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3/08 23:26:38
Name   얼그레이
Subject   [17주차] 치킨
[조각글 17주차 주제]

닭!

* 주제 선정자의 말
- 닭, 치킨 뭐든 좋으니 '닭'에 대한 수필이나 일기를 써주세요.  (수필과 일기만 됩니다,)
- 최대한 의식의 흐름으로 써주세요. (의식의 전개 과정이 보고싶습니다.)
-  수필 형식이면 닭에 대한 연구도 좋습니다. 닭 해부도 좋습니다. 닭이란게 토종닭 장닭 수탉 등이 있더라 그런데 뭐 어쩌고저쩌고 이러셔도 되구요..
그냥 마음가는대로 닭 일기 써오세요!


합평 받고 싶은 부분
평소에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라,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그래서 퇴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탈자가 많을 수 있습니다 ㅜ_ㅜ
지적해주신다면 바로 수정하겠지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치킨에 대한 소소한 썰도 좋습니다.
조각글 부담없이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본문
1. 
최근에는 일기를 잘 쓰지 않게 됐다.
거의 1~2주 정도 쓰질 않았나.
일기를 일부러 쓰려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잘 써지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2.
이번주 조각글 주제는 '치킨'이었다.
일기나 수필 형식으로 글을 쓰라는 조건을 받았다.
치킨하면 떠오르는 주제는 많았는데 이상하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감인 오늘 나는 치킨을 시켜 소주와 함께 먹었다.
캬, 핑계 대박이지 않나.
소재가 치킨이니까 소재를 더 잘 알아야 쓸 수 있지 않냐고.
치킨빨인지 술빨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글이 술술 써지는건 사실이다.

3.
치킨은 마치 술과 같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좋듯,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도 핑계가 좋다.
날이 좋으면 좋은대로, 기쁜일이 있으면 기쁜 일이 있는 대로, 힘든 일이 있으면 힘든 일이 있는대로..
그래서 치맥이 최고인거다.


4.
오늘 먹었던 치킨은 호치킨이었다.
전화로 미리 시키고 퇴근길에 결재하려고 했는데, 아뿔싸. 회사에 지갑을 두고 온거다.
결국 엄마를 소환했고, 정말 의.도.하.지. 않.았.지.만. 치킨을 얻어먹게 되었다.
이왕 사는김에 맥주캔도 사달라했지만 엄마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대신에 집에 소주가 있다고 귀뜸은 해주셨다.

5. 
나는 어렸을때부터 치킨을 워낙에 좋아했다.
예를들자면, 내 모든 척도는 치킨이었다.
학원비도 치킨으로 계산했다. '이 돈이면 한달에 매일 치킨을 1마리씩 먹을 수 있는 돈인데' 이런 식이었다.

어렸을 때는 가끔 이유없는 몸살이 오곤 했는데, 치킨을 먹으면 낫는 병이었다.
정말 아픈 날은 치킨 먹을래? 하고 물어도 안 먹는다고 대답하곤 했다.
아픈 정도도 치킨으로 산정되었다.

나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니 술집을 다양하게 다니진 않았다.
주로 치맥 혹은 치쏘를 즐겼으므로.
회사에 들어가 첫 회식때 고깃집과 찌개집에서 앉아있던 의자 뚜껑이 열리는게 낯설다는걸 느끼고서야
나의 안주 편식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6.
어린날, 우리집은 '아름통닭'의 단골이었다. 현재는 '라피노 치킨'으로 이름을 변경했지만.
치킨집 부부의 딸 이름이 아름이었다. (아름이 언니의 오빠도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후라이드와 양념만 했던 집이었는데, 02~03년도 쯤인가. '간장치킨'이 유행하기도 전에 '야채치킨'이 신메뉴로 등장했다.


장담컨데, 간장치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야채치킨'을 먹는다면 아마 기절할 것이다.
내 인생치킨 중 언제나 탑이다.
이 집은 야채치킨도 맛있었지만 양념치킨은 더욱 발군이다.

'아름통닭'에 내가 얼마나 어렸을적부터 단골이었느냐면,
내 이름을 대고 양념반 후라이드반을 시키면 우리집에 치킨이 배달되었다.
심지어 00이네 외갓집으로 배달 부탁드리면 주소를 알려드리지 않고도 배달이 되었다.

우리집은 어렸을 땐 한달에 한번꼴로 치킨을 먹었나 했다.
아빠 월급날이었는데, 그날은 조기와 함께 아름통닭 치킨을 먹었다.
어렸을때라, 엄마가 양념치킨을 찢어 밥에 올려주곤 하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 동생. 여섯 가족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하얀 쌀밥에 빨간 양념 치킨을 얹어 먹곤 했었다.
(이 기억때문인지 치밥 무시하는 사람들 보면 치가 떨린다. 얼마나 맛있는데!)

7.
닭을 너무 좋아해서일까, 나는 초등학교 때 병아리를 사온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개에 물려 동물을 질색하는 엄마도 이상하게 내가 병아리를 사오면 그래도 모이도 주곤 하셨다.
열댓마리는 산 것 같은데, 닭까지 키운 병아리는 두마리었다.
나는 늘 암탉을 원했는데, 늘 그렇듯 병아리는 수컷이었다.

어쨌거나 살아남은 병아리들은 너무 커서 집안에서는 키울수가 없었다.
옛날에 살던 집은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그 마당에서 닭 두마리를 서로 격리해서 키웠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성격이 온순했고, 다른 한 마리는 성격이 괴팍했다.
엄마가 온순한 닭에게 모이(그냥 남은 반찬이나, 옥수수 다 먹고 남은 대였다)를 주고 있으면 성질 사나운 닭이 엄마의 머리를 쪼곤 했었다. 엄마는 늘 그 성격 나쁜 닭을 욕하곤 했었고, 나는 그 두마리가 죽을 날까지 괜히 나쁜 성격을 닮을까 성격 나쁜 닭을 외면하곤 했었다.

8.
외면의 방식은 의외로 옹졸하고도 순진했다.
닭 두마리가 죽은 날은 할아버지 생신 전날이었다.
손님들을 잔뜩 치르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당신의 생신 전날에 우리집 마당에서 닭 두마리의 목을 댕겅, 치셨다.
삐약삐약 하던 것들이 꼬꼬꼬꼬 꼬옥!! 하더니 검붉은 선혈을 흘리며 죽고 말았다.
창가에 붙어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닭을 잡는 모습을 보던 나와 내 동생은 벌벌 떨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다음날 엄마가 만들어 온 백숙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격 나쁜 닭을 먹으면 성격이 나빠질까봐 성격나쁜 닭으로 만든 백숙은 안 먹은 것이 전부였다.
닭이 죽는 모습을 봤다고 닭을 못먹는 트라우마도 생기지 않았고, 외려 닭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만 것이다.
차라리 그 때 트라우마라도 생겼다면 내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9. 
나는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인데, 어렸을 대도 그렇고, 치킨에 대해서는 과연 더 그랬나보다.
어느날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 부모님을 겨우겨우 졸라 치킨을 시켰던 어린날.
아마 초등학교 2~3학년쯤 되지 않았나 싶다. (99~00년도)
치킨이 그날 너무 먹고싶었는지, 나는 배달을 시키자마자 대문 밖에 나가 치킨이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다.
어른 걸음으로 우리집에서 아름통닭까지는 5~7분 정도 걸리는 거리었다.
치킨이 튀겨지고 집에 배달되기까지는 최소 20~4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나는 치킨을 집에 배달해달라고 요청하자마자 대문밖에서 치킨이 언제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다.
어렸을 때라 시간 개념이 없던 터라, 치킨집까지 이만큼 갔다가 돌아오고, 저만큼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돌아오는 이유는, 치킨 오는걸 너무 노골적으로 기다리느라 부끄러워서였다.
결국엔 10~15분쯤 지났을까, 나는 용기를 내서 치킨집에 우리집에 치킨 언제 도착하녀고 여쭤봤다.
그 때 아름닭집 아줌마는 거의 다 완성되서 곧 배달간다고 말씀주셨다.
짜장면집의 '출발했어요~'와 같은 거짓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런 판단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집까지 뛰어갔다.
나중에 치킨을 배달해주는 오토바이가 나보다 먼저 도착할까봐.
얼굴은 시뻘게져서 땀을 뻘뻘흘리며 숨을 골랐지만 치킨은 도착하지 않았었다.
그때의 낙심이란.

10.
기회가 닿는다면, 여러분들께서는 '라피노 치킨'을 꼭 먹어보셨으면 좋겠다.
정말 우연히도, 그 '라피노 치킨'을 드셨던 분이 여기에 계신다면 무척 반갑겠지만,
단골집이 노출되는 것처럼 다소 걱정되고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건 어쩔 수 없을거다.

주제에 맞게 의식의 흐름에따라 작성했는데, 어떻게 읽힐지는 모르겠다.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1
  • 재밌었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355 창작[17주차] 치킨 11 얼그레이 16/03/08 4689 1
2365 창작[18주차 조각글 주제] '대화로만 이어지는 글' 1 얼그레이 16/03/09 3513 0
5488 음악[19금] 필 받아서 써보는 힙합/트랩/레게/댄스홀/edm 플레이리스트 10 Paft Dunk 17/04/21 5776 3
2421 창작[19주차 조각글 주제] '무생물의 사랑' 3 얼그레이 16/03/17 3941 0
2430 창작[19주차] 무엇이 우리의 밤을 가르게 될까. 1 틸트 16/03/19 3623 1
2460 창작[19주차] 종이학 2 제주감귤 16/03/24 3799 0
15050 게임[1부 : 황제를 도발하다] 님 임요환 긁어봄?? ㅋㅋ 6 Groot 24/11/18 460 0
10112 오프모임[1월 17일] 종로 느린마을 양조장(인원 모집 종료) 30 호라타래 19/12/24 5014 3
10289 오프모임[2/16]툴루즈 로트렉 전시회 - 저녁식사 벙 49 무더니 20/02/14 5003 9
1415 도서/문학[2015년 노벨문학상]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여성은 전쟁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14 다람쥐 15/11/01 10417 9
9880 기타[2019아시아미래포럼] 제레미 리프킨 "칼날처럼 짧은 시간 10년, 인류문명 전환해야" 2 다군 19/10/23 4830 2
2469 창작[20주차 주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 1 얼그레이 16/03/25 3502 0
2515 창작[20주차] 처음 함께 만났던 언젠가의 어느날처럼. 1 틸트 16/04/01 3531 2
2500 창작[21주차 주제 공지] 일기쓰기 1 얼그레이 16/03/30 3312 0
2554 창작[21주차] 4월 1일~ 4월 5일 일기 14 얼그레이 16/04/05 3625 1
2551 창작[21주차] 想念의 片鱗 4 레이드 16/04/05 3001 0
2546 창작[21주차] 생각들 2 제주감귤 16/04/05 3391 0
2579 창작[21주차] 일기 1 까페레인 16/04/08 3053 0
2572 창작[22주차 주제] '봄날 풍경'으로 동화나 동시 짓기 2 얼그레이 16/04/07 3342 0
2639 창작[22주차] 빵곰 삼촌, 봄이 뭐에요? 7 얼그레이 16/04/19 3965 5
2655 창작[23주차] 인류 멸망 시나리오 7 얼그레이 16/04/20 3187 0
2708 창작[23주차] 인류의 황혼 2 김보노 16/04/28 3291 2
2704 창작[23주차]- 복사본 2 제주감귤 16/04/28 3798 2
2744 창작[24주차 조각글]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3 묘해 16/05/04 3303 1
2720 창작[24주차] 구차한 사과 2 얼그레이 16/05/01 3910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