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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1/20 01:03:31
Name   눈시
Subject   여요전쟁 - 완. 귀주대첩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일본의 무사시보 벤케이와 미나모토 요시츠네

뭔가 멋진 전쟁 얘기를 할 때 늘 떠오르는 건 "국가가 위험한 상황에서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것"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전세계가 이런 식의 스토리에 열광하죠. 힘에는 밀리지만 명분과 의지...에서 이긴다, 뭐 너무 나가면 2차 대전 때의 일제 꼴이 나지만요. -_-;

한국에서도 이런 스토리는 참 많습니다. 일단 중국과 싸우면 수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_-; 이 때문에 일부러 우리의 수를 줄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해전에서도 그래요. 임진년 때 각 전투에서 병력은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리가 많았는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10분의 1의 병력으로" 어쩌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영웅은 만들지언정 바람직한 전쟁은 아니죠. 위험이 깊을수록, 영웅의 단독 활약이 더 대단할수록 전쟁 자체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 합니다. 이순신 장군을 봅시다. 수군이 그렇게 주목받는 건 육지의 상황이 그만큼 막장이었다는 거죠. 아니 그냥 야구를 봐요. 4승 3패 끝내기 홈런으로 겨우겨우 한국시리즈 우승한 쪽이 경기를 잘했을까요 선발투수가 다 승리투수 되고 4:0으로 우승한 쪽이 경기를 잘했을까요. 흥행이야 전자가 훨씬 잘 되겠죠? 7차전 끝내기 홈런 친 사람과 1~4차전 승리투수 중 누가 MVP 되겠어요.  하지만 전쟁은 스타크래프트도, 야구도 아니죠.

비장한 전개와 역전한다는 짜릿함 때문에 무시되지만, 진정한 승리는 싸우기 전에 이기는 것입니다. 앞뒤의 모든 것을 다 계산해서 피해도 적은 전쟁이 가장 바람직한 전쟁이죠. 그게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된 전쟁입니다. 그런 점에서 3차 여요전쟁은 정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려군의 작전대로 된, 한국의 전쟁사에서 모범으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을 전쟁입니다. 강감찬이라는 영웅이 있었지만, 다른 전쟁에 비해 그 비중은 많이 적습니다. 위로는 현종부터 아래는 각 장수들과 병사들까지... 전쟁 대비부터 마무리까지 정말 잘 된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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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주에서
"뛰어난 용병이란 (중략) 전력을 유지하고 승리를 완전히 하는 것, 이게 공격을 꾀하는 방법이다."
"작은 병력이 고집한들, 큰 병력에게 잡히는 법이다." - 모공편

귀주까지 겨우 도달한 소배압이었지만, 쉽게 빠져나갈 길은 없었습니다. 앞에서는 고려의 대군이 버티고 서 있었거든요. 둘 사이에는 강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요사에는 이 강을 다타이하라 적고 있는데, 이 二河가 그냥 강 이름인지 강 두 개를 말 하는 건지는 해석이 엇갈립니다) 소배압 휘하 장수들은 고려군이 강을 건넌 다음에 치자고 했는데 야율팔가 혼자 거부하죠. 적에게 배수진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요. 이게 받아들여져 양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싸웁니다.

양군의 주 무기는 화살, 보병 위주였던 고려군은 검차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전진하며 화살을 쏘았고, 이에 맞선 거란군 역시 화살로 응수했습니다.  거란군은 필사적으로 공격했지만, 고려군을 뚫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한 쪽의 우세 없이 전투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 고려의 마지막 수가 등장합니다.


뭔가 분위기는 고려군 쪽이 사우론의 악의 군대 같은데 (...) 구원 온 로한은 고려군을 편 들었죠.

소배압의 철수 후 개경에서 달려 온 김종현의 1만 정예 기병은 그대로 거란의 배후를 찌릅니다. 이조차도 강감찬이 계획한 것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김종현이 원래 제 때 합류해야 했는데 늦은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이러기로 한 것인지는요. 하지만 작전이든 우연이든 이 절묘한 한 수는 거란군의 후방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수가 더 있었죠.

한겨울에 북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것도 남쪽에서 김종현의 지원군이 나타난 바로 그 순간에요. 정말 이것조차 계산한 거라면 강감찬은 어디까지 내다본 것일까요. 우연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렇게 완벽한 포위섬멸전의 모습이 갖춰집니다. 이렇게 비바람을 몰고 온 남쪽의 고려 정예 기병은 전투를 일방적인 학살로 바꾸었죠.


고려사 등에는 이 때의 전장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요사에서는 양쪽에서 화살이 쏟아져서 거란군이 버틸 수 없었다는 것으로 포위 섬멸전의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21만의 거대한 포위가 진행됩니다. 그 어떤 전투를 막론하고 포위전에서 남는 건 단 하나죠.

이 전투로 우피실, 요의 황제 직속 정예군이 완전히 전멸했고 상온 해리, 아과달, 작고, 발해 상온 고청명 등 고급 지휘관 네 명이 전사합니다.

+) 발해 상온과 고씨에서 알 수 있듯 고청명은 발해 출신이었죠. 고려에 있던 대도수 등을 생각하면 참 기분이 묘하네요.

겨우 포위를 뚫고 달아난 소배압, 고려군은 그 뒤를 쫓아 철저한 전과 확대를 꾀합니다. 겨우 살아 돌아간 병력은 10만 중 불과 수천명 뿐이었습니다.

"거란 군사의 패전함이 이때와 같이 심한 적은 없었다"

후세에 이를 일컬어 귀주 대첩이라 합니다. 한국사 3대 대첩 중의 하나로 분류되죠.

2. 전쟁이 끝나고
"왕이 영파역에서 친히 맞이하여 채붕을 설치하고 음악을 갖추어 잔치를 베풀고 장사들에게 물품을 내려주었다. 왕이 금화 여덟 가지를 친히 감찬의 머리에 꽂아 주고, 오른손으로 금술잔을 들고 왼손으로 감찬의 손을 잡고는 위로하고 감탄하기를 마지않으니 감찬이 배사하면서 감히 받지 못하였다"

돌아온 강감찬을 현종은 극진히 대우합니다. 아마 머리 속에서는 2차 전쟁 때의 악몽이 떠올랐을 겁니다. 그걸 확실히 보복한 것이 이 전투였죠. 이 때 공을 인정받아 상을 받은 이가 9천 5백명 가까이 됐다고 합니다.

요 성종은 돌아온 소배압에게 "얼굴 가죽을 다 벗겨버리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용서해 줍니다. 귀양 가는 걸로 끝났죠. 그 외에 전사한 자들에게 보상해 주면서 울분을 달랬죠.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고려를 치지 못 합니다. 귀주대첩에서 전멸한 우파실은 사실상 거란군의 주력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란의 주력군이 고려에서 소멸해 버린 것이죠.

전쟁이 끝나자마자 흑수를 비롯한 온갖 여진족이 승리를 축하했고, 송에서도 계속 축하 사절을 보내 왔으며, 일본에서도 조공을 바쳐 왔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외교에 대격변이 온 것이죠.

1021년, 거란에서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고 고려에서는 6년 동안 붙잡아 뒀던 -_-; 사신을 돌려보내면서 양국의 관계는 회복됩니다.  이렇게 세 차례의 여요전쟁은 모두 끝났습니다.

+) 그 이후에도 양국의 분쟁이 아예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일단 보주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양국은 이걸로 계속 부딪힙니다. 고려에서는 요 성종 때의 약속대로 압록강 남쪽은 모두 받겠다고 나섰고, 거란에서는 옛날에 쌓은 거라서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섰죠. 결국 "성은 못 주는데 그냥 그 근처에 니네가 살아도 된다"로 타협하게 됩니다. (...)

표면상으로 보면 고려가 거란에 대한 사대를 끝내지 않았는데다 압록강 이북으로 올라가지 못 했다는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특히 3차 여요전쟁이 끝난 후 양국의 분쟁을 보면 대체 어느 쪽이 위인지 헷갈리죠. -_-;

현종이 죽은 후, 덕종부터 고려는 천리장성을 쌓게 됩니다. 거란은 물론 여진도 막았지만 막무가내로 쌓았죠. 위대한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는다는 꿈은 이것으로 끝이 납니다. 어쨌든 국력으로는 고려가 열세였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외부의 침략을 철저히 끊고 외교,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면서 고려는 동북아의 하나의 축이 됩니다. 작다 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나라, 강소국이라는 현실적인 노선을 걷게 된 것이죠.

3. 고려의 태평성대
보주를 통해 압록강 하구를 여전히 가지고 있던 거란은 여기에 상설 시장을 만들려 했습니다. 이를 통해 송-여진-고려에 이르는 무역의 이득을 노리려 했죠. 하지만 이는 곧 보주가 영구히 거란의 땅이 되는 것을 뜻 했고, 고려에서는 외교적으로 막고 아예 군사들을 보내 시위합니다. (...) 함락은 아무래도 힘들었나 봐요. 일단 평화롭게 지내기로 했고, 압록강 사이 섬에 있는 내원성과 배다리로 연결돼 있었으니까요. 계속되는 싸움 끝에 요는 결국 포기합니다. 이 때 고려는 송의 연호를 쓰기도 하고 "너는 황제가 아니라능 ㅡㅡ" 이라면서 죽은 요 성종의 연호를 쓰기도 합니다. (...)

보주에 시장을 설치하는 게 막히면서 동북아의 교역은 고려에 집중됩니다. 거란은 서쪽에서야 송에게 삥 뜯은 걸로 살았겠지만, 동쪽에서는 고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죠. 이에 따라 여진과의 교역도 고려가 주도하게 되었고, 거란의 여진에 대한 지배력도 크게 약화됩니다. 대신 고려는 송-거란-여진-일본에 이르는 거대한 무역의 중심이 되어 참 많이 벌어 먹었죠. 이 때로부터 여진의 완안부가 성장해 고려, 거란에게서 벗어나려 할 때까지, 사실상 여진은 고려의 지배 하에 있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수평적 관계는 아니지만 수직적 관계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계속되죠. 거란이 제대로 대접 안 해 주면 송의 연호로 갈아타고, 거란에게 뭐 달라고 할 때는 거란의 연호를 쓰는 상황, 이쯤 되면 그냥 황제라 [불러는 드릴게] 수준이죠 (...)

송에서도 고려를 최대한 붙잡아야 했습니다. 거란과 관계가 가깝고 멈에 따라 이어지고 떨어졌던 게 그 둘의 관계였지만, 그 덕에 고려는 사신을 보낼 때마다 송에 많은 물자를 삥 뜯어 옵니다. (...)

1031년, 현종은 세상을 뜹니다. 향년 40세였죠. 흥미롭게도 이 해 전쟁 영웅, 고려의 문곡성 강감찬도 세상을 뜹니다. 고려의 태평성대의 토대를 마련한 둘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도, 요나라 최고의 명군이라 불리며 요나라를 크게 키운, 하지만 고려에게 크게 물 먹은 요 성종 역시 이 해 죽습니다.

+) 참고로 강감찬은 전쟁이 끝난 후 쉬게 해 달라고 했는데 현종은 지팡이를 내려주며 더 일하라고 했답니다. orz;; 황희의 대선배.

고려 말, 고려의 역대 왕들을 평했던 이제현은 현종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인군이 천명만 믿고 욕심을 함부로 하고 법도를 어기면 비록 얻었을지라도 반드시 잃는 것이니 이러므로 군자는 치세에도 난을 생각하고 평안할 때에도 위태함을 생각하며 끝을 조심함을 처음과 같이하여 써 천휴를 기다리는 것이니 현종과 같은 이는 이른바 나는 간연함(지적할 것)이 없다 하리라"

뭐 현대의 눈으로 보면 지적할 게 좀 많긴 하지만... 이건 한 왕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나 다름 없겠죠. 이렇게 현종은 고려의 태평성대를 연 왕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122년 예종의 죽음까지, 고려는 전성기를 쭉 누립니다. 다만 너무 평화롭던 시대라 주목을 못 받죠. 조선의 세종대왕 같은 경우도 한글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랑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정말 빼곡히 적힌 사료가 있어서 그렇지 없었으면 비슷한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그 정도로 태평성대였다는 것이겠죠. 이렇게 외부의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천리장성 내부에서 천천히 고려인들이 하나의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민족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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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113만 vs 고구려 불명 - 살수대첩
일본군에 의해 8도 중 7도가 점령 - 한산도 대첩
딱히 피해 입은 거 없이 거란군 10만 vs 고려군 20만 - 귀주대첩

... 뭐 숫자만 봐도 인기 없는 이유가 있네요 ' -'
  
제가 평가하는 3차 여요전쟁은, 한국사에 정말 짝이 있을까 싶은 완벽한 승리입니다. 애초에 여요전쟁 전체가 참 잘 싸운 전쟁이었어요. 1차는 적의 의도를 꿰뚫어서 오히려 이득을 챙겼고, 2차는 고려 전기 최고의 위기라 할만큼 위험했지만, 그 문제점을 파악하고 극복해서 3차의 대첩을 이뤄낼 수 있었죠.

역사를 통해 배운다... 하는데 이후의 역사는 그러지 못 합니다. 당장 백여년 후에 나타났죠. 위험한 빵셔틀이었던 여진족이 세를 불리자 나름대로 대군을 준비했지만, 진행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죠. 서북면을 개척할 때는 누대에 걸쳐 성을 쌓고 외교전을 하면서 천천히 했지만, 동북면을 개척할 땐 급히 쌓다가 실패하고 우리가 쌓은 성들을 내줬습니다. 이것도 척준경이라는, 남들 삼국지 찍을 때 혼자 무협지 찍은 인물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감히 우리 역사상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신정권부터 조선까지... 여요전쟁에서 배우지 못했구나 하는 전쟁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긴 하겠지만요. 그렇게 배우지 못한 전쟁들이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양념을 팍팍 친 상태로요. 기록이 많이 남아서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재미있어서 그렇기도 할 겁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나라를 구한 구국의 명장... 이 얼마나 멋집니까. 물론 그 명장이 탄생하기 위해서 나라는 정말 최악으로 몰렸지만요. 하지만 그럴수록, 완벽하게 이겨서 재미없는 전쟁도 생각해봐야 될 겁니다.

여요전쟁은 만주라는, 고구려의 고토 회복을 밀고 나간 전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걸 포기하고 방어에 집중하게 된 전쟁이죠. 없으면 안 되는 최고의 영웅이 탄생한 전쟁도 아닙니다. 그런 불세출의 영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위부터 아래까지 다 잘 한 전쟁이죠. 그 결과가 바로 백년 가까이 이어지는 고려의 전성기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여요전쟁을 기억해야 될 이유일 겁니다.

그럼 여기까지. 여요전쟁 편을 마치겠습니다. (__)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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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후에 고려가 송이랑 요에 어떻게 했길래 전성기라고 하고 잘 싸웠다고 했는지는 따로 외전을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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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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