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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6/22 04:43:37
Name   저퀴
Subject   삼국지 13 리뷰

 제가 마지막으로 즐겨본 삼국지는 이번 13처럼 장수제, 그것도 최초로 도입한 7이었는데요. 같은 장수제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속작인만큼, 시험적인 성격의 7보다 더 확고한 기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저도 어렸을 적에는 삼국지를 참 좋아했는데, 30주년 기념작이랍시고 이런 게임을 내놓아서 화가 치밀어오르더군요.

 그래픽은 처절하게 심각합니다. 현 세대는 커녕, 한 10년 전에도 못 미치는 그래픽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최적화라도 좋은가 하면은, 심지어 최적화도 별로입니다. 그냥 저사양이라서 대부분의 PC에서 잘 돌아갈 뿐이죠. 전 삼국지 13에서 프레임 드랍이 일어난거 보고 충격 먹었습니다. 차라리 잘 만든 일러스트로 모든걸 떼우면 요령이란 소리를 들어도 비판거리는 되지 않았을텐데, 일기토나 설전은 쓸데없이 형편 없는 모델링을 자랑하고 있죠. 그리고 그래픽 퍼포먼스가 부족해도 UI가 깔끔하면 용서가 되는 법인데, 삼국지 13은 그 점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삼국지란 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UX에 있어서도 단축키까지 잘 도입해놓곤, 뭘 눌러야 하는지 메뉴에 표시해주지도 않죠. 그리고 쓸데없이 화면 전환만 많아서 하다 보면 눈이 굉장히 피로했습니다.

 대신 기술력이 요구되지 않은 부분에선 봐줄만한데, 대표적으로 음악과 일러스트가 있습니다. 대신 음악은 완성도에 비해서 종류가 적어서, 긴 플레이 시간을 요구하는 전략 게임임을 고려하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전 삼국지가 DLC 장사를 해야 한다면, 다른 것보다 더 다양한 사운드트랙 출시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내적으로는 우선 세력 확장 말고는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그리고 중점을 두고 즐길만한 것이 전혀 없어요. 다른 장수와 관계를 맺는 건, 거의 모바일 게임 수준의 반복 노가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결혼 시스템도 그렇습니다. 결혼에 성공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거든요. 무엇보다 친밀도를 가득 채워버리면 이점은 있지만, 더 이상 그 인물과 소통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임무와 비정기적인 의뢰도 너무나 단순하고, 귀찮기만 합니다. 그나마 색다른 건 일기토와 설전 뿐인데, 이 둘은 꽤 높은 빈도에 비해서 재미가 없어요. 무력과 지력이 높을수록 너무 유리하고, 깊이 생각할만한 전술이 없거든요. 오히려 일기토는 구작인 6보다도 재미가 없어요. 예전에 발매했던 태합입지전 5처럼 다양한 미니 게임을 집어넣었다면 나았을 것 같네요.

 아무튼 결국 게임은 세력을 확장해서 천하통일을 이루는 전략 게임이니, 더 중요한 전투와 운영을 평가해봐야죠. 내정은 단순화했지만, 심각하게 문제가 있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력이 너무 커지면 엄청난 양의 클릭 노가다가 되어버렸던 구작에 비해선 나았습니다. 대신 모든 도시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너무 반복적인 게 문제죠. 더 큰 문제는 전투에 있습니다. 전투는 내정과 마찬가지로 깊게 생각할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지형이 갖는 의미도 없고, 공성전도 매우 단순한데다가, 싸움도 가위바위보 상성의 병과, 장수의 능력치에 기대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더 넓게 봤을 때, 삼국지의 전투 시스템의 부작용은 중세 시대 이전의 중국을 가지고 20세기 이후의 총력전을 구현해버린 점에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병력 동원에 있어서 아무런 패널티가 없는 시스템에 있어요. 왜 삼국지 13은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날까요? 병력을 계속 투입할 수 있어서입니다. 이러니 게임의 전투가 끊기지 않고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계속 이어지죠. 그나마 삼국지 13이 제가 해본 전작들보다 나은 점이라면 전투 한번으로 모든 게 결정되고, 플레이어가 세력을 일정 이상 확보하면 질 수가 없는 구성에 벗어났다는 점을 들 수는 있습니다.

 파라독스의 크루세이더 킹즈를 보면 봉신의 병력 동원은 충성도 하락과 경제적 손해를 일으키고, 유로파 유니버설리스에선 적 영토를 점령해도 자국에 편입시키는 데에 비용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삼국지 13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전쟁으로 인한 보급의 문제와 내부 관리 문제가 말썽인 건, 실제 역사가 아닌 소설인 삼국지 연의에서조차 강조하는 건데 그런 건 고려조차 되어 있지 않죠. 병량 재분배는 지나친 간소화로 게임을 지루하게 만든 결과물입니다. 이게 순간이동하듯이 적용되지만 않아도 게임이 매번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을거에요.

 즉 삼국지 13은 역사적으로 인기 있는 인물만을 강조했을 뿐, 전략 게임으로 시대적 배경을 살리는 데에는 전혀 신경 쓴 게 없습니다. 이러니 도시가 몰려 있는 중원만 차지하면 대충 해도 천하통일이 확실시되는 게임이 되어버렸죠. 눈으로 보기에 맵에 산이나 강을 구현하면 뭐합니까? 실제로 그 둘은 게임 내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요. 마침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도 비현실적이고 전술적인 깊이가 전혀 없습니다. 어떻게 야전에서 땅따먹기를 만들어놨는지 모르겠더군요. 공성전에서 기병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질주하는 건 극도로 비현실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게임들조차 안 할 선택이에요.

 또한 그 인물에 대한 묘사도 700명이 넘는 숫자에서 인기 있는 극소수에만 투자되었을 뿐, 나머지는 게임에 필요한가 싶은 배경에 불과합니다. 내정과 전투에 있어서 평균 미만의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가 갖는 의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나마도 개성조차 없어요. 전투에 있어서 전용 특기를 가진 관우나 제갈량 같은 경우를 빼면 그냥 고능력치를 가진 장수 몇몇은 이름과 일러스트를 빼면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싶죠. 능력치는 무려 1부터 100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사실상 그만큼의 개성을 드러내는 시스템도 아니거든요. 장수제라면 조금 부족한 능력치의 인물로 성장하는 매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느끼기 힘들어요.

 그렇다고 적당히 깊이 있는 전략 게임이 아니더라도, 인기 있는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게임이라고 쳐도, 그걸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AI에도 비판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정교하게 짜여진 전략을 즐길 수 없다면, AI라도 좋아서 많은 부분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게임이 잘 흘러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삼국지 13은 AI조차 부실합니다. 첫째로 병력 운용에 있어서 아무런 판단도 없이 무작정 돌진하며, 둘째로 각 장수의 병종 적성조차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편성하는 판단은 전쟁을 더 지루하게 만드는데다가, 전투에 있어서도 우회 돌격이나 협공 또는 기습 같은 요령을 전혀 쓸 줄 모릅니다. 토탈 워 같은 게임은 몇년 전에도 AI가 플레이어를 상대로 부족하게나마 망치와 모루까지 다 구현할 수 있었는데요. 심지어 삼국지 쪽이 더 단순한 게임인건 따질 필요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편의성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것들은 다 구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군단의 재편성 권한만 해도 플레이어에게 기하급수적으로 피로만 안겨주는 게임 특성상 꼭 필요한데, 게임 후반부를 군주제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문제가 있고, 군단 시스템 자체부터가 지방에 따라서 제한을 두는 쪽으로 설정해야지, 마구잡이로 세력을 확장하다 보면 군주보다도 내 통치령이 더 넓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무조건 연출됩니다. 자원 재분배도 만들어놓고, 장수의 소속지 임명은 모두 수동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하다 보면 삼국지가 그 어떤 장르의 게임보다 클릭 노가다가 심한 게임이에요.

 삼국지가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재미있는 전략 게임을 자주 만들고 있는 수많은 개발사를 본받는 길이에요. 이미 삼국지보다 더 정교하고, 직관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게임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냥 그대로 가져와서 도입하기만 해도 처절한 그래픽도 용서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없죠.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만 해도, 매번 현 세대에 뒤쳐지는 그래픽과 PC판 최적화를 보여줘도 팬들은 다 이해하고 완성도에 만족합니다. 그에 비하면 삼국지는 긴 개발 기간, 부족하지 않은 판매량으로도 투자 없이 대책 없는 가격으로 게임을 팔 뿐이죠. 그나마 이번 13은 가격 현지화는 정신 차리고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아마도 삼국지 13은 파워업키트(PK)란 이름의 확장팩으로 게임을 보완하려 할텐데, 대부분의 유저들은 코에이가 돈에 눈이 멀어서 일부러 게임을 미완성시킨다고 말하곤 하죠. 그런데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해요. 그냥 파워업키트까지 개발해야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올 정도로 능력 없는 개발사일 뿐이라고 봐요. 진짜 돈을 벌고 싶으면 이렇게 엉망인 게임을 만들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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