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2/22 12:50:48
Name   기쁨평안
File #1   1487479556_64.jpg (103.8 KB), Download : 8
Subject   외로움의 세상에서 차 한잔


저는 예능을 즐겨보는 편입니다.

최근에 인상깊었던 프로가 있는데,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입니다. 이 프로는 출연 연예인에게 익명의 친구 "캔디"가 나타나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 프로입니다. 네, 아재 아짐들은 기억할텐데 어렸을 적에 "폰팅"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본격 연예인들 폰팅하는 프로.

작년에 시즌 1을 했고 지금은 시즌 2를 시작했네요.

연예인들이 폰팅하는 게 뭐가 재밌냐 싶지만, 이 프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는 바로 그 시점에서의 연예인의 표정입니다. 설레임 반 기대 반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아 이건 반이 아니구나. 반반 무많이)

그리고 두번째로 힘을 주는 부분은 통화가 다 끝나는 시점입니다. (규칙상 배터리가 다 닳으면 그 시점에서 종료. 누군지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 깨진적도 있지만)

처음의 어색함과 낯설음은 온간 데 없어지고 신나게 깔깔대며 낯선 이에게 진심을 털어높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종료가 되고 난 그 시점.
그 침묵과 공허함. 그리고 감싸도는 외로움을 정말 잘 표현해줍니다. 어쩌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사람들의 열광과 관심이 끝난 뒤에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직업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 프로를 보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인 저는, 그 순간에 그 연예인과의 동질감을 느낍니다.
현대인을 감싸도는 외로움. 지독한 고독들, 아무도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듣지 않는 외로움의 도시.

스무살때 한마디의 말도 하지않은 채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지내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건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처마다 다급하게 자신을의 이야기를 끼워넣습니다. 예능프로에서 어떻게든 한 컷트라도 더 받으려고 필사적인 신인 연예인들처럼.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지만 정작 나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개인이 소셜 미디어가 되어 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더 줄어들었죠.

그런 면에서 이곳 홍차넷은 참 특별한 곳입니다.

이곳은 정말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이 있는 곳입니다. 정말 커뮤니티 계의 식물갤 같은 곳입니다.
제가 경험한 이곳은 어떤 치열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성분들이 어떤 젠더 이슈와 관련된 거대담론을 논하지 않고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성소수자분들도 호모포비아와 관련되어 싸우지 않고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종교이야기를 올려도 성경의 모순에 대해 공격받지 않고
커플이 되기도 하고, 커플이 되어도 공격받지 않고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어도 조롱이나 비아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분이기라는 것이죠.

정말, 차 한잔 하면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참 좋네요.
그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홍차박스도 가능하고, 탐읽남도 가능하고, 인증대란도 가능하고,
정말 이게 21세기 커뮤니티에서 이런게 가능한가 싶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참 신기하네요.

앞으로도 이곳이 어떤 "의도"없이 자연스러운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홍차넷의 정체성은 "홍차 한 잔의 쉼이 있는 커뮤니티"가 아닌가 싶네요.
아 이건 러시아에서는 영원한 쉼이 되는건가요?

아무튼 앞으로도 잘 지내 봅시다.



25
  • 내귀에캔디
  • 춫천
  • 꿈처럼달콤해니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948 도서/문학책 리뷰 몇 개 28 기아트윈스 17/02/21 5156 12
4949 IT/컴퓨터영화를 추천해드립니다! Movie2Vec 12 Top 17/02/21 7193 6
4951 일상/생각쓰레기통 만드는 남자 20 소라게 17/02/21 3358 2
4952 사회교육감 직선제가 사라질 가능성 5 DarkcircleX 17/02/21 4185 0
4953 꿀팁/강좌[사진]노출(exposure)에 대해 조금 더 살펴봅시다(노출보정과 측광). 41 사슴도치 17/02/21 8842 5
4954 게임삼국지 13 PK 리뷰 9 저퀴 17/02/21 22878 2
4955 스포츠[MLB]맷 위터스, 내셔널스와 계약 10 나단 17/02/22 2716 0
4956 의료/건강우울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32 깊은잠 17/02/22 7219 20
4958 역사붉은 건 [ ]다 12 눈시 17/02/22 5025 11
4959 일상/생각[Ben] 벤양 인터뷰 + 졸업식을 앞두고 당신을 생각하며 5 베누진A 17/02/22 5098 0
4961 기타[만년필]사파리와 사파리를 먹는 자들 11 사슴도치 17/02/22 7574 3
4962 경제일본 예능에 나온 쇼핑하는 이야기 3 빠른포기 17/02/22 6199 3
4963 일상/생각외로움의 세상에서 차 한잔 7 기쁨평안 17/02/22 3795 25
4965 일상/생각어부인이 르사의 스마트폰을 스사 아니면 엑스사껄로 바꾼다고 합니다. 9 집에가고파요 17/02/22 3254 0
4966 IT/컴퓨터타임라인을 어이할꼬 52 Toby 17/02/22 5389 3
4967 일상/생각주제 매너리즘 _ 한 대학원생의 점심식사 8 고양이카페 17/02/22 4948 7
4968 창작오늘이 아닌 날의 이야기 (5) 8 새벽3시 17/02/23 3001 5
4969 영화이번 주 CGV 흥행 순위 1 AI홍차봇 17/02/23 2937 0
4970 꿀팁/강좌[사진]색채를 재현하는 요소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 화이트밸런스, 다이나믹레인지, 계조 11 사슴도치 17/02/23 6217 4
4971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1) 배경지식, 용도결정 편 4 이슬먹고살죠 17/02/23 4649 10
4972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2) CPU 메인보드, RAM 편 6 이슬먹고살죠 17/02/23 6343 8
4973 꿀팁/강좌[사진]도전! 맑은 날 인물촬영! 15 사슴도치 17/02/23 5127 3
4974 영화1955년 영화 <바람난 여자> 16 은머리 17/02/23 5822 2
4975 꿀팁/강좌재미난 짤 모아봅시다 (데이터 주의) 110 Toby 17/02/23 11633 1
4976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3) 그래픽카드 편 4 이슬먹고살죠 17/02/23 5873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