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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8/21 03:38:07
Name   눈부심
Subject   주디 버틀러가 말하는 혐오언어의 해체


저는 주디 버틀러가 유명한 젠더이론가인 사실을 몰랐을 때 이 영상을 보고 매료되었었어요. 제 번역은 허접하니까 영상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버틀러의 주장을 퍼 오면,

http://minbyun.org/newsletter/20131115/images/2013_sub05.pdf
*   *   *(인용시작)
[버틀러가 발언에 대한 국가규제를 반대하는 이유]  버틀러는 언어적 성희롱 등, 혐오발언(hate speech)에 대한 국가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버틀러는 젠더라는 주체의 보편성이 허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젠더는 역사적 담론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른바 젠더의 ‘수행성’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젠더가 존재(being)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행함(doing)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한다. ‘행함’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어오는 과정이므로, 여기에서 생겨나는 행위자(doer)의 정체성이란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이것은 젠더 정체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발화 주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버틀러에는 발화의 주체 역시 반복적으로 구성된 역사적 담론에서 가변적으로 끊임없이 탄생한다. 그러니까 혐오발화의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발화는 말하는 순간 화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무관한 의미를 갖게 되며, 그 의미 역시 과거, 현재, 미래의 맥락에 놓이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성희롱에 대해서 처벌하는 것은 ‘발화 주체’를 벌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아니라, 문제의 효과이자 결과물을 처벌하는 것이 된다. 화자를 떠난 발화는 사회의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그 의미가 재구성된다. 그렇다면 설사 어떤 발화가 성희롱의 의도로 행해졌다 하더라도 화자를 떠난 그 발화는 그 의미가 끊임없이 재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버틀러의 말을 빌리자면, “텍스트가 한번 행위한다면, 다시 행위할 수 있고, 그 이전의 행위에 반해 다시 행위할 수 있다. 이것은 수행성과 정의 대안적 독해로서의 재의미부여(resignification)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혐오 발언는 발화자가 청자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반박하는 가운데에서 그 의미가 재창조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그러한 가운데에서 초기에 발화자의 의도에 담긴 ‘해악’은 스스로 치유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어떤 발화를 규제한다는 것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수용가능한 발화가 될지 아닐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을 미리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그 발화의 문제점에 대한 해석권한과 처벌권한을 독점하는 것은 발화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할 권한을 전적으로 국가에 넘겨주는 일이 되어 버린다. 법적 해결은 문제가 담론에서 자율적으로 치유될 가능성을 오히려 봉쇄하고, 국가의 규율권력의 힘을 증가/확대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권리와 권력을 축소시킨다. 즉, 법원이 판결로서 문제를 특정한 의미로 전환하는 것은 “(법적) ‘결정’의 특별한 폭력”이다. 만약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이 어떤 유형의 언어가 성희롱을 성립시키는지 여부를 결정한다면, 이것은 국가에게 그것을 결정하는 규율권력을 남용하게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틀러는 “법의 한계”를 경고하고, 정치적 도구로서 법의 사용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버틀러가 모든 규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를 낳은 진정한 원인도 동시에 봐야 하며, 특히 그 문제해결의 권한을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는) 국가에게 넘겨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법에 의해 담론이 잘못 전유되어서는(misappropriation) 안되며, 대신 그 재전유(reappropriation)이 “보호된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때 그 결과는 더욱 바람직하고 민주적일 것이라는 게 버틀러의 주장이다.
*   *   *(인용 끝)

영상은 이렇게 어렵고 세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혐오발언에 관한 그녀의 주장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주는 에피소드가 나와요. 44초에서 시작해요. 지인과 길을 가는데 버스에 타고 있던 여고생일 법한 아이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며 'Are you a lesbian?'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그 아이는 질문이 무례한 줄 알았고 모욕의 의중을 담고 뱉은 말이었죠. 주디가 그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Yes, I am'이라고 대응하자 그 아이가 흠칫 놀라요.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재미있게 목격하게 되는 혐오언어의 해체를 보여줘요. 'Are you a lesbian?'이라는 표현 자체는 발화자의 의중 속에서는 모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이 언어가 다수의 청자에게 던져졌을 때 발화자의 의중을 일관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의중이 무엇이었든 그 의중조차도 해체가 돼요. 주디가 여고생의 말에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에는 아이의 발언은 혐오에 힘을 싣게 돼요. 덩달아 아이는 혐오발언자가 되고요. 반면에 주디가 'Yes, I am'하고 눈 똑바로 뜨고 되받아치는 순간 이 장면을 목도하는 이들에게는 아이의 stupidity가 더 부각될 거예요. 그리고 아이 자신은 혐오발언자라고 낙인찍히는 것보다는 형량이 덜한 철없는 십대라는 정체성이 부여되고요. 이와 같이 혐오발언이라는 건 그것이 발화자를 떠났을 때 중구난방으로 해체되기 때문에 그걸 특정하고 정의내려서 국가가 형벌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 주디 버틀러의 주장인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다른 곳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주디는 이런 예도 들어요. queer라는 말은 원래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뉘앙스를 담는 말이었어요. 이걸 그네들이 주도적으로 사용해서 queer festival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LGBT가치를 해치는 일이 없어졌듯 가시적인 언어정복을 이루어냈어요. 이건 특정혐오언어의 권력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언어의 권력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복시킨 거예요. 역설적인 현상인데 언어가 이렇게 쉽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건 언어권력이란 게 그만큼 작동하기 때문일 거예요.

언어권력이라고 하면 마치 그걸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67095&page=2 피지알에서 스까드립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읽었어요. 그치만 이런 의식화는 오히려 일상의 언어에 혐오를 실어주는 일인 것 같아요. 레즈비언이냐고 묻는 철없는 십대아이에게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랄까요. 저런 게시물은 일개 stupid한 글일 뿐이에요. 조심해야할 가치가 전혀 없어요. '태일하다'라는 워마드의 신조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 신조어를 만들어 혐오를 생산해내겠다는 얄팍한 부심이 정말 stupid하고 한심한 거예요. 온라인에 자신의 모습을 그와 같은 흔적으로 남겨보겠다고 작심한 그 처자는 인간으로서 매우 무가치하고 형편없어요. 그 처자를 같이 증오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옹호받고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주디가 여고생을 증오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일 거예요. stupidity에 먹이를 주면 안돼요. 그가 고발을 당하면 법의 응징을 감당해야 할 일일 것이고(주디는 혐오발언에 대한 국가개입에 무조건적인 반대입장은 아니에요.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해요) 우리는 스까묵자란 말이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끼리의 일상언어를 즐겨야 할 거예요. 맨밥에 고추장, 참기름만 넣고 스까서 김에 싸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 카테고리를 철학/종교라고 해놓으니 정말 민망하군요. 저는 주디 버틀러의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영상 하나에 크게 매료되었고 링크 몇 개 읽어봤을 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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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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