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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7/05 22:58:03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왜 사계절이 뚜렷하면 좋은 나라일까. |
<서론> 이런 생각들은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으면서 그 때 그 때 다른 형태로 의식화하곤 합니다. 전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은 나라임" 과 같은 담론 역시 이런 아주 오래된 생각들이 오늘날에 와서 문득 위로 솟아난 경우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제 그 배경을 살펴봅시다. <유학 (儒學)> 유학은 전한 (前漢) 시기 (대략 BC 200 - AD0)를 거치면서 전국시대 때 음양가 (陰陽家) 라고 불렸던 우주론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융합되게 되었어요. 이 우주론은 우주의 발생과 전개의 기초를 몇 개의 중요한 자연수와 그 수들간의 관계, 그리고 그 수들이 대표하는 몇 가지 원소적 요소들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일부 희랍철학자들의 주장과 닮은 구석이 있었지요. 예컨대 홀수는 양, 짝수는 음이에요. 따라서 1,3,5,7,9는 (양의 상징물인) 하늘, 2,4,6,8,10은 (음의 상징물인) 땅의 수라고 해요. 하늘이 1로 시작하면 땅은 6으로 완성하고, 2로 이어가면 7로 완성하고... 마찬가지로 5로 시작하면 10으로 완성해줘요. 1과 6은 오행의 물에, 2와 7은 불, 3과 8은 나무, 4와 8은 쇠, 5와 10은 흙에 각각 해당해요. 대략 이렇게 됩니다. 이 우주론은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주론을 포함한 모든 형이상학의 매력포인트는 세상 모든 것들을 "남김 없이 설명해버림ㅋ" 이기 때문에 본 이론, 당시 말로는 술수학 (術數學) 은 이 프레임으로 당시 설명하고 싶었던 모든 걸 설명하고자 했어요. 그리고 이러한 설명의 대상 중 하나가 곧 [1년]이라는 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였습니다. 이게 좀 어려웠던 것이, 계절은 대략 4개 같은데 오행은 다섯 개잖아요? 계절마다 속성을 하나씩 배당하고나니 속성 하나가 남는단 말이죠 -_-;. 그래서 당시에 고안해낸 해답은 봄=나무, 여름=불, 가을=쇠, 겨울=물 이며 흙은... 흙은 원래 하도 (河圖) 상에서도 가운데에 있듯이 모든 계절 속에 자리잡아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거였어요. 나아가 이러한 주기이론은 도덕론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봄은 화사한 기운으로 만물을 생장시켜주므로 그 기상이 어질어요 (인 仁). 여름은 강렬한 에너지로 만물을 뜨겁게 번성시키니 그 화려함이 예식 (예 禮)과 같고, 가을은 만물을 숙성시키면서 동시에 말려죽이니 그 기운이 추상 같은 정의의 집행 같아요 (의 義). 마지막으로 겨울은 차갑고 고요한 가운데 다시 번성할 기미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가 꼭 지혜로운 은자 같지요 (지 智). 마지막으로 이 모든 주기운동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영원히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신뢰성이 확보되어있어야 해요. 그래서 마치 흙이 사계절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미쁨 (신 信)이라는 가치가 자리잡고 있어요. <지리 편정(偏正) 담론> 이러한 세계관은 물론 황하 언저리에서 만들어진 거라서 당연히도 그 주변의 기후환경을 반영하고 있어요. 머지 않아 이들이 저 먼 북방 초원의 환경, 남방 해안가의 환경을 경험하게 되면서 사계절 (=우주 생성소멸의 아름다운 주기운동)은 모든 곳에서 뚜렷한 건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에요. 더운 남쪽 지방은 화기 (火氣) 가 강해서 그런 거고 추운 북방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생각했지요. 이들은 이처럼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해당 지방은 특정 기운이 쏠렸다 (偏)고 했어요. 반대의 경우는? 바른 (정 正) 거죠 ㅎㅎ. 이런 편/정의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차별의 세계관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었어요. 여러 종류의 기운이 (그리고 인의예지의 덕성이) 바른 밸런스를 이루고있는 곳은 그 기운을 닮은 사람들을 배출하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더 균형 잡힌 사람들이므로 더 잘나고 문명화된 것도 당연했어요. 반면에 쏠린 지역은 쏠린 사람들을 내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밸런스가 안 맞는 관계로 야만스러운 것도 당연했구요 (예컨대 남방 지역민들이 겪었던 차별에 대해서는 요거슬 참조하시길: https://redtea.kr/?b=3&n=2835). 문명이란 이름은 넘나 매력적인 것이어서 누구나 가능하면 문명이 되고 싶지 야만이 되고 싶어하지 않아요. 어쨌거나 남들이 다 너님은 바른사람이구나 하고 말해주는 게 더 기분 좋지 않겠어요? 게다가 또 문명은 문명을 상대할 때만 부드럽게 상대해주지 야만을 상대할 때는 짐승처럼 대하므로 실리적으로도 문명이 되는 게 유리했지요. 그래서 코리안은 자기들이 문명인임을 틈만 나면 강조하고 싶어했어요. 중국과 교류할 때만 강조한 게 아니라 소위 "야만인"들과 교류할 때도 이 점을 무척 강조했더랬지요. 세종조의 여진정벌 기사들을 보면 정벌군을 보내면서 이상하리만치 꼭 [달력]을 들려보내요. 왜냐하면 이건 단순히 누가 힘이 더 쎈가를 가름하고 땅을 먹고 이득을 보려는 속물적인 전쟁, 야만적인 전쟁이 아니라 한 편이 다른 한 편 보다 명백히 명분/문명상 우위에 있는 [정벌 (征伐)] 전쟁이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달력은 우리는 1년이라는 주기운동을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획하는 방법을 천자에게서 하사 받는 정당하고도 올바른 국가요 너희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가름해주는 상징적인 존재였거든요. <현대> 하지만 이상의 사실이 오늘 날의 "사계절이 뚜렷해서..."류의 담론의 직계조상인지는 [확실치 않아]요. 유교이념상의 사계절 관념이 오늘 날의 사계절 담론으로 직접 이어지는 고리를 찾아야 이게 증명이 될 텐데 그건 못찾아봤어요. 그런 줄로만 알고 이 지점까지 재밌게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하지만 제가 능력이 없어서 근현대사 부분은 연구능력이 떨어져서요 ;ㅅ;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필경 고도의 관련성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어쩌면 기초 유교교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던 해방 초기의 학자들이 교과서를 집필할 때 자신들의 심중에서 잠자고 있던 이런 생각들을 곧바로 끄집어내서 써먹었을 수도 있고 (직접적 인과), 아니면 자신이 의식화하여 의심하기 어려울 만큼 기억 속에 박혀있던 이 생각이 '한반도는 온대기후지역에 속하여 극지방이나 적도지방 처럼 가혹한 곳들 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곳이다'라는 근대적 지리학적 지식과 부지불식간에 융합했을 수도 있지요 (간접적 인과). 후자의 경우라도 어쨌든 그 표현형이 "온대기후지역이라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해서 살기 좋은 나라"였으니까요. <결론> (제 원대한 추측이 맞다는 전제 하에) 제가 본문에서 하고자했던 작업은, 테이블 밑에 있는, "사계절 ..." 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정체 불명의 [생각]을 발굴해서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 거였어요. 이렇게 꺼내서 올려 놓으면 마치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마냥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녹게 마련이거든요. 이렇게 서서히 녹아 없어지면 우린 다시는 코쟁이들을 만나서 떠듬거리는 영어로 "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야"라고 소개하진 않게 되겠지요. 그러면 코쟁이들도 더이상 왜 한국인들은 사계절을 강조하는지 궁금해하지 않게 될 테구요. 마치 다음 링크에서 처럼요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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