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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11 00:03:45
Name   Raute
Subject   왕흘 이야기 (부제:나무위키 꺼라)
전국시대에 왕흘이라는 장수가 있었습니다. 전설적인 명장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역사덕후가 아니면 이름을 들어볼 일이 없었죠. 하지만 하라 야스히사가 그린 만화 '킹덤' 때문에 지금은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인물이 됐습니다. '킹덤'은 전국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인데 독자들이 실제 역사와 비교하다보니 자연스레 뭐하던 사람인지 알게 된 거죠.

작중 초반에 엄청난 존재감을 뿜는 왕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아마 사기에 잠깐 언급되는 왕의를 이름을 잘못 읽어 왕기로 적은 거 같습니다. 사기집해를 보면 왕의는 왕흘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는데 하라는 이것까진 몰랐는지 왕흘과 왕기, 두명의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즉 작중에서 굉장한 카리스마를 발현한 왕기의 실제모델이 왕흘인 거죠. 쩔겠죠? 근데 막상 왕흘을 검색해보면 시원찮습니다. 별 거 없는 장수처럼 보여요. 어디에서? 바로 나무위키에서요. 그럼 나무위키가 왕흘의 무엇을 잘못 적었는지 알아봅시다.

나무위키의 왕흘 문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적습니다.
1. 소양왕 47년 한의 상당을 점령
2. 소양왕 48년 조의 피뢰를 점령
3. 후에 위를 치지만 조사가 이끄는 구원군에 패배
4. BC262 왕릉을 대신해 조를 치지만 염파의 지구전에 말려 위기
5. 백기가 사령관이 되고 왕흘은 부장이 되어 장평대전 승리
6. 조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다 대패
7. BC247 조의 상당을 점령하고 태원을 설치
8. 시황 원년 장군 임명
9. 시황 3년 사망

그러면 사서에는 어떻게 기록되어있는지 보죠.

1. 소양왕 47년 한의 상당을 점령
-> 장평대전의 발단입니다. 사기 진본기는 47년, 백기왕전열전은 45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사기는 전한시대에 나온 책이라 그 이전의 시기를 다룰 때는 내용이 상충되는 설들을 같이 적기도 했습니다). 진본기를 따르면 맞는 내용이 됩니다.

2. 소양왕 48년 조의 피뢰를 점령
-> 맞습니다. 문제는 좀 더 뒤에 와야할 얘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3. 이후 위를 공격하다 조사에게 패배
-> 조사가 진을 물리친 건 연여전투인데 위나라를 구원한 게 아니라 한나라였고(진본기에선 그냥 조나라) 진의 장수도 왕흘이 아니라 호양(킹덤의 호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기상으로도 왕흘의 상당 점령보다 오히려 9년 정도 앞섭니다. 고대사의 연도에 오류가 있는 건 흔하지만 이건 차이가 너무 크며, 후술할 장평대전에서 조사가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2번 이후의 사건일 수가 없습니다.

4. 왕릉을 대신해 조를 치다 염파에 의해 지구전
-> 1번 왕흘의 상당 점령에 대응해 조가 염파를 파견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왕흘이 장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염파가 왕흘에게 져주면서 지구전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사실 사서에는 그런 얘기가 없고 왕흘의 공격에 염파가 여러차례 패하고 틀어박힌 것에 가깝습니다. 조는 진에 화의를 청했다 거부당하고, 이후 조효성왕은 염파에게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승리를 거두라고 질책합니다.

5. 장평대전
-> 1-4-5로 이어지고, 장평대전 승리 후 2의 피뢰 점령으로 이어집니다.

6. 한단을 공격하다 패배
-> 당초 장평대전의 승리 후 승장 백기는 조의 수도 한단을 노렸으나 정적 범휴의 견제로 철군해야 했습니다. 이후 진이 공격을 결심했을 때는 백기가 병에 걸려 왕릉이 지휘했고, 패전을 거듭합니다. 백기는 병이 나은 뒤 전장에 나가는 게 아니라 타국이 조를 구원할 것이라며 철군을 주장했고, 급기야 칭병까지 하자 어쩔 수 없이 왕흘이 대신 지휘하게 됩니다. 백기의 예측대로 왕흘은 위나라의 신릉군 때문에 철수했고요. 백기는 이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죽습니다.

7-9. 태원 설치와 죽음까지
-> 사서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정리해보면
1. 사건 순서가 올바르지 않음
2. 장평대전에서 왕흘의 공적이 격하됨
3. 연여전투의 패장으로 오해받음
4. 한단전투의 설명이 잘못됨

여기에 덤으로 한단에서 철수할 때 위를 공격해서 승리한 얘기가 빠져있습니다. 좋은 건 안 써주고 나쁜 건 뒤집어쓴 거죠.

나무위키는 재밌습니다. 하지만 오류도 많고, 저같은 무지렁이도 이렇게 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저도 틀려서 까일 수 있습니다. 역사는 기록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므로 비판적으로 읽는 태도가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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