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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9/06 04:02:38
Name   눈부심
Subject   극과 극: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과 탈북자여성들
어제 한 이슈에 관한 기사와 영상을 집중적으로 봤는데 미국 리버럴들 중 Social Justice Warriors(SJW, 사회정의용사들)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있어요. 정치적 올바름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대학의 교정에서는 교수, 학생들이 지나친 자기검열을 강요당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런 경향은 미국 아카데미아에서 근래 2년 사이에 급작스럽게 일어난 현상인데 많은 예들이 있죠.

1.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는 리버럴 사회학자인데 수업 중에 'disgusting'이라는 말을 사용했었죠. 혐오감이 드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가르치던 영상자료에서 자기 여동생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disgusting하다는 멘트가 나왔는데 이를 재언급하면서 자신의 경우 남자와 남자 사이의 성관계가 개인적으로 disgusting한 느낌은 있지만 그 자체로 wrong한 건 아니라는 말을 하니 학생이 교수더러 호모포비아라고 태클을 건 거예요. 학생이 교내 평등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해서 거진 한 달을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간 낭비를 해야했죠. 물론 학교측이 이 교수를 해고할 리는 만무했으나 얼른 불을 끄고 수업에 몰두해야 하는 그로서는 사과를 했다고 해요. 이 교수는 정치적으로 대표적인 리버럴 성향의 교수이고 LGBT의 인권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목소리를 높힌 교수이기도 하지만 그의 업적과는 하등 상관없이 수업 시간 중의 발언 하나로 꽤 골치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2. 스탠딩 코메디언들이 대학가에서 개그쇼를 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와졌다고 성토하던 기사도 있었어요. 뭔말을 하면 정치적 올바름에 위배된다고 불편함을 표시하는 밀레니엄 세대때문에 개그를 못하겠다고 불평들이 많았어요.

3. 브라운 대학의 초청토론회 이야기예요. 대학 교내 성폭행문제에 관한 토론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페미니스트인 제시카 발렌티와 자유지상주의자 웬디 맥엘로이가 토론자였어요. 웬디 멕엘로이는 '성폭행 문화(rape culture)'라는 표현을 용인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일반화가 심하다고 생각한 듯요). 그래서 이런 사람이 토론회에 참여하는 건 성폭행피해자들의 피해경험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 한 대학 상급생 캐서린 바이런은 학교행정부와 소통해서 토론장 옆에 방 하나, 일명 'safe space'를 확보해놓고 과자, 색칠하는 책, 잔잔한 음악, 장난감 찰흙 등을 비치해 두었죠. 토론을 경청하다가 내용에 자극을 받거나 트라우마 때문에 견디기 힘든 누구라도 방에 들러 마음을 진정시키는 곳이었어요.  

4. 어떤 조교는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기업이 사람을 산다'라는 표현을 했더니 학생이 'You can't say that.'이라며 태클을 걸더라는군요. 사람을 물건 사듯  표현했다고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수업을 이어가야하니 사과를 했다는군요.

5. 2016년 3월 기사인데 시애틀대학의 인문대 학장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생이 (인종, 문화적으로 다양한 독서를 접하도록)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흑인 작가 Dick Gregory의 'Niggger'를 추천해 줬어요. 그리고 왜 제목이 nigger인지 설명을 해줬죠. 사람들이 그 말을 할 때마다 자기 책 선전이 된다고 작가가 말했대요. 그런데 학생은 학장이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 상처를 주었다며 문제를 제기해서 학장은 직무수행을 정지당했어요. 학생들은 파면을 요구했구요. 심지어 작가 그레고리가 학장 편을 들어주었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7. 또 하나 인상적인 건 미국에서는 성폭력피해자를 단순히 victim이라고 하지만은 않고 '생존자(survivor)'라는 표현을 종종 써요. 부유층학생들이 다니는 세인트 조지 고등학교에서 후배를 많이 '따 먹는' 상급생 남학생이 추앙을 받는 못된 인습이 있었는데 이 게임에 걸려든 당시 미국나이 15세의 여학생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남학생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기소를 한 일이 있었어요. 멋진 애가 옥상으로 가자고 하니 순진한 여학생도 좋아서 따라갔다가 키스도 하고.. 그런데 진도가 나가자 강압적인 접근에 no라고 의사표현을 했다고 하는군요. 여학생은 그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남학생은 처음에 서로 웃으면서 동의한 관계였으며 인터코스는 없었다고 주장했어요. 옷에서 정자가 채취되었고 질 안에선 남학생의 DNA가 발견되지는 않았는데 여학생은 자신은 분명히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상태, 남학생은 좀 세게 나가긴 나간 것 같은데 인터코스는 없었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 사정은 한 것 같다라고 주장. 그 일이 있고 난 후 남자 아이는 사방 여학생을 '따 먹었다', 즉 인터코스가 이루어졌다고 당당하게 소문내고 다녔죠. 결국 법원에서는 중징계는 면해 주어(여학생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건 아닌거죠) 최고 1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될 일은 없었지만 그 보다 경중이 약한 sexual misdemeaner로 유죄가 내려지고 남학생은 제한적인 가택구금형을 받으나 시간을 어겨 감옥에 가게 되죠. 성범죄자로도 등록된다고 해요.

이 예는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과는 상관 없이 생존자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가지고 와 봤어요. 미국의 언론과 제도가 일제히 성폭력사건을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대하는지 잘 알 수 있어요. 웃다가 시작한 관계도 중간에 no하면 두 손 들고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분위기 있잖아요. 그 일이 있은 후 여학생이 학교에 복귀하자 남학생들이 자기랑 눈을 맞추려 들지도 않고 피하는데다 어떤 경우엔 성폭행사건을 두고 언급하는 듯한 뉘앙스로 애들이 시시덕거리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부모는 학교를 고소한 상태고 학교는 꼼짝없이 누를 끼쳐 유감이라는 입장의 성명서를 냈고요. 이 모든 과정을 언론이 전하는 태도는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적이에요.

다시 미국의 사회정의용사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미국대학에는 Affirmative Action이라고 하는 소수인종우대정책이 있는데 이 말을 꺼내기가 매우 조심스럽다고 하는군요. 수업이 강간, 자살, 등의 내용을 표함하고 있으면 성폭력피해자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을 법한 전쟁참전용사들이 들었을 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하여 말하기가 불편해지고 소수인종이나 LGBT에 대해 종종 언급하는 사회학 수업에서도 자기검열을 하는 분위기가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있어요. microaggression 때문에요. 아주 미미하고 사소한 것에서까지 트라우마를 느낀다고 호소하는 이들을 두고 어쩌지 못하는 거죠. 아시안 학생에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을 때 예의가 아니라고 공감하는 영역도 microagrrresion이에요. '너는 미국사람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깔고 묻는 질문이니까요. 저도 이 질문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백인이 물으면 싫더라고요. 흥미로운 건 이런 microaggression에 대한 공감은 평등주의가치가 많이 지켜지는 환경일수록 더 두드러진대요. 특히나 이런 microaggression에 행정적,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곳일수록 더 그렇대요. 예일대학이나 암허스트, 브라운 대학등은 매우 진보적인 가치를 내거는 대학들인데 이런 진보가치가 잘 구현된 곳일 수록 microaggression이 횡횡한다고 해요. 극진보가 이런 목소리를 드높이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니 조용하던 소수의 우파들도 덩달아 이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하죠. 그치만 대부분 리버럴성향이 깐깐한 정치적 올바름을 도덕의 잣대로 휘두르면서 지젝이 말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 전체주의를 잉태시켰다고요.

옛날에도 불편함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옛날에는 '너 그렇게 말하면 나빠'에서 그치는 수준이었다면 요즘에는 '너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상처받았다'라고 적극적인 피해언급을 하는 점이 달라요. 이런 microaggression을 동반한 트라우마증상은 미국의 밀레니엄세대가 자라온 환경에 많이 기인하다고 해요. 1970년대 접어들며 일련의 아동유괴범죄가 당시 득세한 케이블티비를 통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면서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요. 그 때부터 아이들에 대한 편집증적인 부모동반이 법제화되고 아이들은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나기 시작해요. 이런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온갖 세상의 언어적 풍파를 견딜 힘이 기성세대보다 부족했던 거죠. 누가 상처주는 말을 하면 부모가 알아서 차단을 해주었으니 이제는 대학이 그걸 해주길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예요. 그리고 혼자 끙끙 앓지 않아도 시스템이 존재하므로 손쉽게 문제제기를 해요. 그러면 학교입장에선 마지못해 대응을 하는 편이고요. 그런데 교수입장에선 학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고려하며 사회학이든, 우생학 역사가 버젓이 있는 과학이든 무언가를 언급한다는 건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에요.

최근 시카고대학은 총장이 신입생을 위한 알림장에서 triggar warning과 safe space 확보하기 위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일은 있어선 안될 것이라고 못박았어요. triggar warning은 이런 거예요. 교수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만약 영상자료를 보여줄 일이 있는데 내용이 적나라해서 누군가에 불편함을 느낄만 하면 미리 언질을 주는 거요. 비디오영상 도입부문에서 많이 눈에 띄는 경고같은 거요. safe space라는 말도 참 애매모호한데 누구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견해(viewpoint)'로 인해 내가 정신적으로 피해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된 곳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이 편지가 좀 러프하게 쓰여져서 마냥 공감을 사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편지가 나오게 된 경위가 바로 청자의 microaggression으로 인한 화자의 자기검열, 위축이 학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저는 오히려 triggar warning이 토론의 자유를 더 활발히 보장해 줄 거 같단 생각인데 여튼 찬반양론이 뜨거운 상태입니다.

이런 저런 기사와 영상을 접하고 나서 탈북자여성들의 수다를 듣는데 부모를 북한에 두고 홀로 탈북한 젊은 처자, 아빠만 두고 엄마와 함께 탈출해온 소녀 등.. 그들의 트라우마가 잠시 언급되었었어요. 아마도 그들은 대중에게서 '어찌 너만 살겠다고 부모를 버리고 탈북을 할 수가 있느냐, (결국 아빠도 모시고 오게 되었지만) 어찌 아빠를 두고 모녀끼리만 빠져나올 수 있느냐'란 비난을 많이 받았던 듯해요. 그런데 과연 그들이 지금 서로 모여 웃고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한다고 해서 그런 트라우마는 아랑곳 않고 맘편히만 지내왔을까요. 스스로 북한여자들이 드세다고 입을 모아 얘기하는데 그 드셈은 트라우마를 누구도 보듬어주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이자 진화더군요. 남자들은 대부분 백수에 여자들이 억척같이 일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그 치열한 드셈이 특별하게 각인됐었어요. 그들의 초인적인 정신력은 무감각이 아니라 압도하는 트라우마자체였어요.  


http://reason.com/blog/2016/06/03/seattle-u-dean-suspended-for-recommendin
http://www.nytimes.com/2015/03/22/opinion/sunday/judith-shulevitz-hiding-from-scary-ideas.html?_r=0
https://www.youtube.com/watch?v=K92rOsjyL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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