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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4/21 15:31:28 |
Name | 에밀리 |
Subject | 예비군 5년차 후기.ilgi |
그제 향방기본훈련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5년째라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내년까지만 하면 이제 실탄 사격을 해볼 일도 없겠어요. 어차피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아시겠지만, 5년차부터는 1~4년차와는 다르게 향방작계훈련 6시간짜리 2번에 향방기본훈련 8시간으로 총 20시간을 받습니다. 향방작계는 근처 읍사무소 등에 들러서 동대장 아저씨랑 산책하고 밥먹고 오면 되는 그나마 편한 출석체크인데 반해 향방기본은 그래도 총도 쏘고, 뛰어다니기도 하는 귀찮은 훈련이죠. 거기다 훈련받는 부대의 위치도 시내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아 이동이 귀찮습니다. 직장인들은 예비군 가면 회사도 빠지고 좋다고 하던데 저와 같은 백수는 그저...ㅠㅠ 아침에 나가서 하루에 몇 대 없는 훈련장행 시내버스를 탑니다. 최근 저희 동네 버스 노선의 변경으로 어디서 타는지 몰라 걱정했는데 나가보니 비슷한 옷 입은 아저씨들이 많아요. 따라가면 간단! 부대 도착하니 30분쯤 시간이 남아서 심심할 때 읽기 위해 가져온 책을 꺼냅니다. 공부를 하기엔 무리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가져왔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죠. 몇 페이지 읽기 시작하는데 "야, 뭐하노?" 하면서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교도 같이 간 친구놈이네요.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이렇게 아는 놈들 만나기가 부지기수입니다. 책을 덮고 인사 대신 물어봅니다. "차 가져왔냐?" 차가 있고 없고는 꽤나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내를 벗어난 위치에 있고 버스도 몇 대 없어서요. ㅠㅠ 제가 차가 있다면 좋겠지만, 앞서 말했듯 전 가난한 백수라서요... 뇨롱... 얼마 전 취직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차가 없대요. 둘이서 또 다른 놈들 없나 하고 돌아봅니다. 10년 만에 만나는 중학교 동창들을 몇 찾았지만 다들 차가 없다네요. 이번엔 망한 듯. 이전에 동미참 훈련 받을 때는 차 있는 친구 덕에 출퇴근까지 아주 편하게 했는데 오늘은 버스 타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슬슬 잡담이나 떠들고 있는데 예비군 부대의 현역 병사들이 아저씨들을 모읍니다. 슬슬 시작할 건가 보네요. 모일 때는 앞줄에 서는 게 편합니다. 본능적으로 뒤쪽에 줄을 서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에 서서 먼저 검사받고 먼저 장구류 받고 먼저 출발하면 먼저 끝내고 먼저 갈 수 있어 좋아요. 벌써 귀찮아하기 시작하는 친구를 붙들고 앞쪽에 줄을 섭니다. 검사는 벨트나 고무링을 제대로 했는지를 확인하고 10명씩 조를 짜는 과정입니다. 벨트나 고무링을 하지 않으면 내쫓으니 전역할 때 그거 두 개 잘 챙겨 나오세요. 없으면 새로 사야 하거든요. 군인도 아닌데 새로 사다니, 억울하잖아요. 그리고 전투모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전역할 때 버려도 돼요. 이후 조별로 나가서 민증을 보여주고 확인 절차를 거치면서 휴대폰을 제출합니다. 훈련 도중에 폰을 사용하면 퇴소인데, 대놓고 막 쓰지만 않으면 그냥 봐주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는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제출을 안 하더군요. -.- 5년차라고 대충 하는 건가. 위에 말했던가요? 올해부터는 자율형 훈련을 도입해서 조를 짠 예비군들이 알아서 훈련을 위해 교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전처럼 괜히 줄 서서 움직일 필요도 없고 기다리는 시간도 대폭 줄어들며 일찍 끝내면 일찍 갈 수 있기 때문에 귀차니즘 그 자체인 예비군 아저씨들이 생각보다는 빨리 움직이게 되는 좋은 제도라고 하던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렇습니다. 빨리 끝내려고 혈안이 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무의욕 덩어리인 예비군들이 제법 움직이긴 하대요. 물론 저야 꽤 성실한 타입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조원들이지만 일단 사격부터 하고 치우죠라고 말한 뒤 사격장으로 갑니다. 사격은 이것저것 절차들이 복잡해서 다른 조 없을 때 먼저 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사격은 5발을 표적지에 쏴 평균 3발 이상, 그러니까 조원들 총 30발 이상을 맞히는 걸 합격 기준으로 삼습니다. 물론 영점도 잡혀 있지 않은 총으로 쏴봐야 잘 쏘는 건 불가능하고, 교관들이 갖고 있는 일정한 크기의 원 안에 몇 발을 집어넣느냐로 평가하죠. 작년에 서울의 예비군 사격장에서 사고가 있었죠? 총만 묶어만 놔도 발생할 수 없는 사고인데 얼마나 대충 해왔으면 -.-... 물론 저희 동네에서도 이제껏 대충 쏴왔습니다. 그제 보니 잘 묶어놨더군요. 아예 돌릴 수가 없어서 불편할 정도였어요. 예비군 올 때만 쏴보는 M-16인데 대충 쏴봤고 4발은 맞혔네요. 한 발은 좀 멀리 빠져나간 게 호흡 불량이었던 것 같아요. 뒤의 풀숲에 빵빵 쏘던 친구놈은 0발입니다. 죽여버릴까... 총 21발로 불합격했습니다. 불합격한 조는 PRI 교정으로 가서 그 지겨운 바둑돌 올리기를 하는데 당연히(?) 제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대충 하는 척 하다 보면 거기 있는 현역병이 보내줍니다. 이후 총기 분해 및 결합을 공대생답게 간단히 하고, 목진지 점령 훈련을 하러 빨리 이동합니다. 크레모아와 신호줄을 설치하고 적 접근시를 가정해 대처법을 훈련하는 건데 대충 하다가 퇴짜를 한 번 맞았습니다. 가르쳐주지도 않고 뭘 어쩌라는 건지 싶었네요. 예비군들은 1년 지나면 작년에 배운 거 다 잊습니다. 이후 급하게 발을 움직여 수색 정찰 훈련 사전 연습 교정으로 이동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오전 안에 다 끝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다른 조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가보면 몇 조가 벌써 기다리고 있네요. 망했다 싶었지만 또 이럴 때는 마음들이 잘 맞아서 뚝딱뚝딱 잘 끝냈습니다. 이제 밥 먹고 와야겠다 생각하는데, 위쪽 수색 정찰 훈련장에서 한 조만 더 올려보내라네요? 저게 밖에서 하는 건 마지막인데 다행이에요. 오후에 또 올라올 필요가 사라졌습니다. 산을 좀 올라야 해서 체력이 약한 예비군들은 힘들어 합니다. ㅠㅠ 수색 및 정찰 훈련은 경계를 하며 전진하는 과정에서 수신호로 신호를 주고 받고 위험물이나 적 발견시 대처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주먹을 들면 서고 이상한 물건을 찾으면 손으로 원을 그리는 등등의 신호를 배우고 진행하죠. 원래는 제법 멀리까지 이동시키는데 이미 점심 시간이라 교관도 점심을 먹어야 하기에 또 대충(?) 끝냅니다. 아, 이번 예비군은 꿀이에요. 정신교육 빼고는 오전에 다 끝났네요. 이상하게 이번에는 각개전투가 교육 과정에 빠져 있더군요. 사실 각개전투가 제일 귀찮은데... 작년까지는 점심밥을 먹고 싶은 사람만 먹었습니다.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은 대신 돈을 6000원 받고 PX에서 뭔가 사먹곤 했죠. 예비군 훈련 밥의 질이 낮은 건 유명하죠? 저도 그래서 돈으로 받아왔는데 이제부턴 그게 안 된대요. 이상한 도시락을 받아들고 먹습니다. 그나마 늦게 와서 다 식었어요. ㅠㅠ 밥을 대충 먹곤 친구와 PX로 갑니다. 예비군 훈련오면 딱 하나 좋은 게 PX거든요. 싼 물건은 정말 쌉니다. 가나 초콜릿이 500원이고 제가 쓰는 라네즈 옴므 스킨 로션이 각각 10000원이네요. 화장품 가게에 가면 30000원인데 -.-... 이건 무슨... 내년에 또 사야지. 제가 좋아하는 끌레도르 콘을 하나씩 사들고 그늘에서 또 이야기 타임을 갖습니다. 이렇게 떠드는 거나마 없으면 정말 심심하니 예비군 훈련 가시는 분들은 심심할 때 할 일을 챙겨가세요. 가서 지인 만나면 상관없겠죠. 정신 교육은 안보 강의라고 하는데, 서울에서 퇴역 장성쯤 되는 안보 강사 한 명이 내려와 군대에서도 지겹게 들은 내용을 반복하고 예비군들은 잠을 자고 그런 시간입니다. 레파토리도 똑같습니다. 서울에서 양산까지 내려오느라 힘들었다, 양산이 살기 좋은 도시라더니 괜찮더라, 거기 예비군들 벌써 자지 말라 등으로 시작하죠. 임진왜란부터 시작을 하네요. 저는 낮잠을 자는 타입이 아니라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듣다 보면 낭설을 인용해 역덕을 자극하기도 하더군요. 이후 뻔한 국가주의·전체주의로 넘어가다보면 스스로가 꽤나 좌파적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살짝 닭살이 돋습니다. 좀 신선한 내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고, 강사가 말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는데 매번 하는 똑같은 내용을 10년 전쯤에 만든 것 같은 낡은 ppt에 담아 어눌한 말투로 떠들고 있는 아저씨를 보면서 또 퇴역 군인들에게 돌아가는 눈 먼 세금을 생각해봅니다. 안보 강사들에게 주는 돈이야 방산 비리나 군납 비리에 비하면야 새발의 피겠지만 뭐 좋지는 않네요. 오후 2시쯤 이것까지 끝내니 저희 조는 더 이상 할 게 없습니다. 전체 예비군 아저씨들의 반 정도가 오전에 벌써 끝낸 거 같은데, 3시 30분까지는 보내주질 않는대요. ㅠㅠ... 교회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냅니다. 훈련 VTR 같은 걸 틀어주는데 음량이 몹시 커서 시끄럽네요. 잠을 자지 말라고 크게 트는 걸까요. 3시 반까지 기다리다 보니 마저 훈련을 끝낸 조들도 속속 들어옵니다. 오전에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어도 똑같이 갔을 것 같네요. 제가 바지런히 가자고 보챘던 걸 게으른 친구가 타박합니다. 긴 시간을 보낸 뒤의 3시 30분, 오전과 마찬가지로 퇴소 절차를 거치고 교통비 6000원을 받고, px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러 바리바리 먹을 걸 산 다음 집에 갑니다. 차 있는 친구를 끝내 구하지 못 해 택시를 불렀어요. 부대 위치가 깊어서 택시 기사들도 잘 오지 않는데 다행히 금방 도착하네요. 시내까지 나온 다음 친구와도 빠이빠이~ 지친 몸을 끌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탑니다. 머리 긴 아저씨가 전투복을 입고 버스를 타니 슬슬 학교를 마친 급식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네요. ㅠㅠ... 그래요, 전 근짱처럼 잘 생기지 않았어요. 근데 머리 모양은 근짱임ㅋ +머리 긴 남자는 정말 이질적인 존재인가봐요.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니 남자들도 다 쳐다보고 -.- 남자들은 그나마 나은데 여자들은 경악을 합니다. 흠칫 하며 저거 뭐야 라는 눈빛을 보내주셔요. 물론 전 그 정도를 견딜 뻔뻔함은 갖추고 있기에 그럴수록 더 독특하게 굽니다만... 퇴고가 귀찮네요. 그냥 일기니까 그건 봐주세요. ㅠ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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