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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7/20 06:49:42
Name   전기공학도
Subject   다른 사람을 공감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으니까.
내가 요 몇년간 상당한 부침을 겪고서 괴로워하고 좌절하고 내 의지가 아닌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느낀 게 몇 가지 있다.
내 나름의 2개 법칙(?)인데, 인류가 갑자기 눈 깜짝 할 사이에 진화를 하거나, 혹은 머리속이 알파고처럼 되지 않는 이상, 꽤 앞으로도 유효할 법칙들이라고 생각한다.

1법칙. 나는 나의 아픔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은 당사자만큼 아프게 느끼기 힘들다. 사람들은 모두 남남일 뿐이다.
2법칙. 내가 느낀 감정, 생각, 판단 등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자질을 가지든, 어떤 조건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이 느낌 그리고 이 느낌에 도달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그들에게도 적용될 거라는 착각까지 일게 된다. 그래서 선의를 가진 사람이 다른 이에게 자신의 메커니즘을 강요해서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이 생긴다. 이럴 땐 또 쓸데없이 사람들은 남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91년생이고, 정치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된 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한 2002년부터이다. 그때 우리 집은 중앙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지금도 그렇다), 나는 어느날 신문을 처음 보고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다지 가치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정확한 내용은 생각이 안 나지만, 친일파를 은글슬쩍 옹호하고 (어린 내 눈으로 보더라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말장난을 부려가면서 은근슬쩍 논지를 전개해나가는 것이었다. 세상일이 교과서나 학교 담임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이때 처음 느꼈다. 그리고 한~참 이후에, 대통령 탄핵 건도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있었고, 현 대통령의 무수한 삽질이 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저들은 왜 저런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면서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거지?"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어차피 저들은 자기들 먹고 사는 것만 충족시키면 되고, 어떤 일로 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하나라도 더 들어온다면 그 일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든 힘들게 하든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그들이 자신에게 claim을 걸기 힘들도록 다양한 루트로 꼼수를 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김구라가 정말 싫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직접 김구라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직접 시청한 적은 없지만) 그의 과거 이력이 더러웠기 때문이고, 현실주의를 넘어서 속물주의를 방송에 여과없이 최초로 드러내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이력이라든지는 그렇다 치고, 그의 속물적인 면이 싫었는데, 이 현실이 속물적일 수밖에 없지만, TV속에서도 그걸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도 그가 여러 프로그램에 나오니까, 그를 볼 수밖에 없더라. 많이 보면 적응되기 마련이기도 해서, 이젠 별 불쾌감 없이 그의 언행을 지켜보게 된다. 그가 이번에 어떤 주례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부라고 해도, '남남'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서로를 존중하니까." 부부고 부모-자식 관계이고 다 '남남'일 뿐인데, 사람들이 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외면해서 이로 인해 오히려 더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닐까. 그가 인간성 면에서 나보다 더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단지 나보다 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것일 뿐. 다른 사람은, 타인은, 말 그대로 '남남'이다. 현실이 그렇고, 또 그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사람들은 다 '남남'일 뿐이고, 서로 법적-도덕적으로 문제될 행동만 져버리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도와주거나 공감해주거나 해야 할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을 계속 깨닫는다. 생각해보니 나도 약간은 그런 류의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데 심지어 다른 이를 괴롭혀도 그로 인해 자기가 행복하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짓밟을 위치에 놓이게 되면, 짓밟기 마련이다. 이상하게 필요 이상으로 자기 밑의 사람을 갈구면 뭔가 일이 효율적으로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절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보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측면에서 다른 상당수의 사람들에 대해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 당연히 자신이 을이 되는 시점이 있다. 또, 예전에는 이 영역에서만큼은 내가 갑이었는데 나중에 내가 을의 위치로 전락하는 것도 다반사이다. 사람이 을의 위치에 오게 되어야만 비로소, 같은 처지에 있는 가지지 못한 자가 어떻게 생활에 제약을 느끼는지가 눈에 보이고 절실히 느껴진다. 또, 을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 갑의 위치에 오게 되는 경우도 역시 있을 수 있다. (물론 개구리 올챙이 생각 할 줄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갑의 위치에 오르게 되면 갑자기 입 싹 닫고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내가 을에서 갑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못난 을들은 그들의 능력이 떨어져서, 그 처지가 된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나보다. 그런데 그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 주변 환경들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교육이니 음식이니 주거시스템이니 경험이니 등등을 받아들이면서 자란다. '온전히 자신의 타고난 자질과 노력만으로 성취한 능력'이란 것이 개념상 있을 수가 있는가? 도대체 '자기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묘한 말이 얼마나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진실을 교묘하게 호도하는지를 자각을 못하는 것인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처지가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유의지를 이야기할 때, 신경과학적으로 이 개념의 본질을 따지지는 않겠다. 이 글의 취지와 맞지 않으니까..) 애초에 시작부터 사람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의 갯수와 내용이 다른데, 자신에게 가능한 선택지들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인가? 소위 '실패한 국가'라고 분류되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과 미국 상위 1%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같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대부분 자신의 눈부신 성취 뒤에는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였다. 나의 자유의지가 선택을 하기 이전에 이미 내가 아닌 것들이 내가 선택할 것들을 이미 제한해 놓았다. 내가 그래서 성공담이라든지 자기계발서들이라든지를 혐오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선택과 그 선택에 의한 어떤 메커니즘으로 성공했다고 느껴도, 실상은 자기 자신조차 그 선택-메커니즘에 대해 심각한 고찰을 별로 해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의 성공은 그냥 다 자기의 능력, 자신의 선택에 기인한 것으로 여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그 성공사례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진로를 망치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은 이 방식대로 성공했으니까, 자신은 이 방식대로 병이 나았으니까, 자신은 이 방식대로 행하면 행복을 느끼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이것을 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특질이라든지 처지라든지가 그의 특질이라든지 처지라든지와 같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모든 사람에게 나의 방식을 적용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있는가?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이것저것 잘못된 지시를 내리는 것은 폭력이다. 그 guide해주는 사람 본인에게는 선의일지는 몰라도, 이런 일을 계속 당하는 쪽에게는 폭력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은 이것이 폭력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선의는 그 사람에게는 아주 강렬히 와닿거든. 선의를 가장한 폭력이 이런 무지로부터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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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학문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효한 이론이 타인에게도 유효한 이론이 될 것이라고 섣불리 확신할 수 없음을 조용히 인정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이론을 개발하는 학자들은 그 이론이 어떤 영역에서 유효한지, 반면 다른 어떤 영역에서는 그것이 유효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지 등등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기 마련이다. 인간은 모든 제약들을 초월하여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을 만들 수 없다. 그걸 인정하면서, 그래도 더 넓은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이론의 보편성도 확대시켜보고, 여러 이론의 상호호환성도 늘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겸손함에 의거하여 학문은 발전했기 때문에,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학문은 (대중과 영합한 식의 이상한 형태로 왜곡되지 않는 이상) 많은 것을 꽤나 합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든지, 많이 알면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 예전보다는 더 공감을 할 수 있게 되더라. 아는 만큼 보이니까. 안다는 것은 다른 존재와 공감하는 것이다. 또 많이 알면 나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 혹은 강요할 때에 한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 아는 만큼 겸손해지니까.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대체적으로 많이 알 수록 다른 사람에게 더 공감하게 되고, 더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그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자기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자각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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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내용의 글이 길기만 해서, 텍스트의 중심문장들을 굵게 처리했습니다. 이 굵게 처리한 중심문장들만 위주로 보셔도 글을 읽는 데에 별 지장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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