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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1/28 22:50:52
Name   눈시
Subject   러일전쟁 - 뤼순 때문에 나라가 망할 판

"귀관들의 협조와 조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관은 제독이 아닙니다."

마카로프가 전사한 후 알렉세예프가 사령관을 겸했다가 곧 참모장인 비트게프트에게 맡깁니다. 참모로서의 능력은 인정받지만, 실전경험도 없었고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자기 자신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자신은 어디까지나 새 사령관이 오기 전에 임시로 맡은 것 뿐이라구요. 이러니 더욱 방어적으로 나올수밖에요. 일본군과 붙으면 질 것이고, 항구와 함대를 보존하는 게 최선이라는 거였습니다.

+) 당시 스크리들로프라는 새로운 함대사령관이 임명됐지만, 뤼순으로 오지 못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습니다.

알렉세예프는 이걸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출항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라고 명령했죠.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요. 마침 6월이 되면서 개전 때 당했던 군함들의 수리가 완료됐습니다. 출항 날짜는 23일이었죠. 제발 일본군에 걸리지 말라 빌었지만... 출항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일본군의 기뢰를 제거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새벽에 출항했지만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낮, 일본군의 정찰대가 공격해 왔고, 저녁에는 본대가 길을 막습니다. 비트게프트는 싸울까 하다가 역시 수에 밀린다 싶어서 회항하죠. 피해는 돌아오다가 기뢰를 밟은 한 척 뿐이었지만, 역시 실망스러운 결과였습니다.

한편 일본군은 회항하는 적을 공격하다가 해안포에 수뢰정 3척이 당했고, 아군의 어뢰에 1척이 또 당합니다. 역시 공격은 힘들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거기에 러시아 함대가 언제든 다시 출항할 수 있다는 것, 곧 보급로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야 대함대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거였지만, 일본군에겐 있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였죠. 이러니 육군에 정식으로 뤼순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요.

알렉세예프는 계속 출항을 독촉했고, 비트게프트는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육군이 다가오면서 해군도 결정을 내리긴 해야 했죠. 육군을 바다에서 함포로 공격하기도 했지만 큰 영향은 주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육군이 대포를 배치해 함대를 공격하면서 더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육군의 포격이 닿지 않는 좁은 곳으로 옮겨야 했고, 항구의 시설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죠.

+) 뤼순 공격에서 육군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걸로 해군의 요청인 러시아 함대를 공격해 달라는 것을 완료했다고 봅니다.



함대가 내항에 가만히 있다가 요새의 함락과 함께 전멸하면 안 된다 vs 함대의 탈출은 뤼순의 함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며 밖으로 나가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이 대립했습니다. 결국 비트게프트는 죽을 수밖에 없는 걸 알지만 복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8월 10일 새벽, 태평양 함대는 출항합니다. 역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 연합함대에게 발각되죠.


대항해시대 4를 해보신 분이라면 익숙하겠죠

이 때 도고는 유명한 T자, 혹은 丁자 전법을 쓰려 했습니다. 적 대장선에 화력을 집중하는 거였죠. 하지만 거리도 멀었고 러시아군은 도망에 급급해서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평행선을 그리며 포격을 교환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추격전이 저녁까지 계속되었고, 양측의 피해도 누적돼 갔습니다. 그러던 중 18시 40분, 기함 체사레비치가 포탄 2발을 맞습니다.

이 일격으로 비트게프트를 비롯한 참모진들이 전사합니다. 러시아군은 지휘계통이 무너지면서 혼란에 빠졌고, 뿔뿔히 흩어집니다. 레트비잔이 충돌 공격까지 시도했지만 실패했구요. 이를 비롯한 전함 5척 등 함대의 절반 정도만이 뤼순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중립항까지 갔다가 억류되었죠. 아 노비크함은 독일령으로 가는 데 성공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다가 사할린 근처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좌초돼서 배를 뺏깁니다.

이래저래 마카로프가 살아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해전입니다. 비트게프트는 용맹은 인정받지만 지휘는 많이 부족했으니까요. 애초에 마카로프가 있었다면 무조건 도망친다 이상의 작전을 짜고 싸웠겠죠. 아예 대차게 한판 붙을수도 있었구요. 일본군은 이 때 전함이 4척밖에 없었으니까요. (아르헨티나에서 급히 2척을 사오고 있었죠) 이 때도 일본군의 운빨이 통한 걸수도 있습니다. 미카사는 22발이나 맞은 반면 체사레비치는 9발 맞고 지휘부가 전멸한 거였으니까요. 물론 비트게프트가 방어력이 약한 곳에서 지휘했고, 일본에선 시모세 화약을 이용한 신형 포탄을 썼으니 마냥 운은 아니었죠.

+) 시모세 화약은 관통력은 부족했지만 화력이 좋아서 장갑이 약한 곳이나 승무원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합니다. 꽤나 멋진 걸 만들었지만 자폭할 위험이 컸고, 일본의 공업능력이 약해서 대량생산은 힘들었다고 하네요

이후 태평양 함대는 규모도 크게 줄었고 수리도 하기 힘들어서 사실상 무력화됩니다. 병력과 남은 함포까지 육상으로 옮겨서 육지에서 함께 싸웠죠. 하지만 일본군은 적의 전력을 과대평가해서 육군에서 더 빨리 공격해주기를 요청합니다. 함대야 어떻든 뤼순항이 여전히 적의 손에 있다는 것 자체도 큰 문제였겠죠.

이 해전을 황해 해전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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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는 순양함 정도밖에 없어서 일본 해군과 직접 붙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통상파괴 작전에 집중했죠. 적의 수송선 등을 공격하는 거였습니다. 6월에 천여명을 수송하던 히타치마루 등을 잡는 등의 전공을 올렸죠. 술래잡기엔 술래가 불리하죠. 일본은 3함대에 이어 2함대까지 여기에 투입해야 했는데 이걸 막지 못했고, 2함대 사령관 카미무라 히코노조는 전사자의 유족들에게 살해협박까지 받았다 합니다. 집에 돌이 날아오고 스파이 취급까지 받았다 하네요.

뤼순에 일본이 온 전력을 기울일 수 없는 이유가 되었고, 동해부터 남해까지의 수송로도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골치아팠지만 어떻게 해결할 수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뤼순의 함대가 탈출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도 출항해 이들을 호위하기로 하였죠. 하지만 뤼순 함대의 탈출이 실패했고, 이들도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걸 예상한 일본군에 걸리게 되었죠. 장소는 울산 남쪽 바다, 러시아군은 순양함 3척이었고 일본군은 그 두배 이상이었습니다. 속도도 일본군이 더 빨랐으니... 이 중 류리크는 큰 피해를 입었고, 돌아가지 못하겠다 싶자 충돌 공격까지 시도했고, 안 되겠다 싶자 자침합니다.

카미무라 히코노조는 마지막까지 싸우는 모습에 감동해서 자침 후 빠르게 구조작업을 개시해 627명을 구조했다 합니다. 나름 훈훈한 모습이죠. 이 승리로 일본의 여론은 반전돼 그를 찬양했고, 그의 이름을 딴 군가까지 나옵니다. 그 자신은 그 노래를 싫어했다 하네요.

+) 나중에 노기가 더 큰 스케일로 같은 일을 겪습니다.

러시아 순양함 두 척도 대파됩니다. 수리 후 다시 투입되긴 했지만 전황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죠. 이렇게 동해의 제해권도 확실히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이 해전을 울산해전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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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반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죠. 해군이 뤼순을 점령하지 못 했고, 육군의 많은 부분을 포위 공격에 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동안 러시아는 병력을 불려갔구요. 포위된 뤼순을 빼면, 러시아군은 병력으로 일본군을 계속 압도합니다. 초기라면 일본군이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게 빗나가버린 거죠. 뤼순 점령 과정에서 많은 병력을 잃은 것도 뼈아팠구요.

그런데 전쟁은 러시아가 졌죠. ( '-') 이거 참.



3군이 뤼순에 가 있는 동안 1군은 한반도 쪽에서, 2, 4군은 랴오둥 반도 쪽에서 북진했습니다. 러시아군과의 결전을 위해서였죠. 쿠로파트킨은 계속 방어를 고수했지만, 알렉세예프는 공격을 주장합니다. 역시 니콜라이의 명령을 받아서 압박했죠. 만주의 중심지 펑톈(봉천)으로 가는 길에는 랴오양(요양)이 있었고, 이 곳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병력은 러시아의 우위였습니다. 일본군은 13만 정도를 동원했지만 러시아는 20만 이상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16만 정도가 투입된 걸로 보이구요. 그래도 포병 전력에선 일본이 우위였습니다.

정보력에서는 일본이 몇 수 위였죠. 쿠로파트킨은 적 병력을 과대가했고, 이건 그를 더 소극적으로 만듭니다. 휘하 지휘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죠. 알렉세예프야 공격을 계속 명령했지만요. 반면 일본군은 적의 규모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큰 활약을 한 게 아키야마 요시후루의 조사병단 아키야마 지대였습니다. 러시아 기병은 그 유명한 코사크, 반면 일본 기병은 수도 적었고 러시아군에 비해 말도 작았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유학파인 요시후루를 중심으로 이제 막 시작하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그를 일본군 기병의 아버지라 합니다) 이래서 1 기병여단을 중심으로 보병, 포병, 공병을 조합한 혼성부대를 만든 것이죠. 기병에게도 여차하면 참호를 파고 보병처럼 싸우게 했구요. 이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됩니다.


만주군 총사령관 오야마 이와오 원수


고다마 겐타로

그러니까 일본군 수뇌부는 병력에서 밀린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노기가 빨리 뤼순을 점령하고 오기를 바라면서 있는 병력으로라도 러시아군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것도 국지적인 승리가 아니라 적의 주력을 섬멸하는 확실한 승리가 필요했죠.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좌우에서 빠르게 진격해서 포위하는 양익포위전술을 계속 시도합니다.


이 때 2, 4군은 러시아군의 정면에서 올라왔고, 한반도에서 올라온 1군은 그 측면을 공격하죠. 러시아군도 이에 맞춰서 동부군과 남부군으로 나눠서 대응했구요.

방어측이 기본적으로 유리한 건 맞지만, 공격측도 유리한 점은 있습니다. 방어할 땐 어디로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병력을 분산시켜야되는 반면 공격측은 전투의 주도권을 쥐고 전장을 선택할 수 있었고, 거기에 병력을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한 곳만 뚫려도 전체 방어선이 무력화되기 쉽구요.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를 격파할 때도 현장에선 소수쪽의 병력이 다수일 때가 많았구요. 성같은 방어기지를 짓는것도 공격측의 선택을 최대한 없애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하고 지휘관이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이름만 성일 뿐 그리 유리하지 못하게 되죠.

러시아군은 병력에서 우위를 잡고 있었지만, 일본군의 포위를 걱정해 병력을 분산시켜야 했습니다. 그만큼의 병력을 제대로 쓰지 못 했고, 어디가 뚫린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후퇴했습니다. 지휘관들의 소극적인 태도와 무능도 한몫했죠. 예비대를 충분히 만들어뒀지만 위험한 곳에 제대로 투입하지 못 합니다. 반면 일본군은 수에서 밀리는만큼 예비대를 거의 두지 않습니다. 꽤나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면이 컸는데, 러시아가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예비대의 필요성이 더 줄어들어버렸죠.

8월 24일, 일본군의 첫 공격이 시작됩니다. 4일간 부분적인 패배는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진격했고, 러시아군은 밀리자 예비대를 투입하는 등 방어를 강화하지 않고 후퇴합니다. 비와 안개가 퇴각을 보호해주었고, 일본군도 지쳐서 추격하지 못했죠.

후퇴 자체가 러시아군의 계획이기도 했습니다. 랴오양까지 3개의 방어진지를 만들어놨거든요. 문제는 일본군의 측면 공격, 특히 후방의 철도 공격을 막기 위해 너무 퍼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래서 서로 연계해서 싸우기 힘들었죠.

러시아군의 진지는 참호로 구성돼 있었고, 대포와 기관총으로 방어되었습니다. 오야마는 여기에 공격을 명했고, 상당한 피해가 나왔죠. 특히 1군이 공격한 동쪽에서 러시아군의 측면 기습까지 당하면서 큰 피해를 입습니다. 하지만 남쪽에서 야습을 동반한 일본군의 공격이 주요했고, 러시아군은 다시 주 방어진지로 후퇴합니다. 일본군의 선택 역시 같았죠.

랴오양(요양) 회전은 이렇게 세 단계로 구성됩니다. 이 마지막 전투에서도 (위와는 반대로) 남쪽은 막아냈지만 동쪽에서 일본군이 밀어붙였고, 이어 남쪽에서도 진지를 뺏기고 포탄이 부족한 상황에 처합니다. 쿠로파트킨은 랴오양을 포기하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리니 9월 3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일본군은 랴오양에 들어갔죠.

러일전쟁사에서는 (늘 그렇듯) 쿠로파트킨이 너무 소극적이었고, 러시아군의 상황이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예비대가 충분히 남아있으니 일본군을 격퇴할 수 있을거라는 거죠. 쿠로파트킨이 방어적이었던 것은 맞지만 이렇게 계속 후퇴하는 게 잘한 거였냐는 큰 떡밥입니다. 군사적으로 어느쪽이 맞든 정치적으로는 실패했구요.

일본군은 러시아군을 추격하지 못합니다. 그동안의 공격으로 탄약과 포탄이 크게 부족했으니까요. 거기에 피해도 일본군이 더 커서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이만이 안 되는반면 일본군은 이만오천가량의 피해가 나왔습니다. 더 추격하긴 힘들었죠. 이게 쿠로파트킨이 너무 성급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그랬듯 이 때는 방어가 극도로 유리해질 때였습니다. 공격은 여전히 밀집대형으로 돌격!이었고, 아직 이를 바꿀 교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휘관은 하던대로 했고, 병사들은 기관총에 큰 피해를 입어야 했죠. 훈련도의 문제도 있습니다. 문맹이 많았던 당시, 현대처럼 흩어져서 이동하는 걸 가르치기는 어려웠구요. 이런 모습이 바뀐 건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죽어간 1차대전 후였구요.

이 때의 양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러시아군이 공격할 때도 역시 일본군의 기관총에 쓸려나갑니다. 오히려 일본군이 밀집대형을 버리고 산개해서 진격하는 걸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피해가 크긴 했지만요.

이렇게 양군의 첫 대규모 전투인 랴오양 회전이 끝이 납니다.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러시아군을 북쪽으로 밀어붙였고, 요충지를 차지합니다. 여기에 서쪽의 잉커우(영구)도 점령하면서 해상보급이 더 수월하게 되었구요. 하지만 러시아군이 밀릴 거 같자 바로 후퇴하는 바람에 포위도 제대로 못 했고, 전멸시켰다 할 정도의 피해도 못 줍니다. 후퇴하는 것도 그냥 보내줬구요. 러시아는 일본에 충분한 피해를 주고 후퇴했다면서 자기들의 승리라 주장합니다. 일본도 승리를 주장했고 어느 쪽이냐 하면 일본의 승리가 맞겠지만, 그리 긍정적인 상황이 못 됐습니다. 오야마를 비롯한 수뇌부는 뤼순에서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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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 마레스케


참모장 이지치 고스케

1차 총공격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3군은 방침을 바꿉니다. 공격용 참호를 파면서 천천히 전진한 것이죠. 지하갱도, 그러니까 땅굴도 만들었구요. 보급이 원할하게 철도를 더 깔았고, 추가병력도 도착합니다. 여기에 화력을 더 높히기 위해 11인치(280mm) 유탄포를 비롯한 각종 대포가 증원됩니다.


크죠? 이런 건 야전포(야포)로 쓰기는 너무 컸고, 현장에서 설치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함포나 요새포 등이 야포보다 훨씬 큰 이유죠) 이 때문에 이지치 고스케 참모장을 비롯한 3군에서 설치하는 데 한참이라 필요 없다고 했고, 해군 등에서 억지로 넘겨줬다고 합니다. 뤼순 포위전의 대표적인 삽질로 꼽히는데,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군도 피해를 입은 요새를 보강했습니다. 일본군이 천천히 준비하는만큼 러시아군이 준비할 시간도 길어졌죠. 여기에 방어를 한번 경험하고 해군이 합류하면서 방어에 좋은 무기들을 만들어냅니다. 큰 역할을 해준 수류탄을 더 만들고 어뢰를 활용해 박격포의 원형이 되는 무기도 만들어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뤼순의 중요성이 더 커집니다. 역시 발트 함대 때문이었죠. 그들이 오기 전에 뤼순을 점령해야 했고, 점령한 다음에 결전을 위해 빨리 합류해야 했습니다. 천천히 포위전을 벌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총공격을 통해 빨리 요새를 함락시켜야 되는 상황... 자 이번엔 어디를 공격할까요. 3군 내부에서도 의견이 계속 갈렸다 합니다.


일단 선택된 곳은 서쪽과 북쪽의 전진기지였죠. 203고지, 즉 얼륭산(이령산)도 포함돼 있었죠. 방어가 약한 편이기 때문이었고 해군이 요구하는 함대 공격을 위해서였죠. 여기에 전체 포위망을 좁히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9월 19일부터 시작된 공격으로 여러 보루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러시아군은 곳곳에서 전멸의 위기를 맞았고, 후퇴해야 했죠. 이러니 근처의 보루들도 고립을 피하기 위해 후퇴했죠. 여기에 대포를 배치해 요새 내부나 시가지, 함대에 더 정확한 포격을 날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3고지는 러시아군의 증원으로 포기해야 했죠. 이후 러시아군은 이 곳의 방어를 강화합니다.

일본군은 22일까지 공격한 후 다시 물러납니다. 전진기지를 공격한 정도였기에 총공격으로 치지 않고 2차 총공격의 일부로 잡구요. 반면 러시아쪽은 둘을 따로 분류합니다. 이래서 피해는 전보다 크지 않은 전사 9백여명, 부상 4천여명 이하였습니다. 러시아군은 전사 6백, 부상 2천 2백 정도였구요. 네, 피해가 크지 않았는데 5천 가까운 피해가 난 거였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일본의 피해를 7천으로 잡구요. 어느 쪽이든 1차 총공격의 (그리고 나중의 3차 총공격의) 피해 때문에 착시효과가 일어날 정도군요.

이후 3군은 다시 공격 준비에 매달립니다. 공격용 참호를 파고 지하갱도를 파고 보급을 기다리고 말이죠. 러시아군도 이걸 방해하고 있었구요. 하지만 들어오는 소식은 더 안 좋은 거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요새 공격을 위해 대포 1문당 1천발의 포탄을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3군이 그보다 훨씬 적은 수를 요구했음에도 거부당했죠. 반대로 총공격 요구가 더 거세집니다. 10월 16일 발트 함대가 출항했다는 소식이 들어왔기 때문이었죠. 여기에 덴노의 생일인 11월 3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뭐라도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야 했죠.

이렇게 해서 2차(러시아에서는 3차) 총공격이 정해집니다. 목표는 1차 총공격 때 점령했던 판룽산(반룡산) 보루들을 중심으로 밀어붙이려는 거였죠. 26일부터 온갖 대포가 동부전선 전체를 포격했고, 이어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일부 성과야 있었지만 그에 비해 피해가 너무 컸고, 30일에 총공격을 중지합니다. 러시아는 재공격을 대비했지만 포격만 계속합니다. 일찌감치 끊었기에 피해는 전사 1천여명, 부상 2천 8백여명 이하로 줄었고, 러시아군의 피해는 전사 6백여명, 부상 4천 4백여명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덴노에게 줄 생일선물도 없게 됐죠.

3군은 다시 참호와 지하갱도를 파면서 전진합니다. 참호는 어느새 적 전방의 30보 수준까지 전진하게 되었고 지하갱도도 적진 근처까지 접근, 러시아 역시 갱도를 파서 일본군 것을 폭파시키면서 맞서게 되었습니다. 일본군도 폭파공작 등으로 일부 보루를 무력화하고 점령할 수 있게 되었구요.

하지만... 역시 상부의 생각은 달랐죠.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발트 함대에 대한 공포가 계속됩니다. 그들이 뤼순에 들어오면, 전쟁은 집니다. 그 전에 뤼순을 함락시켜야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3군은 총공격마다 최소 5만의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북쪽에선 러시아군에 병력이 밀리고 있었고, 빨리 3군이 합류해야 했죠. 그런데 벌써 몇달째 뤼순에만 묶여 있었습니다. 그것도 성과가 없이 작은 지역 하나 점령하는 데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구요.

정부와 군부뿐 아니라 이 소식을 듣고 있던 일본 국민들도 분노합니다. 언론에서 일본의 승리를 과장한 것도 크지만, 어쨌든 일본이 지고 있던 건 이 곳 뤼순뿐이었습니다. 그 중요한 뤼순에서 지고 있다는 거였죠. 전사자의 유족들의 분노는 갈수록 거세졌고, 다른 국민들의 분노도 합쳐집니다. 병사들을 갈아넣고 가난한 일본에서 짜낸 많은 물자들까지 갈아넣고... 정말 뤼순 때문에 나라가 망할 판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어느덧 날은 다시 추워지고 있었습니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일본의 승리는 어두워져 갔습니다. 육지와 바다에서 승리는 했지만 적을 격멸할 정도의 승리는 아니었고, 육지에서는 이미 병력에서 열세였습니다. 바다에서는 발트 함대가 다가오고 있었구요. 채권 장사는 잘 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로도 이미 일본의 경제는 휘청거렸죠. 그렇다고 이미 시작한 전쟁을 끝낼수도 없었구요.

그동안 육군은 다시 러시아군과 다시 대규모 전투를 치릅니다. 해군은 제발 뤼순 좀 빨리 먹어달라면서 마음 졸이고 있었구요. 오야마 원수는 공격을 압박하면서 참모장 고다마를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해서 3군은 다시 총공격을 개시하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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