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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21 00:29:19
Name   눈시
Subject   러일전쟁 - 제독의 결단



아키야마 사네유키. 언덕 위의 구름의 주인공으로 아키야마 요시후루의 동생이죠.

시코쿠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때는 사무라이가 몰락하는 시대였죠. 너무 가난해서 절에 보내려고 했는데 형 요시후루가 "돈을 두부(크기)만큼 벌어줄테니 키우자고 했답니다." 어릴때부터 맨날 사고치고 다니는 천방지축이었다고 하죠. 폭죽을 직접 만들어서 놀 정도로요. - -; 요시후루는 어린 나이에 일하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선생이 되었다가 육사에 들어가 장교가 됩니다. 그렇게 번 돈을 집에 보내서 사네유키를 학교에 보내게 하죠.

사네유키는 그 돈으로 공부해서 도쿄 제국대학(그러니까 지금의 도쿄대)까지 가는 데 성공합니다. 자취하던 형이랑 같이 살았는데 방은 혼자 살기에도 너무 좁았고 밥 한그릇으로 번갈아가며 밥을 먹었다고 하죠. 머리는 좋아서 문제가 나올부분을 잘 짚어서 열심히 하지 않고도 성적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 역시 군인의 길을 걷기로 하고 해사로 가죠. 이렇게 형제가 청일전쟁에 같이 참전하게 됩니다. 러일전쟁에서도 땅과 바다에서 대활약하고 말이죠. 우리랑 관련만 없다면 참 감동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유학 갔고, 무려 알프레드 마한에게서 배웁니다. (해군의 전략사상가로 많이 유명합니다) 마침 미서전쟁이라 관전무관으로 참전했고, 여기서도 많이 배우고 본국에 보고하죠. 돌아와서 젊은 나이임에도 해군대학교(장교들을 가르칩니다)의 교관이 됩니다. 러일전쟁 때,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서 도고 헤이하치로의 참모로 미카사에 오르죠. 소좌(소령)이었지만 뤼순에서의 기뢰전을 짜고 T자 전법을 만드는 등 활약합니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면서 묻혀 있던 그의 활약이 대중에 널리 퍼졌다 합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이 그렇듯 다른 참모진과 함께 짰거나 아예 다른 참모의 공이었던 것도 그에게로 간 부분이 있다 하네요. 뭐 그렇다 해도 대단하긴 했겠지만요.

+) 러일전쟁 시작할 땐 굳이 볼 필요 있겠나 했는데 ㅡ _-a 안 봤으면 쓰는 재미가 많이 없었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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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헤이하치로. 사쓰마(현 가고시마, 일본 해군을 주도했죠)의 사무라이 출신으로 어릴 땐 꽤나 반항아였다고 합니다. 이후 대포 다루는 기술을 배우고 메이지 유신 후에는 해군이 되었죠. 영국에 유학 갔다온 후에는 쾌속승진했고, 청일전쟁 때 풍도 해전을 시작으로 여러 해전에서 활약합니다.

러일전쟁 전에는 마이즈루의 해군 기지를 맡고 있다가 직전에 연합함대를 맡게 됩니다. 초반에는 기습하고도 큰 피해를 못 줬고, 적이 항구 안에 있어서 제대로 피해도 못 주고 아군의 피해만 늘어서 결국 육군에 공격을 부탁하는 등 큰 활약은 못 했죠. 뭐 그래도 제해권은 잡고 있어서 육군이 싸울 수 있었던 거지만요. 그리고 쓰시마 해전을 통해 군신이 되죠.

낮에 켜진 등불(주행등, 히루안돈), 그러니까 별 쓸모없다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하고 사령관에 임명된 것도 명령을 잘 듣는 온순한 타입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절도 있고 국제법을 잘 아는 신사라서 외국에서도 좋아했구요. 뭐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강연할 때 "해군 오면 안 죽는다. 육군 말고 해군 와라"는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노기 마레스케가 있는 자리에서 했다고 하네요 (...)

말년에는 그의 권위가 절대적이 되었는데, 그가 군축조약을 반대해서 함대파(조약 반대파)는 이걸 잘 이용해 먹습니다. 결국 조약을 맺긴 했지만, 이것 때문에 해군 개혁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야마모토 이소로쿠 등 조약파는 그의 신격화를 싫어했습니다. 그 자신도 신격화를 싫어했지만 그렇게 됐죠.

2차대전 후에 소련에서는 당연히 도고 관련 기념물까지 다 없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막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 해군을 이끈 체스터 미니츠였죠. 쓰시마 해전 직후 잔치를 열었을 때 일본에 있던 미 해군도 초대했는데, 미군은 장교후보생을 보냅니다. 그 중 한 명이 니미츠고 도고에 빠졌다고 하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고의 말은 이거일 겁니다.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비할 수는 있어도 이순신과 비교하는 것이 황송하다"

기본적으로 이건 카더라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해군에서 이순신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보면 개연성은 있다고 합니다. 최소한 그가 나쁘게 봤다면 저 정도의 말은 없었겠죠.

http://www.km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4943

그게 아니더라도 해군에서 이순신을 이 정도로 평가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구요. 사실 일본군을 깨뜨렸다는 게 걸릴 뿐 (그래서 관련 사적이 훼손을 당하기도 했죠) 그럴 이유는 충분합니다. 육해군이 서로 잘났다고 하는 상황에서 육군은 해군 없으면 안 된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위인이니까요. 패자가 승자가 잘해서 진 거다고 띄워주는 것도 흔하고, 잘 싸운 적장 대우해주는 건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랬으니까요.



미카사. 1만 5천톤짜리 전함으로 영국에서 사왔습니다. 돈 없어서 내탕금(덴노의 사비)까지 동원해서 사온 전함들 중 하나죠. 당시 영국 해군의 것보다 성능이 좋아서 문제삼을 정도였다 합니다. 도고는 이걸 기함으로 정했고, 각 해전에서 작지 않은 피해를 입습니다. 하지만 가라앉지도 무력화되지도 않고 승리를 이끌었죠.
하지만 전쟁 직후 수병이 알코올로 술을 만들려다 불을 내서 탄약고가 폭발, 침몰합니다. -_-; 어떻게 인양해서 쓰다가 러시아 적백내전 때 좌초되기도 했죠. 군축 조약 때는 폐함 대상에 포함되었고, 대신 기념함으로 보존하게 됩니다.

2차대전 후에는 없어지진 않았지만 대신 연합군의 오락시설이 만들어집니다. 이러면서 무기와 구조물이 철거되고 엉망이 되었다가 나중에야 복원됩니다. 여기서도 니미츠가 지원해 줬다고 하네요. 이래서 지금 남은 구조물들은 다 나중에 설치한 가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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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의 바다가 전장이 되면서 한반도 주변의 섬들의 중요성이 올라갔습니다. 크면 기지를 설치해 정박하고 보급할 수 있고, 작더라도 적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죠. 도고는 일찌감치 동서의 두 섬을 차지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서쪽은 청일전쟁의 시작인 풍도, 정박하기에 좋고 배들의 출입을 감시하기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동쪽은 둘이면서 외롭다고 하는 섬, 독도였죠.

아키야마 사네유키 역시 미서전쟁을 보고 온 후 요충지에 망루를 설치해 적을 감시하고 보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도 독도가 있었죠.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 회의에서 다케시마를 시마네현 오키섬 소속으로 지정했고, 2월 22일에 무주지를 편입한다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합니다. 이런 건 국내외로 공표해야 하건만 하지 않았고, 시마네현의 지방지에나 실렸죠. 4개월 후에 관보에 실린 정도였구요. 망루 설치도 비밀리에 했기에 한국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이듬해, 그 때는 모든 게 늦었죠. 을사조약 이후였으니까요. 다시 찾으려면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위해 일본에게서 독도를 되찾아줘야 했습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이렇게 독도는 일본에게 처음으로 빼앗긴 우리 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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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본편으로 돌아가보죠.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는 발트 해의 패권을 잡은 후 발트 함대를 만듭니다. 이후 흑해 함대, 태평양 함대를 만들죠. 19세기부터 러일전쟁까지, 러시아 해군은 열심히 몸집을 키워나갑니다. 그 중심은 발트 함대였죠. 전쟁 전 극동의 중요성이 올라가면서 태평양 함대에 많은 배를 빼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대함대를 가지고 있었죠.

1904년 4월 중순, 마카로프가 전사합니다. 그 보름 후 발트 함대를 제2 태평양 함대로 재편, 뤼순의 제1 태평양 함대를 증원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무려 2만 9천km라는 먼 길을 보내기로 한 겁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논의와 준비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죠.

발트 함대 역시 덩치만 클뿐 러시아군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병들은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예비군이라 다 까먹었고, 귀족들로 이루어진 장교진 역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었죠. 그래서 출항 1개월 전에 중요한 것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가면서 훈련하기로 합니다. 이래서 군함에 대한 점검도 부족했고, 포격 실습도 단 한번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이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입니다. 전쟁 초기 마카로프와 경쟁했던 이죠. 성격이 더러워서 별명이 미친개였던 사람이죠. (...) 여자 문제도 난잡해서 상관이었던 마카로프의 아내와도 불륜을 저질렀고, 극동으로 가는 도중에도 간호장교와 연애하고 있었다 합니다. 하지만 부패한 귀족들로 가득한 상황에서 그는 확실히 능력을 인정받았고, 비리도 전혀 저지르지 않는 이였습니다. 마카로프가 죽은 이상, 갈 사람은 그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싫어서 누구의 음모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죠. 대신 그는 조건을 답니다. 구형, 신형 가리지 않고 모았지만 아직 부족했고, 그렇다고 더 기다리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출항한 후 마다가스카르에서 증원군과 합류한다는 계획을 세웠죠. 당시 아르헨티나와 칠레에게서 군함 7척을 구매하려고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10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리바우 항에서 함대가 출항합니다. 전함 7척, 순양함 7척을 비롯한 전투함 38척을 중심으로 한 64척의 대함대였죠. 수리부터 석탄보급, 병원선 등 먼 길을 가는데 필요한 비전투함도 포함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긁어모으기에만 급급했던지라 "함대가 아니라 군함의 우연한 군집"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전 러시아가 믿음과 확고한 희망을 갖고 귀관을 주목하고 있다"

니콜라이는 떠나는 로제스트벤스키에게 이런 전문을 보냅니다. 하지만 사령관을 비롯한 장병들 중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관으로 가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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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거 뱅크

출항 후 일주일, 뜬금없는 사건이 터집니다. 러시아는 일본의 수뢰정이 유럽에 나타나 함대를 공격할 거라는 첩보를 받습니다. 그들이 고용한 자들이 거짓정보를 보낸 거였는데, 일본에서 그런 정보를 흘린 거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잔뜩 예민해져 있던 상황에서 북해로 진입합니다. 그런데 전방에서 발광신호같은 불빛이 나왔고, 그것들이 마치 수뢰정의 공격처럼 함대로 접근하는 거 같았습니다. 공격했죠.

... 영국 어선이었습니다. 한 척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되었으며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합니다. 오죽 급히 쐈으면 아군 군함에 오사하기도 했구요. 함대가 얼마나 예민해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죠. 도거 뱅크 사건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분노야 당연했습니다. 이 때문에 (혹은 이 사건을 핑계로) 함대는 영국령 항구에 정박할 수 없었고, 영국 해군이 이들을 따라다녔고, 이걸 신경쓰느라 더 힘들게 되었죠.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부터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까지 압박해서 함대가 쉴 곳을 찾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여기에 항해에 좋은 석탄인 무연탄을 영국이 꽉 잡고 있었고, 러시아군은 질 낮은 석탄밖에 못 구해서 속도도 떨어졌고 해전에서도 문제가 됐습니다.

영국은 영일동맹으로 일본의 뒤를 봐줬지만, 전쟁에서는 중립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일본에 아주 크나큰 도움을 준 거죠.

수에즈 운하로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영국령인건 둘째치고 전함이 커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작은 배들만 보내고 아프리카를 돌아가야 했죠. 가는 길에도 문제가 계속 일어납니다. 수병들이 숙련병이 아니라서 계속 고장났죠. 구형은 낡아서 문제였고 신형은 길이 안 들어서 문제가 됩니다. 이래서 가는 길에도 계속 수리하면서 가야 했고, 속도는 더 떨어졌죠. 먼길 가느라 배 상태는 생각 안 하고 과적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영국 해군이 계속 얼쩡거리니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고, 혹시 있을지 모를 교전에 대비해야되는데다 연습용 포탄도 부족해서 예정됐던 훈련도 못합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더러운 성격답게 심심하면 쌍안경을 바다로 던져버렸다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많이 들고갔는데 소모율이 엄청났다고 하죠. -_-; 뭐 이런 상황을 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12월 29일, 한대는 마다가스카르 근처에 도착합니다. 수뢰정 한 척이 고장나 결국 돌아가야 했고 나머지도 두 척 빼고는 멀쩡한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 억척스럽게 여기까지 왔죠. 여기에 비보가 닥칩니다. 1태평양 함대가 전멸하고 뤼순도 함락됐다는 거였죠.

2태평양 함대의 목표 도착시기는 3월, 그때까지 1태평양 함대가 버텨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럴 경우 단독으로라도 일본 해군과 싸운다는 방침을 세워뒀죠. 하지만 이게 현실로 닥친 상황에서 사기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본국에 흑해 함대의 일부라도 증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본국에서는 구식 군함을 3태평양 함대라 칭하고 증원해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해방전함이라 불리는, 근해방어용 군함들이었죠. 작아서 수에즈 운하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요.

로제스트벤스키는 이들을 기다리면서 하나들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함대는 독일의 석탄선과 계약을 맺었는데, 이 때 계약이 만료됩니다. 재계약할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러시아인들이 열대기후에 계속 시달리게 된 겁니다.  

다시 출항한 건 3월 16일, 애초에 극동에 도착해야 할 때였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죠. 그래도 가야 했습니다. 고장난 수뢰정도 예인해서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4월에 동남아시아에 접어들었고, 싱가포르와 캄란(베트남)을 지나 3태평양 함대와 합류해 반 퐁항에 기항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했습니다. 그것도 주력함들은 하나도 잃지 않고 말이죠. 세계적으로도 그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배도, 수병들도 충분히 지쳐 있었고 제독인 로제스트벤스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이미 오는 길에 부하들을 미친듯이 갈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 퐁, 이제 동아시아로 넘어가야 되는 상황에서 그만두겠다는 요청을 합니다. 제해권을 잡기엔 함대가 너무 약했고, 자기는 병에 걸렸다는 거였죠. 물론 본국에선 들어주지 않습니다. 가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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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은 다 일본의 근해였습니다. 하지만 가야 했죠. 뤼순항은 잃었고 중국이나 한국의 항구를 이용할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야 제대로 된 보급과 수리, 휴식을 하고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은 세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대한 해협, 일본에서는 쓰시마 해협이라고 부르는 곳이죠.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일본 열도 남쪽으로 간 후 올라가는 거였죠.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쓰가루 해협, 홋카이도와 사할린 사이의 소야 해협이었습니다.

의견이 갈립니다. 안전하게 멀리 돌아서 소야 해협으로 가자, 허를 찔러서 일본의 남부지방을 공격하면서 쓰가루 해협으로 가자는 것으로요. 하지만 대다수는 대한 해협으로 바로 가자는 거였고, 로제스트벤스키의 생각도 그랬습니다. 수병들의 피로도와 훈련도, 배의 상태, 석탄 보급까지 생각해서 말이죠.


만약 1, 2태평양 함대가 온전히 합류했다면 그 전력은 러시아의 압도적인 우세였습니다. 세부적으로 본다면 일본이 나았지만, 어쨌든 규모로 보면 각각의 함대가 일본 해군과 맞설만 했습니다. 뤼순의 함대는 겨우 없앴지만, 발트 함대, 2태평양 함대만으로 일본에겐 위협이었죠. 러시아 해군이 제해권을 약간만 위협해도 만주의 육군은 굶어 죽게 되고, 아예 한반도나 일본 본토가 공격받을수도 있었으니까요. 설령 싸워서 이기더라도 거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면 일본은 패하고, 망할 거였습니다. 러시아 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일본 해군은 강훈련을 계속합니다. 포탄을 아낌없이 쓰면서 말이죠. 목표는 단 하나, 러시아 함대를 확실히 없애는 거였습니다. 그걸 위해선 적의 진로를 정확히 예측해야 했죠. 세 곳에 함대를 나눌 여유는 없었습니다. 한 곳을 확실히 선택하고, 그 곳으로 오기를 빌어야 했죠.

참모진에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저마다 각자의 근거가 있었고, 소야 쪽이 우세했다 합니다. 하지만 도고가 결단을 내리니, 대한 해협이었죠. 전함 4척, 순양함 8척을 중심으로 한 연합함대가 진해에 집결했고, 적을 기다립니다. 제발 이 도박이 맞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초조함은 더 커집니다. 안전하게 북쪽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결국 도고도 참지 못하고 24일 대본영에 홋카이도로 가도 될까 하는 전문을 보냅니다. 대본영에선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했죠. 이에 도고는 26일 정오까지 안 오면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6일 00시, 석탄운반선이 상하이에 입항했다는 정보가 들어옵니다. 석탄운반선을 떼어놨다는 것은 곧 먼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최단거리를 선택한다는 거였죠. 역사를 가른 정보였습니다.

27일 02:45, 일본 해군의 시나노마루가 병원선 오률의 등불을 발견합니다. 이어 접근하자 불을 끈 채 이동하는 다수의 함대를 발견하죠. 곧바로 보고합니다. 연합함대는 바로 출동하죠.

이 때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적함 발견과 출동을 보고하면서 "금일 날씨는 맑으나 파고가 높음"이라는 문구를 추가합니다. 날씨가 맑으니 적을 놓칠 염려가 없고, 파고가 높으니 훈련도가 높은 아군이 유리하다는 걸 함축한 거라고 합니다.

+) 전후 연합함대를 해산할 때의 연설문도 그가 썼는데, 명문이라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번역해서 미 해군에 뿌리게 했다고 합니다.


로제스트벤스키도 일본을 혼란시키기 위해 세 척을 황해와 태평양으로 보냅니다. 하지만 이걸로 일본을 흔들긴 힘들었죠. 대신 최대한 조용히 강행돌파한다는 계획으로 출항합니다. 해협 근처로 가면서 무전도 끄고 불도 끄구요. 하지만 병원선 때문에 들켰죠.

위의 시나노는 이후 이즈모와 교대합니다. 07시가 되면서 러시아 함대도 이즈모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눈치챘고, 함포를 그쪽으로 겨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함대 대열을 재편해 적이 나타날 것을 대비했죠.

13시 15분, 일본 함대의 주력이 나타납니다. 올 것이 온 거죠. 일본군은 러시아군의 정면에서 좌측으로 갔고, 로제스트벤스키는 단종진으로 대응하려고 했습니다. 헌데 갑자기 선두의 미카사가 방향을 꺾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뒤의 배들도 마찬가지였죠.


이른바 도고의 턴이라고 불리는 U턴이었죠.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전쟁을 끝낸 해전, 그리고 한국의 운명까지 결정해버린 해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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