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23 23:50:05
Name   王天君
Subject   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다 (중)
9-1. 글이 길어지네요. 저도 쓰면서 제가 이렇게 할 말이 많았다는 걸 알고 놀라고 있습니다.
이제 이를 두고 일어나는 갑론을박의 양상을 이야기해야겠네요.
저는 소위 "트페미"라고 누군가는 구분할지도 모르는 분들을 많이 팔로우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남역살인사건도, 그 사건을 두고 추모한다는 이야기도 그 분들의 트위터에서 정보를 접했지요.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1로 돌아갑니다.
저는 거기서 포스트잇과 꽃으로 추모가 이뤄진다는 정보만 접했습니다.
제가 아는 다른 트친들도 모두 추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요.
그 사건에 절망하고, 추모 현장에 가서 꽃 한송이라도 놓고 와야겠다고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9-2. 저는 해당 사건과 추모현장에 대한 글을 계속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추모를 누가 주최했는지, 그 추모가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제 타임라인은 비통하고 울분가득한 트윗들이 채우고 있었죠. 왜 죽었어야 했냐면서...
추모를 하자고 하고, 추모를 해야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어디서 추모를 기획했건 그게 뭐가 중요할까요.
그래서 다들 추모할 거라고, 추모했다고들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이트들에서 그 추모의 주최집단이 "워마드"라는 걸 밝힙니다.
그리고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워마드에서 주최를 했다면, 그들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지 않을까 하고요.
저는 그 추모가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 반응은 그런가부다....였죠. 좋은 일 한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다.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추모현장에서 그 어떤 정치적 의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9일 제가 갔을 때의 그곳은 그런 정치적 주장을 할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저는 밤 열한시쯤? 갔는데 어느새 꽃다발이 가득했고 이미 모든 면에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었습니다.
굉장히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렇게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거기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가득합니다. 통곡들이 일일히 벽에 붙어있습니다.
훌쩍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대부분 묵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뭘 하려고 해도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봤던 사진들과, 제가 들었던 이야기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기 온 사람들이 과연, 워마드가 주최했다는 걸 알고 갔을까요? 그걸 궁금해했을까요? 그걸 안다고 추모가 아닌 다른 추모를 했을까요?

9-3. 사람들은 계속 걱정했고, 점점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추모를 변질시킨다고요.
제가 갔을 때 추모가 변질된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가기 전에도, 가고 난 후에도 그랬습니다.
21일날 다시 한번 찾았을 때에도 저는 추모가 변했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뭘 어떻게 바꿀수나 있었을까요. (초를 두려고 했는데 초를 두는 자리가 없어져서 좀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꽃을 쌓아놓는게 전부인 자리에서 어떤 정치적 운동을 할 수 있을까요.
잠재적 살인마 취급...... 전 그런 메시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 트위터에서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남성집단에 대한 공격...그런 걸 전 못봤습니다. 많은 메시지가 대부분 "난 죽지 않았고, 당신은 살지 못해서 슬프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예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모에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 채, 슬픔을 품고 그저 포스트잇 한장을 붙이고 나가는 추모식에서
"다른 무언가"를 걸러내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 추모할 여유가 생기지 않겠죠.
이는 오히려, 추모가 중심이 아니라 추모만큼 중요한 또 다른 과제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도 합니다.
추모는 하지만 거기에 속지는 않겠다....왜 그런 각오를 하시는 걸까요. 저를 비롯해 거기 있던 그 누구도 슬퍼하느라 다른 걸 할 여력이 없었는데도요.
대체 어디서 그 구도를 찾으신 걸까요. 구도를 잡는다, 남여대결로 몰아간다, 라고들 이야기는 하는데 아무도 증거는 대지 않습니다.
그 유일하고도 강력한 증거는 바로 "메신져", 워마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혐"이라는 단어로 매우 명확하게 지칭됩니다.
추모를 하는데, 남혐도 한다 - 이렇게 말이죠.

9-4. 이 여론의 흐름을 보면서 저는 이게 세월호 추모현장을 둘러싼 흐름과 너무나도 닮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지 않아야 할 누군가가 죽었고 사람들은 이를 슬퍼합니다. 그 슬픔은 딱히 좌우를 가리지 않습니다. 남녀노소 다들 슬퍼했죠.
그러나 어딘가에서 추모를 할 꺼면 추모만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추모를 하는 데 왜 정치를 자꾸 하냐고 합니다.
추모를 해야되는데 선동질을 한다고 이를 걱정하고 나무랍니다.
주최측의 정체를 가지고 추모행사의 "순도"를 파악합니다.
어딘가에서는 추모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벌어진다고, 거기에는 배후세력이 있다고들 의심합니다.
저는 두 행사 모두 아무 생각없이 추모를 하고 왔습니다. 내년에는 두 사건 모두 추모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매듭이 지어졌으면 좋겠군요.
(이번 강남역 추모행사에서 제가 반가웠던 것은, 노랑팔찌를 차고 계신 분들이 제법 계셨기 때문입니다. 반가웠습니다)

10-1. 이게 세월호 추모와 닮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사건을 정의하는 바에 따라 추모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추모의 대국민적인 행보를 어떤 이들은 불편해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건 불행한 일이 맞지만, 그건 그냥 교통사고인데 왜 이렇게들 호들갑 떠냐고 했죠.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냥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고는 사고지만, 그 사고가 생기기까지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고 했죠. 그리고 그 이유들은 우리 사회의 익숙한 병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그렇게들 이해합니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저렇게 거대한 수렁을 만들어냈다고요.
어떤 사건들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정신이상, 악마성이 그 사건의 전부인 것 같지만
그 사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얽혀있는 사회적 면면이 있습니다.
끈적하고 찐득거리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갑자기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홀로 알을 깨고 나온 게 아닙니다.
악의 주체가 여태껏 봐왔고 학습하게 만들었던, 자양분을 제공한 "세상"이 있습니다.

10-2. 제가 한달 전쯤에 봤던 동영상입니다.



동영상 속의 그는 "여자"만 골라서 시비를 걸고 다닙니다.
제가 이 동영상을 페미니스트들의 트위터나, 메갈리아 같은 사이트에서 발견한 게 아닙니다.
포모스에서 힛갤?인가에 올라와있길래 우연히 봤던 거죠.
저는 이 동영상이 5월 20일쯤에 문득 떠올랐고, 좀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가 정신병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이미 저도 "여자"만 골라서 해코지를 하는 사람을 봤었던 겁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굳이 눈에 불을 키고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들어온다는 사실 때문에 놀랐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 하고 분노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고발장이 아니라, 그냥 여자 희롱하고, 여자 놀리는 사이트에서도 웃기다고 올라오는 거죠.



이런 건 그냥 일상입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지 않나요.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라고.




이 트위터가 가리키는 지점이 그렇게 생소하던가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조차 이런 생각을 내내 해오면서 살았거든요.
여성 프로게이머 서지수에게 진 홍진호는 내내 놀림감이 됩니다. 어떻게 여자한테 질 수가 있냐고요.
이것은 사실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 모두에게 다 모욕이 되는 일일텐데,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여성 프로게이머가 남성 프로게이머를 이기는 건 어렵지 않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도전을 하는 사람과, 그 도전을 받아주는 사람의 승부를 진지하게 봤어야 했지요.
매우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그 도전이 예상되는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그걸 웃음거리로 삼을 순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죠.
누군가의 도전이 성공했는데, 그 도전을 "당연한 실패"로 만들지 못한 사람이 망신거리가 됩니다. 혹은 반대의 안심을 하게 되죠.
어휴, 서지수한테 졌으면 저 프로게이머 정말 개망신 당할 뻔 했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건 안하건, 개인의 결백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사회적 태도가 이미 주류로서 형성되어있다는 거죠.

10-3. 그 자는 "여자가 자신을 무시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여기서 자꾸 진실게임이 벌어지는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진짜로 그렇게 믿었건 아니건 어느 쪽도 말도 안되는 일이니까요.
그 자가 "여자가 자신을 무시했다" 라고 생각하고, 그 결과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 자가 정말로 "여자가 자신을 무시했다" 라고 믿고 있다고 하죠.
그 자는 그래서 상관없는 여자를 죽여버렸습니다.
우리는 보통 누가 무시한다고 그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화가 나고, 때리고 싶고, 쌍욕을 퍼붓기도 하고, 집에서 모노드라마를 찍지만 다 거기서 그치죠.
그런데 그 자는 그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던 겁니다.
우리가 무시당하는 걸 참을 수 없는 경우는 딱 하나입니다. 무시하는 사람을, 본인이 이미 무시하고 있을 때가 그렇죠.
무시하고 있는데 그 무시하는 존재가 자신을 무시하니까 그걸 참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과연 위의 두 사례들과 겹치지 않는 걸까요.

그 자가 거짓말로 "여자가 자신을 무시했다" 라고 둘러댔다 치죠.
그 자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동기가 먹혀들고, 이해를 받을 것 같으니까요.
그 자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무시했다고 해서 죽이면, 여자를 죽이는 것이 그래도 말이 되고 어쩌면 공감갈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그 자는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범행을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는 논리가 "여자가 무시해서" 라는 겁니다.
그 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과연 우리가 살며 바라보는 세상의 논리와 완전히 분리가 될까요.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 자의 설명은 "현재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조현증의 증상까지 굳이 갈 것도 없습니다.
그 자의 발언이, 그 자의 그 극단적인 행동이, 이미 우리 사회의 병폐를 "보여줍니다".
그 자의 발언과 행동이 정말로 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느낀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거기에서 접점을 찾아내고 만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어요.
그 사건과 사람들의 경험이 궤를 달리한더라도, 계기로 삼고 다른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걸 계속해서 분석하고 파헤치려는 시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시간낭비입니다.
언론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포인트를 엉뚱한 데 잡고 있습니다.
저 살인사건을 두고 여자들은 어떤 부분을 겹쳐보는가, 가 언론이 그려나가야 할 그림인 겁니다.

11-1. 저는 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시간이 잘 안났습니다.
블로그에 바로 추모의 글을 쓰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세월호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또 하고 있습니다.
일상을 즐기는데, 자꾸 그 사건이 머릿속을 파고 듭니다.
[로미오와 쥴리엣]을 보는데도 문득 그 생각이 듭니다. [맥베스]를 보는데도 문득 그 생각이 듭니다.
뭔가를 집중하고, 그것을 즐기거나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야하는데, 그 당장의 과업에 맞춰놨던 초점이 흐려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냥 멍해집니다. 어디에 딱 줘야할 힘이 잘 안들어가요.  
그래서 슬퍼하는 목소리들을 계속 찾게 됩니다. 누군가를 찾고 싶어져요. 나만 이런가 싶어서.
그 목소리가 높건 크건, 무엇을 말하건,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되고 거기에서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11-2. 그 목소리들을 찾고 거기에 자꾸 중독되어가는 건,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포스트잇을 추모가 시작된 당일에 알게 되었습니다.
슬퍼하기 시작한지 하루가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지럽히는 것들이 나타나고 맙니다.
그 순간, 정말이지 환멸이 들더군요.
욕하고 싶은 마음도 안듭니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늘어져있었는데, 아주 작고 뾰족하고 단단한 결정으로 제 안의 뭔가가 압축되어버립니다.
이게 바로 제가 최초로 본, 추모현장에서의 선동이자 정치적 메시지이자 성대결 선언이었습니다.



저 메시지를 쓴 사람은 팀 어쩌구에서 "김치녀 미연시"를 열심히 만들던 사람이더군요.
(페미나치라는 표현은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나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고백의 증거일 뿐입니다)

11-3. 이 글이 길어지는 이유도 바로 저런 부분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슬픔을 갈무리하고, 그걸 풀어놓을려고 머릿속에서 읊조리고 읊조리면서 허우적대다가
가슴에 쓴맛이 확 퍼져버리는 그런 사진, 글, 댓글들을 보게 됩니다.
그저 슬프던 제 감정이 더 복잡해집니다. 또 다른 이유로 슬퍼지는거죠.
저는 저 포스트잇과 너무나 흡사한 글들을 계속 목격해야했습니다. 단지 그 지칭이 "메퇘지"가 아니었을 뿐.

11-4. 좀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메갈리아..........저는 이 사건이 생기고 오랜만에 메갈리아를 들어가봤습니다.
페이지가 1도 넘어가있지 않았습니다. 글 리젠율이 엄청나게 낮아요. 전 좀 슬플 지경이었습니다.
자기 회원들 유치도 못하고, 사이트 자체로서도 기능을 못하고 있는데 도대체 오프라인의 사람들을 어찌할 수나 있을까요?
메갈리아는 이미 망한 상태입니다. 파리가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파리도 굶어죽는 상황이에요.
워마드.........극성분자로 구분되는 저 같은 사람도 워마드를 잘 모릅니다.
워마드의 영향력을 걱정하시는 분들은 정말 쓸모없는 심력소모를 하고 있는 겁니다. 워마드를 누가 알기나 하나요.
지금 사이트 폭파되서 다음 까페에 임시 피난처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기 사이트들도 관리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그런 단체들에게 무슨 위기감을 그리도 느끼시는 걸까요.
이미 일베와 디씨 등의 수많은 여혐싸이트들이 휘젓고 있는 상황에서, 거적떼기 쓰고 있는 사이트들이 뭘 어떻게나 할 수 있을까요.
사이트의 현황도 다 모르시면서, 어떻게 그 사이트들의 주장을, 행사 취지를 그렇게 다들 파악하실 수 있나요.

12-1. 이렇게 별 힘도 없는 사이트들을 "적"으로 상정해놓고, 계속 이를 걱정하거나 변질되었다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동하기 시작한다며, 침투하기 시작한다며, 사람들의 추모 속에서 꿍꿍이를 계속 찾아내려고 합니다.
저는 5월 21일 워마드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21일 오후 5시에 강남역으로 오라는 메시지만 있었거든요.
(워마드는 남자가 가입을 못합니다 그래서 묻지도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저도 엊그제 알았습니다)
"워마드"가 한 행사요?
http://www.hankookilbo.com/v/56aa251396e34b859040e5632d923887
마스크를 나누어주고, A4지를 나누어주고, 거기에 메시지 하나씩 써서 그걸 들고 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얼추 "여자라고 죽으면 안된다" 라는 메시지를 적고 그걸 들고 행진했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요? 워마드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엄청 많습니다.
제가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는 일베 회원들이 이미 자리를 어수선하게 만들어놨었고
그 때문에 행사가 뭔지, 이미 시작은 했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사전정보가 있던 저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종이를 들고서 우르르 줄을 서기 시작했고, 그 때서야 저는 그게 그 행사인줄 알았습니다.
저나 다른 사람들이 줄의 끝을 따라따라가서 행사 진행자분들을 찾아 소품을 받았고 종이에 글을 적었어요.
워마드는 남자는 가입할 수 없는데, 남자들도 꽤나 많았습니다.
행사 진행자분은, 생각보다 사람이 훨씬 많이 와서 다른 이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줄 수 없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냥 추모하고 싶어서 추모 행사에 참여했고 추모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왜 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추모를 자꾸 어떤 집단의 "배후"로 해석하시는 걸까요.

12-2. 제가 슬펐던 건, 이 배후설, 음모론이 얼마나 편향된 여론인지 계속해서 증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핑크코끼리 사건부터 짚고 넘어가죠.
이 사람이 일베인지 아닌지 그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대체 세상 어느 누가 추모현장에 핑크코끼리 탈을 쓰고 가나요. 이 더운 날씨에.
꽤나 더운 날씨에, 추모를 하는 공간에, 핑크코끼리 코스프레를 하고 가는 사람의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여기서 튀어보이겠다" 어찌됐건,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그런 불편을 감수한거죠.
정치적 의도 이런 거 다 떠나서, 무슨 목적이 있어서 그런 복장을 하고 간 겁니다. 그 목적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여기서부터 아웃입니다. 왜 자꾸 여기에 대고 무죄추정을 하려 하나요.
왜 추모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다 같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데, 그런 곳에 핑크코끼리 복장을 하고 가냐는 말입니다.
이건 무슨 퍼레이드가 아니에요.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은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다들 울적한 마음으로 간 겁니다.
엄청 간단한 이야기에요. 그냥 누구 장례식장에 핑크코끼리 탈을 쓰고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핑크색 티를 입고 가도 눈치없다고 욕먹을 일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일부러 그 말도 안되는 복장을 착용하고 간 겁니다.
그 사람이 이 전에도 그런 복장을 했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제가 노랑색 스웨터를 좋아하면 다른 상갓집에도 그걸 입고 갈까요? 원래 좋아하는 거라고?
안 그렇습니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니까요.
이를 일일히 설명해야 한다는 데서 정말 속이 타들어갑니다.
핑크코끼리 복장을 하고 간 것부터가 "싸가지 없는" 짓이에요. 보는 사람들, 거기에 모인 사람들 천불나게 하는 짓입니다.

12-3. 추모만 해도 그런 행색이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데 (전 핑크코끼리라는 것도 일종의 상징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핑크코끼리는 거기에 대고 "추모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추모현장에 왔으면 추모를 해야죠.
왜 추모를 안하고 자기 하고 싶은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까.



현재 세계 치안 1위요? 그게 사람 죽은 자리에서 할 이야기인가요? 살인을 당한 사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왜 이 간단한 도발을 다들 못읽으시나요. 속이 터질 것 같아요.
비아냥대는 거잖아요........
그냥 아무나 주변의 사람을 피해자의 입장에 대입해보세요.
아는 친구나 가까운 이가 살인을 당해 죽었는데, 거기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세계 치안 1위"라는 문구를 들고 서있습니다.
이게 여성혐오건 아니건, 사람이 살인을 당해 죽은 자리에 "세계 치안 1위"라는 문구를 들고 가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말로 그렇게 믿으신다면, 그런 메시지를 사람이 죽은 자리에서 던질 수 있다고 믿으시면 여기부터는 제 글을 읽으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게 최우선인 자리에요.
그런데 그 핑크코끼리가 그 우선순위를 존중했나요?
주토피아 메시지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거야 따로 쓸텐데, 그런 걸 일일히 풀어야 하는 것부터가 저를 막막하게 하네요.
그런데 이 단순명료한 사건을 두고 계속해서 "폭행"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왜 "추모현장에서 선동하는 건 유족들 가슴을 찢어놓는 일이다" 라고 주최측을 비판하시던 분들이
저렇게 선명한 선동을 두고서는 그런 해석을 안하실까요.

12-4. 거기다가 이 핑크코끼리는 일베 회원이랍니다. 이게 무슨 오해였으면 그래도 모르겠는데, 그게 거짓도 아닙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 행위를 일베에 인증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증거들만 해도 이 핑크코끼리가 거기를 사보타쥬하러 간 걸 부정할 수 있나요?
훼방놓고, 깽판치려고 가는 게 아니면 도대체 왜 그런 선택들을 하고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겁니까.
그런데 왜 여기에 자꾸 독심술이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이대며 그를 변호하려 하는 걸까요.
제가 너무나 답답했던 건, "메신져로 메시지를 판단하지 말라" 라는 논리였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워마드" 라는 메신져로, "추모 행위"를 판단했습니다. 그것은 남혐이라고, 그것은 남녀 성대결로 몰아가는 행위라고.
거길 갔던 저나 다른 사람들 그 누구도 그런 생각 안하고 그저 슬퍼한 추모 행위는 "위험하고 순수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최측이 "워마드"라는 이유로요.
그런데 일베 회원이, 핑크코끼리 코스프레를 하고, 추모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심지어 명백하게 비아냥대는 것은,
"일베라는 메신져를 분리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 이중적인 기준을 저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미 어떤 프레임이 짜져있고, 거기에 계속 현상을 끼워맞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12-5. 일베라는 메신져를 떼어내고 생각하자............
그게 어디 온라인 커뮤니티끼리의 토론이나 방송에서 각 여론을 취합하는 자리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코웃음은 나오겠지만요.
그런데 저 "추모 현장"에, "여성 혐오를 끊어내자" 라는 메시지를 외치는 자리에서
"일간베스트 회원"이라는 메신져가 과연 지워질 수 있나요.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대한민국의 추모란 추모는 모조리 망치는 게 일간베스트입니다. 이걸 새삼스레 짚는 것 자체가 소모적일 정도로.
광주 518 유족에게 명예훼손 발언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운지라고 조롱하며 코알라 사진합성해 놀리고,
세월호 유족이 단식투쟁할 때 옆에서 폭식투쟁하던 이들이에요.
대한민국의 죽음을, 이렇게 집단적이고 열정적으로, 가볍게 소비하고 희롱하던 이들이 또 있었나요.
그런 이들이, 또 다른 죽음의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베라는 메신져의 특성이 과연 이어지지 않나요. 정말로요.
저는 묻고 싶어요. 저 지워지지 않는 사실들이 어떻게 이번 사건에서는 이렇게 깔끔하게 떼어질 수 있는지.

12-6. 일베라는 메신져를 떼어내고 생각하자...........
21일 토요일에 강남역을 찾았을 때 제가 본 일베 회원들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제가 그 곳을 찾았을 때, 사람들은 포스트잇이 아닌 반대편을 다들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건물옆 깃대가 있는 곳에는 어떤 남성들이 몰려있었죠. 그 사람들을 향해 아래의 군중이 계속 뭐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진 찍고 있었냐고, 당장 그 사진들 지우라고.
비니를 쓰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계속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추모 현장에 오는 여성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나옵니다. 남자들은 마스크 안 씁니다.
선별적 황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사진 찍히고 품평당하는 게 무서워서 그래요.
한 여성이 죽었고, 그 여성이 죽은 이유 중 "여성 혐오"의 부분이 작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를 여성들이 추모하러 가는데, 사진이 찍힐까봐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일베 회원은 사람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이게 제가 본 현장입니다. 쓰면서도 정말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 정도네요.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한 여성이 죽었고, 거기서 사람들은 여성혐오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서 도촬이라는 여성혐오가 또 터져나옵니다.



일베의 여성혐오를 일일히 말씀드려야 할 필요는 없겠죠. 전 그걸 오프라인에서, 히죽거리는 일베회원의 얼굴과 함께 접해서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일베에서 여성들 품평하는 게 루머라구요? 왜 제가 이런 캡쳐를 일일히 해야하는 걸까요.






거기 가는 여자들이 왜 마스크를 쓰고 가겠습니까...... 이렇게 일일히 캡쳐를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일베에서 도촬하고 품평하는 거 루머니까, 마스크 벗고 가라고 하실 수 있을까요. 그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요.
여자들이 너무 예민한 걸까요?
이건 일베가 품평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일베가 안해도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해요.





일베놈들!! 이러면서 타자화 할 일이 아닙니다.
일베가 아닌 남성들, 일베인 남성들, 그 모두가 "우리"의 부분입니다.

@ 추가합니다. 어느 분께서, 저 마스크는 단순히 "품평방지"를 위한 게 아니라고 지적해주셨어요.
헛웃음이 나오는군요. 얼굴을 가려야 하는 이유는 "누가 알아보고, 신상정보를 캐고, 해코지할까봐"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심지어 글을 써가는 도중에도 저는 계속해서 여성들의 공포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무저갱 수준의 공포군요.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오버하는 걸로 읽히진 않을까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게 다 그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일베가 아닌 남성들에 의해서요.



그리고 계속되어왔던 일입니다.



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864 기타그냥 이번 강남역 사태는 올라갈수도 없는 지방 4 klaus 16/05/23 4390 0
    2865 기타[불판] 잡담&이슈가 모이는 홍차넷 찻집 <42> 30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5/23 3932 0
    2866 정치강아지 공장 5 DVM 16/05/23 3283 1
    2867 방송/연예다양한 pick me 버전들 1 Leeka 16/05/23 4582 1
    2868 정치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다 (상) 2 王天君 16/05/23 6961 4
    2869 정치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다 (중) 3 王天君 16/05/23 7659 3
    2870 정치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다 (하) 4 王天君 16/05/23 8526 5
    2871 영화하드코어 헨리 - 하드코어 영화로 만든 FPS 19 Raute 16/05/23 6835 0
    2872 방송/연예멜론차트 및 음원시장 이야기 10 Leeka 16/05/24 6228 0
    2873 정치고소당한 '우남찬가'의 저자. 12 커피최고 16/05/24 5043 3
    2874 창작[조각글 27주차] 곱등이 3 헤베 16/05/24 4038 0
    2875 일상/생각강남역을 바라보며 생긴 의문들... 26 No.42 16/05/24 6020 6
    2876 일상/생각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49 nickyo 16/05/24 7207 11
    2877 정치Do WOMAD dream of electric amazones? 18 당근매니아 16/05/24 7256 7
    2878 일상/생각추억속의 부부 싸움 28 Beer Inside 16/05/24 4230 1
    2879 일상/생각어머님은 롹음악이 싫다고 하셨어 23 Raute 16/05/24 4380 0
    2880 일상/생각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2 王天君 16/05/24 4966 4
    2881 일상/생각추억속의 환자 24 Beer Inside 16/05/24 4314 1
    2883 의료/건강[후기] Darwin4078님의 April_fool님을 위한 실내 맨몸 운동 루틴 8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5/24 4832 0
    2884 일상/생각뭘 꼬나보노 임마. 13 헤칼트 16/05/25 4344 0
    2886 정치어느 소아성애자의 고백 27 피자맛치킨버거 16/05/25 23370 6
    2887 기타덴뿌라인듯 덴뿌라 아닌 덴뿌라 같은 이야기 (덴뿌라는 거들뿐) 29 마르코폴로 16/05/25 7181 11
    2888 창작[27주차]우울증이거나 알코올 중독이거나 외로운 거겠지. 4 틸트 16/05/25 3501 0
    2890 창작[조각글 27주차] 야간비행 4 선비 16/05/25 3003 0
    2891 일상/생각왜 한국은 안되고 미국은 서양에서는 되는것일까? 20 까페레인 16/05/25 4376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