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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1/27 02:54:40 |
Name | 집정관 |
File #1 | 글귀.jpg (2.38 MB), Download : 7 |
Subject |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그녀로부터 영화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다음에 영화나 보자."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말인 "다음에 밥이나 한번 먹자."와 같은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 구질구질하게 "네가 심심하면 불러줘. 난 그런 역할으로도 만족하니까"를 듬뿍 품은 호구성 멘트였다. 당시 연인끼리 보는 영화 1위였던 특정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로맨스 영화를 보자고 한다. 오랜만에 만날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기에 영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저번에 만났을 때 높은 구두를 신고 와서 발 아픈데 구두 신지 말라고 오지랖을 부렸었는데 이번에는 운동화를 신고 왔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평소에 이 정도의 병신은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영화 보기 전 같이 저녁을 먹을 때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은 손이라도 잡아야 하나 같은 온갖 생각을 하느라 어떻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횡설수설하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술 한잔하자 했지만 다음날 개강이란다. 대학을 가본 적이 없어서 개강 날 뭘 하는지도 모르는 병신이었던 난 그녀를 그렇게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나도 그녀와 잘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애써 그걸 외면했었다. 쥐뿔도 없어서 자신감도 없었고 자존감도 없었다.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누구로부터 상처받을지 고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9일은 그녀의 생일이다. 내 생일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10년 넘게 기억해온 그녀의 생일. 생일 축하한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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