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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22 02:10:33
Name   눈시
Subject   강화도가 무너지던 날
1636년 병자년 12월 12일, 그리도 걱정했던, 하지만 제발 오지 않길 바랐던 소식이 들어옵니다. 청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의주부윤 임경업의 장계였죠. 이 정도야 뭐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다음 날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가 왔는데 적이 안주를 지났다는 거였습니다. 그 다음 날에는 더 어마어마한 소식이 오죠. 개성유수의 장계였는데, 개성을 지났다는 겁니다. 난리 났습니다. 아니 무슨 축지법이라도 쓴답니까.

한시가 급했습니다. 우선 나이 많았던 원임(퇴직한 관리) 대신 윤방과 김상용에게 종묘사직의 신주를 챙겨 강화도로 가게 했고, 세자빈과 원손(세손이 되기 전), 봉림, 인평 두 대군 역시 강화도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들을 호위하고 강화도를 지킬 검찰사를 뽑습니다.

"경징이 다른 재능은 없으나 적을 막고 성을 지키는 일에 어찌 감히 그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당시 한성판윤이던 김경징이 추천됐고, 인조는 김류에게 어떤지를 묻습니다. 김경징이 김류의 아들이었거든요. 할아버지는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김여물이요 아버지는 반정의 일등공신이고 그 자신도 2등공신이니 맡길만 하다 생각했을 겁니다. 김류도 그렇게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으니...

이후 인조 자신도 강화도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적이 서울 근교까지 왔다는 말에 놀라서 남한산성으로 갔고, 거기서 다시 강화도로 가려했지만 눈보라로 돌아오게 되죠. 이후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병자호란 기간 동안 참 허무하고 어이 없는 일들만 일어납니다. 그 중에서 오늘 얘기할 것은 강화도의 함락이죠.

김경징이 강화도로 들어갈 때 어머니와 아내는 가마 태워서 갔고, 짐이 50바리나 되어서 병자록에서는 '경기도의 인부와 말이 거의 다 동원되었다'고 적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 계집종이 말의 실수로 땅에 떨어지자 마부를 길거리에서 곤장을 때렸다고 하죠.

적이 서울까지 오자 양반들도 강화도로 피난가게 됩니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죠. 급한 피난길에 배는 많았겠습니까. 김경징은 그 배를 자기 가족과 친구들만 태우고 다른 사람들은 못 가게 합니다. 어이가 없는 것이 세자빈이 왔는데도 배가 없어서 이틀이나 추위에 떨엇다느 것이죠.

"김경징아, 김경징아, 네가 차마 이런 짓을 하느냐!"

이를 강화유수 장신이 듣고 김경징에게 말하고 나서야 겨우 배에 탔다고 하죠.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이야 뭐 뻔했습니다. 청군이 그들을 휩쓸었죠.

강화도에서는 지휘권 다툼도 벌어집니다. 김경징이 강화유수 장신이 하는 걸 사사건건 제지한 거죠. 남한산성에도 이 말이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인조는 김경징이 장신을 지휘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럴 땐 지휘권을 일원화해야 되는데 말이죠. -_-; 조선의 문제점입니다. 일단 검찰사로 특별히 파견된 것이나 품계로 보나 (강화유수는 종2품, 김경징이 전에 했던 한성판윤이 정2품이니 김경징이 위네요) 김경징이 우위인 것 같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이 장신도 인조반정의 3등공신이고 형 장유는 2등공신이니 역시 끗발이 있었습니다. 아 물론 아빠가 1등공신에 자기도 2등공신인 김경징에 비했겠습니까마는. 어쨌든 이 장신도 잘난 놈은 아닙니다. 김경징이랑 똑같은 놈이죠.

"아버지는 체찰사요 아들은 검찰사니 국가의 큰일을 처리할 자가 우리 집이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술 쳐먹고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면서 대군이나 대신들 (특히 김상용)이 하는 말도 '감히 나를 지휘하려고 하냐'면서 무시했죠. 있는 물자는 다 자기 주변사람들이랑 쳐먹었고, 허구헌날 술이나 마셔댔습니다.

부검찰사로 온 이민구도 영 아니었습니다. -_-; 충청 감사가 전사했다는 소식에 이민구를 보내게 했지만 이민구는 강화도에 있으려고 했죠. 그의 백을 살펴보자면 형 이성구가 병조 판서였고 나중에 영의정까지 오른 걸 보면 큰 신임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처삼촌이 강화도에 같이 온 윤방이었구요. 김경징도 이걸 허락하지 않아서 김상용이 김류를 거론하면서 꾸짖었는데, 이랬답니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 -_-; 안 되겠다 싶어 이민구가 출발하려 했는데 추우니까 술 가져가겠다면서 술을 데우겠다면서 시간을 끌고, 처자식을 데리고 가려고 했다고 합니다. 나중의 일을 보면 섬을 떠나지 않은 모양이구요.

강화도에도 조정의 지원요청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김경징이나 장신이나 강화도를 떠날 마음이 없었죠. 이 때 장신은 주사(수군)대장을 겸하게 되는데 경기도 배는 광진보에만 두고 지원 온 충청수사 강진흔의 배만 여기저기 배치했죠. 이런 상황인데 방비고 첩보고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다 누가 첩보를 하나 가져옵니다. 적들이 건너편 강에서 집을 헐어 배를 만들고 있다는 거였죠. 김경징은 크게 웃으면서 "강이 아직 단단하게 얼었는데 육지에 배가 다닐 수 있겠느냐?"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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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맘 편히 있었던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강화도는 몽골도 끝내 공격 못 했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도 일본군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 오랑캐 따위가... 뭐 이런 거였겠죠. 거기다 만주에서 배를 끌고 온 것도 아니고 건너편의 배는 조선군이 다 썼고, 강에 있는 배들은 강이 얼어 있었구요. 이러니 어찌 오겠냐 했겠지만...

만주족은 물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여진족도 해적질을 했고, 울릉도가 크게 털린 적이 있었죠. 물론 이 때 청이 물에 강한 건 아니라서 자기네 코 앞의 가도의 명군도 못 잡고 있었지만요. 최소한 몽골처럼 물 자체를 두려워한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 때 청에는 항복한 명의 수군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던 모문룡 휘하의 수군들 말이죠. 그리고 이들이 포함된 도르곤의 2만 우익군은 오직 강화도 함락만을 위해 달려온 병력이었구요.

큰 배는 없었지만 물에 익숙한 병력이 있었고, 홍이포가 있었습니다. 강화도는 그리 멀지 않았죠. 강 건너편에서 쏴도 강화도를 직접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경징과 장신은 이들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죠.

1월 21일 밤, 통진 가수(임시수령) 김정이 보고해 옵니다. 적이 낙타와 동차에 배를 싣고 갑곶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죠. 헛소리라고 죽이려고 했지만 곧 갑곶에서도 보고가 들어옵니다. 그제야 급히 방어에 나서려고 했지만... 준비가 됐을 리가 있나요. 다음 날 아침에 직접 2, 3백명 정도의 병력과 함께 나가는데 모두 맨주먹이었습니다. 왜 무기를 안 들고 가냐 하니까 이런 소리나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것인데, 내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쓰겠느냐." -_-;

훗날의 효종인 봉림대군이 직접 김경징에게 갔는데 병력이 너무 없는 것을 봤고, 김경징은 성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상륙하는 적을 막는 건 극소수 뿐, 방어에 좋은 강화해협을 포기하고 성으로 가는 것에 반대가 적지 않았고 봉림대군도 직접 나서며 나루터를 방어하자고 했습니다만... 어디 말을 듣겠습니까. 마침 반대편에서 쏜 홍이포의 포탄들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적이 온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거였겠죠. 그렇다고 성이라도 지켰으면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한편 장신은 소식을 듣고 급히 갑곶으로 갔지만, 마침 조금이라 물이 빠지고 있었고, 밤새 노를 저어 가도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갑곶을 방어하던 것은 강진흔의 배 7척이었죠. 판옥선은 없었고, 임란 후에 주로 쓰인 20~40인승의 병선이라는 작은 배였습니다. 한편 적들은 한 배에 50, 60명씩 탄 뗏목-_- 등 작은 배 100여척에 타고 공격해 왔습니다. 강진흔의 병력은 적선 2, 3척을 격파했지만 조선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죠. 그렇게 막아내던 중 마침내 장신의 병력이 도착하고 선봉 정연이 적선 1척을 깨뜨리기도 했지만... 곧바로 물러나고 맙니다.

"네가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서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너를 베어 죽이겠다!"

강진흔의 병력은 병선 7척, 장신의 병력은 수가 나와 있지 않지만 '많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일단 장신의 병력이 주력일테니 강진흔보단 많았겠죠. 하지만 이들은 그냥 도망가 버립니다. 그리고 김경징과 이민구도 이 배를 타고 같이 도망가죠. 싸울 땐 싸우더니만 도망갈 땐 같이 도망가네요.

강진흔의 병력도 세에 밀려서 후퇴한 모양이고, 적선 1척이 강화도에 상륙합니다. 아군이 공격하지 않자 본진에 알렸고, 대규모 상륙이 시작되죠. 이 때 중군 황선신, 천총 강홍업, 초관 정재신 등이 싸우다 전사합니다. 또한 김경징, 장신이 도망가자 천총 구일원은 이를 꾸짖으며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죠. 이 정도가 저항의 전부였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성을 지키려 했고, 세자빈도 성에서 나가지 못 하게 합니다. 세자빈이 간청해도 듣지 않다가 내관 김인 등이 원손만이라도 탈출하게 해 달라고 빌어서 빠져나갔고, 다행히 배를 타고 당진으로 도망갔죠. 성에서 못 나가게 한 이유가 여기 있을 건데, 원손이 성을 나갔다는 소식에 성을 빠져나가는 이들 역시 있었습니다.

봉림대군과 김상용을 중심으로 약간의 저항을 한 모양입니다만, 역시 별다를 건 없었습니다. 적들은 성을 포위하고 공격했고, 조선군의 저항은 너무도 약했죠. 이후 청군은 윤방을 불러 성을 열게 했구요. 살육이 없을 거라 약속한 모양입니다만 그런 거 없었죠. 성 안에 들이닥친 청군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합니다. 강화를 주도하던 최명길의 가족만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죠.

이렇게 강화도는 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손자와 함께 불길에 몸을 던진 김상용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자결합니다. 오랑캐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며 자결한 여인들도 있었구요. 세자빈도 칼로 자결하려 했지만 막혔죠. 이후의 고생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거기서 죽는 게 나았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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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 식량부족과 사기저하로 오늘내일하던 상황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더 버티려면 버틸수도 있었죠. 청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치밀했던 작전 중에 단 하나 틀어진 것이 바로 남한산성의 방어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강화도 함락은 그런 마지막 기대마저 꺾어버립니다. 세자빈과 대군들이 있던 강화도는 왕이 있던 남한산성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곳이었죠. 그 곳이 그렇게 함락되고, 대군들과 세자빈이 포로가 돼 버린 겁니다. 거기다 강화도면 안전할 거라는 기대도 사라져 버렸구요.

강화도 함락 소식이 전해진 26일, 인조는 성을 나가기를 결심합니다. 4일 후 마침내 성을 나가서 삼배구고두를 하게 되죠.

병자호란의 일들 중 한숨이 안 나오는 게 없습니다만, 이 강화도의 함락은 그 중 최고라 할 만합니다. 이 정도면 최소 원균급이고 원균보다 더 한 수준입니다. 김자점을 필두로 인조의 인사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보여주구요.

당연히 이들에 대한 처벌요구가 빗발칩니다. 도저히 실드를 칠 수 있을 수준이 아니었으니까요. 대군들과 세자빈을 버리고 도망쳤으니까요. 김경징은 징징 울면서 아빠한테 살려달라고 한 모양입니다만, 1등공신 김류의 외아들이라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손자라도 살리려면 자식을 버려야 했죠.

+) 이 손자 김진표도 자기 할머니와 엄마한테 자결을 강요했고, 죽게 만듭니다.

그래도 공신이라고 목이 잘리는 벌은 받지 않습니다. 장신은 형 장유의 집에서 자살했고, 김경징도 사약을 받죠. 죽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지만 조선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해 주는 죽음이었습니다. 정작 열심히 싸운 강진흔은 참형을 당했고 왜 진짜 죄인들인 김경징과 장신은 편히 죽게 했냐고 까입니다. 그 외에 이민구는 귀양에 그치고 '이민구 안 죽으면 김경징이 억울해 한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만 이후 나름 벼슬살이를 하고 살았습니다. 따로 살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위의 충청 감사 일을 생각하면 이미 강화도에 없었던 걸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기록들에는 같이 도망간 걸로 나오네요.

이후 강화도의 방비는 더욱 강화됩니다. 어쨌든 적이 쳐들어올 때 도망가기에 가장 좋은 곳은 강화도였으니까요. 흥미로운 건 조선 말에 가면 그렇게 안전한 것 같던 강화도가 최전선이 됐다는 것이겠죠. 적들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이들로 바뀌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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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나 BGM 추가는 아침에 생각해볼게요.
임진왜란은 장군님이라도 있고 이런저런 승리라도 있지 호란은 정말 축 처지는 얘기들 뿐이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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