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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3/27 13:46:09 |
Name | tannenbaum |
Subject |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
'에휴... 오늘은 또 누군겨. 참 할일들 없네' 한 8년 전이었나요. 모 커뮤니티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성소수사관련 게시물을 올린 뒤 하루에도 몇번씩 쪽지함이 울렸습니다. 뭐 대부분 욕설 쪽지였지요. '게이질 하니까 좋냐? 니네 부모가 불쌍하다' '삐리리 삐리리 삑~ 삑~ 삐리삐리 새끼' '회개하세요. 당신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구역질나는 글 싸지르지 말고 꺼져' 대충 이정도..... 커밍아웃하고 글 올릴때 어느정도는 예상했습니다. 면상에다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천지삐까리에다 포차에서 술마시다 느닷없이 폭행당하기도 했는데 하물며 온라인에서는 오죽하겠나 싶었죠. 증거는 없지만 저래 욕설 쪽지 보내는 사람들은 아마도 다중이들이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싫증이 많은 동물이라 관심은 몇일 가지 않았고 제 쪽지함은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그때 쯤 한 통의 쪽지가 왔습니다. 참으로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이리 말하더군요. '님께서 성소수자글 올리면 숨어있던 다른 게이들도 글을 올리게 될터이니 앞으론 게이관련 글을 쓰지 말아 달라. 너도나도 커밍아웃하고 성소수자 글을 올리면 게시판에 성소수자들이 넘치지 않겠나? 그리되면 평화롭던 커뮤니티가 더러워지니 앞으론 자제해달라. 이런 쪽지를 보내게 되어 미안하다' 그 쪽지를 보고 이소룡 일대기를 다룬 영화 드래곤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소룡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백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그녀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평범한 백인 중산층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더없이 고상하고 품위 있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당신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시민권자이지 미국인은 아니다' 앞 선 견공자제 우공자세 남자성기성기 하던 욕설 쪽지들이야 못난 사람들 못난 짓이라 여겨 그래 너네도 참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사느라 풀데가 필요했구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 쪽지를 본 순간 망치로 얻어 맞는 듯 했습니다. 욕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성소수자가 내 곁에 존재 한다는 걸 인정하고 시작하지만 그 쪽지는 성소수자가 우리커뮤니티, 더 넓게는 나와 같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고 덮어버리려는 것이거든요. 전자는 투닥투닥이라도 할 수 있지만 후자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라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더없이 정중하고 예의바른 쪽지였지만 앞선 쪽지들과는 데미지가 비교 불가였습니다. 이건 나는 성소수자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와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와 내 눈앞에 그런 사람들 안보였으면 좋겠어와 차이랄까요. '난 성소수자들을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아. 다만, 자기들끼리 티내지 말고 사랑을 하던 말던 안보이는데서 했으면 좋겠어' 다른이들은 모르겠으나 저는 이말이 가장 비수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대개 이리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호모포비아도 아니며 꽤 오픈 마인드인 사람이라 진심으로 믿는 경우가 많더군요. 아마도 저에게 쪽지를 보낸 분도 그런 생각이었을겁니다. 난 당신을 욕할 생각도 공격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내 평화로운 커뮤니티는 성소수자들로 더렵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당신이 소수자인걸 티내지 말고 전처럼 평범하게 활동해 주십시요. 그리고 8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세상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17대 대선만 하더라도 성소수자 이슈는 공기보다 존재감이 없었죠. 하지만 요번 대선에서 성소수자는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후보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질문을 하고 개신교 단체가 공격하기도 지지자들이 아쉽다고 타박하기도 합니다. 주요 대선주자들이 기존의 입장보다 물러난 스탠스를 보이기도 해서 욕을 먹기도 하는데 저는 이러한 상황이 참 만족스럽습니다. 10년도 안되는 사이에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당하다 투닥거림은 있을지라도 지금은 우리라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정책이 토론된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없는 존재로 살라는 사람보다 견공자제 우공자제 남자성기성기 덤비는 사람이 더 반가운 이유입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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