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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9/27 17:21:56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씨 만난 썰 |
보고드립니다. 약속했던대로 데보라 스미스씨를 만나고 왔어용. 행사란 게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저희 과 건물의 작은 회의실에서 13~5명이서 둘러 앉아서 문제의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북토크라나. 전 데보라가 무슨 발표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다 같이 책이야기만 하더라구요. 전.... 문제의 책을... [안] 읽고 가서... 읽은 척 하느라 진땀을 뺐지요 =_= 현장엔 의외로 한국인 수가 적었고 (4명?) 그나마도 대부분 데보라는 전형적인 새침한 영국인 느낌이었어요. 아 이걸 뭐라 표현을 못하겠는데 영국인 군상 중에 되게 내성적이고 새침새침한 타입이 있어요. 데보라는 딱 그 타입의 화신 같은 느낌. 게다가 약간 긴장했는지 1시간 30분간 계속 자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았지요. 덕분에 정면에 앉은 저도 1시간 30분간 계속 그게 신경이 쓰여서 스크류바가 된 기분을 느꼈어요. 1. 번역할 책을 어떻게 고르는가. 데보라는 잉국 문학계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굉장히 낯선 언어권에서 책을 찝어왔기 때문에 자기가 번역할 책을 자기가 고를 수 있었대요. 불어나 독어 같은 경우는 국제에이젼트들이 쫙 확립되어있어서 대부분 출판사에서 번역할 책을 고르고 역자를 찾아서 계약한대요. 자기는 그냥 한국의 "스테디 셀러" 코너에 있던 이 책을 읽어보고 느낌이 좋아서 했다고.. 또 번역 시작 전에 확인해보니 <채식주의자>가 이미 중국/일본/베트남 등지에 번역출간되었을 뿐더러 심지어 폴란드/아르헨티나에서도 출간되어있었대요. 그리고 대개 좋은 평가를 받았구요. 그래서 해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고 해요. 그 외에 배수아, 안도현 같은 분들 작품도 번역한 모양인데 안도현의 경우는 이거 좀 해달라고 의뢰가 들어와서 한 거라고 해요. 2. 저자와의 컨택은 얼마나 자주? 채식주의자의 경우는 초고가 거의 다 되고 나서야 한강씨랑 컨택이 됐대요. 한강씨가 번역본을 다 읽어보고 몇 군대 의미나 뉘앙스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살짝 수정했던 걸 제외하곤 별다른 터치(?) 같은 건 없었다고 해요. 역자로서 원저자와 컨택하는 게 끔찍한 일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행히도 한강씨는 매우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또 최근에 5.18을 소재로 한 한강씨의 작품인 <소년이 온다>를 영문명 <휴먼 액츠(Human Acts)> 3. 번역할 때 한국적인 소재나 맥락을 처리하는 법에 대하여. 한 질문자가 하지만 근간인 <휴먼 액츠(Human Acts)> 여기서 자연스럽게 방언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어요. 누군가가 한-일 간에 번역을 할경우 영남방언을 간사이벤으로, 간사이벤을 영남방언으로 번역하는 경향을 언급하면서 혹시 너도 그런 방식에 찬성하느냐구 물었지요. 데보라는 한-일 간엔 그게 어떻게 가능할런지는 몰라도 자기가 보기에 한-영 간엔 안 될 것 같았대요. 80년대 한국 농민이 구수한 뉴카슬 억양을 쓰는 걸로 묘사하면 독자들이 다들 확 깨버릴 거래요. 그래서 자기는 그냥 말의 톤에 차이를 줬대요. 작중에서 전라도 방언은 가족의 언어, 친밀한 언어요 서울 방언은 포멀한 언어래요. 그래서 전라도 방언은 일부러 온정적인 구어체 (warm and colloquial)로 했다고 합니다. 4. 상 받아서 좋아? 사실 수상 유무와 무관하게 책은 책이고 그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 지는 않고 많이 팔려서 기분 좋대요 ㅎㅎ 얼마나 팔렸냐니까 정확한 판매부수는 연말에 통장에 찍혀봐야 안대요. 출판사에 따르면 초판을 2천쇄였나 2천5백쇄 정도만 찍었는데 수상소식 듣자마자 바로 6만부를 더찍었대요. 열라 부러운 것.. 5. 독자들의 반응은? 최초의 리뷰는 이 책을 한국적 특성(Koreanness) 속에서 파악하려는 거였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특히 맨부커 수상 이후엔 그런 리뷰들을 공박하면서 보편주의 (Universalism)에 가까운 리뷰가 많이 나왔대요. 전부다 알진 못하지만 영국 독자들은 대개 페미니즘 소설로 받아들인대요. 미국은... 아시잖아요 걔들이 좀 피상적(superficial)인거 (좌중 낄낄낄). 미국에서 나온 광고문구, 서문(preamble) 같은 거 보면 파인다이닝(Fine dining) 이라느니 글루텐프리 컵케잌(Glutenfree cupcake) 라느니... (좌중 깔깔깔 아이고 배야). 그 외엔 작중 주인공의 행보가 약간 수동적인데,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싸돌아다니는 영미식 주인공관(agency)에 익숙한 독자들이 좀 답답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대요. 특히 결말에 대해선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 될 것 같은데 후속작 없냐고 물어온 사람도 있었구요. 6. 왜 한국이었는지 한국 정부/민간 단체에서 펀딩을 많이 해줘서 -_-;; 또 우연히 2012년 런던 한국 북페어 같은 데 갔다가 붙잡혀서;; 7. 한국어 배울 때 어려웠던 경험에 대해 자긴 심지어 지금도 한국어 회화는 못한대요. 자기한테 이건 번역용 언어고 그래서 딱 그만큼이라고 합니다. 얼마후 한강씨와 같이 미국 어디에 초청받아서 가게 되었는데 주최측에서 자기한테 한강씨 통역을 부탁한다고해서 요즘 걱정이 많대요. 8. 일부러 여성 작가들만 골랐나? 꼭 그런 건 아니래요. 그냥 최근 한국 문단이 여성작가 강세가 아닌가 싶대요. 이상문학상 등 대개의 문학상 수상자를 보면 여성이 더 많다는 인상을 받았고, 특히 현재 한국 문학계의 가장 큰 특징인 단편(Short stories)을 여성들이 잘 써내고 있어서 그런가 어떤가 모르겠대요. 일전에 한국에 갔을 때 문학동네에서 낸 20세기 한국문학선 같은 걸 봤는데 책 측면에 저자 얼굴이 주루룩 박혀있었대요. 쭉 보니 다 남자 얼굴만 나오다가 여자 하나 쏙 나오고 (팍굥리) 그런 식이더래요. 그래서 아 한국 문단에서 여성 강세는 최근 일이구나 하는 걸 알았다고.. 9. 좋아하는 영미 작가나 작풍은? 버지니아 울프, 모비딕. 생각해보니 자기는 번역문학을 더 많이 읽고 자랐던 것 같대요. 요즘 작가 중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이가 별로 없대요. <위대한 유산> 같은 건 좋았는데 다른 디킨슨 작품은 싫어하고. 총평: 북토크가 끝난 후 저녁식사자리가 예약되어있었는데 데보라는 다른 일이 있다고 가버렸어요. 무슨 일인가하니 마침 오늘 내일 양일간 요 근처에서 세계한류학회 같은 게 열린대요. 그래서 거기 가서 뭔가 해야한다고 총총 사라졌어요. 나머지 인원들이 모여서 저녁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번역자가 존중받는 시대가 온 건 좋긴 한데 과연 이정도로 존중받을 정도인지 의문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한 분이 "내 학부시절 지도교수가 나츠메 소세키의 노벨상 수상작 번역자셨어. 하지만 그 분 이름이 뭐시깽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당시엔 번역자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그분이 막 열내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슈퍼스타 취급을 받다니 놀랍네. 역자를 초대해서 북토크도 하고. 솔직히 난 아직 적응이 안 돼" ㅇㅇ 모두 동의했어요. 하지만 뭐 데보라 덕분에 한국 국립도서관에서 넉넉히 지원해준 돈으로 저녁밥 맛있게 먹었으니 개이득. 다들 고기를 배불리 먹고 웃으며 해산했답니다. (1차 오탈자 수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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