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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8/16 11:26:23
Name   kaestro
Link #1   https://kaestro.github.io/%EC%84%9C%ED%8F%89/2025/08/16/%ED%8F%AD%EB%A0%A5%EA%B3%BC-%EA%B5%B4%EB%B3%B5%EC%9D%B4-%EC%95%84%EB%8B%8C-%EC%86%8C%ED%86%B5%EA%B3%BC-%EC%88%98%EC%9A%A9%EC%9C%BC%EB%A1%9C-%EB%
Subject   『루리드래곤』- 굴복이 아닌 이해로 다름을 인정받는다는 것

작품 『루리드래곤』에 대한 스포일러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으시기 전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서문

사람이 모이면 그에 맞춰 지수적으로 관계가 생겨나고, 이에 따라 더 폭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사건 그리고 이 중에 가장 격렬한 것들이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등은 인간 관계에서 피해야하는, 안 좋은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정작 싸운 뒤에 친해진다는 말도 있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격고 나서야 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를 맺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고 저는 살면서 경험해 왔습니다.

갈등이 생겨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 것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다름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종종 작용합니다.『루리드래곤』은 한 고등학생 소녀가 자신이 사실은 용의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알려지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는데 그 중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갈등의 소재와 해결 과정을 다루는 방식이 인상깊었습니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은 폭력적인 수단을 포함할 수도, 공권력 같은 더 높은 무언가의 압력을 통할수도,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는 대화를 통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최근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많은 컨텐츠들이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려한다는 인상을 받아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아주 강한 힘을 얻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찍어 누르는 것일 수도 있고, 갈등 자체가 생기지 않는 갈등의 무균실에 가거나,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루리드래곤』은 그 중 어느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하지 않고,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나가면서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독특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품 소개

작품의 내용 자체는 요약해서 설명하면 『루리드래곤』은 여태까지 봐왔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한 평범한 소녀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있는데 자신의 머리에 뿔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머니에게 놀라 물어보니 ‘그야 네 아빠는 용이니까’라며 담담하게 말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아오키 루리’입니다. 어머니는 그냥 평소처럼 학교에 가라 하고 루리는 그렇게 학교를 가게 됩니다.

이제 막 용으로써의 힘이 깨어나기 시작한 루리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들이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이를 제어하지도 못합니다. 실수로 재채기를 하다가 앞 자리 친구의 뒷머리를 태워먹고 자신의 목도 화상을 입거나, 스스로의 몸에서 생성되는 독에 중독돼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특이하고 다른 존재는 당연히 학교의 관심사가 됩니다.

루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제어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특이한 일도 하지만, 재밌는 것은 루리가 학교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일들은 정작 다른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쩌다보니 친구와 친해지기도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학생도 있고, 그 학생과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합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그녀가 용의 혼혈이기 때문에 생기는 특수성이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용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사춘기

사람은 2차 성징을 겪으면서 여러모로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됩니다. 체모가 자라거나, 목소리가 굵어지고, 성격이 변화하며 곤충들이 겪는 일종의 변태와 같은 과정을 약하게 겪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루리드래곤』에서 묘사하는 용이 된 루리의 모습은 어찌보면 다른 사람보다 많이 독특한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사춘기를 경험하는 아이를 표현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사춘기를 겪을 때에 사람들이 하게 되는 고민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겠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고 느껴졌던 일들이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마도 2차 성징이 꽤나 빨리 찾아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겨드랑이에 자라나는 털들이 부끄러워 이것들을 몰래 커터 칼로 깎거나 하나하나 뽑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비유적인 묘사가 루리가 가지고 있는 용의 능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의 변화들이 특수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실제로 루리의 경우에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특수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루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이 원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범하게 학창 생활을 즐기는 것입니다.

용이지만, 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겪는 갈등

물론 이 작품은 용이 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용만이 경험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에 대해 다룹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인상깊다고 느끼는 지점들은 그녀가 ‘평범한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겪는 에피소드들입니다.

용이 돼서 새로 친해진 친구의 경우에는 그녀가 용이 됐기 때문이 아니라, 용이 된 이후에 학교를 일주일 간 결석하면서 뒤쳐진 진도에 대해 공부를 도움받는 과정에서 친해졌습니다. 동급생과 관계가 불편했던 이유도 그녀가 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거리를 두고 판단하면서 조심하는 평소의 행동, 한 학기가 지나도록 옆 사람의 이름도 외우지 못하는 무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에서 생겨나는 갈등들을 헤쳐나가는 데에서 그녀가 가진 용의 힘을 통해 강제적으로 해결되는 일들은 없습니다. 그저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은 어머니와 선생님 같은 어른의 도움,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 막무가내다 싶을 정도의 솔직한 부딪힘, 그리고 일종의 폭력입니다.

자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과격한 수단도 필요하다

사람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과 다른 것을 일반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다른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고 방식을 통해서는 예측하기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 혹은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마주하는 경험들은 상대적으로 피곤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다름의 화신인 루리와의 관계는 그렇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때로는 기피의 대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녀를 위험한 것 아니냐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하고, 카마타라는 동급생은 대놓고 앞에서 거리를 둬 달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힘든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루리는 과격하고, 어찌보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가진 용으로써, 그리고 위험한의 상징으로써 작용하는 뿔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부러뜨리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심지어 루리는 위험하니까 거리를 둬 달라고 말한 당사자인 카마타가 직접 그 뿔을 부러뜨리는 작업을 수행하게 하고 그녀에게 ‘나도 조심했으면 좋겠으니까 걸리는게 있으면 말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욕하는 건 조금 곤란하니까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으니까. 아니면 좁은 원에서 다른 사람 욕이나 하는 중학생 같은 관계를 다지는 게 좋아?’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영화와 같은 영상 매체에서, 그리고 앞에서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게도 스스로도 똑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루리의 뿔이 위험하니까 거리를 두라고 말한 학생의 앞에서 직접 뿔을 부러뜨리는 쇼맨십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 루리는 비록 그 카마타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뿔을 부러뜨리는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과격하고도 폭력을 행사합니다. 분명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것은 루리이지만 자신이 뱉었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준 고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체험할 수 있게된 카마타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인 사이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만 『루리드래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루리가 먼저 동급생에게 다가가 지난 번의 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카마타는 본인 역시도 전에 뒤에서 이런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상처 입은 적이 있고, 까칠하게 굴고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미안하다며 사과합니다. 동시에 정체를 알게 되면 무섭지 않을 것 같다합니다. 그러면서도 다 알게 되면 징그러울 것 같기도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루리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그녀의 용으로써의 특징들에 대해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화해한 그녀들은 운동회에서 단체로 뿔이 달린 머리띠를 착용하고 활동하면서 서로에게 ‘징그러워, 기분나빠!’라고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됩니다.


마무리 및 감상

최근에 세태가 그런 것인지, 제가 나이를 이전보다는 먹어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 간의 관계에서 점점 더 갈등 자체가 없기를 바라는 것들만이 남아가는 무균실의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고 느끼고 제 주변에서도 그것을 지향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스템적으로 갈등이 생길만한 주제 자체에 대한 대화를 금지하기도 하고, 이야기 꺼내는 것 자체를 서로 두려워하고 해서는 안되는 분위기 자체가 조성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동시에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에 이를 그냥 덮어버리거나 가능한 단순하고 강압적이기도 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해결책이 있기를 원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결국 복잡하고도 힘든 해결책이 필요로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명 편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불편한 과정들이 수반됩니다.

『루리드래곤』은 굉장히 독특하고 튀는 사람 혹은 존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그 과정을 과도하게 단순하게 치환해버리지 않고 발생하는 과정들을 섬세하게 다루어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최근에 제가 결핍되고 있다고 느껴왔던 깊은 인간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적으로 따분하고 지루한 이야기들만 줄줄 늘어놨습니다만 그냥 단순하게 루리와 주변의 친구들도 굉장히 귀여워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읽어보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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