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1/30 13:34:22
Name   王天君
Subject   [조각글 6주차] 오다리
유연한 것이었다 본래는.
피가 돌고 불끈거렸다.
물살이 무거우면 그저 넘실거리며
부유했다. 흐느적거리며 꼼지락대다가
쏜살같이 나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예민한 촉들이 호시탐탐 수색을 하고
금새 공격태세로 팽팽해졌다.
가느다란 끄트머리는 감지를 멈추고
걸리는 무언가를 옭아매었다.
상관없었다. 먹이든 적이든 일단 휘감으면
버둥거리다가 조용해졌다. 놓치는 법을 몰랐다.
자유자재로 오무리고 뻗으니
이만큼 요긴한 것이 또 있을까.
꿈틀거릴 때마다 자랑스러웠을 터.
살덩이 속 새하얀 막대로 몸을 가누는 이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재주.

세상을 누비며 뽐내던 이가
조용히 전시되어있다.
핏기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피부로
음산하게 묻는다. 내 살았던 적이나 있었소 -
문이 열릴 때마다 종소리가 법석을 떠는데
오냐 가냐 손짓 한번이 없다.
뼈마디 하나 없이도 딱딱하게 굳어서
오른쪽 다리는 구부러진 채로
나머지 다리는 곧게 뻗은 채로
숨도 안쉬고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
말라삐틀어진 살덩이들은 안전하게 모셔놓았다.
봉지 속에서는 헤엄칠 필요가 없지.
옆에 걸린 동료들도 같은 입장일 것이다.
갈갈이 찢겨 나눠진 몸뚱이라 대답이 어렵겠지만.

새파랗게 쏟아지던 것들이
여기서는 새하얗다.
이제 바다와 인연을 끊고
빛이란 것을 원없이 쬐고 있으니
새로이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뿌리를 닮은 다리가 있으니
쑥쑥 자라면 될 일 아닌가.
이파리를 달고 나오는 것들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어차피 매한가지
다만 허공에 매달린 채로는 곤란하다.
흙 속의 양분을 들이켜야하니
새로운 터전으로 붙박혀야 할 것이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어딘가의 품 안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운명.
이렇게 바깥에 나와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누군가의 간택을 기다려야 한다.
이 부스럭거리는 관 속에서 꺼내주기를.

커다란 손에 집혀 이동하기 시작한다.
삑 - 소리가 나자 북 - 하며 결박이 풀렸다.
바깥 공기를 맛보던 찰나
쾅 - 소리와 함께 시커먼 네모에 갇힌다.
웽 - 하며 샛노란 빛이 쏟아지고
죽은 줄 알았던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타들어가는 아픔에 다리가 말리고
그나마 간직해둔 기름이 나와 윤기가 흘렀다.
온 몸으로 내지른 단말마.
덥썩 깨무는 이빨에 반응도 못하고
찌직 - 하며 살덩이를 고스란히 넘긴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650 일상/생각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떠올리는 잡상 26 Raute 15/11/28 7142 0
    1651 기타오늘 커뮤니티 베스트 & 실시간 검색어 요약 정리(28일) 5 또로 15/11/28 5845 9
    1652 정치들여다보자 - ISIS (3) 8 눈부심 15/11/29 6113 2
    1653 일상/생각기인 큰아버지 15 까페레인 15/11/29 5064 1
    1654 일상/생각안녕하새오. 문이애오. 7 얼그레이 15/11/29 6570 0
    1655 정치포로의 증언 : ISIS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9 눈부심 15/11/29 7382 0
    1656 방송/연예아델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12 Leeka 15/11/29 6542 0
    1657 창작[6주차 조각글] 미친년 1 nickyo 15/11/29 5429 2
    1658 창작[조각글 6주차] 편의점 알바와 산호를 둘러싼 오해에 대한 보고서 中 6 얼그레이 15/11/29 6335 0
    1659 창작[조각글 6주차] 부고 2 선비 15/11/29 5903 0
    1660 기타오늘 커뮤니티 베스트 & 실시간 검색어 요약 정리(29일) 14 또로 15/11/29 7010 12
    1661 일상/생각카톡이 렉이 걸렸네요. 22 얼그레이 15/11/30 6574 0
    1662 창작[조각글 6주차] 흙수저 7 마스터충달 15/11/30 6003 0
    1663 정치MMORPG 현실온라인 1 10 고양이카페 15/11/30 5721 0
    1664 방송/연예드라마 송곳이 완결되었습니다 12 nickyo 15/11/30 6581 1
    1665 창작[조각글 6주차] 오다리 2 王天君 15/11/30 5258 2
    1666 방송/연예마리텔 출연자 평가질 19 헬리제의우울 15/11/30 8432 0
    1667 의료/건강이 연구는 영국에서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25 Beer Inside 15/11/30 8639 0
    1668 방송/연예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 수지킴 편 3 삼공파일 15/11/30 13366 0
    1669 역사러시아에서 푸틴의 인기에 대하여... 9 조홍 15/11/30 11271 6
    1670 정치[책 소개] 사민주의 & 북유럽식 복지 뽕맞은 좌빨이 되어버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txt 3 DarkSide 15/11/30 8544 1
    1671 꿀팁/강좌남규한의 사진 레시피 - Hot VS Cool 6 F.Nietzsche 15/11/30 6077 3
    1672 기타오늘 커뮤니티 베스트 & 실시간 검색어 요약 정리(30일) 9 또로 15/11/30 7201 10
    1673 정치영유아 영어교육이야기 28 기아트윈스 15/12/01 5742 3
    1674 기타로마의 몰락, 파스타의 쇠퇴. 6 마르코폴로 15/12/01 6390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