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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3/23 02:45:58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친구만들기 |
http://www.iofc.org/must-read-norway-eyewitness-to-impossible 옌스 빌헬름센은 노르웨이출신 90대 할배예요. 2차대전 때 나치치하에서 레지스탕스로 참전했고, 전후엔 IOC에서 일했대요. 이 할배가 책을 낸 기념으로 어딘가에서 강연을 하는데 우연히 가서 보게 됐어요. Trust-building(친구만들기)에 대해서 말해주겠대요. 자기는 10대 후반 레지스탕스로 뛰면서 독일인에 대한 격렬한 적개심을 갖게 됐대요. 또 스칸디나비안으로서, 또 전쟁을 전후로 스탈린이 벌인 일들을 보면서,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적의도 갖게 됐구요. 그런데 48년 49년 즈음 되고보니 독일은 이미 망했고, 소련은 자기가 바꿀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그래서 지독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빠져버렸대요. 그런 꼴을 보고 삼촌 하나가 스위스에서 IOC가 뭐시기를 한다던데 가보라고해서 그냥 털래털래 갔대요. 사실 큰 기대는 없었고, 여차하면 그냥 스위스 산속에 들어가 혼자 공연을 하기 위해 도시를 옮겨갈 때마다 홈스테이를 했대요. 그들의 집에 IOC소속 청년들이 머물면서 친교를 다진다는 아이디어였어요. 목적지의 시정부 등에서 집을 제공해줄 시민을 모집했고, 자원자는 늘 충분했대요. 그렇게 몇 차례 도시를 옮겨간 끝에 공연팀은 마침내 어떤 공업도시에 들어섰고, 거기서 옌스는 해당 주(州)의 공산당 수장의 집에 머물게 됐대요. 음...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1. 독일인 2. 공산주의자였는데 하필이면 운명의 장난으로 강성 독일인 공산주의자의 집에 들어간 옌스. 그는 그래도 이 아저씨가 '우리 집에 IOC 청년단을 초대하고 싶소'라고 자원한 걸 테니 뭔가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들은 말이 "내 딸이 영어라도 연습하라면서 자기 맘대로 지원해버렸어." 라는 무뚝뚝한 대답이었어요. 으... 게다가 더 끔찍했던 건 옌스가 연습이나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 아재는 늘 부동자세로 식탁의 자기자리에 앉아서 차를 두 잔 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영어라도' 연습할 요량으로. 막스(Max 아재)는 달리 좋아하는 화제가 없어서 늘 공산주의, 맑시즘, 소련 뭐 이런 이야기들을 꺼냈대요. 그럴 때마다 옌스(Jens 저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소련이 왜 개막장이고 스탈린이 왜 개객기인지 설명하려했지만 마치 목사가 성경을 꿰고있듯 맑스앵갤스 저작을 장장절절 꿰고있는 막스는 모조리 반격해버렸대요. 이제 옌스는 연습과 공연보다도 그게 끝난 뒤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 더 고통스러워졌어요. 매일 같이 철벽 같은 독일인과 함께 사회과학이론을 토론하는 건 누구라도 사양할 만한 일이지요.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4~5일 쯤 흐른 어느날, 옌스는 결심했대요. "슈바,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못봐주겠네(See see I can't see). 나도 이젠 못참아!" 그날 귀가하고보니 막스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부동자세로 차 두 잔을 타놓고 옌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옌스는 냅다 달려가서 막스가 말을 시작할 틈도 주지 않고...!! 막 콱...!! 자기 계부 이야기를 시작했대요. 계부와의 관계가 얼마나 안 좋았는지, 자기는 어떻게 우울증에 시달리게됐는지, 레지스탕스에 자원해서 독일인을 증오하는 마음을 연료삼아 자신의 우울증과 싸웠던 이야기, 전후에 반소련/반핵 시위를 벌이던 이야기들 등. 그렇게 시종일관 자기 이야기만 했대요. 마지막으로, 어쩌면 진짜 문제는 옌스 자신에게 있었고 계부는 실은 평범한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털어놓고나니 속이 좀 시원하고, 시원해지고보니 관계개선에 대한 책임은 계부 뿐 아니라 자기에게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턴을 마쳤대요. 그리고나서 막스의 표정을 보니, 종전까지 앉아있던 공산당원은 온데간데 없고 왠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있는 것 아니겠어요? 중년의 아저씨 막스는 옌스의 이야기에 대해 몇 마디 코멘트를 한 뒤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대요. 그 서두가 ㅋㅋㅋ "있잖아, 이동네 공산주의자라는 놈들, 다 위선자색기들(hypocrites)이야 시바." 그렇게 풀린 대화는 그칠줄 몰랐고, 3주간의 체류기간이 끝났을 때 옌스와 막스는 그 모든 차이를 넘어서 친구가 되어있었대요. 옌스는 여전히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막스는 여전히 친애하는 령도자 동지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대요. 옌스는 그 때의 깨달음을 이렇게 술회했어요.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돼요. 근데 솔직해야 해. 절대적 진솔함 (Absolute honesty) 없이는 친구를 만들 수 없어요. 막스와 친구가 된 후에도 나는 일본과 아프리카 등지로 이동하며 IOC와 함께 신뢰회복작업(trust-building)을 계속 했어요. 가는 곳마다 그곳 말을 배웠고, 친구를 만들었지요. 무슨 주의자 그런 거는 별 장애가 안됐어요. (사실 일본에 가게된 것도 거기 철도노조가 막스를 초청했는데 막스가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해서 간거예요. 공산주의자도 아닌데 ㅋㅋㅋ.) 그러니까,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 그걸로 족해요." 간이직절(簡易直切)하지요. 참으로 평이한데, 참으로 맞는 말이에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귀려면 먼저 그 사람의 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 질감은 당사자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해주고 보여주고 알려주지 않으면 잘 안생겨요. 표정을 살필 수 없는 온라인에서는 특히 그렇구요. 그러니, 먼저 꺼내보여줄 용기가 필요해요. 용기만있다고 되는 일은 또 아니에요. 옌스가 자기 계부 욕만 실컷 하고 돌아다녔으면 그건 그냥 같이 뒷담화하자는 것 뿐이지요. 막스가 표정을 그렇게 풀 수 있었던 건 옌스의 말이 근본적으로 자기고백, 그러니까, 성찰이 동반된 개인사였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지혜가 같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용기 없는 지혜는 침울하고, 지혜 없는 용기는 무모해요. 홍차넷의 장점 중 하나는 그런 질감이 풍부한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는 거예요. 이제 정치의 시즌이 돌아온 만큼, 주의자나 지지자가 많아질 테고, 우리들이 글 속에 내비치는 질감이 조금 줄어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태까지 잘 해왔던 만큼 앞으로도 다 잘 될거라 믿어요. 끗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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