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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2/31 21:57:17 |
Name | 깊은잠 |
Subject | 위안부 협상- 말 그대로 '협상'을 바라본 평가 |
"개인의 증언은 검증할 방법이 없다. 그 여자들이 지금 백만장자가 되어있으면 그런 일은 부끄러워 입 밖에 낼 리가 없다. 여전히 가난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돈을 받으면 좋다는 생각에서 몸 대신 명예를 대가로 돈을 벌려 하고 있을 뿐이다. 뻔한 일인데, 그런 천박한 본성에 휘둘려 교과서에 기술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전 도쿄 도지사가 《「父」なくして国立たず》, (光文社, 1997. 9.) 라는 책에 쓴 위안부 관련 내용입니다. 정치적 발언이란 종종 과장이 따라붙게 마련입니다만, 그래도 발언보다 무거운 것이 저술인 만큼 자기 생각을 보다 곧이 담았다 할 수 있겠지요. 한일관계에서 흔히 '망언'이라 부르는 발언 가운데 일본의 극우파, 혹은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고 싶어하는지를 이보다 가장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컨대 그들이 원하는 방식은 [돈]입니다. 돈으로 해결함으로써 [상대는 돈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인식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군에 매춘이 따라붙는다는 것은 역사의 원리 같은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잔뜩 갔다. 예부터 돈을 벌기 위한 가장 값싸고 손쉬운 수단이었다." (이시하라 신타로, 아사히朝日 디지털, 2013. 5. 14.)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거리고 있다. 오사카에서 만나는 한국인에게 (너는) 위안부라고 말해도 된다."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중의원 의원,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2013. 5. 18) "대개 현지 업자들이 한몫 거들어 중국인, 한국인 등을 모았다. 문제 발언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의사로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 있다."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 중의원 의원, 전 문부성 장관, 아사히신문朝日新聞 1997. 2. 6)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업자들이 조직적으로 모은 듯하다." (나카오 에이이치中尾栄一 중의원 의원, 전 건설부 장관, 아사히신문, 1997. 2. 6.) "위안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영국군 등에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위안부는 당시 공창이며, 지금의 관점에서 여성 멸시라든지 한국인 차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가노 시게토(永野茂門) 법무대신, 산요신문山陽新聞, 1994. 5. 4.) 이상의 발언들을 관통하는 주장은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다]입니다. 당시에도 돈을 위해 몸을 팔았고, 매춘부인 까닭에 지금에서도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위안부에 대하여 남기고픈 역사적 평가이자 인식입니다. 그 인식의 근거는 문제를 실제 돈으로 해결할 때 완성됩니다. 물론 그 돈은 결코 '국가 차원의 배상'이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 차원의 배상이 되면 당시 일본제국의 강제 연행 책임을 뒤집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이는 위안부=매춘부 등식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최선은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는 것]이며, 차선은 [민간의 돈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원하는 바가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피해자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 조치 후 통보' 형태로 말입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오늘 새누리당 의총에서 이번 합의가 [최선]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 입장에서 돈이 급한 것일까요. 아닐 겁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입니다. 사과와 돈이 필요했으면 '고노 담화' 발표 이후 일본 정부가 소위 ‘여성에 대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1995~2007) 사업을 통해 민간에서 돈을 모금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했을 때 동의하고 받았으면 됩니다. 그게 잘못된 방식이기 때문에 당시에 거부하고 지금까지 미뤄왔던 것입니다. 할머니들,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최선의 사건 해결은 [일본 정부의 불가역적인 책임 인정과 그에 따른 정당한 역사 기술]입니다. 배상금은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결과물이지 결코 핵심은 아니지요. 물론 이는 소망에 가까운 매우 이상적인 기대입니다. 계속 우파 내셔널리스트들이 일본의 정권을 잡고 있고, 우리에게 상대 국가의 내정에 관여할 만큼의 힘이 없는 외교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천행으로 구 사회당계와 같은 좌파 내셔널리스트(*현재 일본의 정가에는 좌우 막론 '내셔널리스트'가 아닌 정당은 거의 고사했다는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교수의 평가를 빌렸습니다)가 일본의 정권을 잡는 날이 어느 미래에 온다면 그 시기에야 비로소 이에 가까운 협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과 정부가 강조하고 싶은 최선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건 아마 '우익이 정권을 잡은 지금(=꽤나 어려운 조건에서)' '아베 총리의 사과를 받고(=가장 적극적인 인간이 머리 숙였고)' '일본의 돈으로(=한일협정때문에 못 받을 가능성이 높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할 수 있는 바를 다했다는 의미의 최선이겠지요. 이건 일의 근본적 목표 달성과 무관하게 '태스크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마무리짓는다'라는 전형적인 관료적 사고방식의 최선입니다. 그리고 그 '태스크'는 치적과 부친의 오점 해소가 필요한 대통령의 지시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봅니다. 국내정치적 목적이 강한 태스크라고 말입니다. 그 밖에 다른 동기가 있을까요. 또한 그 최선이 한일관계에 대단한 실리를 가져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물론 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국은 정부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외교행태가 어찌되든, 꽤나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준동맹적 관계에 필요한 협력을 이어왔습니다. 이건 앞으로도 '인식'과는 별개로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불협화음은 매스컴 레벨에서 시끄러웠을 뿐 결과적으로는 국내 선전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적대적 동반자’를 의심케 하는 수준에 머물렀죠. 한일이 협력하는 듯한 제스처든 미국 달래기든 그 수단에 꼭 '위안부'가 낄 필요는 없었습니다. 총리의 사과는 지금까지 그랬듯 뒤집고 부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합의는 이행이 시작되면 대체로 불가역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이 문제는 '모 아니면 도'인 까닭에, 최선의 협상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협상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입니다. 또한 뜻대로 안 될 것 같으면 있는 판도 뒤집을 수 있는 게 외교지요. 하지만 하면 안 되는 협상을 저질렀습니다. 결과는 핵심 목표 실패와 바로잡을 여지의 상실입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은 할 일 다 했다고 발을 빼고, 일본 극우단체는 '매춘부'소리를 이어나가는 그림이 저의 막연한 정치불신에서 오는 우려이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오늘자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724317.html 기사 말미가 암시하듯 파행으로 치닫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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