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7/23 07:55:01
Name   Raute
Subject   한국 진보, 유감
스스로의 정치적 성향이 어디에 위치하는가 하면 유럽 기준으로 중도좌파쯤 되고, 온건한 사민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상에 대한 식견이라고 해봤자 학부 교양 강의 몇개에 베른슈타인 등 기초만 맛본 풋내기입니다만 그래도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에 위치한다고 여겼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이 규정짓기 나름이라는 거야 뻔한 얘기입니다만 그래도 진보라는 기치 아래 있으려면 올바름을 지향하고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진보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과연 그러한 목적의식이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메갈리아/워마드가 래디컬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면을 채택하며, 양성평등이 아니라 여성우월주의를 추구하는 건  그들이 내부지침을 통해 스스로 밝힌 내용입니다. 소위 '먹물'들이 이걸 못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평소에 현학적인 수사를 사용하여 사상이 어떻고 이념이 어떻고, 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던이니 타자가 어쩌고 해체가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저 간단한 메시지 하나 못 읽겠습니까. 눈 가리고 아웅이거나 아니면 아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옮겨적는 거죠. 어느 쪽이든 끔찍한 건 마찬가지고요.

한겨레, 경향, 오마이, 그리고 시사인까지 여러 언론들이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며 메갈을 위한 해석본을 내주는 거, 짜증나기는 해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고상하게 표현해도 근본적으로 돈 벌기 위해 글을 파는 사람들이고, 언론인들이 신념 꺾는 거야 부지기수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정당의 영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대세가 되는 건 차마 봐줄 수가 없더군요.

소위 진보정당들이 존재감 없는 군소집단이라고 해도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열려있음을, 그들이 진보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음을 수도 없이 외쳐왔습니다. 낯뜨거운 정치적 구호들을 옮겨적지 않아도 그 외곬수적인 순수성이 진보정치의 상징이라는 건 다들 동의하는 바일테고요. 그런데 그 이념적 순수성이라는 게 실은 허상이라면? 그러면 그들을 지지해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정책적 차원에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간격은 계속 좁아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면 내 표를 허공에 날리느니 현실성 있는 선택을 하는 게 낫겠죠.

근래에 진보정당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로 웃음이 나오더군요. 노동당이야 이미 극단주의 치닫은지 오래니까 논할 필요도 없고, 녹색당은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너 당원이야 아니야'라는 소리부터 하고 있고, 정의당은 앞뒤 안 가리고 발언은 던져놓고 서로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재밌게도 다들 팩트체크는 했으며, 자신들의 발언은 가볍게 내뱉은 게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무거운 내용 5분이면 '팩트' 가져와서 개박살나는데 말입니다.

저 역시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실수한 적이 많습니다. 남에게 완전무결함을 요구할 처지가 못 됩니다. 그렇긴 하나 적어도 제가 했던 잘못들을 곱씹고, 반성적인 태도를 가지려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근데 지금 진보라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은 못 찾겠습니다. 진영논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목소리는 참 커요. 누가 누굴 계몽하겠다는 건지.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서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얘들이 집권해도 세월호 때랑 다를 게 없겠구나’라는. 사회당과 금민, 민노당과 권영길, 진보신당의 노심조와 홍세화, 그리고 노동당에서 녹색당까지. 이제 제 안의 진보정치를 놔줄 때가 된 거 같습니다. 씁쓸한 것은 막상 '현실적인 선택'을 하자니 남은 선택지가 저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거죠. 그나마 제가 타협할 수 있는 게 더민주인데 딱히 끌리지도 않는데다 이 문제로만 한정지어도 여기는 메갈과 함께하는 여성민우회와 얽혀있으니까요. 이거 주사파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애송이에게는 NL 가려내기보다 더 지독한 거 같네요.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09 일상/생각거시적 시각이란 무엇인가 necessary evil 20/01/21 6906 8
    2537 도서/문학지난 달 Yes24 도서 판매 순위 3 AI홍차봇 16/04/04 6907 0
    3960 정치유명 웹툰 작가 성폭행 사주 논란이 터졌습니다 17 지나가던선비 16/10/20 6907 0
    8973 여행타베로그 이용 팁 7 温泉卵 19/03/18 6907 12
    9944 오프모임[마감]15일 금요일 저녁8시 경복궁역 족발벙 106 다람쥐 19/11/05 6907 11
    11886 일상/생각인적자원(HR)은 비인격적인 표현인가? 34 정중아 21/07/15 6907 3
    10533 오프모임4/29(수) 동대문 러시아거리에서 샤슬릭을! 68 나루 20/04/27 6908 7
    2022 경제SK김창근 의장 직속 M&A 등 재무지원 독립조직 ‘IFST’ 신설!! 6 dbdksxk 16/01/13 6910 0
    5143 역사왕흘 이야기 (부제:나무위키 꺼라) 7 Raute 17/03/11 6910 3
    10079 여행대한항공 마일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13 그저그런 19/12/14 6910 0
    12342 방송/연예2021 걸그룹 35 헬리제의우울 21/12/13 6910 58
    1728 기타오늘 커뮤니티 베스트 & 실시간 검색어 요약 정리(12/7) 2 또로 15/12/07 6911 17
    512 기타사소하나 거대한 허무감에 관한 잡스러운 이야기 6 Xayide 15/07/05 6912 0
    11832 게임10년전에 썼던 얼왕 탱킹팁 11 헬리제의우울 21/06/30 6912 0
    10037 게임스타크래프트 II 4.11.0 패치 노트 6 세상의빛 19/11/28 6912 0
    9924 영화날씨의아이 짧은 감상문 (본문, 리플에 스포 포함 가능) 8 알겠슘돠 19/10/31 6912 0
    2311 도서/문학얇고 넓은 지식을 위한 글 - 문맥을 무시한 인용들 7 Top 16/02/29 6915 4
    9587 일상/생각삼촌을 증오/멸시/연민/이해/용서 하게 된 이야기 23 Jace.WoM 19/08/26 6915 49
    1751 창작[8주차 조각글] 사랑하는 사람 묘사하기 4 얼그레이 15/12/11 6916 0
    11079 경제내집 마련을 위하는 초년생들을 위한 짧은 팁들 23 Leeka 20/10/21 6916 16
    12894 IT/컴퓨터아이폰 14의 파멸적인 예상 가격 120 Cascade 22/06/07 6916 2
    1603 육아/가정파브르 곤충기 4 맑은하늘 15/11/20 6917 1
    5037 도서/문학자유주의의 소멸에 대한 불쾌한 우화 - 미셸 우엘벡 <복종> 12 와인하우스 17/03/01 6917 5
    3328 정치한국 진보, 유감 45 Raute 16/07/23 6918 4
    3335 일상/생각평범한 회사원은 웹툰 작가가 부럽습니다. 37 졸려졸려 16/07/24 6918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