불을 해주죠. 결과적으로는 빵집에게 외상값을 받아서 식품가게에 외상값을 갚은 셈입니다. 이러한 호텔의 결정은 꼭 손해일까요. 침대를 구입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헛된 투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동네 가게에 진 외상을 값는 것은 필요할 뿐 아니라 안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 사이에 식품가게는 통닭을 얻고, 통닭가게는 외상을 값고, 신발가게는 빵을 얻고, 빵집은 외상을 값았다는 등의 편익까지 고려한다면, 실제로 동네 사람들이 보다 행복해졌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호텔경제학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이런 최근의 차이를 고려하고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호텔경제학은 비유입니다. 침체된 경제에 자금이 투입된다고 사람들이 꼭 필요한 소비만 하리라는 보장은 없고, 오랜만에 가처분소득이 생겼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 금액을 전부 소비에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순환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필요한 재화가 교환되며, 이를 통해 공동체의 편익이 증진될 수 있다는 점은 거짓이 아닙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를 두고 정교하지 못하다고 비판하거나,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이 조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 ‘호텔만 손해’ ]라는 경구를 주문처럼 외는 사람들은 그런 수고보다는 조롱이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에 별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자꾸만 호텔경제학을 접할 때면 어쨌든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참 많다는 것은 느낍니다. 이건 어쩌면 조금 서글픈 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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