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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21 01:41:18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책 리뷰 몇 개
예정에 없는 한국행 덕분에 비행기에서 한국 책을 좀 읽을 시간이 생겼어요. 왕복하는 동안 리디북스를 통해 세 권을 읽었는데 아주 짧은 리뷰를 남겨봅니다.


[사피엔스]

https://ridibooks.com/v2/Detail?id=1546000198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

평:

사놓고 찔끔찔끔 읽던 책인데 이참에 확 마 콱 다 읽어버렸어요. 요즘 최전선 사학자들의 세계관, 역사관, 인생관을 일반 독자층이 즐겁게 소화할 수 있도록 경쾌하게 잘 버무려냈다는 데서 만점을 주고 싶어요. 아니다. 사실 사학자들 뿐 아니라 대략 인문사회계통 지식산업의 최전선에서 뒹굴고 있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현대 인문학 입문" 정도로 봐도 돼요. 제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금 당장 어느 대학교 총장이 된다면 모든 신입생 커리큘럼에 이 책을 집어 넣겠어요.

물론 본서에서 하는 말들이 다 불변의 진리라거나 한 건 아니에요. 제가 저자보다 조금 더 알 법한 분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보면 아닌게 아니라 디테일을 많이 떼어내고 조금 자극적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그러니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저자가 그렇게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모든 탐구에는 출발점이 필요해요. 다른 이의 논증은 내 논증을 만들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에요. 본서를 보고 '과연 저자가 하는 주장이 사실일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해당 방면의 다른 책들을 찾아본다면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당 분야에 대한 앎을 습득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므로 본서는 좋은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좋은 스파링 파트너이기도 해요.

강츄강츄.



[댓글부대]

https://ridibooks.com/v2/Detail?id=754016978

저자: 장강명

리뷰:

이거 핵꿀잼이에요. 일단 제목부터가 한국에서 컴질 좀 해 본 분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손짓하고 있지 않나요?

소재도 소재지만 이 소재를 풀어내는 행보가 경쾌하면서도 빈틈이 없어요. 여기서 풀고 저기서 줍고, 이 쪽에서 깔고 저 쪽에서 수습하는 솜씨가 몹시 노련해요. 전후좌우로 잘 조응하는 꼴이 마치 서로를 지탱해주는 안정적인 구조물을 보는 듯해요. 다루는 내용이 아주 심오하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공부삼아 일독을 권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강츄강츄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https://ridibooks.com/v2/Detail?id=856000084

저자: 김시덕

리뷰:

서문에서 몇 문단을 발췌해볼께요.

"임진왜란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바꿔놓았다. 16세기의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한 장이었다. 대륙의 한인 세력으로서는 해양 세력 일본의 대륙 진출을 저지해야하는 완충지였고, 일본이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거점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이른바 중원이라 불리는 중국 대륙에서 한인 국가와 북아시아 지역의 유목민, 반유목민이 충돌할 때마다 한반도에도 피해가 있었지만 정복지로서 고려되지는 않았다. 고구려와의 충돌로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도 큰 피해를 입은 역사를 교훈 삼아 대륙의 한인은 한반도에 있는 국가를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직접 지배한다는 생각을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한반도의 한민족 역시 한인 국가를 외교적으로 존중하면서 독립을 유지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북아시아 지역의 유목민/반유목민의 경우에는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의 한인 국가가 최종 목표였다. 한반도 지역은 군사적으로 약탈하고 외교적으로 견제할 대상이기는 해도 완전한 정복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한반도는 유라시아 동부라는 거대한 무대의 주변부였으며, 21세기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정학적 요충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해양 세력인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의 완전한 정복을 꾀했으며, 대륙의 한인 세력은 해양의 일본 세력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이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대두한 사건이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절반의 진실'이 '전체의 진실'로 완성된 것이다."


재밌지요? 본서는 역사학이 현재의 국제관계학에 어떤 착상을 줄 수 있는지 말해주는 책이에요. 유라시아 동부가 어떤 판세로 돌아갔고, 역학이 어떤 시점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변해갔으며, 충격의 연쇄효과는 어땠는지 등을 검토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주변을 인식하고 전략을 세워야할지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줘요.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저자는 풍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아요. 임진왜란 때 태국 국왕이 일본의 배후를 공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제안해왔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19세기에 필리핀, 마카오, 북경 등을 두루 유람하고 다시 전라도 신안으로 돌아온 홍어장수 문순득씨 이야기는요? 역사 전공자가 듣기에도 깜짝 놀랄 법한 자잘자잘한 사례들이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조선인이 조선이라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 우물의 크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요.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큰 세계의 한 블럭이었던 거지요.

본서의 단점은, 글쓰기가 아주 막 말끔하지는 않다는 데 있어요. 한 챕터에서 했던 이야기가 다른 챕터에서 거듭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뭐, 본서가 아니라면 다른 데서 들어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니 이 정도 중복은 용서해줄 수 있어요.

강츄강츄



그럼 재밌는 독서생활 하시길 바라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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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읽어보고 바로 책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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