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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3/15 18:32:47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자존감이야기 |
특별한 건 아니구, 그냥 문돌이의 직관, 너절한 인상비평이에요. 0. 자존감이란 애들을 키우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존감은 연료같은 게 아닐까. 그게 없으면 동력상실로 추락하지만, 나날이 조금씩 소모되기 때문에 늘 꾸준한 공급이 필요한 그런 거. 애들이 꼭 그렇거든요. 뭐라도 새로운 걸 해내면 어른들이 좋아서 웃고 박수쳐주고, 그러면 그 웃음과 박수를 받고 기뻐서 볼이 빨개져요. 마치 기름을 빵빵하게 채운 자동차가 신나서 부릉부릉 달리는 것처럼, 자존감이 가득 차오른 아이들은 흥에 겨워 팔짝팔짝 뛰지요. 그렇게 획득한 신기술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익숙해질 무렵, 아이들은 다시 신기술을 익혀요. 어른들은 좋아해주고, 아이들은 볼이 빨개지고, 그 기쁨, 그 동력으로 다시 한동안을 살지요. 만약 자존감이 연료라면, 그렇다면 연료를 공급하는 데는 몇 가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 상부상조 이 모델이 아마 가장 흔하고, 가장 보편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친구끼리 서로 의지하고, 가족끼리 서로 의지하고, 연인끼리 서로 의지할 때 사람들은 대개 빈 곳간이 차오르는 듯한 만족감을 얻어요. 이 세상 모두가 날 무시한다 해도 난 우리 엄빠의, 우리 자기의, 우리 애들의 슈퍼스타 페이커라고 생각하면 존엄성이 우뚝 솟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요즈음 홍차넷도 이러한 상부상조형 자존감 주유소 같은 느낌이에요. 현실에선 어쩔지 몰라도 여기 들어오면 일단 누가 등이라도 탁탁 쳐주면서 연료를 넣어주잖아요. 2. 창조경제 간혹 그 누구의 인정과 위로와 칭찬 없이도 스스로 자존감을 자가발전해내는 무한동력형 인간들도 있어요.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대한 확신이 깊어지면 이런 자급자족 경제도 가능한 것 같아요. 꼭 교과서에 나올 만한 종교인이나 학자들이 아니더라도 드물지만 우리 주위에도 있지요. 이들은 드문 만큼 귀한 존재들인데, 왜냐하면, 스스로 만들어낸 자존감의 여분을 남들에게 막 나눠주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추종자가 붙어요. 제자들의 무한존경을 받는 선생님들이나 성직자들이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어요. 3. 약탈경제 남에게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남에게서 뺐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들은 남을 꾸짖고 모욕주고 얼굴에 침을 뱉고 나면 기분이 약간 나아지는 신비로운 매카니즘을 타고나요. 그래서 가끔, 자기가 존엄하다는 느낌이 안 들고, 늘 무시당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자가발전은 안 될 때, 기분전환을 위해 약탈에 나서요. 사실 이건 참으로 좋지 않은 일이에요. 상부상조형 모델의 경우 한 사회에 유통되는 존엄(dignity)의 총량을 늘려줘요. 자존감이 줄줄 새는 구멍난 독일지라도 두 독이 모여 서로의 구멍을 맞대면 더이상 물이 새지 않게 돼요. 연인의 키스는 두 사람 모두 '키스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요. 키스를 준 사람은 없는데 받은 사람만 둘이 되는 기적. 말하자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거지요. 창조경제형 인간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구요. 약탈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명백히 당하는 쪽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자기 자존감을 채워요. 문제는, 대개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자기는 작은 만족감을 가져간다는 데 있어요. 이는 두 사람이 싸울 경우 모두가 기분나빠진다는 것을 보면 명백해요. 만약 약탈경제모델이 상대의 자존감을 100 낮추면서 자신이 100의 자존감을 얻어가는 형태였다면, 두 사람이 서로 1 시간동안 격렬하게 침을 뱉고 모욕해도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무승부로 끝나고 웃으며 헤어질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상호 약탈이 끝난 뒤에 폐허만 남는 걸 보면 약탈은 사회 전체의 자존감 총량을 낮출 뿐인 것 같아요. 4. 몇 가지 관찰 얼마 전에 트위치로 LOL 경기를 보는데, 와.... 채팅창을 보지 말 걸 그랬어요. 고작 저런 실수로 저런 모욕을 하다니. 수만 명이 모여서 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모습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어요. 한 다른 커뮤니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폭발력있는 소재가 올라왔을 때 찬반 양론이 5:5인 경우에는 큰 약탈이 안일어나요. 불이 붙을 지언정 서로 비등하게 싸우기 때문에 양쪽 모두 딱히 논전의 결과로 전리품을 챙겨가지 못해요. 그런데 이게 8:2 정도가 되면 그야말로 노략질의 제전이 되어버려요. 8:2가 되면 2가 되게 약해보이잖아요, 약하면 좋은 약탈 타겟이에요. 그래서, 1:1로 붙으면 역으로 당할 것 같아서 감히 못나설 사람들도 대세가 8:2쯤 되면, 섬멸전, 학살전을 즐기기 위해 뛰어들어요. 그렇게 두드려패고나면 어쩐지 정의구현을 한 것 같아 본인이 조금 더 존엄해진 느낌이 드나봐요. 5. 더 생각해볼 거리 우리 사회가 생산해내는 식량의 총량이 있어요. 식량생산규모는 우리 사회의 규모의 상한선일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식량공급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생산해내는 존엄의 총량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생산규모 역시 우리 사회의 규모의 상한선일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존중받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후자를 GDD(Gross domestic dignity)라고 개념화해보면, 각기 다른 사회가 그 구조적/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각자 다른 GDD 생산 모델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도 당연해 보여요. 한국 인구가 5200만을 정점으로 더이상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아마 식량생산의 한계 때문은 아닐 거고, 한국식 GDD 생산 모델의 한계가 그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이건 한 번 생각해볼 문제예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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