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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6/11 10:06:15 |
Name | 김덕배 |
Subject | 정합게임이라는 달콤한 제안 |
벌써 9년전 일입니다. 경영학과 수업에서 강의력이 제법 출중한 교수가 ,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업 내 조직관리에 대해서 정합게임(positive sum game)으로 봐야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정합게임은 쉽게 말해서 윈윈이고 게임에서 게임 내 보수합이 증가하는 걸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럴싸한 말에 다들 멍하니 들을때, 나이많은 한 공대 형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게 어떻게 정합이 되냐고, 영합(zero sum)아니냐고. 뭔가를 하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생긴다는 간단한 작용반작용에 기초한 사고였죠. 그런데 그때부터 그 탁월한 강의를 보여준 교수가 이상해집니다. 아 글쎄 이런 식으로 보자고 ! 이러면서 넘어가려고합니다. 집요한 공대형은 멈추지 않았고... 교수는 약간은 도망칩니다. 이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건, 결국 세상에 정합게임이 얼마나 있겠나하는 걸 제가 여기서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뭔가가 이득을 보면 다른 쪽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겠죠. 기계를 만들어서 생산이 늘고 그걸로 많은 사람이 싸게 소비하게 되면, 기존 생산자들이 망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도 정합 자체는 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데 사회는 이를 감추고 싶어합니다. 모두 이득볼 수 있어, 모두 행복할 수 있어라고 교묘하게 정합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동화같아요. 결말을 빼면 말이죠. 결국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효율성과 배분은 어느 지점에서는 상충하기 마련인데, 모두가 노력하면 잘 된단 식으로 가르칩니다. 사실 모두가 노력하면 모두가 노력하지않는 것과 같아질 수 있는데도 말이지요. 이 점을 다들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 달콤함 뒤에 쓰라린 영합을 느끼면서, 나의 실패가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실패가 부유하다가 내게 정착하였음을 알게되면서, 소위 '헬'을 인지하게 되지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두가 엘리스의 붉은여왕효과처럼 미칠듯이 달려야한다고 부르짖을때, 꿈같이 다들 주저앉아 숨을 고르면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상 잡설이었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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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여왕 효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무한경쟁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생물의 진화에 대한 가설 중 하나...이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겠죠.
그런데 이건 게임이론에서 뭔가 상당히 기본적인 내용 아닐까요?
그러니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수끼리 소통이 안되는 상황이에요. 소통이 아예 안되어도 아주 아주 소중한 사람이거나 신뢰가 두터우면 죄수의 딜레마는 성립이 안되겠죠. 조직관리론이나 기타 등등 커뮤니케이션 이론 자체의 어떤 이론적 대전제로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뭔가 경제학 시간에 누가 손들고 "세상에 이런 idea... 더 보기
그런데 이건 게임이론에서 뭔가 상당히 기본적인 내용 아닐까요?
그러니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수끼리 소통이 안되는 상황이에요. 소통이 아예 안되어도 아주 아주 소중한 사람이거나 신뢰가 두터우면 죄수의 딜레마는 성립이 안되겠죠. 조직관리론이나 기타 등등 커뮤니케이션 이론 자체의 어떤 이론적 대전제로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뭔가 경제학 시간에 누가 손들고 "세상에 이런 idea... 더 보기
붉은여왕 효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무한경쟁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생물의 진화에 대한 가설 중 하나...이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겠죠.
그런데 이건 게임이론에서 뭔가 상당히 기본적인 내용 아닐까요?
그러니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수끼리 소통이 안되는 상황이에요. 소통이 아예 안되어도 아주 아주 소중한 사람이거나 신뢰가 두터우면 죄수의 딜레마는 성립이 안되겠죠. 조직관리론이나 기타 등등 커뮤니케이션 이론 자체의 어떤 이론적 대전제로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뭔가 경제학 시간에 누가 손들고 "세상에 이런 ideal한 market 같은 건 없지 않나요?" 이렇게 태클 거는 느낌이에요.
사실 붉은여왕 효과도 죄수의 딜레마랑 조금 연관이 있죠. 인간의 소통이나 감정의 진화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건 게임이론에서 뭔가 상당히 기본적인 내용 아닐까요?
그러니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수끼리 소통이 안되는 상황이에요. 소통이 아예 안되어도 아주 아주 소중한 사람이거나 신뢰가 두터우면 죄수의 딜레마는 성립이 안되겠죠. 조직관리론이나 기타 등등 커뮤니케이션 이론 자체의 어떤 이론적 대전제로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뭔가 경제학 시간에 누가 손들고 "세상에 이런 ideal한 market 같은 건 없지 않나요?" 이렇게 태클 거는 느낌이에요.
사실 붉은여왕 효과도 죄수의 딜레마랑 조금 연관이 있죠. 인간의 소통이나 감정의 진화도 마찬가지고요.
경제학 시간에는 그런 질문을 안합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런 질문이 다른 이론으로 나옵니다)왜냐하면 ceteris paribus하고 하잖아요. 경영학은 이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 내지 제한된 가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걸 감추거나 외면하는 시선이 느껴졌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수인의 딜레마와 같은 맥락은 맞지만, 행위자 보수 전략이 특정되지 않았으므로 굳이 좁혀서 볼 필요는 있나 싶었습니다. 정합이라고 좋은 세상이 있다고 속삭이는 이 사회의 단면이 수인의 딜레마 하나로 녹여낼수는 없는 거겠구요.(비협조 양태때문에 맥락이 닿는다... 더 보기
경제학 시간에는 그런 질문을 안합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런 질문이 다른 이론으로 나옵니다)왜냐하면 ceteris paribus하고 하잖아요. 경영학은 이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 내지 제한된 가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걸 감추거나 외면하는 시선이 느껴졌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수인의 딜레마와 같은 맥락은 맞지만, 행위자 보수 전략이 특정되지 않았으므로 굳이 좁혀서 볼 필요는 있나 싶었습니다. 정합이라고 좋은 세상이 있다고 속삭이는 이 사회의 단면이 수인의 딜레마 하나로 녹여낼수는 없는 거겠구요.(비협조 양태때문에 맥락이 닿는다고 보는 것이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경영학수업에서 그런 대전제를 깐다든가 그런 건 없었습니다. 대개는 경영학은 협조게임도 고려하는 걸요.(그래서 모바일 생태계때문에 불쌍한 문과생에게 샤클리값도출도 시키고...협조게임이 몇배힘듭니다.) 다들 수인의 딜레마 상황 받아들이지 않냐고 하시면 저희 학교 수업에서는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ㅜ
기업 내 조직관리가 포지티브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제로섬이 아니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글인데 그 질문 자체가 경영학의 어떤 기초적인 전제에 대해서 태클을 거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경제활동과 시장은 언제나 모든 참여자의 복리를 증진시키도록 구성되어 있고 이 모델 자체가 경제학의 근간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경영학의 기본도 조직관리가 포지티브 게임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출발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거죠. 당연히 더 깊이 들어가면 훨씬 복잡하고 조직관리가 포지티브 게임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경제든 경영이... 더 보기
기업 내 조직관리가 포지티브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제로섬이 아니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글인데 그 질문 자체가 경영학의 어떤 기초적인 전제에 대해서 태클을 거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경제활동과 시장은 언제나 모든 참여자의 복리를 증진시키도록 구성되어 있고 이 모델 자체가 경제학의 근간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경영학의 기본도 조직관리가 포지티브 게임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출발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거죠. 당연히 더 깊이 들어가면 훨씬 복잡하고 조직관리가 포지티브 게임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경제든 경영이든 그런 현실에 맞춘 모델과 이론은 일단 챕터1을 끝내야 나오는 거잖아요. 챕터1에는 ideal organization management... ideal market이 나와야 뒤에 real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세상에 ideal한 게 어딨냐 경제든 아니면 경영이든 뭔가 현실을 가리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 생각에는 챕터1에는 안 나오지만 현실의 모습은 챕터22 정도에는 Problems of Inequality 같은 제목으로나 아니면 세부 전공 교과서에 나오지 않나 싶어요.
경영학하고 경제학이 비슷하게 챕터1에서 가정을 하고 모형으로 들어가신다고 생각하신듯합니다.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사관리 내에서 조직행위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정해진 모형이 없고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될 뿐이고, 해법도 다양한 사고를 접목시켜볼 뿐입니다. 그런 전제 없이 정합적 사고로 문제를 개선해야한다! 는게 문제있다는 걸 알았고, 우리사회도 그런 구석이 많다는 걸 느껴보고 사람들도 이제는 그 구호에 선동(?)당하지 않기 시작했다 정도를 느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전제될 내용이면 교수가 막무가내로 아 포지티브로 보자고 좀 이렇... 더 보기
경영학하고 경제학이 비슷하게 챕터1에서 가정을 하고 모형으로 들어가신다고 생각하신듯합니다.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사관리 내에서 조직행위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정해진 모형이 없고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될 뿐이고, 해법도 다양한 사고를 접목시켜볼 뿐입니다. 그런 전제 없이 정합적 사고로 문제를 개선해야한다! 는게 문제있다는 걸 알았고, 우리사회도 그런 구석이 많다는 걸 느껴보고 사람들도 이제는 그 구호에 선동(?)당하지 않기 시작했다 정도를 느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전제될 내용이면 교수가 막무가내로 아 포지티브로 보자고 좀 이렇게 말하지도 않죠. 리틀미님이 학문을 하시는듯한데 학부수준의 경영학에서 저런 체계로 진행되는 영역은 수리적 모델링이 가능한 볓 부분빼고 없습니다. 가능성의 제시와 사례의 분석뿐이죠. 그렇기에 당연히 전제된 것을 생략하는 것이 아닌, 불편한 것을 외면하고 좋아보이는 것을 확대하는 그런 시선이 느껴졌던 것이구요. 쓰다보니 제 전공의 무체계나 혼잡함에 대해 말해 제가 이상한 분에게 배웠나 오해하실까 두려워 미리 밝히자면, 임파워먼트 개념을 적극 도입하는 등 꽤 알아주는 분이셨습니다.
본문부터 댓글까지 쭈욱 정독하고 조심스럽게 댓글 달아봅니다.
우선 저는 저런 류의 단어(정합게임, 영합게임)들의 외연 확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용 대상을 늘리다보면 'sum' 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현실은 완전한 의미의 영합 게임이 훨씬 보기 드물겁니다. 대게 다 포지티브 섬 or 네거티브 섬이겠죠. 왜냐면 제로섬를 말하는 경우 이는 sum 의 대상이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일정하다는 것인데 경영학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들 가령 능률, 생산성, 만족감, ... 더 보기
우선 저는 저런 류의 단어(정합게임, 영합게임)들의 외연 확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용 대상을 늘리다보면 'sum' 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현실은 완전한 의미의 영합 게임이 훨씬 보기 드물겁니다. 대게 다 포지티브 섬 or 네거티브 섬이겠죠. 왜냐면 제로섬를 말하는 경우 이는 sum 의 대상이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일정하다는 것인데 경영학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들 가령 능률, 생산성, 만족감, ... 더 보기
본문부터 댓글까지 쭈욱 정독하고 조심스럽게 댓글 달아봅니다.
우선 저는 저런 류의 단어(정합게임, 영합게임)들의 외연 확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용 대상을 늘리다보면 'sum' 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현실은 완전한 의미의 영합 게임이 훨씬 보기 드물겁니다. 대게 다 포지티브 섬 or 네거티브 섬이겠죠. 왜냐면 제로섬를 말하는 경우 이는 sum 의 대상이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일정하다는 것인데 경영학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들 가령 능률, 생산성, 만족감, 효용, 수익 등등이 대부분은 완전한 의미의 제로 섬을 띈다고 분류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보통 이런 개념은 시장 점유율과 같이 하나의 파이를 다수가 나눠먹을 것과 같은 상황을 얘기할 때 많이 쓰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에서 조차도 파이가 현실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완전히 일정한 경우는 흔치 않죠.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제로 섬 게임은 선물 시장이나, 포커, 고스톱 같은 도박 류 종목에서처럼 무언가 인위적인 제약이 걸었을 때나 가능합니다. 이 경우도 'sum' 자체를 금전이라는 인공물에 한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화폐 1원당 추가적 만족감에 대한 효용함수를 가정하고 분석하면 '만족감' 역시 제로섬이 되기 어렵죠. 당연히 포지티브 섬 or 네거티브 섬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관점을 통해서 본문을 재해석 한다면 막연하게 기업 내 조직관리를 포지티브 섬으로 바라보기 보단, 제로 섬이나 네거티브 섬에 '가깝거나' '그것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걸 눈감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제기 정도로 읽을 수 있겠죠. 근데 본문 글을 읽어보면 글쓴이 본인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아서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좀 그렇지만 일단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시장 경제 자체가 포지티브 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거래라는 행위도 결국 금전과 상품의 자발적인 교환 속에서 소비자효용과 생산자잉여의 증가가 발생되게 되는 것이고 기업이라는 것 자체도 분업을 통해서 파편화된 개인으로는 달성하지 못하는 생산성을 통해 사회적인 부를 증가시킨다는 관점에서 지극히 포지티브 섬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댓글에서 수인의 딜레마 얘기도 잠시 등장했지만 이건 저도 논점과 거의 관계 없다고 보고요.(수인의 딜레마는 내쉬균형이 파레토 최적이 아님에 그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게 영합 게임인지 정합 게임인지는 수인의 딜레마의 구체적인 보수행렬을 짜기 나름이죠.)
제가 봤을 때 글쓰신 분이 비판하고 싶은 지점은 이런 넓은 영역이 아니라 '경쟁'에 국한되어 있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승진의 기회, 공무원 합격자 수, 기업 내에서 지급되는 임금의 총량, 명문대학의 입학자 정원 수 등등 어떤 경쟁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이 어느정도 위에서 말한 질량보존의 법칙과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이죠. 저도 여기에 대해서는 제로 섬의 성격이 굉장히 극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포지티브 섬으로 막연하게 가정해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수업 중 정말 그런걸 말하고자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양상을 덮어놓고 현실을 포지티브 섬으로 막연하게 포장한 것이었다면 문제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논외로 저는 이런 경쟁적 배분 자체에 대한 지나친 염세주의도 어느정도 반대입니다.
1. '경쟁' 그 자체를 까야하는 건가, 경쟁의 양상, 즉 경쟁의 비효율성이나 불공정성을 까야하는가.
2. 경쟁 그 자체를 깐다면 이를 배분하는 양상에 대한 대안은 존재하고 그 대안은 또 바람직한가.
1.에 대해서는 경쟁 자체가 아닌 경쟁의 양상을 까야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는 2의 질문에서 말하는 대안이 존재하더라도 그 대안 자체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논의에서 제가 집중하고 싶은 지점은 오히려 '경쟁'을 통해서 우리가 그 경쟁에 소모되는 에너지만큼 그 경쟁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고 있느냐입니다. 한국 사회는 초중고 시절부터 대학교 스펙 쌓기, 취업 준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경쟁 과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우리가 이 과열된 경쟁에서 정말로 사회적으로 유효한 가치들을 창출하거나 선별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은거죠. 제 스스로 수능 시험과 각종 자격증, 국가고시에 굉장한 양의 시간과 정념을 쏟아부었는데 제가 쏟아부은 노력만큼 제가 제 자신의 처세가 아닌 측면에서의 사회적인 (+) 효과를 가져왔는가는 의문이거든요. 그리고 그게 없다면 한국 사회는 참 경쟁의 당위를 찾기가 힘들게 되는거고 염세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제 추측인데 교수님께서는 아마 본인이 연구하는 수준에서는 단어를 저렇게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차원에서의 논의를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익숙하지 않은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정식으로 학문적 논의를 하자면 일단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단어의 정확한 개념에 대한 정의를 합의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분명 학부 수업에서는 그리 하기가 힘들죠. 사실 처음에 제가 저렇게 외연이 확대되는게 싫다는 이유도 이런 요소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경영학 전공자이지만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 방식을 좋아하시는 교수님들 수업에서 학생들의 참여가 너무 뜬구름 잡는 논의들이 반복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물론 진리의 케바케겠지만요.
우선 저는 저런 류의 단어(정합게임, 영합게임)들의 외연 확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용 대상을 늘리다보면 'sum' 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현실은 완전한 의미의 영합 게임이 훨씬 보기 드물겁니다. 대게 다 포지티브 섬 or 네거티브 섬이겠죠. 왜냐면 제로섬를 말하는 경우 이는 sum 의 대상이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일정하다는 것인데 경영학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들 가령 능률, 생산성, 만족감, 효용, 수익 등등이 대부분은 완전한 의미의 제로 섬을 띈다고 분류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보통 이런 개념은 시장 점유율과 같이 하나의 파이를 다수가 나눠먹을 것과 같은 상황을 얘기할 때 많이 쓰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에서 조차도 파이가 현실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완전히 일정한 경우는 흔치 않죠.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제로 섬 게임은 선물 시장이나, 포커, 고스톱 같은 도박 류 종목에서처럼 무언가 인위적인 제약이 걸었을 때나 가능합니다. 이 경우도 'sum' 자체를 금전이라는 인공물에 한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화폐 1원당 추가적 만족감에 대한 효용함수를 가정하고 분석하면 '만족감' 역시 제로섬이 되기 어렵죠. 당연히 포지티브 섬 or 네거티브 섬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관점을 통해서 본문을 재해석 한다면 막연하게 기업 내 조직관리를 포지티브 섬으로 바라보기 보단, 제로 섬이나 네거티브 섬에 '가깝거나' '그것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걸 눈감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제기 정도로 읽을 수 있겠죠. 근데 본문 글을 읽어보면 글쓴이 본인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아서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좀 그렇지만 일단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시장 경제 자체가 포지티브 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거래라는 행위도 결국 금전과 상품의 자발적인 교환 속에서 소비자효용과 생산자잉여의 증가가 발생되게 되는 것이고 기업이라는 것 자체도 분업을 통해서 파편화된 개인으로는 달성하지 못하는 생산성을 통해 사회적인 부를 증가시킨다는 관점에서 지극히 포지티브 섬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댓글에서 수인의 딜레마 얘기도 잠시 등장했지만 이건 저도 논점과 거의 관계 없다고 보고요.(수인의 딜레마는 내쉬균형이 파레토 최적이 아님에 그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게 영합 게임인지 정합 게임인지는 수인의 딜레마의 구체적인 보수행렬을 짜기 나름이죠.)
제가 봤을 때 글쓰신 분이 비판하고 싶은 지점은 이런 넓은 영역이 아니라 '경쟁'에 국한되어 있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승진의 기회, 공무원 합격자 수, 기업 내에서 지급되는 임금의 총량, 명문대학의 입학자 정원 수 등등 어떤 경쟁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이 어느정도 위에서 말한 질량보존의 법칙과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이죠. 저도 여기에 대해서는 제로 섬의 성격이 굉장히 극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포지티브 섬으로 막연하게 가정해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수업 중 정말 그런걸 말하고자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양상을 덮어놓고 현실을 포지티브 섬으로 막연하게 포장한 것이었다면 문제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논외로 저는 이런 경쟁적 배분 자체에 대한 지나친 염세주의도 어느정도 반대입니다.
1. '경쟁' 그 자체를 까야하는 건가, 경쟁의 양상, 즉 경쟁의 비효율성이나 불공정성을 까야하는가.
2. 경쟁 그 자체를 깐다면 이를 배분하는 양상에 대한 대안은 존재하고 그 대안은 또 바람직한가.
1.에 대해서는 경쟁 자체가 아닌 경쟁의 양상을 까야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는 2의 질문에서 말하는 대안이 존재하더라도 그 대안 자체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논의에서 제가 집중하고 싶은 지점은 오히려 '경쟁'을 통해서 우리가 그 경쟁에 소모되는 에너지만큼 그 경쟁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고 있느냐입니다. 한국 사회는 초중고 시절부터 대학교 스펙 쌓기, 취업 준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경쟁 과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우리가 이 과열된 경쟁에서 정말로 사회적으로 유효한 가치들을 창출하거나 선별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은거죠. 제 스스로 수능 시험과 각종 자격증, 국가고시에 굉장한 양의 시간과 정념을 쏟아부었는데 제가 쏟아부은 노력만큼 제가 제 자신의 처세가 아닌 측면에서의 사회적인 (+) 효과를 가져왔는가는 의문이거든요. 그리고 그게 없다면 한국 사회는 참 경쟁의 당위를 찾기가 힘들게 되는거고 염세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제 추측인데 교수님께서는 아마 본인이 연구하는 수준에서는 단어를 저렇게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차원에서의 논의를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익숙하지 않은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정식으로 학문적 논의를 하자면 일단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단어의 정확한 개념에 대한 정의를 합의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분명 학부 수업에서는 그리 하기가 힘들죠. 사실 처음에 제가 저렇게 외연이 확대되는게 싫다는 이유도 이런 요소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경영학 전공자이지만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 방식을 좋아하시는 교수님들 수업에서 학생들의 참여가 너무 뜬구름 잡는 논의들이 반복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물론 진리의 케바케겠지만요.
아이디 비번을 까먹어서 이제야 다시 로그인합니다. 경쟁적 배분에 대한 염세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경제적 발전은 경쟁이 가장 중요한 동인이었으니까요. 다만, 모두가 승자일 수있다는 환상은 (파레토효율적이고 분배를 한다치더라도 상대적인 측면에서는 결국 패자가 존재합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때문에 패자임을 인식하지만 가치있는 경쟁을 하고, 패자를 보듬는 경쟁에서 대해서 찬성하는 편입니다 저는. 과도한 경쟁이 비생산적일 수 있다는 줄리님 말씀도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구요.
그밖에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밖에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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