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8/14 14:15:59
Name   켈로그김
Subject   내 생에 최고의 한 곡
라디오에서 입영열차? 가 나오고 있습니다.
집시여인에 입영열차 안에서까지 연타로 들으니 괜시리 센치해져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 세워두고 끄적;;

--------

02년 1월 2일.
1사단 1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로(나중에) 배치받게 되었다.

여자친구와 사실상의 이별을 하고 입대를 해서 그런지,
1월 7일이 기일인 친구의 납골당에 찾아갈 수 없어서인지,
매일매일 돈과 씨름하는 엄마와 중학생인 동생이 맘에 걸려서였는지..

두고 온 사회의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리웠고,
모든 것이 막연하게 그저 슬퍼서 힘든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잘 하지도 못하는 노래고, 매일같이 악을 쓰느라 목 상태도 맛이 갔지만, 아는 노래 중 가장 슬픈 노래들을 불렀다.
주로 토니 블랙스톤?의 언브뤡마이 하트와
강태공바리우스의 포에버를 불렀는데,
슬픔을 표출은 하되 그 슬픔이 직설적으로 누군가에게 전달되는건 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캐릭터는 노래깎는 노인이 되어갔고..;
훈련소 기간에 설날이 포함되어서였는지 훈련병들 중 노래를 "잘" 하는 몇 명을 뽑아서 셀프 위문공연에 엉겁결에 포함되어버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커서 친구 결혼식에서 김경호 노래를 열심히 짖게 된다; 부르는게 아니라 짖게;;)

-----

부를 곡을 전하는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입영열차 안에서" 로 결정이 되었고,
2번. 그러니까 10여분에 걸친 맹훈련으로 합을 맞추고 그렇게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 무대는 대충 이런 느낌이었는데..
https://youtu.be/P2AkgzdlzrI

아마 그 자리에 원곡자인 이민우가 있었다면 90미리 무반동포로 우리를 날려버렸지 싶다;;
무대 위의 우리는 모두 고스트 입영왕이 되어 이민우가 빙의된 기분이었으나
실상은 불협화음이 무엇인지, 군대 클라쓰가 무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일 뿐이었..는데,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 마음은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많이 위로받았기에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내가 내고 싶은 소리가 아닌, 남에게 들려주는 소리를 내려고 했고,
되는데로 부르고 "야이 그래서 노래 안 들을거야?" 가 아닌,
이런 노래를 들을 흔치 않은 기회를 맞은 불쌍한 노랑 병아리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내가 위로받은 것 처럼..

살면서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 유이한 경우로, 다른 한 번은 아이 돌잔치때 "그대 고운 내 사람" 인가 하는 노래를 불렀던게 전부다.

여튼..
전달이 잘 되었드 그렇지 않든,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무언가를 함으로써 스스로 더 크게 위로받았던 경험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아름다운거다 이게..
그.. 미국에 이민간 필리핀 동포들을 위해서 디씨와 딴지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노래를 불러주는 아시안프린스가 된거같기도 하고;;

https://namu.wiki/w/아시안%20프린스 참조;


그들에게 나는 위로가 되었을까?.. 가 궁금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참 간절하리만치 알고싶어진다.

-----

후일담.

며칠 후에 혼자서 노래부를 기회가 또 생겼고,
그 때는 배려나 위로따위는 쌈싸먹은 선곡 - 들장미소녀 캔디 rock ver.- 으로 중대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썰렁한 반응에 중대장은 "동기가 이렇게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데 호응도 할 줄 모르는 니들에게는 얼차려가 답이다" 라고 하면서 단체 기합을 줬다;;

.. 여러분 노래가 이렇게 위험한 물건입니다;;



3
  • 역시 비범하신 분..
  • 도우미 분들을 얼어 붙게 만드시는 능력자.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537 창작[조각글 38주차 주제공지] 나쁜 생각을 담은 글을 쓰기 1 헤베 16/08/19 4480 0
3536 역사후장식 드라이제 소총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7 모모스 16/08/19 6035 3
3535 스포츠[8.17]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강정호 시즌 14호 솔로 홈런,오승환 시즌 12세이브) 2 김치찌개 16/08/18 3456 0
3534 스포츠[8.15]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강정호 시즌 13호 솔로 홈런,김현수 1타점 적시타) 김치찌개 16/08/18 3425 0
3533 철학/종교분할뇌 문제와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 35 April_fool 16/08/18 6127 0
3532 역사"국왕" 대신 "국가와 조국" 위해 싸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7 모모스 16/08/18 6026 3
3531 영화이번 주 CGV 흥행 순위 2 AI홍차봇 16/08/18 2846 0
3529 일상/생각유부남은 죽지 않아요. 다만... 8 세인트 16/08/17 4708 1
3528 역사페라리와 프란체스코 바라카 2 모모스 16/08/17 7491 2
3527 기타닉네임의 유래에 대해... 87 NF140416 16/08/17 5285 2
3526 영화(스포) 터널 - 애미야 국이 싱겁다 14 Raute 16/08/17 4930 0
3525 스포츠모럴 해저드 KBO? 15 kpark 16/08/16 4460 0
3524 역사2차대전 이탈리아 전투차량은 전부 병맛? 9 모모스 16/08/16 9722 2
3523 일상/생각(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다이나믹한 삶 14 elanor 16/08/16 4581 3
3522 도서/문학[책나눔]포토샵 배우실 분? 11 난커피가더좋아 16/08/15 4515 7
3521 스포츠[8.14]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강정호 시즌 12호 솔로 홈런,1타점 적시타) 김치찌개 16/08/15 3425 0
3520 스포츠[8.11]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오승환 1이닝 1K 0실점 시즌 10세이브) 김치찌개 16/08/15 3045 0
3519 철학/종교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15 Ben사랑 16/08/15 6923 0
3518 게임[Don't Starve] 어드벤쳐 연재 #1-1 겨울의 왕 #1-2 4 Xayide 16/08/15 5138 5
3517 게임[Don't Starve] 어드벤쳐 연재 #1-1 겨울의 왕 #1-1 1 Xayide 16/08/15 6484 5
3516 철학/종교중2병의 원인에 대해서 제 멋대로 고찰 13 Ben사랑 16/08/15 6382 0
3515 일상/생각벌과 나날 10 Moira 16/08/15 4195 3
3514 일상/생각수능 수학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 53 집정관 16/08/14 5404 0
3513 요리/음식오늘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것들 5 Raute 16/08/14 4291 0
3512 일상/생각반사 21 기아트윈스 16/08/14 4041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