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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2/11 18:39:30 |
Name | 엘에스디 |
Subject | 지금까지 본, 기억에 남는 공룡들 (사진많아유) |
나이 먹고 공룡 구경다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애어른의 취미생활이지 말입니다. 그냥 디피 내려간다는 뉴스 보니까 한번 적어 보고 싶었어요... 사진은 구글 검색으로 아무거나 가져왔습니다 ㅇㅅㅇ 1. "Sue" 필드 자연사박물관의 간판스타 "수" 입니다. 가장 온전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골격이자 가장 비싼 경매가로 낙찰된 공룡 화석의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발견된 것은 1990년입니다만... 연구기관에서 땅 주인한테 5천 달러를 주고 발굴을 시작했는데, 발굴이 끝나자 땅 주인은 그게 발굴 및 세척을 허가하는 비용일 뿐이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 FBI와 주 방위대가 출동해서 화석을 압류하고 5년에 걸쳐 소유권 분쟁을 벌이는. 흡사 19세기 공룡러시 시대를 연상케 하는 해프닝 끝에 땅 주인이 승소했고, 1997년이 되어서야 소더비에서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이후 여러 연구기관과 박물관의 치열한 경합 끝에 필드 자연사박물관이 최종 승자가 되었고, 760만 달러에 낙찰받아 복원에 들어갔죠. 사진을 보면 색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발견되지 않은 골격을 색 입힌 플라스틱으로 복원해 구별이 되도록 해 놓은 모습입니다. 근데 저는 유리창 너머 연구실에서 복원 중인 모습과 따로 전시해 놓았던 두개골밖에 못 봤어요... ;ㅁ; 전체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전체 골격의 73%라는 놀라운 보존률에, 추정연령이 28세나 되는 제법 나이를 먹은 개체라서 다른 티라노사우루스 화석들보다 덩치가 크다고 하더라구요. 비싼 값을 하는 모양입니다 ㅎ_ㅎ 시카고를 언제 다시 가게 되려나... 2. "Black Beauty" (씬스틸러 꼬맹이가...) 왕립 티렐 고생물박물관의 미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입니다. 조명 상태가 좀 메롱이긴 한데, 가까이서 보면 검은색 위로 살짝 광택이 흘러요. 사이즈가 (티라노사우루스치고는) 작고 아담한데다 늘씬한 동체와 다리에 머리도 작아서 진짜 미녀취급 받을 만 합니다. 이뻐요. 인기가 좋은 만큼 복제도 꽤 많이 되어서 여러 다른 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골격표본을 만들어 세워 놓은 곳도 있고, 두개골만 가져다 놓은 곳도 있고... 티렐은 진짜 볼 것 많은 곳인데(틱 틱 틱타알릭이라던가),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ㅅ= 대중교통 수단도 없고... 친구가 차 태워줘서 겨우 가 봤는데... 또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3. Ghost Ranch Coelophysis 요건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복제품. 신모식종으로 지정된 유명한 원본 화석은 뉴욕의 아메리카 자연사박물관에 있습니다. 유명한 화석이라 여기저기 복제품이 많이 뿌려져 있지요. 사이즈도 아담하고 걸어놓기 딱 좋은 듯... 요건 지금 아메리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녀석들. 오른쪽 개체의 꼬리 부위는 나중에 만들어 붙인겁니다. 코엘로피시스는 1887년에 처음 명명된 유서 깊은 공룡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수의 온전한 화석이 발견된 속이기도 합니다. 1947년 뉴멕시코 주 고스트 랜치에서 수백 마리에 이르는 코엘로피시스가 집단폐사(...)한 발굴지가 발견되었기 때문인데요. 보존 상태가 끝내주는데다 수도 압도적으로 많아서 소형 공룡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다고 하지요. 1990년대 초에 이놈들이 사실 최초 발견된 코엘로피시스와는 다른 속이다! 해서 학명을 따로 붙였는데, 그때까지 연구 결과가 너무 많아서 고생물학자들이 항의했다고 -ㅅ-;;; 결국 위쪽의 화석을 코엘로피시스속의 신모식종으로 정해버렸습니다. 위쪽 화석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뱃속에 다른 소형 파충류의 골격이 들어 있어서인데, 과거에는 이를 같은 종의 유생체로 생각해서 코엘로피시스가 동족포식을 했다는 근거로 삼았지요. 옛날 공룡 학습만화에는 꼭 들어가 있던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악어류 등 다른 소형 파충류의 골격이라고 하네요. 나름 다행이에요 @ㅅ@ 4. "Hatcher" 트리케라톱스 호리두스 "해처"는 1888년 고생물학자 존 벨 해처가 와이오밍에서 발견한 녀석입니다. 이름도 당연히 발견자 이름을 따 온 거고... 아마 각룡류 화석 중에서 가장 유명한 놈이 아닐까 싶어요. 여튼 이 녀석도 처음 봤을 때하고는 생김새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1999년에 박물관 관람객 한 명이 이녀석 앞에서 재채기를 했는데, 그 재채기에 골반 뼛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ㅅ- 관람객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지만... 여튼 보고를 받고 조사를 해 본 결과 93년 동안이나 박물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이 화석이 즉각 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전시를 중단하고 완전분해 및 보존 작업을 개시하게 된 거죠. 그런데 박물관의 동물형태측정 연구실 측에서는 이 기회를 활용해 최신 기법을 적용해 보자는 제안을 합니다. 3D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골격을 디지털화해서, 당시 논란이던 트리케라톱스의 앞다리 구조를 디지털 데이터로 재현한 다음, 그에 따른 자세와 동작을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해 보자는 것이었지요. 지금이야 별 거 아니지만 99년 당시에는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을 도입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그에 따라 새로 복원한 해처의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현재 알려진 트리케라톱스의 모습은 해처의 3D 모델의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죠. 하지만 "해처"와 티라노사우루스 "스탠"을 비롯한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 공룡들은 현재 관람할 수 없습니다. 2019년까지 내부공사중이라능 ㅠㅠ 5. Muttaburrasaurus Langdoni 퀸즐랜드 자연사박물관입니다. 별로 유명한 녀석은 아니지만 나름 깜놀했어서... 공룡 기대하고 간 자연사박물관이 아니었거든요. 일단 호주니까. 이 녀석 화석 앞에서 멍하니 서서 올려다보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이름도 멋지지 않나요 무타부라사우루스. (그리고 실제로도 공룡보다 다른 쪽이 더 압도적이었고요. 서랍마다 뺴곡이 박제와 표본들이 들어차 있는 게 아주...) 지금은 민미가 더 유명해졌지만, 한동안 호주를 대표하는 공룡이었던 녀석입니다. 얘도 제가 봤을 떄는 근연종인 이구아노돈의 옛날 복원 모습처럼 거의 직립에 가깝게 서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구부정하게 복원되어 있네요. 6. Barosaurus lentus vs. Allosaurus fragilis 고생물화가 John Gurche의 유명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는, '알로사우루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바로사우루스'입니다. 아메리카 자연사박물관의 공룡 컬렉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마어마하고, 109년 묵은 티라노사우루스나 '머리 없는 아파토사우루스'처럼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녀석들도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표본은 역시 이 녀석이 아닐까 싶어요. 그냥 공간감이 압도적입니다. 복원의 타당성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요. 하늘로 솟아 있는 바로사우루스의 목을 따라 고개를 들다 보면, 애초에 공룡을 좋아하게 만들었던 순수한 경외감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 듭니다. 2010년에 두 공룡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서 바로 아래에서 생동감 있게 올려다볼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근데 저 뒤에 숨은 새끼공룡 사실 바로사우루스 아님. 비슷한 지역에 살았던 카아테도쿠스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몰라요 멋지니까 괜찮음. 7. (공룡은 아니지만) Mary Anning의 어룡과 수장룡 컬렉션 ABE(살짝 바꾸고 ㅌㅌ)문고의 <바닷가 보물>이라는 책 기억하시는 분 혹시 계신가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메리 어닝 컬렉션이었습니다. 어릴 적 제 우상이기도 했어요 ㅎㅅㅎ 그래서 라임 레지스까지 가서 암모나이트 좀 주워 오기도 하고... 라임 레지스 해변에서 화석을 팔아 근근히 살아가다가, 이크티오사우르와 플레시오사우르 화석을 최초로 발견하고, 그 기술과 끈기 덕분에 유럽 전역에 화석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고 조르주 퀴비에의 찬사까지 받은 인물. 그녀 본인도 박물학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다고 하는데, 신분과 성별의 벽에 가로막혀 그저 기술자로만 이름을 알리고 학계에서 잊혀졌다는 점이 훗날의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여튼 놀랍도록 훌륭한 솜씨로 발굴한 그녀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19세기 초에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에요. 8. 그리고... "Dippy" "디플로도쿠스는 어린 소년이었던 내가 처음 런던 자연사 박물관을 찾아왔던 1950년대에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지금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은퇴한 2006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놈을 보면 항상 반가운 마음이 든다. 단순히 그 고대 화석의 복제 조립품을 오랜 친구로 여겨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변덕스러운 세상에서도 거의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지 않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리처드 포티,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디피의 원본은 미국 카네기 자연사박물관에 있습니다. 와이오밍에서 철도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이후 카네기의 지원을 통해 1899년에 발굴에 성공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가장 온전한 용각류 화석 중 하나입니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디플로도쿠스의 상상도를 보고 감탄하자, 카네기는 우정과 친교의 표시로 (그리고 라이벌인 아메리카 자연사박물관의 브론토사우루스 화석을 지명도로 이기고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발견한 화석의 완벽한 복제품을 건네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 2천 파운드에 달하는 거금을 들여 석고 모형을 떠서 런던으로 보냅니다. 292개의 골격이 36개의 상자에 나뉘어 담긴 채 런던에 도착한 디피는 원본보다 먼저 조립되어, 1905년 세계 최초의 디플로도쿠스 골격 모형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로부터 112년 동안, 디피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상징이었습니다. 지하실로 들어가 런던 대공습을 버티고, 화석 전시실이 인류학 전시실로 바뀌면서 쫓겨나고, 힌츠 부부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힌츠 홀의 위치로 옮겨가고, 새로운 발견에 맞춰 자세와 형태가 변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꼬리뼈를 훔쳐가서 박스 단위로 만들어 놓고 갈아끼우기도 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꼬리가 높이 솟아 있었으니까 그럴 일은 없었겠지요. 디피가 물러나게 된 것은 시대의 흐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시대가 변하면 박물관의 주 세력도 바뀌게 마련이니까요. 런던 자연사박물관을 처음 총괄 계획한 리처드 오언 경은 그 웅장한 빅토리아풍 건물을 '조물주의 작품의 아름다움을 기리는 성전'을 상징하게 할 계획이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결국 완공된 건물을 차지한 사람은, 지금도 중앙 계단 가운데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찰스 다윈과 그 후계자들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19세기 영국을 상징하던 박물학의 시대, 그 뒤를 이은 진화학과 분류학의 시대는 지나가 버리고, 이제 생태학과 환경학의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디피의 자리에는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의 골격이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함의를 담은 선택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멋지고 웅장한 전시물이 될 것이라는 점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하지만 공룡을 좋아하는 애어른의 한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복제니까 가짜라고 신나게 모욕한 영국 언론들한테도 화가 나지만... 언론은 언론이니 어쩔 수 없겠죠 ㅎㅎ 마지막으로 제가 찍은 디피 사진들입니다. 2014년 할로윈 저녁이었어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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